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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이번에는 시리즈 3번째 연재물인 SF편으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지난 연재물인 PG편, SG편은 아래 링크해두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PG편 : http://cafe.daum.net/ilovenba/7n/250380
SG편 : http://cafe.daum.net/ilovenba/7n/250440
범례 및 프랜차이즈의 간단 역사 등은 이미 지난 편을 통해서 소개해 드렸으나, 이번 편을 맨 처음으로 보시는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덧붙였습니다.
범례
- 이 글의 랭킹은 기본적으로 아랫 순위부터 소개됩니다.
- 위 글 내의 모든 스탯(기본적인 신체 사이즈 포함)은 바스켓볼 레퍼런스(www.basketball-reference.com) 사이트의 정보를 기준으로 참고, 제시하였습니다.
- 스탯 정보는 주요 1차 스탯과 일부 2차 스탯을 기재하였습니다. 1차 스탯은 득점(PT), 리바운드(RB), 어시스트(AS), 블록슛(BK), 스틸(ST), 출장시간(MIN)의 총계 및 평균치, 야투성공률(FG%), 3점슛성공률(3PT%), 자유투성공률(FT%), 3점슛 성공개수(3PTM)까지 수록하였습니다. 턴오버, 개인파울, 오펜/디펜리바 등의 정보는 생략하였으니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2차 스탯은 가장 대표적인 PER와 윈쉐어(WS)만 수록하였습니다.
- 주요 스탯 외에 해당 선수의 신체 사이즈(키와 체중), 포지션, 연차(Yrs), 출장경기수(Games), 활동한 시즌 기간(Season) 정보도 수록하였습니다. 포지션별 랭킹인데 포지션 정보가 중복해 들어간 이유는 두 포지션을 넘나드는 선수를 구분하기 위함입니다. (즉 경우에 따라 세컨드 포지션까지 표시하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시즌의 표기는 파이널이 열린 해를 기준으로 하였습니다. (예: 99-00시즌은 “00”으로 표기함)
- 선수들의 주요 수상경력도 기재하였습니다. 단, 올스타 MVP 등과 같이 직접적인 선수 평가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수상 실적은 제외했습니다. 이밖에 올스타 선정 횟수, 우승 횟수도 병기하였습니다.
- 각 스탯의 해당 프랜차이즈 내 랭킹도 첨부하였습니다. 이번 브루클린 네츠 프랜차이즈의 경우, 3점슛 개수 및 3점슛율은 Top12까지, 나머지 스탯들은 Top15까지 랭킹을 매겼습니다.
- 선수에 대한 소개는 해당 프랜차이즈 내에서의 활약상을 위주로 기술하였으며, 따라서 다른 팀에서의 활약상 등은 가급적 생략하거나 짧게 요약하였습니다. 또한 기본적으로 랭킹이 올라갈수록, 마이너 랭킹보단 메이저 랭킹일수록 선수 소개의 분량이 많고 자세합니다.
- 랭킹 밖의 선수들은 “Honorable Mention”이란 명목으로 랭킹 소개 끄트머리에 이름만 간단하기 명기하였습니다.
브루클린 네츠 프랜차이즈의 간단 역사
랭킹 소개에 앞서, 이해를 돕기 위해 브루클린 네츠 프랜차이즈의 간단한 역사를 먼저 소개하고자 합니다.
브루클린 네츠는 ABA 리그가 출범한 67-68시즌에 “뉴저지 어메리칸즈(New Jersey Americans)”란 이름으로 ABA에서 창단한 프랜차이즈로, 76-77시즌부터 NBA 리그로 편입되었으며, 지난 시즌까지 총 48년의 프랜차이즈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승 횟수는 ABA 시절에 2차례 있었으며, 아직 NBA에서는 우승 경력이 없고 준우승만 2회 했죠.
뉴저지 어메리칸즈는 창단 이듬해인 68-69시즌에 프랜차이즈를 인근 대도시인 뉴욕으로 옮기며 “뉴욕 네츠(New York Nets)”가 되었습니다. “네츠(Net)”라는 구단명은 농구골대의 “그물”을 가리키며, 또한 뉴욕에 소재한 기존의 메이저 스포츠 구단인 MLB의 뉴욕 메츠(Mets), NHL의 뉴욕 제츠(Jets)와 라임을 맞춘 것이기도 하죠.
뉴욕 네츠는 초창기에 슈퍼스타 릭 배리와 올스타 가드 빌 멜치오니, 건실한 센터 빌리 폴츠 등을 앞세워 71-72시즌에 파이널까지 진출했지만 아쉽게도 준우승에 그쳤습니다. 그 후 배리는 NBA로 리턴했지만, 네츠는 73-74시즌에 슈퍼스타 줄리어스 어빙의 영입에 성공하며 프랜차이즈 커리어의 황금기를 맞게 되었죠. 신임 케빈 로어리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네츠는 74 파이널에서 유타 스타스(Utah Stars)를 물리치고 감격의 첫 우승을 일궈냈습니다. 이듬해에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스피리츠 오브 세인트루이스(Spirits of St. Louis)에게 충격의 업셋 패배를 당하며 백투백 우승에 실패했지만, 절치부심하며 전력을 재정비한 네츠는 76 파이널에서 어빙과 존 윌리엄슨 등의 활약으로 덴버 너게츠를 누르고 징검다리 우승을 차지했죠.
