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질과 파쇼정권의 이상한 공생
2020년 9월의 한국은 질병보다 더 무서운 세 가지 현상에 함몰되어 있다. 거기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세 가지는 '절망'과 '분노' 그리고 '두려움'이다. 이 현상에 국가든 국민이든 한 번 빠져버리면 헤쳐 나올 수 없는 블랙홀이다. 특히 보수 국민들은 이 현상으로 인한 패배감과 무력감에 삶의 의지력마저 상실하고 있다. 이 현상의 중심에는 괴질 인 중국 우한폐렴이 자리 잡고 있다.
인간은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행복한 삶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살아온 나날들이 있었기에 좌절을 하더라도 절망은 하지 않는다. 비록 고난과 마주하였을 때 이를 헤쳐 나가면서 현재의 고단함이 내일을 약속할 것이라는 기대로 살아왔다. 그러니 이제는 기대할 목적도 없이 무의미한 일상의 시계를 따라 무기력하게 그럭저럭 하루를 보내면서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늘었다. 희망은 절망에 의해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국가가 법과 원칙에 따라 운영되면 국민 개개인은 국가가 정책을 펴면 따라가면 된다. 국가가 법과 원칙이 아닌 자신의 지지지를 위하고 떼법에 따라 국가가 경영되면 개인은 억울함으로 밤잠을 설치고 그런 정권과 공무원을 더 이상 믿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정권이 쏟아내는 정책은 국민의 뜻과 다르니 하나하나 마다 저항할 수밖에 없다. 저항은 분노로부터 시작된다.
두려움이라는 것은 끔찍한 풍문과 거짓에서 나온다. 두려움의 대상이 눈앞에 출현하면 처음에는 놀라움과 공포에 두려움이 밀려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을 함으로써 두려움은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실체도 알 수 없고 미래에 도래할지도 알 수 없는 것을 두고서 현상을 과장하고 되풀이하면서 사람들을 두려움으로 세뇌시키면 사람은 죽음의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어간다.
지금의 '절망'은 좌파정권의 경제실패에 그 원인이 있다. 소득주도경제성장이라는 정책을 내세워 임금 인상으로 경제성장의 동력을 마련한다는 정책인데 이 정책은 세계적으로 실패했고 한국은 이 정책으로 망국의 길로 들어섰다.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은 실직하고 영세업자는 가게를 접고 경제적 매장을 당하는 파산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좌파정권은 정책의 실패는 인정하지 않고 우한폐렴 그 책임을 전부 떠넘기고 있으니 국민은 절망을 넘어 절벽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분노 역시 그 원인은 좌파정권과 이에 동조한 세력들에게 있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탄핵을 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는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법과 정의를 더러운 붉은세력의 발에 밟혀서 신음하다가 아무 쓸모도 없는 쓰레기가 되어 버려져있다. 여기에서 분노가 발생했다. 좌파정권은 좌파만을 위한, 좌파를 위한 정치를 하고 우파국민을 탄압하는 독재 폭압정치를 행하고 있어 우파 국민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여기저기서 표출되고 있다.
우한폐렴은 두려움이라는 공식이라고 선전하는 것이 좌파정권과 붉은 언론이다. 좌파독재정권은 중국에서 발생한 괴질을 교묘하게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반정부세력을 탄압하는 데 이용을 하고 괴질로 삶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국민을 향해 던져주는 배급으로 어리석은 국민의 지지를 회복하기도 한다. 중국 발 괴질에 대한 두려움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좌파정권의 속임수에 국민이 현혹되거나 두려움에 겁을 먹을 이유는 없다.
좌파정권은 국민의 '절망'과 '분노'를 권력 창칼로 억누르고 '두려움'에게 붉은두건을 씌워서 선봉에 세워 겁박의 정치를 하고 있다. 이런 정치는 파쇼 정권의 파시즘 독재정치다. 혈세를 먹이처럼 던져주는 배급을 학수고대하는 미개한 인간들과 반역과 부역행위를 한 위장보수가 아닌 파쇼에 투쟁하는 국민은 어떠한 핍박을 받더라도 결코 주눅이 들거나 무서워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