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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국지 [列國誌] 826
■ 3부 일통 천하 (149)
제13권 천하는 하나 되고
제 17장 범수(范睢)의 복수극 (1)
'살았다.'
범수(范睢)는 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바라보며 자신이 살아 숨쉬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런 것을 구사일생(九死一生)이라고 하던가.가슴이 뜨겁게 벅차 올랐다.
'나는 다시 태어났다.'의제(義弟)인 정안평(鄭安平)의 돌봄은 극진했다.
범수(范睢)는 그렇게 3개월을 서문 아래 빈민촌에서 숨어 살았다. 상처도 아물어 어느 정도
몸을 가눌 수 있게 되었다.하루는 정안평(鄭安平)이 말했다.
"대량성은 사람의 이목이 많아 위험합니다. 상처가 완전히 치유될 때까지 구자산(具茨山)에
들어가 숨어 지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자(茨)는 가시나무.그 곳에는 유달리 가시나무가 많다. 그래서 구자산(具茨山)으로 불린다.
대량성에서 북쪽으로 50리 떨어진 곳에 있다.정안평의 제의에 범수(范睢)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밤을 이용해 구자산으로 들어갔다. 산골짜기 입구에 모옥을 짓고 그 곳에 숨어지냈다.
이름도 바꿨다. 장록(張祿).
그때부터 범수(范睢)는 모옥에 틀어박혀 유세학과 병학을 다시 공부했다.
구자산 일대의 사람들은 범수를 모두 '장록 선생' 이라 불렀다.
정안평(鄭安平)은 대량과 구자산을 오가며 세상 돌아가는 일을 범수에게 전해주었다.
그렇게 다시 일 년여가 지났다.
어느 날, 정안평(鄭安平)이 구자산으로 와 대량성의 소식을 들려주었다.
"이번에 진나라에서 왕계(王稽)라는 사람이 사신으로 대량에 오는 모양입니다."
그 말에 범수(范睢)는 귀가 번쩍 트였다.머릿속으로 섬광 같은 빛줄기 하나가 스치고 지나갔다.
정안평에게 말했다."내가 황천까지 갔다가 동생의 도움으로 이렇듯 다시 살아났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러고 지낼 수만도 없는 노릇 아닌가. 나는 세상에 나가 기어코 위제(魏齊)와
수가에게 복수할 생각이네.""그러기 위해서는 강대국으로 가 벼슬을 얻어야 하는데,
이번 한 번만 동생이 더 도와주게.""형님의 일이 곧 제 일입니다. 그런 섭섭한 말씀은 하지 마시고
제게 시키실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십시오."
"이번에 진나라 사신 왕계(王稽)가 대량으로 온다 하니 자네는 대량으로 가 이러이러하게 해보게."
그러고는 귓속말로 한참 동안 속삭였다.
범수의 부탁을 받은 정안평(鄭安平)은 그 날로 구자산을 내려와 대량성으로 들어갔다.
아는 사람을 통해 공관의 역졸(驛卒)로 들어갔다.과연 얼마 후, 진나라에서 왕계(王稽)가
사신으로 왔다.왕계는 위안리왕을 알현한 후 날마다 공관에 머물렀다.
정안평(鄭安平)은 사신 일행의 신발을 닦아 주는 등 온갖 궂은 시중을 다 들어주었다.
그 태도가 어찌나 곰살맞던지 왕계의 눈에까지 띄게 되었다.
그리하여 왕계(王稽)는 시킬 일이 있으면 언제나 정안평을 불렀다.
하루는 왕계(王稽)가 산책을 하다가 후원 정자를 청소하고 있는 정안평을 보았다.
정자에 올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물었다."너는 시정(市井)에 나가 있으니 소문을
많이 듣겠구나. 너희 나라에 아직 벼슬하지 못한 어진 사람이 있느냐?"
정안평(鄭安平)이 기다리고 있던 말이었다.그러나 그는 일부러 한참 생각하는 척하더니 대답했다.