한편 ABA가 NBA와의 경쟁에 밀린 끝에 결국 76년을 끝으로 해산해버리자, 네츠는 NBA로의 편입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막대한 리그 가입금 및 뉴욕 닉스측이 요구한 무리한 프랜차이즈 사용료 부담에 시달리며 재정난에 허덕여야 했고, 결국에는 슈퍼스타 어빙을 필라델피아 76ers로 현금 트레이드해야만 했죠. 77-78시즌에는 연고지를 뉴욕에서 뉴저지로 옮긴 네츠는 70년대 말까지는 팀 성적이 신통치 못했으나, 80년대 초반에 벅 윌리엄스를 주축으로 전력을 갖추어 꾸준히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중상위권 팀으로 도약했고, 84 플레이오프에서는 디펜딩 챔프 필라델피아를 업셋하며 2라운드에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 후 80년대 후반에 잠시 암흑기에 허덕이다가 90년대 초에 들어 데릭 콜먼, 케니 앤더슨 등 드래프트로 지명한 영건들을 내세우며 동부의 신흥 강호로 떠올랐죠. 하지만 에이스 드라젠 페트로비치의 사망, 척 데일리 감독의 사임 등을 겪은 후 점차 팀이 와해되어버렸고, 90년대 중, 후반에는 다시금 성적 부진에 허덕여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01-02시즌을 앞두고 당대 최고의 플레이메이커 제이슨 키드를 영입한 후, 네츠는 일대 반전을 보여주며 동부 최강팀으로 거듭났죠. 그래서 02년과 03년에 연달아 파이널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뤘지만, 02년에는 샤킬 오닐의 L.A 레이커스에게, 그리고 03년에는 팀 던컨의 샌안토니오 스퍼스에게 각각 패하며 아쉽게도 준우승에 그쳤죠. 이후 네츠는 키드와 리차드 제퍼슨, 빈스 카터 등을 내세워 동부에서 꾸준히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다가 2000년대 후반 들어 다시금 내리막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키드, 제퍼슨 등 주축 선수들을 팔아넘기며 리빌딩에 돌입하는 한편, 브루클린으로의 연고지 이전도 추진하게 되죠.
한편 러시아의 갑부 미하일 프로호로브가 구단을 인수하면서 다시금 활기를 띤 네츠는 유타 재즈로부터 올스타 가드 데런 윌리엄스를 영입하며 등 팀 재건에 박차를 가했고, 12-13시즌에는 연고지를 본격적으로 브루클린으로 이전했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대형 트레이드와 FA 재계약 등을 통해 고액 연봉의 스타들로 구성된 쟁쟁한 로스터를 구성했죠. 그 결과 플레이오프 무대에도 다시금 발을 내밀게 되었지만, 구단주가 퍼부은 막대한 투자비용에 비한다면 다소 실망스러운 성과였습니다. 결국 현재 네츠는 현재 다시금 팀 정비에 나서며 사실상 리빌딩 모드에 돌입한 상태로, 오프시즌에 재계약한 에이스 브룩 로페즈를 중심으로 재도약을 준비 중입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랭킹 소개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마이너 랭킹 (18위~10위)
18위
#_45 Purvis Short
1시즌(90), 82경기, 13.0득점, 3.0리바운드, 1.8어시스트, 83.5% 자유투성공률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시절 득점 기계로 이름을 날렸던 퍼비스 쇼트는 커리어 막판인 89-90시즌에 FA로 뉴저지 네츠에 합류했습니다. 주로 벤치에서 활약한 그는 로이 힌슨이 무릎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자 그 공백을 메우며 키 식스맨으로 쏠쏠히 활약했죠. 높은 포물선의 슈팅으로 유명했던 그는 득점에 특화된 전형적인 공격형 스윙맨이었습니다. 시즌 후 그는 네츠와 재계약하지 못하고 결국 은퇴를 선언했으나, 1년 뒤에 다시 선수로 복귀해 이스라엘 리그에서 뛰기도 했습니다.
17위
#_22 Jarvis Hayes
2시즌(09-10), 119경기, 8.4득점, 3.2리바운드, 0.8어시스트, 36.4% 3점슛성공률
03 드래프트 로터리 출신이지만 기대만큼 성장해주지 못한 자비스 헤이즈는 08-09시즌을 앞두고 뉴저지 네츠와 2년 4mil에 FA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는 벤치에서 3 & D 역할을 잘 수행해 내었고, 종종 스몰라인업에서 4번 역할까지 카바해주었죠. 09-10시즌 햄스트링 부상으로 45경기 출전에 그친 그는 네츠와 재계약에 실패한 뒤 NBA를 떠나 해외 리그로 진출했고, 현재는 루마니아 리그에서 뛰고 있습니다. 한편 그는 2013년에 카타르로 귀화해 현재 카타르 국가대표로도 활약 중입니다.
16위
#_43 Mickey Johnson
2시즌(83, 86), 121경기, 9.8득점, 4.6리바운드, 3.0어시스트, 1.0스틸
82-83시즌 초반에 트레이드로 뉴저지 네츠에 합류한 베테랑 포워드 미키 존슨은 3-4번 포지션을 두루 오가며 팀의 키 식스맨으로 활약했습니다. 6-10의 장신에 다재다능한 존슨은 백업임에도 42경기에서 평균 13.4득점, 5.3리바운드를 기록, 주전 못지 않은 경기력을 뽐냈죠. 하지만 그는 감독 래리 브라운과 워낙 사이가 좋지 못했고, 결국 네츠는 시즌 도중 그를 골든스테이트로 트레이드해야 했죠. 그는 커리어 막판인 85-86시즌에 다시 네츠로 컴백해 백업으로 한 시즌을 보낸 뒤 은퇴했습니다.
