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의 건국 신화에는 2가지가 전해 내려온다. 첫째는 불교가 전해지기 이전의 그들 토착종교인 뵌교를 근원함. 체탕산에 살던 괴물 “신모”와 하늘에서 내려온 원숭이 형상의 첸레지(천수 관음 보살)가 결혼하여 탄생한 6명의 자녀가 티벳 건국의 기원이 되었다는 설과 또 다른 설화….
제 1대 티벳 왕 넨트리 첸포에 관한 설로 천상에서 하늘의 밧줄을 타고 하강한 넨트리첸포를 얄룽계곡의 12족장이 와으로 이를 추대함을 기원하여 티벳의 1대왕이 탄생 티벳이 건국되었다는 설이다 참고 : 티벳족의 기원에 대해선 역사적으로 알려진바가 거의 없다 단..지금은 중국의 식민지로 전락 하였으나 지금은 중국의 서역 변방을 마구 유린 하였던 호전 적인
기마 민족이며 유목 부족 집단으로 …기원전 2세기경 중국 역사책에 최초로 공개 된바 있다
2) 32대왕 남리송첸 (서기 570-619)
티벳문명 발상지 얄룽왕조 시대의 토대를 마련한 왕. 중국 국경지대 여러 부족들을 통합 실권을 아시아내륙으로 확대시켜나감의 초석을 이룬자 세계역사에 티벳이 물망에 오르게 된 것은 이때부터임.
3) 33대왕 송첸 감포/618-649)
남리 송첸의 아들. 티벳을 중국대륙 변방의 중요한실질 세력으로 부상하게한 주역 티벳고원에 할거하던 여러부족을 일체로통합.. 제도정비후 군사국가로 부상시키는 한편 산스크리트어를 국문으로 채택하여 최초의 법전을 기초함. 고대 얄룽왕조(투보왕국)의 초석을 잡음 티벳 역사기록도 이때부터(7세기 초반) 인도북부와 중국국경까지의 세력확장을 이룬 티벳 최고의 왕. 티벳 불교의 시작을 이룬 티벳불교의 기원 왕조를 이루기도 함.
참고사항 : 티벳 불교는 어떻게 시작 되었나 ?
송첸감포왕은 정치적 세력확장을 위해..정략 결혼을 하는데 이것이 티벳 역사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된다 당나라 원청공주와 네팔의 브라쿠티 공주와결혼..(티벳역사의 큰 사건) 이 두공주가 티벳에 최초로 불교를 전파하는 모체가 되기 때문.. 불교최대의성지..죠캉사원..라모체 사원 모두가 이 두 왕비로 인해 건립됨 이외에 3명의 티벳 왕비가 낳은 자식은 송첸감포의 후계자가 된다.
4) 트리송 데첸 왕/서기 755-797)
송첸감포이후 200여녀간 티벳은 지속적으로 힘을 갖춘 군사 국가로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해 나간다 트리송 데첸 왕에 이르러 지금 현재 중국령으로 있는 동투르게스탄 과 파키스탄 북부, 네팔, 인도북부, 중국사천성 과 돈황을 점령 통치 당시 활발했던 실크로드 무역로 까지 관장…
5) 트리숙 데첸-랄파첸 왕/서기 817-836)
트리송 데첸왕의 영토확장으로 중국과 티벳과의 국경인정 협정을 체결한 왕. 동트루게스탄 과 사천성 가지는 티벳의 영토로 인정을 받아낸다. 이 협정을 유효화 하기위해 라싸,장안 티벳의 국경 돌기 들에 세김. 그러나 지금은 중국인의 재 점령으로 인해 조캉사원바깥쪽에 세웠던 것 만 남아 있다. 랄파첸왕은 또한 불교를 활성화 하는데 큰 공헌을 세우며 인도의 고승을 초청 불교 경전 번역에 이바지함. 티벳 승려배출을 위해 사미에 사원등 대규모 사찰을 건립. 그러나 대규모 사찰의 건립이 국가재정을 흔들게 되고 토착종교 뵌교의 불만이 드러나면서 결국은 뵌교와 연합한 랄파첸의 친형 랑 다르마에게 암살당하는 최후를 맞이 한다
(투보왕국/얄룽왕조의 멸망)
재밌는 것은 불교를 탄압하며 새왕이된 랑 다르마도 한 불교 승려에게 암살 당하는 최후를 맞이한다.
6) 통일티벳의 멸망 그 이후
서기842년 통일 티벳은 랑 다르마의 최후로 멸망한다. 그러나 뵌교로인해 박해 받던 불교는
각지방의 유력한 족장들로 인해 다시 부흥한다. 그들이 불교를 다시 일으키건 종교에 대한 경건함 보다는 주변국가와의 정치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불교를 버릴수 가 없는 시대 배경이었기 때문이다. 서기 900년경 부터는 불교학교와 각 종파가 형성되며 강력한 불교 왕국으로 형성 되기 시작 한다. 닝마,카규,샤카파등의 종파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이들은 통일티벳의 강력함 힘과 지배력 보다는 신앙의 세계..즉 불교 왕국의 심오함에 더 심취해 간다.
