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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당신이 머문자리는 아름답습니다 원문보기 글쓴이: 커피 사랑
▣ 구한국시대의 화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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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은행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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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시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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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시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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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독립국가라면 적어도 김구선생은 화폐도안에 들어가야하는건 아닌지.
노전 대통령 시절 10만원권 화폐에 김구선생을 언급한 사례가
있습니다.
그런데 5만원권만 발행되고 10만원권 발행은 소식이 없습니다.
매궁노들이 헤게모니를 쥔 세상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겠지요.
궁민교육에 엄청난 파장이 예상도 되구요.
매궁노 청신후라야 가능하겠지요.
잘~~~~봤읍니다. 두 손 모음-()-
반갑습니다.
콧물 흘리던 시절 아버지께서 10원짜리 지폐를 주셨고,
자랑삼아 가지고 놀다가 잃어버리고 엄청 속상했어지요.
걱정은 아버지께서 그 돈 행방을 물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앞섰어요.
유치원 정도 다닐 나이이고, 시골 30가구 남짓한 동네에서
군것질 할 엿장수가 다녀간 것도 아니지,,,
돈잃고 시무룩하게 저녁밥상을 마주했는데 아버지께서
언급이 없으시니 얼마나 다행이었을까요?
그 시절 떠올리면서 당시 10원짜리 지폐를 확인할 겸
올려보았습니다.
세우가 왔다 갔다 합니다.
이런 날은 장모님과 처족들이 함께 적당한 재료로 부친
전과 막걸리를 나누던 생각이 납니다.
편안한 저녁 맞으세요._()_
와우,,,,재밌습니다....
예! 찬찬히 화폐 발달사를 지켜보면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어릴적 미술시간 준비물 핑계로 몇 원을 더 타면
그게 그렇게 좋았던 기억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조선전기 돈은 책에서배운것 같은데,
조선 후기 돈은
당백전인가 당오전인가 대원군이 경북궁 중건하며 발행해서,
국민들 원성을 샀다고 역사책에서 배운것 같네요.ㅎ
상평통보는 아마 해방전까지 사용한거 같아요.
일원짜리 보니 반갑네요 ㅎ
초등때 도화지가 1원인가 2원인가 한것 같아요.
당시 삼양라면 소고기 라면이 20원부터인가 시작한거 같아요.
크기도 지금보다 훨씬 크지요.
팥빵이 30원인가 했는데,
기억나는 이름이 신초쿄빵 이라고 팥이 엄청 많이 들어 참 맛있었는데 ㅎ
백원이면 큰 돈이었지요.
세상 눈을 뜬 시차가 조금 차이가 있나 봅니다.
우리 초등 때는 1원이면 도화지 몇 장을 줬던 걸로 기억됩니다.
준비하지 못한 칭구들에게 여분은 나누기도 한 기억이 있습니다.
라면의 원조는 삼양라면이지요.
1개식 포장한 것, 5개?식 포장한 것이 있었는데 여러개를
한 묶음으로 포장한 것이 좀 쌌던 기억입니다.
삼양라면 맛에 길들여저 다른 라면은 좀 그랬어요.
그런데 멀쩡한 삼양라면 유지파동으로 곤혹을 치를고
엉뚱한 라면이 업계 1위에 올라섭니다.
업계와 정치판이 연루되 저지른 걸로 이해했어요.
S사의 뽀빠이, N사의 라면땅이 별미였지요.
근데 뽀빠이가 훨씬 고소하고 맛있었어요.
철없고 즐거웠던 시절이지요.
1700년대 미국에서 발행된 대조선 이라고 한글로 되었고 10달라 뒷면에는 10dollars라고 되어 있는 동전을 한달전쯤에 본적이 있는데
대자는 아래아자를 이용한 대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