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날새와 함께하는, 2026년 6월 20일 토요일입니다. 창세기 49장, 10절 말씀에서 '기다림'이라는 제목으로 창세기 이야기를 드립니다.
10절: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아멘
'인생이 무엇이냐?' 물으면 기다림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학교 다닐 적에는 공휴일을 기다렸습니다. 방학을 기다렸습니다. 소풍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한 학년 빨리 올라가기를 기다렸습니다. 나중에는 졸업을 기다렸습니다. 대부분의 기다림은 시간이 되면 그 기다림이 현실이 됩니다. 기다릴 수 있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견딜 수 있기도 합니다. 큰 수술 후에 만에 하나 죽을 날까지 퇴원할 수 없다고 생각해 보면 처참합니다. 그러나 수술 후에 집에 돌아갈 퇴원 날을 기다린다는 것은 행복이지 않습니까?
저는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랄 때는 모든 것이 기다림의 연속이었습니다. 유월에는 모내기를 합니다. 모내기를 이집 저집 전부 끝나고 나면 들판은 작은 벼들로 초원을 이룹니다. 벼들이 자라는 곁을 지날 때마다 저는 가을을 기다렸습니다. 벼들이 황금빛으로 변하고 나면 곧 추수를 하게 되고 추수가 끝나면 집집마다 햅쌀로 밥을 지어 가족들이 둘러앉아 웃음꽃을 피우게 됩니다. 벼들이 자라는 들판에서 바로 이런 가을을 기다렸습니다. 우리집 뒷마당에는 큰 살구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해마다 사월이면 분홍빛 살구꽃이 만발합니다. 저는 살구꽃도 좋았지만 살구꽃을 보면서, 황금빛을 한 살구를 기다렸습니다. 녹음이 짙은 여름이면 붉고 노란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을 가을을 기다렸습니다. 겨울에는 하얀 눈을 기다렸습니다.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은 오늘의 가난이나 힘든 일이나 아픔들을 견딜 수 있게 해 주는 힘이었습니다. 기다릴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그것은 절망입니다. 절망은 의욕을 잃게 만듭니다. 그래서 결국 절망은 자포자기하게 만듭니다. 어떤 철학자의 말과 같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절망입니다.
야곱은 아들 유다에게 축복할 때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 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하였습니다. 야곱의 이 축복 중에 규라는 것은, 통치자의 지휘봉이나 지팡이를 말합니다. 지휘봉은 아무나 들지 못합니다. 합창단의 지휘자나 악단의 지휘자가 아닌 연주자는 지휘봉을 잡지 못합니다. 별자리라 하여 지휘봉을 잡는 것도 아닙니다. 사단장이나 군단장이 되어야 지휘봉을 잡습니다. 그러면 유다 지파에는 규가 떠나지 않는다는 것은 유다 지파를 통해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시는 메시아가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 메시아를 실로가 오시기까지라 말씀하였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유다 지파에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유다 지파가 다른 지파들 보다 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메시아에 대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빙 둘러서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한다면, 유다지파는 예수님을 기다렸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보존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았던 것입니다. 유다지파는 실로가 오시기까지 그들은 살아있어야 했습니다. 유다지파는 실로가 오시기 전까지는 결코 없어질 수 없었던 지파였습니다. 430년 종살이를 했었음에도 유다지파는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실로가 오셔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벨론에 끌려가서 포로로 70년을 살았지만 유다지파는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살아남았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지휘할 지휘봉을 잡으실 실로가 오신다는 기다림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어떤 절망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기다렸던 분이 유다 지파에게 있었습니다. 그분이 바로 메시아 즉 구주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기다립시다. 누구를 기다릴까요? 이미 규를 잡으신 예수님을 기다립시다. 예수님은 성령님을 보내시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들의 하루하루가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이 되어 살도록 합시다. 직장에서도 예수님이 그곳에 오시기를 기도합시다. 학생들은 등교하여 책상에 앉아 먼저 예수님이 그곳에 오시기를 기도하고 학교에서의 하루를 시작합시다. 먼 길을 떠날 때도, 유다 지파가 실로가 오시기를 기다림 같이 예수님이 길을 떠나는 나에게 오시기를 기도하고 길을 떠납시다. 우리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즉 나 혼자 무엇을 시작했다면 그것은 아직도 진정한 시작이 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기도합시다.
예수님은 지휘봉을 잡으신 통치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좁게는 나를 다스리시는 왕이시며 넓게는 우주 만물과 인간들이 사는 세상을 주관하시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이 나의 왕이 되시며 우리 가정의 통치자가 되시며 우리 교회를 다스리시는 통치자가 되시기를 기도합시다. 그리고 우리들이 교만하게 차지했던 모든 자리를 예수님께 내어드립시다. 그리고 예수님을 항상 기다립시다. 특별히 다시 오실 주님을 신부가 신랑을 기다리는 것처럼 기다립시다.
함께 기도합시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시기를 기다림으로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다스리시며 우리 가정을 다스리시며 우리 교회를 다스리시려고 지휘봉을 잡으시고 다스려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하날새 : 하나님은 날마다 새 일을 행하신다.(사 4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