"참 어려운 물음이십니다. 지난 해까지만 하더라도 범수(范睢)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참으로 지혜롭고 뛰어난 재주를 지닌 선비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나라 재상께서
가혹한 형벌을 내리어 그만 세상을 떠났지요.""범수라면 나도 소문을 들어 알고 있다.
제(齊)나라 왕이 한눈에 반해 객경(客卿)으로 삼으려 했었다지? 그가 죽은 것은 애석한 일이다.
만일 범수(范睢)가 우리나라에만 왔었더라도 우리 대왕께서는 그의 재주를 마음껏 펼칠 수 있게
해주셨을 것이다!"정안평(鄭安平)은 속으로 기뻐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나으리께선 방금 전 소인에게 초야에 묻혀 지내는 인재를 물으셨습니다.
범수 얘기가 나오니 생각이 나는군요.""제가 사는 마을에 장록 선생이라는 분이 있는데,
그 분은 늘 스스로 '내 재주가 어찌 범수만 못하리오!' 라고 탄식하고 계십니다. 소인의 눈에도
장록(張祿) 선생은 범수 못지 않은 재주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분을 한 번 불러보심이 어떠하신지요?"
"그런 뛰어난 인재가 있다면야 내 어찌 만나보지 않으리오! 내일이라도 이 곳에 모셔올 수 있겠는가?"
정안평(鄭安平)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그것은 힘들겠습니다.""어째서?"
"이 곳 대량성에는 장록(張祿) 선생의 목숨을 노리는 흉악한 자들이 몇몇 있습니다.
그래서 장록 선생은 산 속 깊이 숨어 일절 바깥 출입을 삼가고 계십니다. 장록 선생이 위(魏)나라에서
벼슬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 분을 만나볼 수 있겠는가?"
"밤이라면 무방합니다.""좋다. 내가 내일 밤 잠을 자지 않고 기다릴 터이니 너는 수고를 아끼지 마라."
다음날 밤이었다.사위가 어둠에 잠기고 개 짖는 소리도 잦아져갈 즈음, 뒷문을 통해
두 사내가 공관 안으로 조용히 들어왔다.정안평(鄭安平)과 범수였다.
왕계(王稽)는 역졸로 변장해 들어온 범수를 의자에 앉히고 여러 가지 일을 물었다.
애초에 그는 마음속으로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범수(范睢)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보통 사람에게서는 전혀 들을 수 없는 놀라운 식견이 아닌가.
범수(范睢)는 천하 대세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환히 꿰뚫은 채 앞으로 전개될 상황까지
청산유수(靑山流水)로 뱉어내는 것이었다.왕계(王稽)의 얼굴에는 기쁨의 기색이 역력했다.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공손히 절을 올렸다.
"선생이야말로 천하 제일의 기재이시오. 바라건대 저와 함께 서쪽 진(秦)나라로 가주십시오."
범수(范睢)도 예법에 맞춰 응대했다."제가 원래 사람됨이 부족하여 이 곳 위(魏)나라에
제 목숨을 노리는 자가 있습니다. 그래서 늘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대부께서 마침 이 몸을 서쪽으로 데려가 주신다고 하니 오히려 제가 더 고맙습니다."
왕계(王稽)는 범수의 마음이 변할까 염려되어 손가락을 꼽아 계산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앞으로 칠 일이면 제 일이 끝납니다. 장록(張祿) 선생께서는 칠 일 후에 삼정강(三亭岡) 근처에서
저를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수레로 선생을 진(秦)나라까지 모시겠습니다."
827편에 계속
열국지 [列國誌] 827
■ 3부 일통 천하 (150)
제13권 천하는 하나 되고
제 17장 범수(范睢)의 복수극 (2)
칠 일이 지났다.왕계(王稽)는 위안리왕(魏安釐王)에게 하직 인사를 올리고 대량성을 떠났다.
범수와 만나기로 한 삼정(三亭)의 언덕은 하남성 위씨현 서남쪽에 위치해 있다.