15위
#_34 Paul Pierce
1시즌(14), 75경기, 13.5득점, 4.6리바운드, 2.4어시스트, 37.3% 3점슛성공률
14위
#_40 George Carter
1시즌(73), 83경기, 19.0득점, 6.2리바운드, 2.1어시스트, 83.2% 자유투성공률(13th)
ABA에서 올스타 경력도 있는 조지 카터는 당대에 리그의 대표적인 저니맨이기도 했습니다. (7시즌 간 6차례 팀 이적) 한편 72-73시즌을 앞두고 릭 배리의 NBA 리턴으로 전력에 큰 공백이 생긴 뉴욕 네츠는 캐롤라이나 쿠가스(Carolina Cougars)로부터 카터를 영입했고, 그는 시즌 평균 19득점, 6.2리바운드로 나름 팀의 에이스 역할을 해주었죠. 그는 베이스라인 돌파가 일품이었고 준수한 중단거리 점퍼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한편 네츠는 73-74시즌을 앞두고 버지니아 스콰이어스(Virginia Squires)의 슈퍼스타 줄리어스 어빙을 영입하는 데 성공했고, 카터는 어빙 딜에 포함되어 1년 만에 네츠를 떠나야 했습니다.
13위
#_0 Orlando Woolridge
2시즌(87-88), 94경기, 19.8득점, 4.9리바운드, 3.5어시스트, 50.7% 야투성공률(8th)
걸출한 운동능력을 자랑했던 공격형 포워드 올란도 울리지는 시카고 불스 시절 새로운 에이스 마이클 조던과 궁합이 잘 맞지 않았고, 결국 85-86시즌을 마치고 뉴저지 네츠와 FA 계약을 맺었습니다. 86-87시즌, 그는 평균 20.7득점을 올려주며 팀의 리딩 스코어러로 자리매김했죠. 하지만 그는 이듬해 마약 복용으로 리그로부터 징계를 받으며 안 그래도 마이클 레이 리차드슨 사태로 홍역을 겪은 네츠를 두 번 울렸습니다. 은퇴 후에는 하부리그 및 WNBA 등에서 지도자 생활을 한 그는 2012년에 심장병으로 인해 52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습니다.
12위
#_42 P.J Brown
3시즌(94-96), 240경기, 8.4득점, 6.4리바운드, 1.6어시스트, 1.4블록슛(10th), 총 328 블록슛(15th)
11위
#_21 / #_23 Roy Hinson
4시즌(88-91), 164경기, 15.7득점, 6.5리바운드, 1.0어시스트, 1.4블록슛(12th), 49.3% 야투성공률(15th)
아마추어 시절 뉴저지의 지역 스타였던 로이 힌슨은 클리블랜드, 필라델피아에서 활약하다가 87-88시즌 도중 트레이드를 통해 친정팀 뉴저지 네츠에 합류했습니다. 3-4번 포지션을 두루 오가며 탁월한 운동능력과 위력적인 샷 블로킹으로 이름을 날린 그는 네츠에서도 주전 포워드로 좋은 활약을 했으며, 88-89시즌에는 평균 16득점으로 팀 내 득점 1위를 차지하기도 했죠. 하지만 그는 89-90시즌 도중에 심각한 무릎 부상을 당하고 말았으며, 이후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한 채 조기 은퇴해야 했습니다.
10위
#_31 Mike O'Koren
7시즌(81-88), 392경기, 8.5득점, 3.5리바운드, 2.2어시스트, 49.1% 야투성공률
뉴저지 태생인 마이크 오코렌은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을 졸업한 뒤 80 드래프트에서 전체 6번으로 고향팀 뉴저지 네츠에 지명되었습니다. 루키 시즌에 베테랑 잰 밴 브레다 코프를 밀어내고 주전 3번 자리를 차지한 그는 이후로는 주전과 벤치를 두루 오가며 허슬 넘치는 수비로 팀에 활력을 불어넣어 줬죠. 네츠에서 7시즌을 보내고 은퇴한 그는 현재 옛 동료이자 절친인 에디 조던이 감독으로 재임 중인 러트거스 대학에서 어시스턴트 코치로 있습니다.
