구주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라고 심히 안타까워 하셨고,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라고 강조하시면서 말 못하게 귀신들리고, 간질, 곧 뇌전증에 걸린 한 아들을 구하시고 고치신 것이며, 결론적으로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때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다고 하신 것은 아무나, 아무렇게나 무조건 맹목적으로 기도한다고 다 되고 그와 같은 기적적인 응답과 이적이 나타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무엇보다 그 전에 기도에 있어서의 모든 핵심 및 전제는, 곧 하나님께서 기뻐 역사하시고 세상이 주지 못할 기적적인 역사들로 응답하시기에 합당한 기도에 있어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라는 말씀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기도의 응답에 있어서, 좀 더 넓게는 진정 그러한 응답을 위시한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에 있어서의 전제와 기준과 관건과 방법이 믿음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7장 20절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것에서 잘 알 수 있듯이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라고 까지 강조하신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러한 믿음이라는 게 무엇인 것인가가 하나님께서 기뻐 역사하시기에 합당한 믿음에 있어서, 특히 기도의 응답에 있어서야 말로 직접적인 요지와 관건과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으로 사실상 현실적으로 오늘날 적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믿음에 대해 많이 모호하거나 막연하거나 추상적이거나 오해하고 있거나 왜곡하고 있거나 또는 자기 마음대로 알고 있곤 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되는 것인데 단적으로 말해 믿음이란 한 마디로 말씀, 말씀의 신앙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말씀이신 하나님을 말씀대로 믿으며 말씀대로의 역사와 복을 말씀대로 의지하고 간구하며 말씀 그대로 누리게 되는 것이 믿음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근원적으로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일 뿐 아니라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는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곧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야 말로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인 것이고, 게다가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인생들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이신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께서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시어 말씀대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인 것이며, 뿐만 아니라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면에 있어서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모두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도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시고 진정 말씀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우리 인생들이 접하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믿으며 행하고 증거하며 누리고 성취되어 지게 하시는 직접적, 실질적인 힘이 아니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믿음이란 그러한 말씀이신 하나님을 말씀대로 믿는 것이고 말씀대로의 역사를 사모하며 의지하고 기대하며 구하고 누리는 것으로 실제로의 그러한 믿음, 곧 말씀대로의 믿음에 있어서 할 수 있느냐 없느냐, 맞느냐 맞지 않느냐라고 하는 것은 그 자체가 옳지 않는 것이고, 포인트가 맞지 않는 것이며, 사실 그렇게 하는 것은 아무 의미나 소용도 없는 것인데..
바꾸어 말해 말씀 자체가 하나님의 본질이자 의이며 하나님의 법이고 절대 진리인 것이기에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 그대로 단지 따르고 행하는 것, 또한 오직 말씀을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결단하고 몸부림치는 것이 믿음의 실체이자 실제인 것이고, 실상 삶의 자리와 사역의 현장과 인류 역사의 상황들 속에서 얼마나 그렇게 말씀대로 따르고 행할 수 있느냐, 참으로 어느 정도로 말씀을 사모하고 가까이할 수 있느냐가 믿음에 있어서의 모든 관건과 방법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제대로 된 믿음의 사람, 정말 좋고 깊으며 복된 믿음은 더 이상 옛 사람과 같이 죄악과 세속과 정욕과 미움과 원망과 시기와 거짓과 우상과 자기 소견과 온갖 불신앙들 등으로 병들로 죽은듯한 신앙이 아니라, 또한 자신의 힘이나 의, 세상의 능력이나 방법들도 아닌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순간순간마다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를 덧입어 죄악들과 피 흘리기까지 싸우고, 혹 범하게 된 죄악들에서는 최대한 빨리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더욱, 사실은 한 번이라도 더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암송하며 필사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로 나아가고 또 나아가는 살아 있고 깨어 있는 신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고, 좀 더 넓게는 그러한 말씀의 범주에 전적으로 속하고 실제로 말씀이 그 중심과 본질과 전부가 아닐 수 없는 부분이자 영역이라 할 수 있는 기도, 찬양, 경배, 예배, 헌신, 교제, 경건 등에 있어 마찬가지로 구주 예수님 십자가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를 덧입어 힘쓰고 몸부림치는 신앙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바로 그러한 믿음과 함께, 곧 본질적으로는 말씀의 신앙, 참으로 제대로 되고 치열한 말씀의 열정과 함께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의 충만하심이,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이 됨과 함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온갖 은혜와 은사들, 승리와 복들, 부흥과 열매들 등을 더욱 더 생생하게 누리고 경험케 될 수 있으며, 강렬하게 차고 넘치도록 될 수도 있는 것인데..
특히 기도에 있어서의 모든 전제와 기준과 관건이야 말로 본질적으로 따지면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말씀이 육신이 되신 구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구함과 함께 직접적, 경험적으로는 그 이름에 약속된 분이시자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인해 실제로 누리고 생생히 경험되며 하나님의 시간에 따라 예비되고 온전히 성취되어질 수 있게 되는 것이기에 다름 아닌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 곧 어느 정도로 치열한 말씀의 신앙이 되고 얼마나 뜨거운 말씀의 열정이 될 수 있느냐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마가복음9:17~29)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3년 11월 8일(수)1/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