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자기는 희한한 물건이다.
접으면 손바닥만큼 작아지고, 펴맃면 넓고 평평해지는데 앞뒤 구분이 없다.
그러다가 물건을 싸게 되면 한 방향으로 휘고 매듭이 지어지면 공간을 안과 밖으로 완전히 나눈다.
이때 곡면의 중심점이 있는 쪽이 물건이 들어가는 내부가 된다.
서양 무용인 발레를 보면 인간의 몸을 직선으로 만들려고 무던히도 놀혁한다는 생각이 든다.
다리를 쭉 벋는 것으로 부족해서 발가락까지 힘을 주어서 긴 직선을 만들려고 한다.
서양인들에게 직선은 무한함과 신의 속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무용 춤사위에서 팔은 직선이 아니다.
아주 완만한 곡선으로 그려지는 데 무용하시는 분의 설명을 들으니 마치 왼팔에서 나간
곡선이 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오른팔로 오는 것같이 생각하면서 완만한 곡선을 그린다고 한다.
한국의 춤은 지구를 품은 춤이다.
두 팔로 작은 원을 그리는 발레 동작과는 사뭇 다르다.
춤과 보자기에서처럼 곡선이라는 것은 안과 밖을 나눈다.
건축에서 보면 돔이 그런 공간이다.
돔 안에 들어가면 보자기 안에 싸인 것같이 건축물이 나를 품은 듯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을 받는다.
로마에 가면 셍베드로 성당이 있다.
그 앞에 베르니니가 디자인한 타원형 광장은 이 성당을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타원형으로 열주가 둘러싸여 있고 그 안에 들어가면 여주가 나를 품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누군가 나를 안아줄 때도 보면 팔이 그리는 곡선의 안쪽에 들어가게 된다.
현대 건축과 도시에 우리가 부족한 것은 이러한 품어주는 공간이다.
도로도 직선으로 되어 있고, 건물 입면도 수직으로 하늘을 향한다.
곡선이 없어서 우리를 품어주는 공간이 없는 거싱다.
하지만 우리 일상에서 그런 곡면의 돔같은 공간이 만들어지는 떄가 있다.
다름 아닌 비 오는 날 우산을 썼을 때가 있다.
철학자 함돈균 씨는 우산을 펴면 둥근 천장이 만들어진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비오는 날 우산을 쓰고 빗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이 그런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품이든, 우산 아래든, 둥근 텐트 속이든 우리는 우리를 안아주는 공간이 필요하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