메이저 랭킹 (9위~1위)
9위
#_20 / #_22 Jan Van Breda Kolff
60년대에 L.A 레이커스를 파이널로 이끈 명감독 부치 밴 브레다 코프의 아들이기도 한 잰 밴 브레다 코프는 70년대 중반에 ABA에서 활약하다가 1976년 ABA의 파산으로 그의 소속팀 켄터키 커널스(Kentucky Colonels)가 해체되자 파산 드래프트를 통해 뉴욕 네츠에 입단했습니다. 76-77시즌 그는 팀의 주전 3번 자리를 맡으며 평균 10.2득점, 6.4리바운드를 기록했고, 이듬해부터는 슈퍼 루키 버나드 킹의 입단으로 백업으로 내려갔죠. 이후 그는 주전과 백업을 두루 오가면서 오랜 기간 동안 네츠의 3번 스팟을 책임져줬습니다. 그는 득점력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반더빌트 대학 시절에 1번부터 5번까지 전 포지션을 다 맡아본 경험이 있을 정도로 다재다능했죠. 프로에서는 주로 전문 수비수로 활약한 그는 포지션 대비 준수한 샷 블로커였으며, 공격에서도 간간이 미드-레인지에서 슈팅을 넣어주거나 날카로운 패스를 뿌려주며 팀플레이에 기여했습니다. 그는 82-83시즌까지 총 7년간 네츠에서 활약했으며, 이후에는 이태리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죠. 은퇴 후 부친과 마찬가지로 지도자의 길을 걸은 그는 모교인 반더빌트 대학의 감독직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그의 이니셜을 딴 VBK 농구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8위
#_4 Walter Simon
어메리칸 원주민 출신인 월터 사이먼은 베네딕트 대학을 졸업한 후 NBA 진출에 실패하자 하부 리그인 이스턴 리그에서 뛰었습니다. 한편 1967년 ABA 리그의 출범으로 새로이 뉴저지 어메리칸즈의 유니폼을 입게 된 그는 팀의 주전 3번으로 활약하며 평균 13.3득점, 6.7리바운드를 기록했죠. 이듬해인 68-69시즌, 어메리칸즈는 연고지를 뉴욕으로 옮기며 새로이 뉴욕 네츠가 되었지만, 이래저래 어수선한 팀 분위기 속에서 성적은 리그 최하위에 머물렀습니다. 그 와중에도 사이먼은 팀의 에이스 역할을 도맡으며 평균 21.1득점, 8.1리바운드, 3.4어시스트로 고군분투했고, 올스타에도 선발되는 영광을 안았죠. 그는 발군의 스피드를 바탕으로 한 돌파력이 일품이었으며, 빠른 슛 릴리즈를 자랑하는 준수한 외곽 슈터기도 했습니다. 또한 팀플레이를 먼저 생각하는 이타적인 스타일로, 준수한 피딩 능력도 갖추고 있었죠. 69-70시즌에는 평균 14.3득점, 5.9리바운드, 3.6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꾸준히 활약을 이어간 그는 70-71시즌을 앞두고 드래프트 픽과 맞교환되어 켄터키 커널스(Kentucky Colonels)로 이적했습니다. 켄터키에서 73-74시즌까지 활약하다가 은퇴한 그는 KFC의 오너기도 한 구단주 존 Y 브라운의 눈에 들어 KFC에 입사해 나중에는 부사장까지 승진했죠. 그는 1997년에 뇌암으로 인해 5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7위
#_22 Bernard King
위력적인 턴-어라운드 점퍼로 한 시대를 풍미한 레전드 버나드 킹은 테네시 대학을 3학년만 마치고 77 드래프트에 참가, 뉴저지 네츠에 전체 7번으로 지명되었습니다. 킹은 대학시절부터 득점 기계로 이름을 날렸지만, 마리화나 복용, 음주 운전 등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등 멘탈에 문제가 많았죠. 아니나 다를까 그는 드래프트 된 지 한 달 만에 모교 체육관에서 TV를 절도한 혐의로 체포되었고, 5일 뒤에는 마리화나 소지로 적발되는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트러블 메이커였지만 실력만은 리얼이었던 킹은 루키 시즌에 평균 24.2득점, 9.5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후반기에 프랜차이즈 스타 존 윌리엄슨이 컴백하기 전까지 팀의 에이스 노릇을 톡톡히 해냈고, 올-루키 퍼스트 팀에도 선발되었죠. 하지만 신인왕 타이틀은 아쉽게도 피닉스 선즈의 월터 데이비스에게 내줘야 했습니다.
이듬해인 78-79시즌, 그는 평균 21.6득점을 넣으며 여전히 제 몫을 다 해주었지만, 시즌 중에 무면허 음주 운전 및 코카인 소지 혐의로 체포되는 등 또다시 사고를 쳐댔죠. 네츠 구단은 실력은 좋지만 마약과 술에 쩔어서 코트 안팎으로 문제만 일으키는 그에게 더 이상 팀의 미래를 맡길 수 없었고, 결국 그는 79-80시즌을 앞두고 유타 재즈로 트레이드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재활을 통해 갱생에 성공한 그는 80년대에 뉴욕 닉스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득점왕에도 등극, 리그의 간판스타로 떠올랐고, 커리어 엔딩 급의 큰 무릎 부상을 당하고도 성공적으로 복귀하는 드라마를 쓰기도 했죠. 하지만 그는 커리어 막판에 두 번째 무릎 수술을 받은 후 사실상 은퇴 위기에 놓였고, 결국 92-93시즌 도중 소속팀 워싱턴 불레츠로부터 방출되고 말았습니다. 이윽고 그는 자신을 드래프트한 친정팀 네츠와 계약하며 코트에 복귀했지만, 이미 클래스를 다 잃어버린 상태라 백업을 전전하다가 이내 은퇴했죠. 2013년에는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도 한 그는 현재는 농구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6위
#_55 Albert King
레전드 스코어러 버나드 킹의 동생으로, 고교 시절에는 전미 최고 유망주기도 했던 알버트 킹은 메릴랜드 대학을 졸업하고 팀 동료 벅 윌리엄스와 함께 81 드래프트에 참가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형 버나드를 드래프트하기도 했던 뉴저지 네츠가 두 개의 1라운드 픽으로 이 메릴랜드 듀오를 모두 지명했죠. (벅 윌리엄스-3픽, 알버트 킹-10픽) 킹은 루키 시즌부터 베테랑 마이크 오코렌을 밀어내고 스타팅 자리를 차지했으며, 2년차 때인 82-83시즌에는 평균 17득점으로 벅 윌리엄스와 함께 팀 내 득점 공동 1위를 기록했죠. 이후로도 그는 계속 팀의 주전 스몰포워드로 활약하며 평균 14득점 가량을 꾸준히 올려줬습니다.
