行狀
嘉善大夫行江原道觀察使松亭先生 遺事 ②
滄洲 全克恬
以吾所甞目擊於諸文者言之, 其養生奉先之以孝, 忘私徇國之以忠, 友愛乎諸兄, 惇睦乎九族者, 是先生遠到之發軔處. 則於先生何多乎此, 而在諸人有不可企至者矣. 况其所學甚正, 所見亦高, 可爲表準於當世與來裔者歟.
至今儒林立祠俎豆之, 不唯觀感於平日, 亦且聞風於百年之後, 景慕先生之德業, 有令無纇爾云云. 嗚呼! 先生沃川人也, 姓全, 諱彭齡, 字叔老, 松亭其號也. 生於成化十六年庚子. 翌歲先考殁, 依母以長, 仍受慈教, 就學於外. 不多年有烜爀聲.
[행장(行狀)]
강원도관찰사를 지낸 송정 전팽령 선생의 일대기와 남겨진 이야기 ②
[ 嘉善大夫行江原道觀察使松亭先生 遺事 ② ]
창주 전극념
내가 일찍이 여러 글에서 직접 살펴본 바를 가지고 말하건대, 살아계신 부모를 봉양하고 조상을 받듦에 효성으로써 하고, 사사로운 이익을 잊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침에 충성으로써 하며, 형제간에 우애하고 문중(구족)과 화목하게 지낸 것은 선생께서 원대한 경지에 이르게 된 출발점이었습니다.
선생께는 이것이 어찌 대단한 일이겠습니까마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감히 미치지 못할 바가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그 학문이 매우 바르고 견해 또한 높으시니, 당세와 후손들에게 표준(본보기)이 될 만함에 있어서이겠습니까?
지금까지 유림에서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단지 평소에 그 덕화에 감화되었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또한 백 년 뒤에도 그 풍모를 전해 듣고 선생의 덕업을 경모하여, 아름다운 명성에 허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아! 선생은 옥천(沃川) 분이시니 성은 전(全)씨요, 휘(이름)는 팽령(彭齡), 자는 숙노(叔老)이며, 송정(松亭)은 그 호입니다. 성화 16년(경자년, 1480년)에 태어나셨습니다. 이듬해에 부친상을 당하여 어머니를 의지하며 자라셨는데, 어머니의 자애로운 가르침을 받고 밖으로 나아가 학문에 힘쓴 지 몇 년 되지 않아 그 명성이 크게 빛나게 되었습니다.
[출처] 창주문집
양생봉선(養生奉先):
살아계신 부모를 봉양하고 돌아가신 조상을 받듦.
망사순국(忘私徇國):
사사로움을 잊고 나라를 위해 헌신함.
발인처(發軔處):
수레를 출발시킨 곳, 즉 어떤 일의 시작점이나 기초.
조두(俎豆):
제사 지낼 때 쓰는 그릇으로, 여기서는 제사를 지내며 추모함을 의미함.
유령무뢰(有令無纇):
아름다운 명성만 있고 흠이나 허물이 없음.
성화(成化):
명나라 헌종의 연호로, 성화 16년은 조선 성종 11년(1480년)에 해당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