7) 통일티벳 멸망이후 중국의영토복구
랄파첸왕의 영토확장으로 티벳 영토가 중국의 사천성까지 늘어 났으나 통일 티벳 멸망이후 중국의 당나라는 불과 몇십년만에 과거의영토를 거의 재확보함. 송나라 때(960-1276) 부턴 두 나라 간의 분쟁 없는 세월이 계속 된다.
8) 몽골의 등장/ 티벳의 변화
1. 13세기에 이르러 몽골의 징기스칸의 등장으로 티벳은 위기에 직면한다
2. 1239년 몽고는 티벳을 급습.. 티벳을 파괴하자
3. 풍전등화의 위기에 직면한 티벳은 3대 종파중 가장 영향력있는 샤카파의라마를 파견한다
4. 이때 코코놀(현재 청해성)을 지배하던 징기스칸의 손자=고단칸이 샤카파의 수장(판디타)
를 소환하여 불교를 바탕으로 한 외교관계를 맺게 된다
5. 이로인해 티벳 불교 종파중..특히 샤카파는 몽고의 힘을 배경으로 정치와 종교 양권력을 거머쥐며 발전 할뿐 아니라
6. 몽고에 티벳 불교를 전파 시키는 빅 챤스를 갖게 된다.
9) 몽골의 멸망과 티벳의 재정립
세상어느곳에도 영원한 영광은 없는가?
1368년 중국에서 몽고의 원 왕조가 멸망하며 티벳은 다시 독립한다. 티벳은 몽고의 관리체계를 뿌리뽑고 전통 티벳 왕조 체제의 재 시동을 가한다. 이때 샤카사원에서 수학하고 얄룽지역의 관리로 있던 승려 상춥걀첸이 전통티벳 왕조체제의 복귀를 부르짓는 리더로 부상한다. 의외로 그는 샤카원에서 수학했음에도 불구하고 몽고의 하수인이었던 샤카파를 몰아내고 티벳 전통 왕조 체제를 부르짓은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독립체제를 구축하지못한 티벳은 외부의 압력으로 일부지역 얄룽 근처의 네당..정도에서만 이제도를 오랫동안 이끌어낸다
10) 총카파의 출현 과 겔룩파의탄생
청해성 부근인 동부지역캄출신으로 3세때 서품식을 받은 승려 총카파가 17세때 중앙 티벳으로 유학오며 티벳은 굉장한 변모를 이룬다. 총카파는(1357-1419) 모든 지식을 두루 겸비하고 작가와 교사로서 명성을 떨치던 인물로 얼마전 본인이 다녀 왔던 간덴 사원의 창시자이다. 그는 불교이론의 순수성과 사원의 규율을 정립하고 올바른 정치적 방향을 제시한다.
강력한 군사국가로 중국을 떨게 하던 송첸캄포와의 그 맥을 같이하나 틀린 것이 있다면 불교철학을 바탕으로 하는 적극적 포교활동을 핵심으로 하는 것이다. 총카파의 이러한 핵심에 영향을 입어 세라사원(1416건립)과 드레풍 사원(1419)이 총카파의 수제자들을 통해 지어지게 된다. 이러한 제자들을 통해 강력한 종파가 생겨났는데 이것이 바로 티벳의 중심 세력이 된 겔룩파이다.
11) 겐덴 드루프의출현 과 환생의 시작
겐덴 두르프….. 그는 겔룩파의 시조인 총카파의 조카이다. 시가체- 타쉴훈포 사원의 창설자이기도 한 그는 죽기전에 자신이 다시 티벳에 환생할 것이라 하며 제자들에게 징표를 남겨준 티벳 의 영적인 지도자 -그리고 달라이라마 =환생의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그 환생설이 그대로 이어져 가는데 겐덴 드루프의 징표로서 확인된 자가 바로 당시 드레퐁 사원의 수장이며 겔룩파 세력을 최고로 강화시킨 겐덴 갸초…그가 죽은 이후 환생한 자는 소남 가쵸….
이 같은 환생이 계속 되자.. 징기스칸 시대 때 샤카파와 함께한 몽고가 다시 환생의 의문에 관심을 가지고 겔룩파와 1578 청해성 부근 코코놀에서 역사적인 회담을 제의 하는데 그가 바로 몽고의 강력한 지도자 알탄칸…..알탄칸은 티벳의 환생자 소남갸초를 만나 놀라운 사실을 발견 하게 되는데 소남갸초로 환생한 영혼은…… 바로 ….? 누굴까 ?....
