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맡은 봄내
막바지 추위가 닥쳐 누그러져 가고 있다. 지난 주 입춘이 지났고 우수가 다가온다. 나는 봄방학을 맞아 근교 산책을 부지런히 다니고 있다. 예년보다 더 혹독한 추위를 건너온 봄은 어디쯤 오고 있는지 궁금해서다. 어제는 구룡사 설법전과 종각 사이 산수유나무 꽃망울을 살펴보고 굴현고개 너머 지개리를 지났다. 개울가 늪지 갯버들 버들개지 꽃눈이 솜털처럼 보송보송 부풀어 갔다.
이월 둘째 화요일 아침나절이었다. 햇살이 퍼지길 기다려 빈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섰다. 집 앞이 농협 창구에 들러 은행 일을 한 가지 보고 도계동으로 가는 101번을 탔다. 며칠 전 냉이를 캔다고 낙동강 강가로 나가던 동선과 겹쳤다. 만남의 광장 버스 정류소에 이르니 매표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는 표를 끊을 일은 없고 주남저수지를 돌아 본포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본포로 가는 버스를 타야 내가 가고자하는 목적지를 거쳐 간다. 내가 가려는 곳은 주남저수지 둑 건너편이다. 고양과 석산을 지난 마룡마을 앞이다. 1번 마을버스는 자주 다녀도 본포 가는 버스는 드물었다. 버스 정류소 대합실로 드니 마음씨 푸근한 매표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지난 번 들렸을 적엔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와 강둑 산책을 하고 냉이를 캐 올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내가 가려는 행선지가 진영이나 김해로 가는 표가 아니었기에 아주머니한테 볼 일 없이 동읍 대산으로 가는 버스를 모니터를 살폈다. 예상보다 이르게 본포를 거쳐 북면 온청장으로 가는 버스가 바로 왔다. 30번 녹색버스를 타니 승객이라곤 나를 포함 단 두 사람이었다. 용강고개를 넘어 용잠삼거리에서 한 사람이 더 탔다. 주남삼거리에서 고양과 석산을 지난 마룡마을 앞에서 내렸다.
마을 앞 찻길 건너 농로를 확장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저만치 주남저수지가 갯버들 사이로 드러났다. 내가 찾아 나선 돌니나리는 논배미로 물길이 드는 수로에 자란다. 아까 버스에서 내렸던 정류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논으로 물길이 드는 수로가 있었다. 언덕을 내려가 논바닥으로 가 보았다. 볕이 바른 자리라 한동안 얼었던 얼음은 녹아 겨울을 건너온 돌미나리 잎이 보였다.
나는 배낭을 벗어 놓고 장갑을 벗었다. 겨울이 오기 전 웃자란 미나리 잎줄기는 추위에 얼어 시들어 있었다. 그 시든 검불을 걷어내니 돌미나리의 파릇한 잎줄기가 드러났다. 등산화 신발이 젖지 않도록 조심해서 허리를 굽혀 돌미나리를 걷었다. 돌미나리는 겨울을 건너오느라 잎줄기가 많이 자라지는 않았다. 그래도 봄이 아직 멀었는데도 파릇한 잎줄기가 살아 있음이 신기해 보였다.
햇살 바른 곳에서 한동안 허리를 굽혀 돌미나리를 걷어 모았다. 이후 다시 검불을 가려 수로에 흐르는 맑은 물에 돌미나리를 헹구었다. 잎줄기가 여려서 아주 보드라웠다. 가져간 비닐봉지 두 개에 나누어 담아 배낭에 넣었다. 이후 집으로 바로 복귀하지 않고 주남저수지 가장자리로 나가보았다. 겨울을 나는 덩치 큰 철새들이 오글거렸다. 큰고니와 쇠기러기들이 한가로이 노닐었다.
산모롱이를 돌아가니 내수면어업 고깃배가 몇 척 묶여 있었다. 주남저수지에서 민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잇는 어부 가운데 한 집이었다. 얕은 수면에는 시든 연잎과 연밥이 가득했다. 찻길로 나오니 석산마을 앞이었다. 버스 정류소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앱으로 버스 운행 시각을 살피니 아직 뜨질 않았다. 본포에서나 온천장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한참 있어야 오는 듯했다.
버스를 가다리면서 ‘돌미나리’로 단시조를 한 수 남겼다. “주남지 건너 저편 논배미 드는 물길 / 겨우내 추위에도 미나리 살아남아 / 파릇한 잎줄기 걷어 봄 향기를 맡는다” 시내로 드는 버스를 타고 집 근처 반송시장 시골밥상 식당을 찾아갔다. 곡차를 시켜놓고 주인아주머니한테 돌미나리 한 봉지를 건넸다. 돌미나리는 금방 노릇한 전으로 부쳐져 나왔다. 남보다 먼저 봄내를 맡았다. 18.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