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213〉
■ 가을 떡갈나무 숲 (이준관, 1949~)
떡갈나무 숲을 걷는다. 떡갈나무 잎은 떨어져
너구리나 오소리의 따뜻한 털이 되었다, 아니면,
쐐기집이거나, 지난 여름 풀 아래 자지러지게
울어대던 벌레들의 알의 집이 되었다.
이 숲에 그득했던 풍뎅이들의 혼례,
그 눈부신 날개짓 소리 들릴 듯한데
텃새만 남아
산 아래 콩밭에 뿌려 둔 노래를 쪼아
아름다운 목청 밑에 갈무리한다.
나는 떡갈나무 잎에서 노루 발자국을 찾아본다.
그러나 벌써 노루는 더 깊은 골짜기를 찾아,
가을에도 얼지 않는 파릇한 산울림이 떠내려 오는
골짜기를 찾아 떠나갔다.
나무 등걸에 앉아 하늘을 본다. 하늘이 깊이 숨을 들이켜
나를 들이 마신다, 나는 가볍게, 오늘 밤엔
이 떡갈나무 숲을 온통 차지해 버리는 별이 될 것 같다.
떡갈나무 숲에 남아 있는 열매 하나.
어느 산짐승이 혀로 핥아 보다가, 뒤에 오는
제 새끼를 위해 남겨 놓았을까? 그 순한 산짐승의
젖꼭지처럼 까맣다.
나는 떡갈나무에게 외롭다고 쓸쓸하다고
중얼거린다.
그러자 떡갈나무는 슬픔으로 부은 내 발등에
잎을 떨군다. 내 마지막 손이야. 뺨에 대 봐,
조금 따뜻해 질거야, 잎을 떨군다.
- 1991년 시집 <가을 떡갈나무 숲> (나남)
*우리나라 산에서 자생하는 나무들 중에서 가장 흔한 것이라면 아마 도토리나무일 것입니다. 그런데 들국화와 마찬가지로, 도토리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나무가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참나무과 속하는 굴참나무나 떡갈나무, 신갈나무 그리고 상수리나무 등 모양도 비슷하고 도토리처럼 생긴 유사한 열매를 맺는 여러 나무들을, 우리는 통칭하여 도토리나무라고 부르더군요.
가을이 되면 산기슭에는 도토리가 무수히 떨어져 너구리나, 다람쥐들 같은 산짐승들에게 소중한 먹이가 됩니다. 우리 집 주차장과 연해 있는 산기슭에도 도토리나무가 많아 도토리가 여기저기 굴러다니며 발에 채이고 있고요.
이 詩는 가을이 깊어가는 어느 날, 산 가운데 위치한 펜션이나 산장에 머물면서 떡갈나무 숲을 여유롭게 천천히 거닐며 바라보고 느낀 자연과의 교감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이 詩를 읽다 보면, 떡갈나무 숲의 깊어가는 가을의 풍경과 숲속에 존재하는 개체들이 다른 생명체를 위해 기꺼이 베풀고 도와주며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가 가을 숲에 들어온 것처럼 바로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좀 더 들어가 본다면 떨어지는 잎사귀와 작은 벌레집, 노루 발자국이 보일 듯하고 풍뎅이 날개짓 소리, 작은 새소리가 옆에서 들리는 듯 시인의 풍부한 감성적인 언어로 세세하게 그려 놓았음을 알 수도 있을 것입니다.
최근 들어서는 아무리 살펴봐도 노루는 보이질 않고, 대신 고라니의 발자국만 무수히 보이겠습니다만.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