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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게시판 동아시아 1차 세계대전 때에 중국은 도데체 무엇을 했나요?
카이저와 총통 추천 0 조회 1,116 13.10.10 21:39 댓글 19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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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10.10 21:43

    첫댓글 딱히 국경을 접하는 국가 중 동맹국이 없었으니 그냥 이름만 올린 듯 하네요

  • 13.10.10 21:49

    프랑스에 전쟁지원 명분으로 약 20만명의 중국인들을 유학+공장에서의 노동을 목적으로 보냈습니다.
    이들은 향후 프랑스에서 접한 지식과 사상등으로 중국에 돌아와서 사회 문화 정치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죠.
    참고로 여기에 포함된 인물들 중에는 저우언라이도 있었습니다.

  • 13.10.10 22:55

    트로피코 모던타임즈
    중국식 개발원조 - 중국에서 로동자 100명을 받습니다.
    ㅎㄷㄷ

  • 13.10.11 00:25

    과연...
    노동력 지원이구나...

  • 13.10.10 22:59

    프랑스로 가서 공장과 진지 파는거 했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직접적으로 유럽에서 원정을 가진 않은걸로 압니다.

  • 13.10.11 02:18

    1차 세계대전은 1914~1918년인데, 그때면 원세개가 한참 황제 하겠다고 제제책동 하고 난리칠 때입니다. 1916년 원세개가 사망하고, 친일적 성향의 국회의장 단기서와 반일적 성향의 총통 여원홍의 대립이 있었습니다. 이를 부원의 쟁이라고 하는데, 주요 논제는 '독일에 선전포고를 할 것이냐'는 내용이었죠. 그런데 단기서는 독단적으로 선전포고를 때려버립니다. 이에 총통이었던 여원홍이 빡쳐서 단기서를 해임, 이 사이를 틈타 장훈이라는 군벌이 북경으로 진군하여 복벽을 선포, 청조를 부활시킵니다. 이 사태를 단기서가 이끄는 병력이 북경을 포위하고 복벽군을 진압하여 결과적으로 부원의 쟁이 단기서의 승리로 돌아가게 됩니다.

  • 13.10.11 02:13

    그런데 이 와중에도 예전에 원세개한테 밀려났던 손문은 아랫동네 광동에 정부를 차리고 광서 지역의 군벌들을 포섭해서 계속해서 북경 정부에 대항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남북조를 연상케 하는 형국이었는데, 단기서 정권이 들어서자 약법실시와 국회부활을 요구하며 전쟁이 일어납니다. 이 와중에 일본은 단기서에게 접근하여 전쟁(내전) 수행에 필요한 자금 제공을 대가로 온갖 이권을 탈탈 털어가게 됩니다. 이 와중에 전후처리인 산둥반도 점유 문제에 관해서도 독일에 선전포고한 승전국임에도 불구하고 베르사유 조약에서 발언권을 거의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일본이 차관제공을 대가로 산둥반도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행세를 했거든요.

  • 13.10.11 02:17

    그래서 5.4운동도 일어나게 되고... 단기서 실각 이후로는 근대 중국의 군웅할거에 해당하는 군벌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당시의 중국은 두 개로 갈라져 있었거니와, 그나마도 통일된 근대국가체계가 아닌 전통적으로 분할된 지역을 근거로 한 각 군벌들의 느슨한 연합체에 불과했고, 장훈의 예에서 볼 수 있듯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뒤집어 엎는 것이 가능했으며 실제로 이러한 시도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정황을 살펴볼 때, 1차 세계대전에서 '중국'이 어떠한 역할을 하는 것을 기대하는 데에는 상당한 무리가 따르리라고 봅니다.

  • 13.10.11 02:29

    결국 할수있는일이 무작정 사람보내고 '거 알아서 대충 일도 시키고 잘 써먹어봐!' 밖에 없군요ㅡㅡ

  • 13.10.11 02:42

    크림같은남자 / 그렇지요. 청조에서 아메리카로 인력(쿨리)들을 보내고, 그들이 정착하고 성공해서 개고생해서 모은 자금으로 청조 타도에까지 영향을 주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유럽으로 또 팔려가게 되었지요.....

  • 13.10.11 03:47

    중국이 땅이 커서 그런지 역사가 엄청 복잡하겠네요;
    관심이 없어서 얘들 대체 뭘 했다는거지? 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내전?

  • 13.10.11 11:17

    아편전쟁 이후 약 60여년간 중국은 포풍전쟁의 시기. 당장 이때만 해도 제 1차 2차 봉직전쟁, 중원대전, 반장전쟁, 2차에 이르는 국공내전, 대망의 항일전쟁과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는 3차 국공내전까지 아주 장구한 내전과 외침의 시기죠.

  • 13.10.11 08:47

    중일전쟁때 중국이 일본에 탈탈 털렸단말은 너무 중국을 과소평가했다고 보여집니다.

  • 13.10.11 11:11

    도데체 도대체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13.10.11 11:18

    그리고 1972년 중화인민 공화국이 상임이사국 먹튀해감. ㅜㅜ

  • 13.10.11 20:33

    방패는 방패였는데 창이 없는 그냥 방패였다는게;;;; 대전 말 소련은 자력으로 독일군을 밀어내기라도 했죠...물론 시간이 더 지나가면 일본의 국력소모로 스스로 자멸했을 가능성이 크긴 합니다. 태평양전쟁 발발전인 38년에 국민총동원령을 내렸으니 병력부족, 보급부족은 시간문제였죠.

  • 13.10.11 11:20

    중국이 항일전쟁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모르시거나 축소하려는 분이 있던데 항일전쟁시기 중국이 100만일본육군을 붙잡지 않았으면 미국이 조금 많이 힘들었을겁니다. 어쩌면 전쟁 자체도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겠네요.

  • 13.10.11 17:04

    중국이 중일전쟁에서 형편없이 밀린 건, 가장 큰 문제가 연해공업지역 때문입니다. 양무운동 이래로 산업화에 돌입하면서 연해지역에 대부분의 산업 인프라를 깔아뒀는데, 그게 일본 해군력에 그대로 노출되어 전쟁 수행에 거의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죠. 청프전쟁과 청일전쟁으로 해군을 다 날려먹고 해군을 재건하지 못한 업장을 훨씬 후대까지 진창 뒤집어 썼던 거죠.

  • 13.10.12 19:17

    저도 중국을 너무 과소평가했음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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