12) 소남갸초… 달라이라마의 탄생
소남갸초를 만난 몽고의 지배자 알탄칸은 너무나 놀란다. 소남가쵸 그는 원나라의 (중국을 점령한 몽고왕조) 세조 쿠빌라이의 현존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의 조상이 티벳인으로 환생 했으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 이 사건을 통해 몽고왕 알탄칸은 완전히 불교에 귀이 하게 된다. 동시에 알탄칸은 몽고왕의 권력으로 소남갸초에게 “달라이” 라는 칭호를 드리게되는데… 달라이 라는 말은 몽고어로 큰바다 (大洋)라는뜻이며 지혜의 바다라는 뜻을 내포한다. 재밌는건 소남갸초의 이름중 갸초가 역시 티벳 말로 큰바다란 뜻이다. 이로인해 달라이라마 라는 이름이 처음 출현 하였고 소남갸초는 그의 환생의 선대 겐덴 드루프..겐덴 가쵸 를 1,2 대 달라이라마로 호칭하며 자신은 스스로 3대 달라이 라마가 되었다. 3대 달라이 라마 소남갸초의 출현으로 몽고와 티벳은 지배관계를 벗어나게 되었고 몽고전역에 라마 불교…즉 티벳 불교가 중심신앙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13) 4대달라이라마 / 욘탄갸초
달라이의 시조이자 3대 달라이 소남갸초가 죽자 그의 환생자는 묘하게도 몽골에서 나왔다
그의 이름은 욘탄갸초..(1591-1616) 바로 달라이라는 칭호를 내린 몽고황제/알탄칸의 증손자이다. 4대 달라이로 추대된 욘탄 갸초는 몽골군의 호위아래 라싸에 입성..이를 통해 몽골과 라마 불교의 최고 교단 겔룩파와는 더욱 연합이 강화 된다. 이것이 화근이 된다…겔룩파이외의 교단이 정치적 위협을 느끼자 1911년 카르마종파를 주축으로한 창지방의 왕이 드레퐁과세라사원을 침공… 4대 달라이 라마는 라사를 탈출..도피생활하다 25세의 젊은나이로 생을 마무리하는대..특별한 것이라면 달라이 라마 중 가장이른나이에 죽었다는 것이다..오리지날 티벳탄이 아니라 그런건 아닐까?
14) 5대 달라이라마와 포탈라궁
4대 달라이의 허무한 종말에 이어 곧 5대 달라이가 나타났으니 이도 몽골군의 호위를 받고 곧 라사로 입성 겔룩파와의 지속적연합으로 통일티벳의 자리를 확실히 주축하게 되는데 이가 바로 포탈라궁의 창시자이기도 하며 역대 달라이의 가장 큰 업적을 이룬자이다. 1656년 서부 나리에서 동부 캄 지방까지 전지역을 통치하며 영적,정치적 권력을 함께 쥔 …
달라이라는 칭호ㅡ를 가장 권위 있게 만들며 통일 티벳의 주권을 확고하게한 가장 이름있는달라이로 추대되며 지금도 포탈라궁 내부에가면 5대 달라이라마의 불상이 가장 거대한 것이 이를 증명해 주기도 한다
15) 5대 달라이라마의 죽음 은폐사건
진실하지 못하면 하늘이 용서 하지 않는다 했던가? 1682년 그렇게 잘나가던 5대 달라이도 결국은 인간이기에 죽음 을 맞이 한다… 5대달라이가 죽었다하면 지금까지 잡은 스타일 다 구기는데… 걱정하던 참모들 …거짓말 때리기 시작한다..뭐라구? 오랜명상에 들어갔다구.. 그의 사망을 은폐하기로.. 이순신장군도 이거보고배웠나? 나의 죽음을 알리지마라 했쟎아 암튼 5대 달라이의 죽음을 은폐한 것은 통일티벳의 주권이 흔들릴까 걱정한 나머지 나온 발상이 었다 근데 세상에 비밀이 어딘나? 13년을 넘기지 못하고 1695년 결국은 이 비밀이 세상에 공개된다 ..혼란이 야기되려하자 섭정을 하던 샹계갸초는 서둘러 제 6대 달라이를 즉위시킨다.
16) 명나라의 멸망/청나라의탄생
여진족-누르하치의 공격으로 명나라는 멸망 청나라..즉 만주족이 중국을 지배한다 청나라는 늘 몽골을 정치적으로 끌어들일 관심을 가졌음으로 몽골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해나갔다.. 몽고를 잡으면 티벳은 거저이기 때문에 그러던 중 청나라와 관계가 점점 강화되어가던 1705년 몽골의 야심가 라브장칸 왕자는 청나라 강시황제의 빽으로 섭정을 하던 상계갸초를 살해 하고 6대 달라이도 다른인물로 교체한다 왜 죽였냐구?.. 몽골이 티벳의 영향을 너무 깊히 받아 완전히 티벳화 된걸 느끼고 이러다간 점점 몽골이 분열 되겠다고 걱정했거든… 이해가 가지 ? 4대 달라이는 몽골인이었기에 라싸를 장악 몽골인으로 달아이를교체하면 몽골인이 다시 합칠수 있다 생각 했거든… 근데 예네들이 실수 한게 있는데 6대 달라이를 인위적으로 교체하기위해 섭정을 죽여 버렸다는게야.. 짜식들 대충하지… 너무오바하다보니 . 오히려 몽골내부에서까지도
교체된 6대 달라이땜에 현 정권에 대한 적대감이 더 생겨버린거지 .. 암튼 권력땜에 사람죽이는 일은 없어야돼!!
