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화원(題畵猿)
원숭이
나식(羅湜, 1498~1546)
늙은 원숭이 한 마리가 제 무리를 떠나
해 질 무렵 홀로 나뭇가지에 않았는데
꼿꼿이 앉아 머리도 돌리지 않는 모습
온 산의 울림 소리를 듣고 있는가 보다
老猿失其群(노원실기군)
落日孤査上(낙일고사상)
兀坐首不回(올좌수불회)
想聽千峰響(상청천봉향)
어떤 짐승이건 마찬가지지만 촐랑 방정 원숭이도 늙으면 지혜가 생기고
영험해 지나 보다. 사람도 젊어서 오두방정으로 경박했다가도 나이 들면
어느 정도 중후해지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이 시는 나식이 원숭이 그림
의 화제로 즉석에서 지어 써넣었다. 이 자리에는 신광한, 정사룡 등 당대
유명 시인들이 함께 있었는데 모두 감탄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전
해 온다. 그림에 어울리는 화제는 그림을 돋보이게 하며 그림을 감상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래서 이달은 이 시를 ‘그림속에 다시 그림이 있다’라고
평가했다.
[작가소개]
나식[ 羅湜 ]
자 : 정원(正源), 호 : 장음정(長吟亭)
시대 : 조선
출생 – 사망 : 1498년(연산군 4) ~ 1546년(명종 1)
성격 : 학자
출신지 : 미상
성별 : 남
본관 : 안정(安定)
저서(작품) : 장음정집
대표관직(경력) : 선릉참봉(宣陵參奉)
<정의> 조선전기 『장음정집』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안정(安定). 자는 정원(正源), 호는 장음정(長吟亭). 아버지는 창릉참봉(昌陵參奉) 나세걸(羅世傑)이며, 어머니는 풍양조씨(豐壤趙氏)로 대사헌 조익정(趙益貞)의 딸이다. 조광조(趙光祖)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34년(중종 29) 사마시에 합격하여 선릉참봉(宣陵參奉)이 되었다가 1545년(명종 즉위년) 을사사화 때 윤임(尹任)의 일파로서 이휘(李煇)의 사건에 연루되어 파직, 흥양(興陽)으로 유배되었다.
이듬 해 강계(江界)로 이배된 뒤 사사(賜死)되었는데, 그 때 나이가 49세였다. 1568년(선조 1) 영의정 이준경(李浚慶)의 상소로 신원(伸寃)되었다. 저서로는 『장음정집(長吟亭集)』 3권이 있다.
<참고문헌>
『을사전문록(乙巳傳聞錄)』
『장음정집(長吟亭集)』
[네이버 지식백과] 나식 [羅湜]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