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 ‘40년 만의 습격’… 佛·英 이어 한국도
매캐한 흰색 연기를 내뿜는 방역차가 골목을 누비던 시절이 있었다. 벼룩, 머릿니와 함께 최악의 3대 실내 해충으로 꼽히는 빈대를 퇴치하기 위해 1960년대에 전국 곳곳에 DDT 살충제가 살포됐다. 그 유해성이 미처 알려지지 않았던 때, 어린이들은 신기한 듯 ‘방구차’를 따라다녔다. 매번 손으로 눌러 잡아도 수시로 빈대가 출몰했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운다’는 등 관련 속담이 10여 개에 이를 정도로 흔했던 게 빈대였다.
▷독한 살충제와 위생환경 개선 등으로 이후 40여 년간 사라지다시피 했던 빈대가 다시 국내에 나타났다. 학교 기숙사와 찜질방, 고시원 등지에서 빈대가 나왔다는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외국인 유학생이 사용했거나 외국인이 자주 이용하는 장소라는 점으로 볼 때 빈대가 외부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코로나19 이후 해외 관광객의 유입 증가, 일부 숙박업소의 위생 문제, 살충제에 대한 빈대의 내성 강화 등이 이유로 거론된다.
▷사람이나 동물 몸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는 빈대는 매트리스나 소파 같은 곳에 숨어 있다가 주로 밤에 나와 활동하는 특성상 영어로는 ‘베드버그(bedbug)’로 불린다. 흡혈량이 모기의 7∼10배에 이른다는 빈대는 물렸을 경우 새빨간 피부 발진과 가려움증, 심해질 경우 고열을 유발한다. ‘잠든 사이 언제 내 몸 위로 올라와서 피를 빨아먹을지 모른다’는 심리적 불안과 혐오감은 더 문제다. 빈대가 ‘국가적 정신병’을 유발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공중보건 위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미 빈대의 습격이 거세다. 프랑스에서는 최근 영화관과 기차 같은 대중시설은 물론 학교 도서관 등에서 잇따라 빈대가 발견되면서 비상이 걸렸다. 영국에서도 지하철 좌석 틈새에서 꿈틀대는 빈대 동영상이 퍼지면서 시민들이 질겁했다. 후진국형 해충으로 알려진 빈대가 파리나 런던 등 화려한 도시에서 다시 기승을 부리는 것은 선진국에는 적잖은 굴욕이다. 도시 당국들은 방역 활동을 강화하고 탐지견까지 투입하며 ‘빈대와의 전쟁’에 나선 상태다.
▷100개에서 250개의 알을 낳는다는 빈대는 1억 년 넘게 지구에 존재해온 끈질긴 생존력을 갖고 있다. 완전히 없애기가 쉽지 않아 한 번 옮겨져 번식하기 시작하면 사람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퍼져나간다. 빈대 확산을 해외 이민자들 탓으로 돌리는 일각의 인종주의적 시각은 근거가 없다는 말이다. 2010년대에는 미국 뉴욕 등지의 고급호텔에서 빈대에게 물렸다는 투숙객들이 1000만 달러대 소송을 내기도 했다. “빈대 습격의 원인은 세계화”라는 말이 나온다. 그렇게 돌아온 빈대는 더 강해지고 집요해졌다. 박멸이 시급하다.
이정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