17) 7대 달라이라마의 통치권획득
청나라는 티벳을 속국으로 만들었으나 재밌는건 식민지가 아닌 연방제..즉 속국이긴하나 정치적 관여는 크게 간섭하지 않는..몽골족과의 관계를 유지할때와 유사한방법을 채택 했던것이다 이는 7대 달라이라마가 1750년 임시 통치권을 획득하는데 좋은 계기가 되었고 그후 7년간 1757년까지 무난히 티벳을 통치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잘 흘러가면 되는데..독립의욕이 갑자기 불어 닥치다 보니 티벳 반란군 형성…중국사절을 살해 하는 사건이 생기는데..
이를 통해 만주족 청나라의 정치적 개입이 갑자기 강화되고 결국은 이 사건으로 인해 13대 달라이 라마 즉위이전까지 티벳에선 더 이상 달라이 라마가 실질적 정치 행사를 가질수 없는 불운을 격게 된다.. 120년간이나 말이다… 암튼 사람 죽이는 건 …뭐든 끝이 안좋다 ..
18) 네팔 /구르카의 침공
캉가루가 뛰니 벼룩이도 뛴다 던가?
말없이 조용하던 네팔애들까지 힘 없는 티벳을 갈구는 사건이 터졌다 만주군.. 즉 청나라는 즉각 군사 개입을 하며 네팔을 진압한후 티벳은 일체 외국과의 접촉을 금지 한다 고 칙령을 내린다 이로인해 청나라의 간섭은 줄어졌으나 암반직(속국을 관리하는 직책)은 청나라멸망때까지 계속 상주했었다.
19) 영국의 후속타/러시아 의 진출
영국의 진출실패 이후의 러시아가 진출한다 러시아는 봉인가? 왜 사절단을 받아 들였지?
응 ~ 그것도 종교때문이라네… 러시아 황제가 불교에 관심이 많았다나? 그래서..그이유만으로 그래서 러시아 사절단이 받아 들여 졌는데... 지속적인 영국의 접촉을 마다하고 러시아와 뽕짝을 마추는 티벳에 영국은 당연히 열받게 되었겠지? 불교국가 인도 까지 다먹어 치웠는데..요티벳..이게 말을 안들으니.. 당연히 눈에 가시 !!
이로인해 영국은 눈에 레이져 광선을 쏘며 티벳을 먹을 계획을 하는데...
20) 영국의 티벳 침공/13대 툽텐갸초의망명
열받은 영국…!!뭐 건수좀 없나? 티벳먹을수 있는….????
오호라 이거 괜챦네 여기 영국의 잔머리는..세계수준..영국은 고민끝에 건수 하나를 잡는데 이는 러시아가 티벳을 먹고 히말라야 넘어 인도까지 침공할 가능성에대비 티벳은 인도를 지키는 생명선이라는 강제 건수를 만들어 티벳에다 “프란시스 영허즈번드” 대령이 이끄는 영국령인도군을 파견한다 이때가 100년전인 1903년 … 영국령인도군은 인도를 거쳐 티벳의 간체까지 원정을 하는데 당영히 열받은 티베탄들 …영국과 싸움을 벌였겠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 했던가 ? 싸워서 이길게임을 해야지..!! 티벳 군인 한방의 부르스로 그들에게 자악살 나 버리는데… 나바론 요새보다 더쥑이는 “갼체”성곽도 무너졌으나 고집은 왕고집..일체 영국과 타협 안하고 묵언수행자 처럼 노코멘트 !! 노 네고시에이션 !! 샷탑 마우스!! 하지만 영국이 계속 참나 ? 안참지? 그래서.. 위협을 느낀 13대 달라이 라마..러시아 고문관의 도움으로 몽골로 망명하는데 1876-1933까지 살았던 그는 바로 툽텐갸초!!
결국 영국은 티벳을 점령 ..라사에 입성한다 이때가 1904년 8월!!
21) 영국과 중국의 티벳협정
1. 영국의 티벳 점령 및 라사입성으로 영국은 티벳과 라사조약을 맺는다
2. 이름하야 앵글로티벳 협정
3. 13대 달라이라마가 망명시 섭정으로 임명한 라마트린 린포체와의 협약이다
4. 이때 열받은건 만주족 청나라 !!