왕계(王稽)는 혹시 자신을 감시하는 사람이 있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일부러 천천히 삼정강을 향해
수레를 몰았다.드디어 삼정강(三亭岡)에 당도했다.언덕 꼭대기에 이르자 저편 숲 속에서 두 사람이
달려나왔다.범수(范睢)와 정안평(鄭安平)이었다."장록 선생!"
왕계(王稽)는 천하의 보배라도 얻은 듯 기뻐하며 두 사람을 수레에 태워 부리나케 길을 떠났다.
여행하는 동안 왕계(王稽)는 범수를 극진히 대접했다.식사 때가 되면 범수를 불러 한상에서 음식을
먹었고, 밤이 되면 한방에서 자며 늦게까지 고담준론(高談峻論)을 나누었다.
이윽고 위(魏)나라 경계를 벗어나 진(秦)나라 땅으로 들어섰다.
국경을 지나 호(湖)라는 땅에 이르렀을 때였다.호는 호관(湖關)이라고도 하는데 함곡관 서쪽에
위치한 작은 관문으로 지금의 하남성 영보현 일대다.
춘추시대에는 진(晉)나라 땅이었으나, 전국시대에 들어 진(秦)나라 영토가 되었다.
뽕나무 밭이 많다 하여 상전(桑田)이라고도 불린다.문득 서쪽 저편 길에서 큰 먼지가 일었다.
범수(范睢)는 놀라서 시력을 돋우어 먼지 구름을 살폈다.
수십 대의 수레와 1백여 기쯤으로 보이는 기마대였다.진(秦)나라 고관대작의 행차가 분명했다.
범수(范睢)는 경계하는 마음이 들어 왕계를 돌아보며 물었다."저기 오는 행렬은 누구의 행차입니까?"
왕계(王稽)가 고개를 빼어 살피더니 대답했다."수레에 꽂힌 기(旗)를 보니 우리 나라 위염 승상께서
동쪽 일대의 군현(郡縣)을 순시하는 중인 모양입니다.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나 범수(范睢)는 위염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위염(魏冉)은 진소양왕의 외척으로 선태후(宣太后) 미씨의 남동생이다.
그는 야심이 크고 호방하여 누이가 태후인 것을 기회로 진(秦)나라 정권을 장악했다.
진소양왕(秦昭襄王)이 천하 제후국을 상대로 무력 정책을 편 것도 위염의 영향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범수(范睢)는 재빨리 왕계에게 부탁했다.
"모름지기 권세가 강한 사람은 다른 어질고 뛰어난 인재를 시기하게 마련입니다. 위염(魏冉)이
나를 보면 반드시 핍박하고 묘욕을 줄 터이니, 바라건대 대부께선 저를 수레 위의 통 속에 숨겨주시오."
범수(范睢)가 통 속에 몸을 숨긴 지 얼마 안 되어 승상 위염의 행렬이 다가왔다.
왕계(王稽)는 수레를 멈추고 내려가 위염에게 문안 인사를 올렸다.위염(魏冉)이 물었다.
"먼 길을 다녀오느라 고생이 많았소. 그 사이 위(魏)나라에 무슨 변화라도 있소?"
"별다른 변화는 없습니다."위염(魏冉)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수레 쪽을 살피며 다시 물었다.
"그대는 혹 위(魏)나라에서 유세가 따위를 데려오지는 않았겠지요? 요즘 세 치 혓바닥만 놀리며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아다니는 자들이 유행하는 모양인데, 그런 자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소.
공연히 나라와 백성들만 혼란에 빠뜨릴 뿐이오."왕계(王稽)는 뜨끔했으나 태연하게 대답했다.
"제가 감히 그럴 리 있겠습니까?"위염(魏冉)은 기마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사라져갔다.
왕계(王稽)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제 안심하셔도 됩니다. 장록 선생은 통 속에서 나오시지요."
범수(范睢)와 정안평(鄭安平)이 통 뚜껑을 열고 나왔다.
왕계가 다시 출발 명령을 내리려는데, 별안간 범수가 수레에서 뛰어내리며 달아나려 했다.
