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이 흔든 아르헨 대선… 깜짝 1위 마사, 2위 밀레이와 결선
집권좌파 마사, 보조금 정책 등 수혜
극우 밀레이에 1차투표 7%P 앞서
“나쁜 ×가, 미친 ×보다 낫다” 말까지
밀레이와 3위 후보 우파연대 변수
22일 치러진 아르헨티나 대선 1차 투표에서 집권 좌파 ‘조국을 위한 연합’ 소속 세르히오 마사 후보(51·현 경제장관)가 극우 경제학자 하비에르 밀레이 자유전진당 후보(53)를 꺾고 깜짝 1위를 차지했다. 마사 후보는 8월 예비선거에서 1위를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킨 뒤 두 달 넘게 주요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린 밀레이 후보를 약 7%포인트 차로 눌렀다.
마사 후보의 선전에는 근로소득세 감면, 각종 보조금 지급 등 선거 직전 이뤄진 현 정권의 좌파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 정책이 큰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 정권이 표심에 큰 영향을 미치는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일대 주민들에게 편지봉투에 현금을 넣어 뿌렸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마사 후보 또한 1940, 50년대 집권 당시 돈 풀기 정책으로 빈민층의 열광적 지지는 얻었지만 아직까지 경제난의 주범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후안 페론 전 대통령의 계승자(페로니스트)를 자처한다.
마사 후보와 밀레이 후보는 다음 달 19일 결선투표를 치른다. 밀레이 후보는 이날 3위를 차지한 중도우파 ‘변화를 위해 함께’ 소속 파트리시아 불리치 후보(67·전 안전장관)와 손잡고 역전을 노릴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단일화 협상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여 최종 승자를 섣불리 예측하긴 어려운 상태다.
● 8월 선거보다 15%포인트 더 얻은 마사
현지 언론 ‘인포바에’ 등에 따르면 개표율 98.5% 기준으로 마사 후보가 36.7%를 득표해 30.0%를 얻은 밀레이 후보를 눌렀다. 8월 예비선거 당시 득표율(21.4%)보다 15.2%포인트 많은 지지를 얻었다. 다만 당선 규정(45% 이상 득표하거나, 40% 이상을 받고 2위와 10%포인트 이상 격차)에 따라 결선투표로 가게 됐다. 불리치 후보(23.8%)는 결선행이 좌절됐다.
마사 후보는 1위 확정 후 연설에서 “여러분들을 실망시키지 않겠다”며 결선 승리를 자신했다. 그는 이탈리아계 이민자 후손으로 벨그라노대 법대를 졸업한 후 지방의원, 티그레 시장, 하원의장, 경제장관 등을 두루 거쳤다. 페론주의 정치인 중에는 비교적 온건 성향으로 꼽힌다.
그의 선전을 두고 현지에서는 유권자들이 “‘나쁜 X(마사)’가 ‘미친 X(밀레이)’보다 낫다’”는 평가를 한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정치 신인 밀레이 후보가 선거 기간 내내 중앙은행 및 페소 폐지, 장기 매매 허용 등 파격 정책을 주장하고 “페소는 쓰레기” 같은 막말로 일관하는 바람에 그의 극단 성향과 수권 능력을 우려한 중도 유권자가 대거 마사로 쏠렸다는 것이다.
올여름 45일간 아르헨티나 현지에서 머물렀던 손혜현 고려대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소 연구교수는 “밀레이 후보가 정부 지출을 줄이기 위해 각종 보조금을 폐지하겠다고 하자 마사 후보는 버스에 ‘보조금 폐지 시 교통요금 10배 상승’ 등의 문구를 새겨 대응했다. 이 전략이 생활물가 상승을 우려한 서민층에 주효했다”고 진단했다.
● 중도우파 표심에 최종 승자 갈려
마사 후보와 밀레이 후보가 8월 예비선거와 이날 1차 투표에서 각각 한 번씩 승리를 가져간 만큼 11월 결선투표의 최종 승자는 예측하기 어렵다. 앞서 11일 CB컨설턴트가 실시한 가상 양자 대결에서도 밀레이 후보가 36.9%, 마사 후보가 35.3%로 오차범위 내 접전이었다.
승패는 불리치 후보를 밀었던 중도우파 표심에 달려 있다. 이들 중에는 현 집권 좌파의 무능에 실망해 ‘야당 지지’로 돌아선 이가 많다. 캐스팅보트를 쥔 불리치 후보도 “아르헨티나가 포퓰리즘과 빈곤을 떨쳐야 할 때”라며 마사 후보와는 연합하지 않을 뜻을 분명히 했다. 다만 집권 후 권력 배분 등의 문제가 걸려 밀레이 후보와의 연대도 빠른 시일 내 이뤄지긴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한쪽 극단의 후보(밀레이)가 선전하면 반대 극단의 후보(마사)도 부상하는 중남미 정치의 흐름이 또다시 나타났다”고 진단했다.
박효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