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10월17일 전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10·17 비상조치’가 그것. 국회는 해산됐고 모든 정당 활동이 금지됐다. ‘유신헌법’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없애면서 박정희 영구 집권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교사와 공무원까지 유신을 홍보하는 대열에 동원되었다.
그 무렵 우리집은 강릉시 월대산 밑으로 이사를 갔다.
아버지가 10월 유신으로 산림청을 퇴직 당해서, 닭을 키우기 위해 그곳으로 간 것이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지 못해 닭콜레라로 닭이 전부 죽고, 우리 가족은 거의 굶다시피 했다.
아버지는 묵호항에서 마른 오징어를 사서 영동선 기차를 타고 영주까지 가서 오징어를 팔고, 풍기 인삼을 사서 와서 되팔았다.
아버지 품에서는 항상 오징어 냄새가 났다.
그러나, 나는 월대산 밑이 너무 좋았다. 남대천 하구에서 물놀이, 수 많은 과수원에서의 과일 서리, 월대산에서의 전쟁 놀이 등......
나의 어린 시절을 풍요롭게 해 준 것이 월대산이었다.
나의 황금 시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아버지가 교사가 된 것이다.
그것이 어린 시절 박정희와의 첫 만남이었고, 박정희는 내가 대학 1학년 때 술 먹다가 심복에게 살해 당했다.
나는 데모를 하다가 군에 끌려갔고, 제대 후 벌어진 제 2의 박정희 전두환의 행태에 실망을 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