킹은 준수한 미드-레인지 슈터였으며 패스와 수비에도 능한 다재다능한 선수였죠. 특히 늘 동료들을 먼저 생각하고 헌신하는 이타적인 성향이 강해서 팀의 1옵션 감으로는 다소 부족했지만, 3~4옵션 감으로는 최적인 스타일이었습니다. 한편 그는 84-85시즌을 마치고 제한적 FA가 되었는데, 뉴욕 닉스 소속이던 그의 형 버나드가 무릎 부상으로 다음 시즌을 통째로 결장할 위기에 놓이자 뉴욕에서 그 대안으로 동생인 그의 영입을 추진했죠. 뉴욕은 5년간 총 3.3mil의 거액을 들이밀었지만 네츠는 오퍼시트에 사인해버렸고, 뉴욕이 알버트에게 제안한 계약이 애초에 리그의 샐러리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판정받아 계약 자체가 무효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네츠와 다시 2년 계약을 체결한 그는 86-87시즌에는 올란도 울리지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며 입지를 많이 잃게 되자 이듬해에 FA로 필라델피아 76ers와 재계약하며 6년간 정든 네츠와 이별했죠. 이후 그는 리그의 여러 팀 및 해외 등을 전전하다가 91-92시즌을 끝으로 코트를 떠났습니다. 은퇴 후 외식 사업에 뛰어든 그는 현재 여러 곳의 웬디스 버거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5위
#_13 Kendall Gill
켄달 길은 90년대 초, 중반에 샬럿 호네츠와 시애틀 슈퍼소닉스에서 주전 슈팅가드로 활약하며 걸출한 운동능력으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한편 95-96시즌에 뉴저지 네츠는 시즌 후 FA가 되는 포인트가드 케니 앤더슨과의 재계약을 확신할 수 없었고, 주전 슈팅가드 케빈 에드워즈가 무릎 부상으로 시즌-아웃되는 불운까지 겹쳤죠. 결국 샬럿 호네츠와 딜을 추진한 네츠는 앤더슨을 내주는 대신에 길과 칼리드 리브스를 영입해 구멍 난 2번 포지션을 메워보려 했으나, 길 역시 11경기만 뛰고 손 골절로 시즌을 접어야 했습니다. 이듬해인 96-97시즌, 유망주 루키 슈팅가드 케리 키틀즈의 입단으로 3번으로 포지션을 옮긴 길은 평균 21.8득점, 6.1리바운드, 4어시스트로 커리어-하이의 활약을 펼치며 일약 팀의 에이스가 되었죠. 하지만 그 이후로 그는 득점력 좋은 동료들에게 공격 롤을 많이 양보하며 주로 수비에 전념했고, 평균 득점은 13점대 정도로 다소 하락했습니다. 98-99시즌, 그는 평균 2.7개의 스틸로 리그 1위에 올랐으며, 대 마이애미 전에서는 무려 11개의 스틸을 해내며 래리 캐넌이 기록한 리그 역대 기록과 타이를 이루기도 했죠. 또 그 경기에서 득점과 리바운드도 두 자릿수를 기록한 그는 보기 드문 득점-리바운드-스틸 트리플-더블을 해냈습니다. (15득점-10리바운드-11스틸)
탁월한 탄력과 민첩성을 겸비한 길은 오픈 코트에서는 제법 위력을 발휘했고 스틸에 능한 기민한 수비수였으나, 스윙맨 치고 슈팅력이 약한 편이라 하프 코트 오펜스에서는 다소 약점을 드러내기도 했죠. 그는 99-00시즌을 마치고 네츠와 다시 1년 7mil에 재계약했지만 무릎 부상에 시달리며 31경기 출전에 그쳤고, 이때의 부상으로 운동능력을 많이 상실했습니다. 이후 마이애미, 미네소타 등을 전전하다가 04-05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그는 곧바로 프로 복서로 전향하며 잠시 화제를 모으기도 했죠. 현재 그는 NBA TV 등에서 농구 해설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4위
#_34 Chris Morris
오번 대학 출신의 크리스 모리스는 88 드래프트에서 전체 4번으로 뉴저지 네츠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루키 시즌부터 주전급으로 쏠쏠한 활약을 펼친 그는 평균 14.1득점, 5.2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올-루키 세컨드 팀에 선정되었고, 그 해 슬램덩크 컨테스트에도 출전했죠. 이후 그는 팀의 주전 스몰포워드로 활약하며 매 경기 평균 13~14점, 5~6리바운드 정도를 꾸준히 해줬습니다. 6-8의 좋은 신체조건을 갖춘 스윙맨인 그는 어마어마한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한 슬램덩크가 일품이었으며, 경기 도중에 파워 덩크로 백보드를 부순 적도 있었죠. 그는 리바운드, 수비 부문에서도 특유의 운동능력을 앞세워 쏠쏠히 공헌했고 3점슛도 어느 정도 던질 수 있었지만, 슛 셀렉션이 엉망이었고 슈팅 기복도 심했습니다. 또한 그는 멘탈이 썩 좋지 못해 천부적인 신체적 재능에 비해 그리 크게 성장하지 못했으며, 코칭스태프들과도 종종 충돌을 일으키곤 했죠.