5. 티벳의 종주국이 중국인데 ..티벳 제 마음데로 조약한걸 인정 못한다고 항의
6. 영국은 다시 티벳의 종주국이 중국임을 인정 다시 중국과 재 조약을 맺는다
7. 아 !! 슬프다 ..제나라 없다는게 이렇게 슬프니..안중근 유관순 의사가
8. 그렇게 팔팔 뛴 것이다… 그져 지하에 계신 그분들께 감사하자
9. 일이 이쯤되자 영국군은 티벳을 떠나고 몽골로간 13대 달라이라마는
10. 다시 북경으로 들어오는데 …청나라가 망할때쯤되니
11. 만주족이 다시 티벳을 점령 ..달라이라마는 또 도망 가게 되는데
12. 아이러니한 것은 영국땜에 몽골로 도망했던 13대 달라이가
13. 이번엔 영국의 협조로 영국의 식민지인 인도로 망명하게 된것이다
14. 세상일 참 웃기게 돌아간다..어찌됐건 달라이라마는 이렇게 망명의 세월을
15. 밥먹듯이 하며 살아가는 비극이 이어지고 또이어진다
22) 만주족의 철수
1991년 신해혁명으로 청왕조가 한물 가버리는 일이 생겼네..우야꼬 어부지리… 만주족이 티벳과의 전투를 통해 꿀꺼덕 할려는 찰라 !! 1년도 못가 티벳에서 까불거리던 만주족은 중국에서 완존히 몰락하는 바람에 1912년 티벳에서 철수 하게 된다 그때 13대 달라이라마는 다시 조국으로 복귀 (1913년 1월)
자신이 “영적 세속적 티벳의 통치자임을 천명” 하며 티벳이 독립 국가임을 선포하게 된다
근데.. 힘 없는 티벳을 주위의 열강들이 “약 먹었냐?” 가만 놔 두게… 영국,중국이.. 남의 나라를 야크 스테이크 잘라먹듯 으르렁 거리며 달려 들게 되는데 이때한 회담이 시므라 회담!!! 재밌는건.. 중국 아시끼들이 티벳은 독립국가가 아니라 속국이다!! 하며 계속 게기는데 … 게기고..게기고..또 게기다 이리저리 세월만 보낸다 이때가 중국이 공산화 되기 이전이라.. 공산화 될때까지 30년간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게..그냥 간섭안받고 티벳은 슬금슬금 지내오던 티벳…. 하지만..이 주변국가의 간섭에 지친 티벳이기에 이 기간동안 신권 정치를 강하게 수립한다
23) 티벳의근대화
인도에서 망명 생활을 했던 13대 달라이라마.. 친구 잘사귀면 세상 편해 진다지?? 13대 달라이 한테 친구하나 똘똘한게 있었는데 그가 바로 영국인 촬스 벨이다 이 사람 티벳을 연구 하는 학자 이고 인도 동북부의 시키이란 고장을 직접 맡았던 관직도 갖고 있던 꽤 빵빵한 사람이었어///이 사람과의 친분 관계 였겠지? 사이가 찜찜했던 영국과 티벳은 앵글로 조약으로 화해 하게 된는디.. 13대 달라이 혼자 생각 많이 했데… “왜 우리 티벳 이 이모냥 이꼴로 살고 있나하고??” 그래!! 근대화가 늦어지니 요꼴이지… 안되겄다 달라이 13대는 정신을 가다듬고 영국과의 협조를 통해 티벳을 근대화 시키기로 했다네…. 어떻게?????
일단 국방의 힘!!! 근대 무기 지원을 요청 자주국방의 자세를 확립
둘째.. 자가산업의 기틀 마련 !! 라사와 시카체에 전신선 가설
셋째..자가발전을 위해 라사근처 수력 발전소 건립…
와 잘한다 !! 13대 달라이 쥑인다…
24) 좌절된 티벳근대화
잘나가면 항상 액이 끼는건가??? 잘나가던 근대화을 찬물이 끼얹게 되는 사건이 생기는데
그게 바로 내분..판첸라마와의 분쟁 !! 판첸라마 입장에도 당연히 이유는 있었지 영국이 호구냐?? 티벳 근대화를 협조해주는게 설마 무료였겠어?
달라이라마한테 퍼밋을 받아 지질조사단이 들어와 혹시 연탄이나 뭐 그런거 나나 하고 이 성지를 마구 파 헤쳤거든 생각해봐..남의집 세파트가 들어와 똥눌자리 찾는다고 우리집 앞 마당 마구 파헤치면 …언놈이 열안받겠냐??? 거기다.. 영국놈 들어 오는것도 열받았겠지만
신정통치..신권정치..종교국가 유지를 주장하던 보수파들에게 달라이 13대의 근대화는 눈에 가시로 보였거든 판첸라마는 탓휠훈포 사원에서 열받음을 감추지 못하고 13대 달라이에게 한마디 했지… 이렇게.. 머슀게… “야 !! 우리 계급장 때고 한판 붙자 !!” 이러니까..열받은 달라이람13대 .. 가만있었겠어? 당연히 영국에 e.mail. 보냈쥐… “영국이 형아.. 얘가 나 때릴라 그래..혼내줘이..” 영국이 형이 돌아와 판첸라마 !! 너 나가 !!! 그래서 판첸라마 중국으로 escape 해버렸다네 으휴… 이나라 boss 들 왜 그리 자주 나가냐 ????