왕계(王稽)가 놀라 물었다."승상은 이미 가 버렸소. 무엇이 염려되어 또 달아나시려는 게요?"
"제가 통 속에서 몰래 위염 승상의 표정을 살피니 의심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다만 그는 일처리가 늦어 조사하는 것을 잊었을 뿐입니다."
"그는 얼마 안 가서 반드시 후회하고 다시 우리를 뒤쫓아올 것입니다. 그러니 우선 여기서
몸을 피하는 것이 안전할 듯싶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범수(范睢)와 정안평(鄭安平)은 걸음을 재촉해 어디론가로 달아났다.
왕계(王稽)가 천천히 수레를 몰아 10리쯤 갔을 때였다.
과연 뒤편에서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더니 20여 기(旗)의 기마대가 나는 듯이 달려왔다.
왕계의 수레를 멈추게 하고는 말했다."승상의 명을 받들고 왔습니다. 혹 대부의 수레 안에
타국의 유세객이 숨어 있지 않나 조사는 것뿐이니 대부께서는 저희를 나무라지 마십시오."
기마병들은 수레 위로 올라 일일이 통을 열어보았다.
그러나 이미 달아난 범수(范睢)와 정안평(鄭安平)이 나올리 없었다.
기마병들은 왕계에게 공손히 절한 후 다시 먼지를 일으키며 나는 듯이 동편으로 달려갔다.
왕계(王稽)는 탄복을 금치 못했다."장록(張祿) 선생은 참으로 뛰어난 분이시로구나.
장차 우리 대왕께서는 천하의 기재를 얻으시겠도다."왕계(王稽)가 길을 재촉하여 5, 6리쯤 갔을 때
지름길로 해서 먼저 온 범수(范睢)와 정안평(鄭安平)이 길가 바위에 걸터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왕계는 반가움에 수레에서 내려 친히 그들을 태우고 마침내 진나라 수도 함양성 안으로 들어갔다.
왕계(王稽)는 진소양왕을 알현했다.위나라에 다녀온 일을 복명한 후 말했다.
"신이 이번에 대량에 갔다가 지모가 출중한 천하 기재(天下奇才)를 발견했기에 모시고 왔습니다."
"장록 선생이라고 하는 분인데, 왕께서는 만나보실 의향이 있으신지요?"
"그가 우리 진(秦)나라에 대해 뭐라고 말하였소?""장록(張祿)선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진나라는 지금 누란지위(累卵之危)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저를 등용하시면 그 위기에서
벗어나 나라를 평안히 다스릴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신이 데리고 왔습니다. 꼭 불러서 그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 누란지위(累卵之危).
직역하면, 누란(累卵)의 위기다.계란을 쌓아놓으면 언제 무너질 지 모른다.
극히 위태로운 형세를 뜻하는 말로, 바로 범수(范睢)의 입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그런데 진소양왕(秦昭襄王)의 표정이 이상했다.가소롭다는 냉소가 입가에 가득했다.
"오늘날 여러 나라 빈객들 중에는 그런 호언장담하는 자들이 너무나 많소. 그런 자 치고 제대로 된 자는
별로 보지 못했소.""누란지위? 말은 그럴 듯하지만, 이는 과인을 겁주어 자신의 벼슬 자리를 얻으려는
수작이오. 그러나 기왕 데리고 왔으니 객사(客舍)에 방 하나를 내주도록 하오. 나중에 시간이 나면
한 번 만나보겠소."왕계(王稽)는 안타까웠으나 어쩔 수 없었다.
조용히 물러나 범수를 객사로 안내해 주었다.하지만 그 뒤로 진소양왕(秦昭襄王)은 범수를 부르지 않았다.
아니 범수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었다.그렇게 일 년여가 지나갔다.
범수(范睢)는 진소양왕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것에 실망했으나 함양을 떠나지는 않았다.
딱히 다른 곳으로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위제(魏帝)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난 것만도 다행이다.'
이렇게 위안을 삼으며 함양성 거리를 거닐곤 했다.
828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