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 28, 2024 연중 제17주일
by 김레오나르도 posted
-소용없는 것을 소중히 쓰시는
빵의 기적 얘기는 네 복음에 다 나오는 얘깁니다. 그런데 줄거리는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점이 있습니다. 특히 요한복음이 공관복음과 비교할 때 조금 더 다릅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공관 복음에서는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데 요한복음에서는 어린아이가 그것들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오고, 공관 복음에서는 제자들의 역할을 뭉뚱그려서 얘기하는 데 비해 요한복음에서는 필립보와 안드레아 사도가 특별히 거명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안드레아 사도의 언급입니다.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요한복음은 의도적으로 아이를 등장시키고 안드레아 사도는 다른 곳에서처럼 사람을 주님과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안드레아 사도는 복음 다른 곳에서 그리스 사람들을 주님께 연결시키지요. 그렇지만 안드레아 사도는 반신반의하는 거 같습니다. 이 작은 아이의 이 적은 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겠는지. 이 적은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지 의구심을 가지고 묻습니다. 아무 소용이 없겠다고 생각했으면 아예 아이를 데려오지 않았을 텐데 자기 생각에 인간적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지만 주님께 가면 어떤 가능성과 소용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거나 소용이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아이를 데려온 것입니다. 우리도 안드레아 사도처럼 반신반의의 존재입니다. 그렇지만 반신반의의 우리 믿음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 것입니다. 반신반의란 적어도 완전 불신보다는 반만큼 믿은 것이기 때문이고, 인간에게는 완전 불신이지만 주님께는 믿음을 두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인간을 보면 우리는 아무 소용이 없고 그래서 믿을 수 없지만 하느님께는 뭣이든 소용이 있기에 하느님께는 믿음을 둘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아무도 없고 아무 가진 것이 없어도 창조하실 수 있으시기에 주님께서는 안드레아와 아이를 빵의 기적의 협력자와 도구로 삼으시고, 인간의 눈에는 소용없을 그 적은 빵과 고기를 아주 소중하게 쓰십니다. 그러니까 인간에게는 소용없을 것이 하느님께는 소용이 있고 소중합니다. 그래서 아무것 없이 창조하실 수 있고 인간의 아무 도움 없이 무엇이든 하실 수 있지만 나든 남이든 인간의 협력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능력이고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여기 아이와 엄마가 있습니다. 혼자서 요리를 다 할 수 있는데 자녀에게 요리를 가르치려고 이것 한번 해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가장 현명한 엄마는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사랑을 아이가 배우고 사랑 실천의 기쁨을 아이가 알게 되도록 혼자서 해도 되는데 아이와 함께 사랑을 실천하는데 오늘 우리의 주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가진 것 없어도 빵의 기적을 일으키실 수 있는 당신의 능력을 믿게 하시기보다 가진 것 없어도 두려움 없이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제자들에게 사랑을 가르치시고 당신 사랑을 더 느끼게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가진 것 없고 소용없는 저희를 소중하다고 하시고 당신 사랑과 은총의 도구와 협력자로 쓰시는 주님, 오늘 특별히 감사합니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프란치스코 작은 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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