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E.H.Carr,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가는 '사실'의 비천한 노예도 아니고, 난폭한 지배자도 아니다. 역사가와 사실의 관계는
평등한 관계, 주고받는 관계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
랑케의 실증사학에 반기를 든 E. H. Carr의 말이다. 역사란 단순한 과거의 사실이 아니라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가에 의해 재해석된 현재의 역사라는 뜻이다. 사실을 못 가진 역사가는 뿌리를
박지 못한 무능한 존재며, 역사가가 없는 사실이란 생명 없는 무의미한 존재라는 뜻이다.
필자도 과거의 인물들과 사실에 바탕을 두고 부단히 대화를 시도했다. 특히 궁예, 묘청, 신돈,
연산군, 광해군, 정도전, 어우동, 장희빈 등 소위 역사의 승자들보다 패자(?)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들의 말을 더 귀담아 들어보는 것이 현재의 상황에 더 적실성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2. "역사는 영원한 지식의 보고로 남기 위해 이루어진 사실의 집적인 과학이다."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전쟁사)
“내가 여기에 쓰는 역사는 재미가 없을 수도 있다.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의 진실을 들여다보려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역사의 반복 또는 적어도
반복에 가까운 것을 대비하려는 사람이라면, 이 글에서 충분한 도움을 얻을 것이다. 이는 대중의
찬사를 받고자 쓰는 문학이 아니라, 영원한 지식의 보고로 남기 위해 이루어진 사실의 집적이다"
투키디데스의 이 말은 아무리 역사가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이 자신의 입장'에서 과거를 해석한
것이라 해도, '팩트'를 떠나서는 역사학이 성립할 수 없다는 의미다. 필자가 이 책을 쓰면서 가장
새긴 말이다. 결론의 평가 부분은 어차피 필자의 주관적 견해가 반영될 수밖에 없지만 최소한
팩트에 근거한 평가를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라도 팩트의 오류가
있다면 이는 전적으로 필자의 능력 부족임을 고백하며 독자님들의 질정(叱正)을 기대한다.
3. 춘추필법春秋筆法)
공자는 기강이 무너진 천하를 과거를 거울삼아 바로잡겠다는 취지로 춘추를 집필했다. 그리고
집필 원칙으로 사건을 기록하는 기사(記事), 직분을 바로잡는 정명(正名), 칭찬과 비난을 엄격히
하는 포폄(褒貶)을 제시하고 오직 객관적인 사실에 입각해 자신의 판단에 따라 집필했다.
이렇게 해서 편년체(編年體) 역사서의 효시인 '춘추'가 탄생했다. 대의명분을 따라 객관적
사실에 입각해 엄정하게 기록하는 춘추필법, 필자도 비록 능력 부족으로 미치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노력만큼은 결코 뒤지지 않았다고 감히 자부한다.
4. 사필소세(史筆昭世)
산시(陝西)성 한성(韓城)시는 사성(史聖)으로 추앙받는 태사공 사마천의 고향이다.
이곳에는 그의 사당과 무덤이 남아 있다. 그곳에 오르다 보면 가파른 계단 끝 산문의 현판
하나가 눈길을 붙잡는다. '사필소세(史筆昭世)' 즉 역사가의 붓이 세상을 밝힌다는 뜻이다.
불세출의 통찰력과 날카로운 안목, 참다운 지성과 경험,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하고 지혜로운
눈의 사마천, 그는 인간을 향한 끝없는 긍정과 사랑을 바탕으로 불후의 명저 '사기'를 땀과 피로
썼다. 그리고 붓으로 세상을 밝혔다. 부족한 이 책도 세상을 밝히는 조그마한 등불이라도
되었으면 한다.
- ‘100인의 인물로 본 우리 역사’ 서문에서, 저자 변호사 서정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