25) 중국공산당의 출현
1. 30년간 어찌저찌 하며 대충 큰소리없이 넘어 오던 티벳…
2. 그러나 조용할리가 만무 하지
3. 청나라가 망하고..만주족도 멸망 하고..드디어는 모택똥의 시대가..
4. 사회주의 천상낙원 건설에 꿈을 나고 나타난 마오쩌뚱…
5. 이 양반 뜰 때 김일성이도 떳다지??
6. 내가 듣기론 말이야..티벳 침략시 북한의 김일성도 한수 거들었데요
7. 비록 우리나란 아니지만 ..북한도 우리와 한민족이니 좀 미안하기도해
8. 각설하고 ..중국의 통치권이 붉은 공산당= 홍위병에게 넘어가며
9. 우리나라도 그랬듯이 …많은 중국민들이 좌익 분자들에 의해 수없이 숙청되고
10. 부르죠아의 처단이 나날히 감행되며 ..모든 전통을 유린하고 수많은 사람을
11. 인민재판에 회부… 대량학살한 일명 문화혁명…이념혁명이 초 스피드로 진행 되었어
12. 지 나라 애들도 이렇게 개 주악살 냈는데… 티벳은 어쨌을까??
13. 티벳은 그야말로 한여름에 “보신탕” 감이 되어 버린거야….
14.. 아 ~~ 역시 배워야 산다…. 강해야 산다…
15. 티벳은 우리 나라와 왜 이리 팔자가 비스므리 했었을까..
16. 암튼 걔네 들이 티벳에 어떻게 했는지 다음 편을 보자구…
26) 홍위병의 티벳문화파괴
큰일 났어 붉은 공산당=홍위병이 티벳의 문전을 차고 들어 온거야 그때가 1966년 7월 이었어 얘네들 ..마치 영화 “공공의 적”에서 조그만 분식집 박살 내던 7명의 양아치 조직 처럼 티벳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어 만약 티벳에도 “강동서 강력계 강철중 형사”가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암튼 라사에 입성한 홍위병은 6천여개에 달하는 티벳의 사원을 초전 박살 내버리고…불교경전.. 완전히 불태우고..아님.. 불교 경전을…그것도 종이라고.. 원가 절감 해야 된다고… 홍위병들 변소 똥딱지로 사용했데… 너무 심했지??? 거기다 티벳인들 …가장 성스럽게 생각 하는 죠캉사원을 뭘로 쓴줄알아??? 개도 아니고..닭도 아니고…지저분하기로 소문난 돼지말이야.. 그 신성한 성지를 돼지 우리로 쓰게 했데… ~~ 아무리 힘 없고 연약하고 못배운 민족이지만 이거 너무 한거 아냐?? 그래도.. 걔네들 최후의 자존심인 죠캉사원을 어찌 돼지 하숙집으로 쓴단말야?? 만약 일번넘들이 우리나라 불국사나..경복궁을 .. 똥 부뿍 갈리는..돼지 사육장으로 썼다면 …우리 가만 있겠냐구?? 아 ~~ 열받어…이글쓰다 흥분해 돌아가시겠네 쭝국넘들… 일번넘보고 뭐라 그럴꺼 없구만… 지들도 한짓이 또깐네
27) 티벳의 단발령
티벳인 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홍위병…. 죠캉을 돼지 우리로 쓴 홍위병… 불교경전을 군용 화장지로 사용한 홍위병… 이쯤으로 끝나나 했더니…흐 어~ 한술 더떠 장족의 전통인 남자들의 롱 헤어…를 싹뚝 잘라버리기에 이르른다 더군다나 장족여성의 전유물인 장신구와 보석등은 브루죠아의 상징이라하여 일체의 보석 소유를 금지 하고… 이를 어길시는 압수.!! 지들이 꼴까닥… 더욱 심한 현상은 …정신적 지주인 달라이 라마를 인민의 적으로 칭하여 밥이나 축내는 민족배반자로…무능력자로… 쇠뇌교육을 시킨 것이다 “야 니들 잘들어… 만약 달라이라마가 진정 니들의 지도자라면..니들 놔두고 도망가겠냐” 안그래??? 가만히 듣고 보니 티베탄들 그말이 맞거든.. 진정으로 조국과 민족을 생각 한다면..국민과 함께 죽어야 하거든… 그래… 달라이 라마에 기대느니 차라리 홍위병을 믿자 그래서 친중파 티베탄 들이 슬슬 생겨 나기 시작 한거야 물론 교묘한 심리전으로 티베탄을 끌어당긴 때구넘들 …. 못됬긴 했지만… 한편으로 티베탄들이 꼴가닥 하고 넘어간거에는 통치자의 무능함도 묵과 할순 없어… 암튼 지도자는 국민과 함께 죽고..국민과 함께 살아야지..