한편 94-95시즌을 앞두고 네츠는 명장 척 데일리 감독이 사임하는 바람에 부랴부랴 부치 비어드를 신임 감독으로 선임했습니다. 하지만 네츠의 고참 선수들과 비어드는 애초부터 잘 화합하지 못했고, 라커룸 분위기는 침체의 늪에 빠졌죠. 하루는 비어드가 연습 도중 모리스의 농구화 끈이 풀려있는 것을 보고 프로답게 잘 매라고 했으나, 이를 고깝게 받아들인 모리스와 비어드 간에 언쟁이 벌어졌고, 급기야 모리스는 자기를 트레이드 시켜달라며 길길이 날뛰기도 했습니다. 시즌 후 FA가 된 그는 유타 재즈와 계약하며 7년간 몸담았던 네츠를 떠났고, 유타의 백투백 파이널 진출 당시 벤치 멤버로 활약하기도 했죠. 98-99시즌을 끝으로 NBA를 떠난 그는 하부 리그와 해외 등을 전전하며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다가 2004년을 끝으로 은퇴했습니다.
3위
#_24 Rick Barry
릭 배리는 2년차 때 이미 NBA 득점왕에 오르며 슈퍼스타로 급부상했으나, 이듬해 경쟁 리그인 ABA로의 진출을 선언하며 파문을 몰고 왔습니다.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린 그의 소유권을 두고 두 리그는 법정 다툼까지 벌렸고, 이 때문에 배리는 통째로 한 시즌을 날려야 했죠. 우여곡절 끝에 68-69시즌에 ABA의 오클랜드 오크스(Oakland Oaks)에 합류한 그는 새 리그에서도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으나 무릎 부상으로 시즌-아웃되는 바람에 팀의 우승을 먼 발치에서 지켜봐야 했습니다. 이후 그의 소속팀 오클랜드는 재정난으로 팀이 팔리며 워싱턴, 버지니아로 잇따라 연고지를 옮겼고, 이에 대해 배리는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죠. 결국 버지니아 스콰이어스(Virginia Squires)는 이 투덜이 슈퍼스타를 1라운드 픽 한 장+현금 20만 달러에 뉴욕 네츠로 팔아야만 했습니다.
네츠와 2년 계약을 맺은 그는 70-71시즌 초반에 무릎 부상으로 여러 경기를 결장했으나 복귀 후 평균 29.4득점, 6.8리바운드, 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클래스를 보여주었죠. 이듬해인 71-72시즌, 그는 ABA 진출 이후 가장 많은 80경기를 소화하며 평균 45.2분을 뛰는 강철 체력을 자랑했고, 31.5득점(리그 2위), 7.5리바운드, 4.1어시스트의 대활약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네츠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정규 시즌 8할 승률의 1위팀 켄터키 커널스(Kentucky Colonels)를 업셋하는 파란을 일으켰고, 연이은 동부 디비전 파이널에서 버지니아 스콰이어스마저 꺾으며 파이널까지 진출했죠. 파이널에서 배리는 평균 31.5득점을 올리며 맹활약했지만, 아쉽게도 네츠는 인디애나 페이서스에게 2-4로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배리는 발군의 슈팅력과 돌파력, 민첩성, BQ, 다양한 득점 기술들을 두루 갖춘 타고난 득점 기계였죠. 또 그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는 엄청난 투쟁심과 승부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에고가 지나치게 높은 독불장군 타입인데다가 지나친 독설가여서 종종 팀 동료들조차 그를 꺼리게 만들었죠. 그는 6~70년대 최고의 이슈 메이커이자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스타일의 슈퍼스타였습니다. 한편 ABA 진출 후 처음으로 부상 없이 만족스런 시즌을 치른 그는 네츠에 잔류하길 원했으나, 미 지방법원이 FA가 된 그에게 과거 NBA시절 소속팀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로 돌아가라는 판결을 내리는 바람에 다시 NBA로 컴백했습니다. 이후 그는 74-75시즌에 워리어스를 역대급의 원맨팀 우승으로 이끄는 위업을 달성하기도 했죠. 이 파란만장한 커리어의 슈퍼스타는 1987년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으며, 그의 아들들인 존, 브렌트, 드류 배리 삼형제가 모두 NBA에서 뛴 바 있습니다.
2위
#_24 Richard Jefferson
애리조나 대학 출신의 리차드 제퍼슨은 01 드래프트에서 전체 13번으로 휴스턴 로케츠의 지명을 받았으나, 드래프트 당일날 트레이드를 통해 뉴저지 네츠에 합류했습니다. 당시 네츠는 7픽으로 지명한 에디 그리핀을 내주는 대가로 제퍼슨을 비롯해 3명의 1라운드 지명자(다른 둘은 18픽 제이슨 콜린스, 23픽 브랜든 암스트롱)를 받아왔죠. 루키 시즌에 키스 밴 혼의 백업으로 출전하며 제법 가능성을 보여준 그는 올-루키 세컨드 팀에도 선정되었습니다. 한편 네츠는 그의 가능성을 믿고서 주전 3번 밴 혼을 트레이드시켰고, 새로이 주전 라인업에 올라선 그는 팀의 기대에 한껏 부응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주었죠. 그는 케년 마틴과 함께 네츠 특유의 속공 농구의 첨병에 서며 제이슨 키드로부터 이어받은 패스를 화려한 쇼-타임 덩크로 마무리, 팬들의 이목을 사로잡았습니다. 그 기세로 그는 03년 올스타 슬램덩크 컨테스트에도 나갔지만 실전만 못한 퍼포먼스로 아쉬움을 주기도 했죠. 03-04시즌 그는 18.5득점, 5.7리바운드, 3.8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어느덧 팀 내 제1의 공격옵션이 되었고, 약점이었던 외곽슛을 한층 보강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활약상에 힘입어 그는 오프시즌에 네츠와 6년 76mil에 연장계약을 체결했고, 04년 아테네 올림픽에 대표로 뽑혀 출전하기도 했죠.
