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를 본 사람들의 가슴을 아직도 촉촉하게 적셔 주는 이 장면을 보지 못한 것이다. 이 영화가 개봉됐던 60 년대에는 영화관을 자유롭게 출입 할 수 없는 학생신분(게다가 한심한 ‘범생’)이었고 성인이 되고 나서도 한참동안 한국영화에 대한 불신이 컸던 탓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배우 문정숙(文貞淑)씨의 서늘한 눈매, 우수와 정열이 공존하는 독특한 분위기는 내 가슴속에도 뚜렷한 각인을 남겼다. 그가 출연한 영화의 스틸 사진만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안겨 준 드문 배우였기 때문이다.
<7 년만의 외출>에서 지하철 환풍구 위에 선 마릴린 먼로의 모습도 강렬하지만 문씨의 경우는 뒷 모습을 담은 한 컷의 사진만으로도 숨을 멈추게 한 미국의 현대무용가 마사 그레이엄과 더 닮았다고 할 수 있다.
새봄이 오는 길목을 <만추>의 여인이 떠나갔다. 한국영상자료원이 6 일부터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영상자료원 시사실에서 ‘문정숙 회고전’을 열려 던 참에 주빈이 개막식에 참석도 못하고 간 것이다.
<만추>의 여인에겐 그 것이 더 어울리는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남은 사람은 그 뒷모습에 또 다시 가슴이 젖는다. 문씨의 별세를 전하는 기사들은 그가 1927 년 평북 선천에서 태어 나 북한의 공훈배우까지 지낸 언니 문정복씨의 영향으로 연극무대에 섰다가 영화에 데뷔해 300 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지난 80 년대 초 한 신문인터뷰에서는 400 여편에 출연했다고
그 자신이 말한 것으로 나온다. 데뷔작품도 52 년 신상옥(申相玉) 감독의 <악야>와 56 년 유현목(兪賢穆) 감독의 <유전의 애수> 등 각각 다른 기록이 뒤섞여 있어 혼란스럽다. 아직 체온이 느껴지는 스타의 기록이 이처럼 부정확한 것 또한 쓸쓸한 느낌을 안겨 준다.
기록에 무관심한 우리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워낙 많은 작품에 출연한 탓에 데뷔작을 그 자신 착각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생전에 그가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은 작품이 <만추>가 아니라 같은 감독의 <시장>이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만추>는 홍성기(洪性麒) 감독의 <실락원의 별><애원 의 고백>, 이강천(李康天) 감독의 <나는 속았다>, 권영순(權寧純) 감독의 <흙>, 이만희 감독의 <주마등><귀로><검은 머리><7 인의 여포로> 등 과 함께 “기억되는 작품들” 중 하나로 꼽았을 뿐이다.
<만추>도 <시장> 도 네가필름이 없어져 버려 고인의 뜻을 헤아리기 어렵게 됐지만 그를 다듬어 낸 이만희 감독처럼 그도 한국영화의 한 신화(神話)가 될 것은 분명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임영숙 / 대한매일 논설위원
첫댓글 좋은 노래네요
잘들었습니다.
오늘 아침 분위기에 너무 잘 어울리는 노래군요. 감사합니다.
노래 넘 좋네요
신성일 아찌 넘 멋있어요~~^^
좋은 노래 잘 들었습니다
이가을에 잘어울리는 영화 ..생각납니다
영화가 생각이 납니다
어려서 듣던생각이 납니다.
행복한 나날 되세요.
언젠가 티비로 봤어요
깊어가는 이 가을에 듣기 좋습니다
필름을 찾을수 있다면....
몇년전 탕웨이. 현빈이 출연한 만추라는 영화도 있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허무한 마음....
영화에서 문정숙이 직접 불렀어요.
삶이 이토록 애절할까요? ㅎ
잘들었습니다.
감사히 잘 듣습니다. ^*^
슬픈노래네요
감사합니다.
모두 건강하세요 ^^
너무나 오랜만에 들어 보는 노래 ~~
잘 감상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감사합니다~~~~~
영화도 문화적자산인데 잘 좀 유지관리되길....
감사합니다
감사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ㅠㅠ 슬프네요
캬 노래 좋으네요
감사합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