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16. 큐티
마태복음 14:28 ~ 36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관찰 :
1) 물 위를 걷다가 빠지는 베드로
- 28절.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 물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두려워하다가 예수님이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들은 베드로가 용기를 내었습니다.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용기로 베드로는 인간으로서는 처음으로 물 위를 걸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 29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 30절.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 그러나 베드로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물 속으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한꺼번에 빠진 것이 아니라 점차적으로 빠져간 것입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주님께 소리를 질렀습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절박한 상황에서 베드로는 간절히 주님을 부른 것입니다. 그것이 또한 베드로가 사는 길이 되었습니다.
- 31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 주님은 베드로의 손을 잡아서 물 위로 끌어 올리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이 말씀은 책망이라기보다는 안타까움의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만일 책망이라면 물 위로 뛰어내리지 않은 다른 제자들은 무엇입니까? 주님은 베드로의 입장에서 안타까움에서 “왜 그랬니?”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믿기만 하면 물에 빠지는 수모를 당하지 않았을 텐데 왜 그랬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2) 주님이 베드로와 함께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쳤다.
- 32절.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 주님이 바람과 바다를 다스리시는 분이시라는 것은 이미 제자들이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또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제자들의 믿음은 강화되었습니다.
- 33절.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 배에 있던 제자들의 동일한 고백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의도하신 바였다고 할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이 누구이신지를 보여주시고 알려주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마치 억만장자 아버지가 아들의 생일날 깜짝 놀랄만한 선물을 주는 것을 통해서 자신의 사랑과 능력을 보여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 배에 있던 이들은 예수님께 절을 하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했습니다. 이들의 고백은 최소한 이 시간 만큼은 진실했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심으로 소기의 목적을 취하신 것입니다.
3) 게네사렛 땅에서의 사역
- 34절. “그들이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니” => 게네사렛은 갈릴리 호수 북서쪽 평야 지대를 뜻하는 히브리어 ‘긴네렛’의 헬라어 음역입니다. 가버나움은 이곳의 북쪽에 위치합니다. 갈릴리 호수를 게네사렛 호수로 부르는 것도 여기에서 연유하는 것입니다.
- 35절 ~ 36절. “그 곳 사람들이 예수이신 줄을 알고 그 근방에 두루 통지하여 모든 병든 자를 예수께 데리고 와서 다만 예수의 옷자락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 => 게네사렛 땅의 사람들은 예수님이 예수님이신 줄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랬기에 그 근방의 모든 병든 자를 예수께 데리고 와서 예수님의 옷자락에라도 손을 댄다는 다 나음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된 것입니다. 게네사렛 땅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본 축복으로 주님의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은혜의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가르침 :
1) 주님은 제자들이 주님이 누구이신지를 바로 알기를 진정으로 원하셨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사역의 핵심이셨습니다. 창 3:15에서 말씀하신 여인의 후손으로서 사탄을 멸하고, 사망과 죄를 파하시는 주님이 누구이신 줄 알아야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주님의 증인으로서 살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2) 마태복음의 저자 마태의 기록하는 핵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가에 대해서 주님이 가르치시고, 제자들이 깨달은 바를 기록함으로 읽는 모든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이시고, 그렇기에 또한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기를 원함으로 기록을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
3) 물위를 걸으시고, 베드로를 물 위에 걷게 하시는 분, 풍랑으로 배를 조절할 수 없는 지경에서 배에 오르시자마자 바람을 멈추게 하시는 분,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아는 자들에게 병고침의 능력을 베풀어주시는 분, 이런 분이 누구이신지를 모르고 사는 인생이 안타깝게 다가와야 합니다. 그것이 또한 주님의 마음일 것입니다.
적용 :
1) 예수님은 나 자신의 믿음에 대해 주님이 책망도 하시지만, 책망보다는 안타까움으로 바라보고 계심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하늘보좌 우편에서 미리 간 성도들과 더불어 나의 믿음의 경주를 응원하고 계십니다. 그 무리에 아내 정유경 사모가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기는 신앙의 경주를 완주하기를 원하십니다. 문제는 주님의 응원을 듣지 못하고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외롭다고 투정하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후에 단 한순간도 혼자인 적이 없습니다. 주님의 사랑과 관심 속에서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겠습니다. 아내가 먼저 하나님 나라로 갔지만 여전히 성령으로 말미암아 함께 한다는 것을 믿습니다. 주님은 그런 나에게 주님의 자녀들을 맡겨주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나에게 맡겨진 심령들에 대해서 지적하기 위한 관찰이 아니라 격려와 세워줌을 위한 살핌의 시각을 갖추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주님으로부터 은혜로 받은 것들이 무엇인지를 늘 살피고 알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 나에게 어떤 존재가 되시는가? 이것이 나의 하루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사역의 열매는 결국 예수님이 드러나시고, 나와 또 그 사역에 연관된 사람들이 예수님을 인정하게 되는 것으로 귀결되어야 함을 믿습니다. 그런 면에서 아내가 천국을 가게 되고 우리 아이들의 믿음이 견고해 지고 예수님을 닮고자 한다는 것은 너무나 귀한 은혜가 우리 가정에 임한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고백하고 감사드리게 됩니다. 우리 부부의 믿음을 최소한 민영이, 찬영이, 병조가 지켜보았고, 그 믿음의 실체를 받아가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지난주 토요일 이종용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사모님을 뵙지는 못했지만, 이종용 목사님 사모님이 우리 아내에게 하셨던 말씀 “예수님만 남는 것이예요”라는 고백이 다시금 회상이 됩니다. 예수님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