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列國誌] 822
■ 3부 일통 천하 (145)
제12권 사라지는 영웅들
제 16장 진소양왕의 무력 정책 (9)
- 조군(趙軍) 대승.조사(趙奢)는 개선장군이 되어 한단성으로 돌아왔다.
조혜문왕은 어찌나 기뻤던지 성밖까지 나가 조사를 영접했다.
조사(趙奢)는 일약 상경 벼슬을 받고 마복군(馬服君)에 봉해졌다.
인상여, 염파에 버금가는 지위에 오른 것이다.조사(趙奢)는 이번 승리의 일등 공로자로
허력을 천거했다.조혜문왕은 허력에게 국위(國尉) 벼슬을 내렸다.
허력(許歷)은 군졸에서 일약 장수 반열로 뛰어올랐다.조사에게 조괄(趙括)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조괄은 어려서부터 유독 병법에 관해 논하기를 좋아했다.<육도삼략(六韜三略)> <사마양저 병법>
<손자병법> <손빈병법> 등의 병서들을 읽고난 후부터는 아예 천하제일의 병법가로 행세했다.
어느 날, 그는 아버지 조사와 병법을 논했다.조괄(趙括)은 손가락으로 하늘과 땅을 가리켜 보이며
아버지의 이론에 반박을 했다.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어머니가 아들이 나가자 기쁜 기색으로 말했다.
"우리에게 이런 아들이 태어났으니 우리 집안도 크게 번성하겠구려."
그러나 조사(趙奢)의 눈에는 조괄의 웅변이 하찮아 보였다.
눈살을 찌푸리며 아내를 타박했다."저 아이는 자기가 천하에서 제일인 줄 알고 있소.
이것 하나만 봐도 저 애는 장수될 자격이 없소. 모름지기 군사(軍事)란 사생(死生)의 마당이오.
항시 마음을 졸이고, 모든 사람에게 묻고 의논해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전쟁이오."
"그런데 저 아이는 어떠하오? 전쟁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소. 남의 말은 듣지도 않고 모든 것을
자기가 다 안다고 여기고 있으니, 어찌 싸우면 패하지 않으리오. 만일 저 아이가 조나라 장수가
된다면 저 애는 필시 조(趙)나라 군대를 망하게 할 것이오!"
어머니가 아들 조괄에게 남편 조사의 말을 전해주었다.조괄(趙括)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도 이제 늙으신 모양입니다. 그토록 겁이 많으시니 말입니다."
그 후 2년이 지나 조사(趙奢)는 병이 들었다. 회생할 수 없음을 알고 조사는 아들 조괄을 불러
유언을 남겼다."병사(兵事)는 흉한 것이며, 싸움은 위험한 것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함부로 전쟁을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나는 다행히 살아생전 싸움에 진 장수라는 오명(汚名)을
듣지 않고 죽게 되었다. 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내가 마지막으로 너에게 일러줄 말이 있다."
"너는 결코 장수의 그릇이 못 된다. 절대로 장수만은 되지 마라. 한 번 잘못하면 네 몸을 망치고,
집안을 망치고, 나라마저 망치게 될 것이다."그러나 조괄(趙括)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조사(趙奢)는 탄식하며 다시 아내를 불러 유언을 남겼다.
"후일 왕께서 괄을 불러다 전쟁터에 나가게 하시려거든 당신은 기필코 말려야 하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집안도, 조나라도 없어지게 되오.""내 말을 반드시 명심하시오."
말을 마치자 조사(趙奢)는 자는 듯 눈을 감고 죽었다.파죽지세(破竹之勢)로 내닫던
진나라에게 있어서 '알여(閼與) 전투' 의 패배는 힘센 거인이 마구 달리다가 길바닥에 삐죽 튀어나온
돌부리에 채여 나동그라진 경우와 똑같았다.
그렇다고 조(趙)나라에 대해 노골적으로 분노를 표출할 수도 없었다.
먼저 조나라 땅을 공격한 것은 진(秦)나라가 아니던가.어찌되었건 거침없이 천하 패업을 향해
돌진하던 진나라의 무력 정책은 이로 인해 제동이 걸리고 말았다.
그러나 역시 진(秦)나라는 하늘의 명(命)을 받은 나라인가.
또 한 명의 인재가 진나라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범수(范睢)라는 사나이였다.
범수(范睢).위(魏)나라 사람으로 자는 숙(叔)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범숙(范叔)이라고도 부른다.