28) 60년대의 티벳상황
홍위병이 무자비하게 티베탄들을 박해 하자.. 센놈들 앞에선 어쩔수 없었는지 초창기엔 좀 먹혀 들어갔는데 이것들 폼좀 잡게 되니 ..애미에비도 없이 무자비 해진거야 과관이야… 중국사람들 까지도 홍위병의 횡포에 질려버릴정도 였으니 보다보다 못한 중국 공산당도 참다 못해 인민 해방군을 만들었어 왜??? 홍위병 통제 할라구… 기가차지??? 쉽게 얘기해 홍위병감찰반으로.. 하지만 얘네들 막가파 군번이라 티벳 탄들 하고는 허구한날 싸움질… 끝없는 소요사태.. 폭력사태가..24시간 편의점 처럼 늘 불켜놓고 일어났던거지.. 이때가 1969년…음….. 내가 초등 2학년생 때니 그리 오래 되지도 않았군..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쥐새끼도 막다른 골목에선 괭이 한테 대든다는 말.. 정말이야!! 티벳탄들 지금은 힘없어 그렇지만 5세기 경엔 말야 쭝국넘들 땅 3분의1을 정복한 대단한 민족이 었거든…. 그게 민족 잠재력이란 건데… 이 기마호전 민족이 가만히 안있었어…. 열 받으니까.. 대든거지.. 막 대들었어..쥑일라면 쥐기라!!! 무자비하게 진압을 당하면서도 봉기는 끝이 없었던거지 티벳의 폭력사태를 안정시키고 …안녕과 질서..평화를 정착하기위해 뒤늦게 중국 정부가 유화 정책으로 나갔는데… 이를 위해 돈을 뿌리다보니 중국의 국가가 바닥날 정도 였데요 암튼..찍 소리 안하고 가만있으면 사람 우습게 본다니깐.. 안중근 의사 때메 우리나라가 독립 된건 아니지만 안중근 의사의 이등박문 저격 사건은 일종의 정의를 위한 강력한 저항 이었지 일번넘들 이때 등꼴이 시릴 정도로 섬찟 했을걸 생각 하면..속이 확 풀린다 그러게…. 남의 땅,,, 주인(창조주님) 허락도 없이 함부로 먹으면 좍살 난다니까…
29) 공산당의 티벳 유화정책
아무리 잘나가는 인간이라도 죽음앞엔 힘 못쓰지.. 나폴레옹도..하물며 그 나가던 김일성이도..모두 갔지..!! 하나님이 지배하는 어둠과 광명의 나라 둘중 하나로 1976년 중국 공산당의 아부지..오야붕.. 모택동이 죽어 버렸어 그의 후계자로 화구팽(화국봉)이 등장 했는데 시끄러운 티벳땅에 화해와 평화의 무드를 제공하자는 정책의 일환으로 달라이라마와 그외 정치적 망명자들 귀환한다면 환영한다고 공표했어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쌤플케이스로 판첸라마를 특사로 풀어주네?? 이 소식을 들은 달라이 14대.. 어라 ?? 얘네 들이 왜이러지? 바보가 아닌 이상 믿을수 없는 이 사실을 파악해 보기 위해 티벳 실태조사 사절단 파견을 제의 했지
어라 ?? 안들어 줄줄 알았는데 이것도 들어주네?? 달라이14대 는 이사길을 보며 “에이..망명생활 이제 그만두고 집에가자 했는데…. 문제는 돌아온 사절단에게 “ 어땠니?? “ 하고 물어 보니.. 사절단 왈 “ 절단 났습니다.. 완존히 절단 났습니다” 라고 말한게야 이후 둘번이나 재 보고를 받았으나.. 티벳의 상황은 경악을 금치못하는 상황이라 달라이 라마14대는 노!코멘트.. 보고된 상황이 도데체 뭐길래?? 궁금 하지? 6254개의 사원은 모두 파괴 되어 있고
티벳의 60%가 중국으로 흡수 되었고 중국 강제 수용소에서 산림벌채로 10만명의 티베탄이 강제노동을 당하고 있고… 달라이는 눈물을 감출수 없었어 티베탄이 나라를 잃은 것도 분한판에 지도자의 무능으로 자신의 민족들이 이토록 고난받음에 달라이는 티벳의 하늘을 그리며 주루룩 한방울을 흘렸데
30) 등소평의 평화정책