제퍼슨은 출중한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한 고공 플레이가 일품이었으며, 외곽슛, 돌파, 수비, 리바운드, 패스 등 다방면에서 골고루 수준급으로 활약하던 팔방미인이었습니다. 04-05시즌에 제퍼슨은 평균 20득점을 훌쩍 넘기며(22.2득점) 절정의 기량을 뽐냈고, 네츠 구단은 시즌 도중 빈스 카터를 데려오며 키드-카터-제퍼슨으로 이어지는 삼각 편대를 완성했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퍼슨은 손목 부상으로 시즌을 조기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그의 상승세는 주춤했고, 네츠의 성적 역시 점차 하락세를 걸었습니다. 결국 네츠 구단은 07-08시즌 도중 키드를 달라스로 트레이드하며 리빌딩의 첫 테이프를 끊었고, 키드 없이도 커리어 하이인 평균 22.6득점을 넣으며 분전한 그 역시 구조조정의 칼날을 피할 수 없었죠. 시즌 후 그는 밀워키 벅스의 이 지엔리엔, 바비 시몬즈와 맞트레이드되어 7년간 몸담은 네츠를 떠났습니다. 이후 그는 샌안토니오, 유타, 달라스 등 여러 팀을 떠돌았고, 이번 오프 시즌에는 르브론 제임스가 이끄는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 베테랑 미니멈으로 1년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1위
#_32 Julius Erving
“Doctor J”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진 줄리어스 어빙은 7~80년대에 ABA와 NBA 양대 리그를 모두 대표했던 슈퍼스타입니다. 매사추세츠 대학을 3학년만 마치고 71년에 얼리 엔트리로 ABA의 버지니아 스콰이어스(Virginia Squires)에 입단한 그는 2년차 때 득점왕에 오르며 리그의 간판스타로 일찌감치 자리매김했죠. 한편 그 당시 버지니아는 자금난으로 팀 운영에 어려움을 겪던 중이었고, 결국 73-74시즌을 앞두고 상당수의 현금을 추가로 받는 조건으로 어빙을 뉴욕 네츠로 트레이드해야 했습니다. 뉴욕에 새로이 둥지를 튼 어빙은 전년도 30승에 그친 팀 성적을 55승으로 끌어올렸고, 평균 27.4득점, 10.7리바운드, 5.2어시스트를 올리며 시즌 MVP 및 2년 연속 득점왕에 등극했죠. 이 기세를 플레이오프까지 이어간 어빙은 팀을 파죽지세의 상승세로 이끌었고, 마침내 네츠는 파이널에서 유타 스타스(Utah Stars)를 4-1로 꺾으며 창단 후 첫 우승의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또한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 평균 27.9득점을 올려준 어빙은 플레이오프 MVP로도 선정되었죠.
어빙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폭발적인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한 화려한 고공 플레이로 현대 농구의 새 지평을 연 인물입니다. 그가 등장하기 전까지 덩크슛은 일부 보수적인 시각에서는 비매너 플레이로 간주될 만큼 각광 받지 못했지만, 그가 화려한 슬램덩크를 꽂아 넣으며 팬들의 이목을 사로잡자 덩크슛은 이내 최고의 볼거리로 자리 잡게 되었죠. 그는 폭발적인 퍼스트스텝, 유연한 바디 컨트롤에 더블 클러치, 스쿱 샷 등 다채로운 피니쉬 기술들까지 겸비한 당대 최강의 슬래셔였습니다. 또한 패스 능력도 뛰어나 종종 플레이메이커로서 경기를 조율하기도 했고, 포지션 대비 엘리트 리바운더이자 샷 블로커였죠. 그리고 슈퍼스타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늘 이타적인 마인드와 겸손한 성품을 보여주며 만인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74-75시즌 어빙은 팀을 프랜차이즈 역대 최고 성적인 58승으로 이끌며 2년 연속 시즌 MVP를 차지했고, 프랜차이즈 역대 최다 기록인 한 경기 63득점을 넣기도 했죠. 하지만 네츠는 플옵 1라운드에서 세인트루이스 스피리츠(St. Louis Spirits) 에게 충격의 업셋 패배를 당하며 허무하게 리핏에 실패했습니다. 이듬해인 75-76시즌, 어빙은 평균 29.3득점, 11리바운드, 5어시스트의 활약으로 3년 연속 시즌 MVP를 제패했으며, 득점왕 및 올-디펜시브 퍼스트팀에도 그 이름을 올렸죠. 또한 올스타 기간에 열린 사상 최초의 슬램덩크 컨테스트에서 특유의 자유투라인 덩크를 선보이며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플레이오프에서 어빙은 평균 34.7득점, 12.6리바운드의 대활약으로 네츠를 두 번째 우승으로 이끌었고, 플레이오프 MVP도 재차 수상했죠. 하지만 운영난에 시달리던 ABA는 끝내 그 시즌을 끝으로 해산하고 말았고, 네츠는 NBA 리그로의 편입을 모색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NBA의 뉴욕 닉스가 네츠에게 자신들의 연고지인 뉴욕을 사용하는 댓가로 4.8mil에 달하는 막대한 배상금을 요구했고, 기본적인 NBA 리그 가입금도 3mil이나 되었죠. (당시 이 금액들은 지금 가치로 환산해보면 대략 10배에 가까운 거액입니다.) 네츠 구단주 로이 보우는 이 막대한 부담금을 감당하지 못해 쩔쩔맸고,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팀의 간판스타인 어빙을 필라델피아 76ers로 현금 트레이드해야 했습니다. 당시 필라델피아는 네츠에게 어빙 영입의 대가로 리그 가입금에 상당하는 3mil을 내주었죠. 이후 어빙은 80-81시즌에는 리그 MVP를 차지했고, 82-83시즌에는 필라델피아를 우승으로 이끄는 등 NBA에서도 최고의 스타로 군림했습니다. 그가 네츠 프랜차이즈에 머문 기간은 3년에 불과했지만 그 3년 동안 내내 시즌 MVP에 올랐고 2번이나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등 짧지만 굵직한 임팩트를 남겼죠. 그의 등번호 #32는 1987년에 네츠에서 영구 결번되었으며, 1993년에는 명예의 전당에도 입성했습니다.