범수(范睢)는 위나라 도읍지인 대량 태생으로 당시 유행하던 유세가의 한사람이다.
<사기(史記)>는 그의 젊었을 적 이력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일찍이 각국을 돌아다니며
제후들에게 유세하였으나 집이 가난하고 활동 경비가 없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
823편에 계속
열국지 [列國誌] 823
■ 3부 일통 천하 (146)
제12권 사라지는 영웅들
제 16장 진소양왕의 무력 정책 (10)
제(齊)나라가 전단(田單)의 활약으로 악의를 축출하고 빼앗긴 땅을 모두 수복한 후의 일이었다.
앞서도 얘기했듯이 제민왕에 이어 왕위에 오른 제(齊)나라의 군주는 세자 법장인 제양왕이었다.
제양왕(齊襄王)은 빠른 속도로 제나라를 재건해 나갔다.
연(燕)나라와 연합하여 제나라를 쳤던 주변국들은 제(齊)나라의 빠른 회복세에 당황함을 금치 못했다.
언제 보복을 당할지 몰라 앞다투어 사절단을 보내 제양왕(齊襄王)과 친선을 맺으려 했다.
이로 인해 제나라는 수년이 지나지 않아 예전의 국력을 회복했다.위(魏)나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무렵 위나라는 위안리왕(魏安釐王)이 왕위에 올라 있었다.위안리왕은 중신들과 의논한 끝에
선군인 위소왕 때의 일을 사죄하기 위해 제나라에 사신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사절 책임자로는 중대부 수가(須賈)를 임명했다.수가(須賈)는 제나라 임치성을 향해 떠나갔다.
많은 수행원이 뒤따랐는데 그 수행원 중에 수가의 사인(舍人) 노릇을 하고 있던 범수도 끼여 있었다.
수가(須賈)는 제양왕을 알현한 후 위왕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제양왕(齊襄王)은 지난날의 수모와 원한과 상처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노기 섞인 음성으로 수가를 꾸짖었다."위(魏)나라가 연나라를 도와 우리 제(齊)나라 땅을
짓밟은 것을 생각하면 과인은 지금도 이가 갈린다. 그대는 무슨 면목으로 이 곳에 왔으며,
만일 우리와 진심으로 화친하고자 한다면 그대는 무엇으로써 과인을 믿게 할 작정인가?"
수가(須賈)는 제양왕의 늦가을 서릿발 같은 호령에 오금이 저려왔다. 눈사람처럼 얼어붙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 모습을 뒤편에 서 있던 수행원인 범수(范睢)가 보았다.
그는 자신의 주인이 곤경에 처하자 과감히 앞으로 나서서 대답했다.
"대왕의 말씀은 옳지 못합니다. 지난날 저희 선군께서 연(燕)나라를 도와 제나라를 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대왕께서는 제민왕(齊湣王)이 위ㆍ초나라와 함께 송나라를 쳐서
멸하신 일을 기억하고 계십니까?""그때 제민왕(齊湣王)은 우리 위(魏)ㆍ초(楚)나라의 도움으로
송(宋)나라를 멸망시켰으면서도 나누어 갖기로 약속한 송나라 땅을 모조리 독차지했습니다.
그러므로 애초에 신용을 잃은 것은 제(齊)나라입니다.""뿐만 아니라 제민왕(齊湣王)은
천자 흉내를 내며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교만함을 부렸습니다. 이리하여 다섯 나라가
연합하여 제수(濟水) 싸움을 벌이기에 이른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이래도 우리 위(魏)나라만을
탓하시렵니까?""...................!"
"또 있습니다. 방금 전 대왕께서는 대왕을 믿게 할 증거를 내세우라고 하셨습니다.
이 또한 제민왕(齊湣王) 때의 교만함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고로 나라와 나라 간의 우호는
사신의 왕래로부터 시작됩니다.""이번에 위(魏)나라가 제(齊)나라에 사신을 보내 지난 일을
사죄하는 것보다 더 큰 우호의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만일 대왕께서 지난 일을 핑계로
위나라 사신을 계속 책망하신다면, 이는 제민왕(齊湣王)의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습니다."뜻하지 않은 범수의 일장 연설에 제양왕(齊襄王)은 정신이
어리벙벙할 지경이었다. 충격을 받았다. 멍하니 앉아 있다가 깨어나듯 몸을 털고 나서 말했다.
"오늘 과인은 좋은 말을 들었다. 그대는 누구인가?"범수(范睢)는 수가를 돌아다보았다.