한마디로 주악살 나있는 티벳의 현실에 달라이라마는 학을 똑닥 때버리고.. 화국봉의 유화정책에도 불구 달라이는 “ 나 집에 안가!!” 하고 결심 할때쯤 쭝국의 등소평이 등장 하는데.. 허 !!~~ 이걸보게 등소평 할아부지..티벳에 정책 변화를 주도 하는데 그게 뭐시기냐??? 티벳인의 생활 조건을 향상 시키기위한 6개조항을 만들고 세금을 감면하고… 사기업을 제한적으로 허락하고…. 더 …그보다 더.. 충격적인것은… 6254개의 폐허가 된 사찰중 복원 할 것은 모두 복원 하라고 지시 하며 종교의 자유를 복원 해 주라 한거야 !!! 그 할배..참.. 그건 잘한거 같애 그 이후로 사원은 다시 문을 열고… 순례자들의 순례 여행을 허락하여 순례도 계속 되고… 근데 이할배가 왜 그런 줄 알아 ??? 모르지?? 모르겠지?? 갈켜주까?? 호요방 !! 이 사람.. 참 바른 말 …정확 한말을 했데 티벳 망명정부 사절단이 티벳에갈 때.. 차비가 모자랐는지..공짜로 같이 갔는데 .. 여기 온 다음에 등소평한테 가서..그나마 바르게 소식을 전한거야 “할배요.. 내가 보기는 말입더.. 티벳 얼라들이 말하는 만큼..절망적이진 않아도예” “솔찌키..우리가 좀 심했던거 가씸더…그랑께.. 티벳 얼라들이 펄펄 띨만도 하더라..이깁미더.. 좀 함더 생각 해 보고.. 싱경 좀 더 써가꼬.. “좀 잘해 주씸 합 니더..요새 전세계 얼라들이 우리 보고 넘 심하다꼬.. “욕도 할만 합디더… 할배요..자들 너무 머라카지 말고 함 바 줍시더” 이말에 등소평 할배..밥샘 이틀하며 빼갈 한잔 하고 고민 했데나 어쩼데나…?? 암튼 그로 인해 중국에 압수 되었던 사원 내부의 종교 성물도 다시 제집 찾아 들어오고…… 일단은 잘되는 현상으로 들어갔어.. 하지만 등소평 할배는 달라이 라마(14대)가 가출해 있는 상황이 늘 찜찜 했던지.. 화국봉 아이씨 처럼 다시 한번 꼬시기로 한거여.. 물론 달라이가 좋아서는 아니야..국제사회의 비난때메… 등소평할배 왈” 달라이라마씨… 다시 드러와부러..인도 셋방은 방도 춥다는디” “들어오면..우리 북경에서 같이 살고..그리고 맛있는것도 많이 사주께..응?응?” 할배는 달라이를 동네 예쁜아가씨 꼬실려고 그여자 막내동생 꼬시듯… 어루고 달랬는데…… 후후후 그게 어디 통해 야 말이지.. 달라이 라마 왈 “ 내 미친나?? 너거 믿에 들어가구로..그래 바짜 우리 티벳이 너거나라밖에 더 되나?? 내사..마.. 안할란다..칫!!” 열받은 등소평 할배..참다참다… 한마디… “ 알었어 알었어…하기실음 말어부러..인자부터.내가 임자랑 말하나 봐 !!” 결국은 전셋집 보다 사글세가 속편하다고 말한달라이 라마!! 전셋집 주인은 그때부터 …사글세가 그렇게 좋은건가 고민을 했데나 어쩼데나..
이렇게 현재까지...달라이 라마는 인도 다람살라에 살고 있다....
글이 좀 재미있지? 흐흐 이 정보는 다음 카페 장티 마을에서 퍼왔고 거기 주인장인 장한종님이 쓴 글이야....나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어째 우리 역사와 많이 비슷하단 생각이 많이 들더라...그리고 티벳사람들 우리나라사람들하고 많이 닮았어.......만일 여력이 된다면.....정희재씨가 쓴 ‘티벳의 아이들도’ 함 읽어보면 많은 도움이 될꺼야....
짐 나는 티벳으로 가는 교통편을 정리하고 있으....정리 다 끝나면 올리마......기다리라...
그리고 티벳 실용 정보들도 조만간 정리한다....
그리고 확실히 언제쯤 떠날 수 있는지...말해줘...난 11월 둘째주쯤...출발이다...그런데 많이 춥다고 해서 걱정이긴 한데...이번기회에....고산병과 추위와 함 싸워볼련다....^^
첫댓글 이렇게 한꺼번에 마니 올리면 어지러워서 어케 읽어? 암튼 수고한다. 티벳하면 "티벳에서의7년" 브래드피트가 생각나.
그래 생각나지..흐흐 그 영화 조조에 봐서 어떤 외국인이랑 나랑 둘이 봤다는거 아니냐...ㅎㅎ 암튼.... 그리고 이건 한번 쓱~ 읽어보믄 되느니라....걍 티벳의 역사를 간략하게...올린것이니....어지럽다 생각하지 말고....준비는 잘 해가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