Honorable Mention
: Jeff Turner, Antoine Wright, Bobby Simmons, Chris Douglas-Roberts, Terence Williams, Gerald Wallace
종합 랭킹
Epilogue
스몰포워드도 포인트가드만큼이나 1위 자리는 고민의 여지가 전혀 없었습니다. 어빙은 비록 3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머물렀지만 엄청난 임팩트로 프랜차이즈 역사에 큰 획을 그었죠. 다만 네츠가 NBA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끝내 어빙을 지키지 못한 것은 아쉬울 따름입니다.
릭 배리의 경우, 어빙 만큼은 아니어도 역시나 짧고 굵은 커리어라서 어디쯤 위치시켜야 할 지 고민이 좀 되었는데 비록 두 시즌밖에 머물진 않았지만 언더독인 팀을 파이널까지 올린 공로를 높이 샀습니다. 크리스 모리스같은 경우에도 네츠에 꽤나 오래 머물렀지만 2년간 부동의 에이스 VS 7년간 다소 아쉬웠던 롤플레이어 간의 경쟁에서 전자의 편이 더 낫다고 보았습니다.
아래 랭킹에서는 다소 의아하게 스몰포워드로 분류된 선수들이 있었는데요, 로이 힌슨과 P.J 브라운은 커리어 내내 거의 파워포워드로 뛰었지만 네츠에서만은 예외적으로 스몰포워드로 활약했죠. 힌슨은 동 포지션에 벅 윌리엄스가 버티고 있었고, 브라운은 척 데일리 감독 특유의 전략 때문이었죠. 수비력 좋고 민첩한 빅맨을 수비형 3번으로 써먹는 데일리의 전법은 디트 시절 데니스 로드맨으로부터 시작해 네츠에선 브라운, 올란도에서는 보 아웃로로 이어졌습니다.
이번 스몰포워드 편의 선수 뎁스도 아쉬운 면이 많은데요, 심지어 NBA 입성 후 네츠에서 이 포지션으로 올스타에 뽑힌 선수가 단 한명도 없을 정도죠. 리차드 제퍼슨이야 거의 올스타급의 선수긴 했지만요. 하위권의 경우에는 더 심각해서 타 포지션이었으면 이정도 업적으로는 랭킹 입성은 버거워 보이는 선수들도 더러 있고, 아너러블 멘션 역시 초라하기 그지 없습니다.
하위권 랭커들이 워낙 부실하다보니 앞으로 네츠 현역 선수들 중에서 웬만큼 활약하면 랭킹에 이름을 올리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겁니다. 한편 현재 네츠의 주전 스포는 조 존슨인데 존슨은 본 시리즈에서는 슈팅가드 부분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지만 그간 스포로도 많이 뛴 바 있어 이번 시즌에 지금처럼 주전 3번으로 계속 출장할 경우 내년 업데이트 때에는 스몰포워드 쪽으로 자리를 옮길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게 된다면 아마도 스포 5위권 이내에 이름을 올릴 것으로 보이죠.
그럼 이것으로 SF편을 마치고, 조만간 PF편으로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첫댓글 너무 잘봤습니다! 방대한 식견에 다시 한번 놀라고요.
키스밴혼이 안보이는군요. 어빙 1위는 당연하고 진짜 ABA에서 이전할 때 프랜차이저 문제만 없었음 계속 어빙과 함께간건데...
밴혼은 뉴저지에서 데뷔를 4번으로 한 것 같더라고요!
@멜롱이 데뷔를 4번으로 하긴 했는데 워낙 3번이라는 이미지가 있어서 ㄷㄷㄷ
@[BKN]디맨 예 밴 혼은 케년 마틴 입단 전에는 주로 파포를 봤게 때문에 전체적으로 파포로 뛴 경기 및 출장시간이 더 많아 스포편이 아닌 파포편에서 소개할 예정입니다^^
헐 이렇게 엄청난 글이
재밌게 잘 봤습니다 이런 글 너무 좋아요 ㅎㅎ 2위에 랭크된 제퍼슨은 본문에 언급하신대로 상승세의 한 가운데에서 부상으로 주춤하게 된게 정말 아쉽습니다
확실히 어빙이 대단한 선수입니다 뉴저지 필라 두 프랜차이져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라니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