정사(正使)인 당신이 대신 대답하라는 눈빛이었다.수가(須賈)는 황망함에서 벗어나 대답했다.
"신의 사인(舍人)으로 있는 범수라는 자입니다."
제양왕(齊襄王)은 고개를 끄덕이며 유심히 범수의 얼굴을 살핀 후 명했다.
"위(魏)나라 사신은 일단 공관에 나가 쉬도록 하라."그 날 밤이었다.
제양왕(齊襄王)은 심복 내관 하나를 위나라 사신 일행이 묵고 있는 공관으로 보냈다.
내관은 공관으로 들어와 범수(范睢)를 찾아 작은 방으로 들어가 말했다.
"우리 대왕께서 선생의 높은 재주를 사모하고 계십니다. 선생을 우리나라 객경(客卿)으로
모시고자 하니, 선생은 위(魏)나라로 돌아가지 마시고 부디 임치에 머물러 주십시오."
범수(范睢)는 놀라서 손을 내저었다."저는 위나라 사신을 따라온 수행원입니다.
함께 왔으니 함께 돌아가야 합니다. 어찌 홀로 임치(臨淄)에 남을 수 있겠습니까?"
범수의 말을 전해들은 제양왕(齊襄王)은 더욱 그를 기특하게 여겼다.다시 내관에게 지시했다.
"너는 한 번 더 공관으로 가 범수에게 황금 10근(斤)과 술과 쇠고기를 내주고 재차 권해보라."
그러나 여전히 범수(范睢)는 제양왕의 제안을 거절했다.
다만 하사품만은 사양할 수 없어 술과 고기만 받고 황금 10근(斤)은 도로 돌려주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수가(須賈)가 눈치챘다. 그는 범수를 자기 방으로 불러 물었다.
"제나라 내관이 여러 차례 그대를 찾아왔다고 하는데, 무슨 말을 주고 받았는가?"
범수(范睢)는 곤란했다.차마 객경(客卿)으로 남아달라고 청한 사실을 얘기할 수가 없었다.
예물에 관한 것만 대답했다."제왕(齊王)이 저에게 황금 10근(斤)과 술과 고기를 보내왔더군요.
처음엔 사양했으나 여러 차례 권하기에 술과 고기만 받고 황금은 돌려보냈습니다."
수가(須賈)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다."제왕(齊王)이 어째서 그대에게 그런 선물을 보냈을까?"
"아마도 사신인 대부를 존경하는 뜻에서 저에게까지 물건을 보낸 것이 아닐런지요?"
"그렇다면 정사(正使)인 나에게는 아무 것도 보내지 않고 어째서 사인(舍人)인 그대에게만
선물을 보낸단 말인가? 아무래도 이번 일은 수상하다."
더 이상 숨겼다가는 더 큰 의심을 받을 것 같아 범수(范睢)는 다시 말했다.
"실은 제왕(齊王)이 앞서 사람을 보내 객경으로 남아달라는 청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위(魏)나라를 버릴 마음이 없다고 분명히 잘라 말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건을 보내온 듯싶습니다."
수가(須賈)는 범수를 돌려보내긴 했지만 의심은 이미 마음 깊이 들어찼다.'괘씸한 놈이로다.'
그 후 수가(須賈)는 몇 달을 임치에 머물며 제양왕의 마음을 돌리려 했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범수(范睢)가 임치에 남기를 거절한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수가(須賈)는 할 수 없이 귀국길에 올랐다. 위(魏)나라로 돌아와 위안리왕에게 다녀온 경과를
보고한 후 다시 재상인 위제에게로 달려갔다.위제(魏齊)는 선군 위소왕의 아들로 위안리왕
(魏安釐王)과는 이복형제간으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래서 많은 신료들이 그에게 잘 보이려고 애썼다.수가(須賈)도 그 중 한사람이었다.
"이번에 제나라 임치(臨淄)를 다녀왔는데, 다소 미심쩍은 일을 목격했습니다."
"미심쩍은 일이라니?""제 사인(舍人) 중에 범수라는 자가 있는데, 제왕으로부터 객경(客卿) 벼슬을
제의받았다고 합니다.""제왕(齊王)이 황금과 술까지 보낸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범수(范睢)가
그전부터 제나라와 내통한 게 아닌가 여겨집니다. 한 번 잡아다 조사해보심이 좋을 듯싶습니다."
수가(須賈)의 말을 들을 위제(魏齊)는 그 즉시로 심복 무사들에게 명했다.
"범수(范睢)를 잡아들여라!"
824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