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업 신부 시복시성기원하는 ‘희망의 순례’
전주 신시도에서 미사 봉헌··전국 순례객 900여 명 참여
10월 17일 최양업 신부 시복시성기원 ‘희망의 순례단’ 신시도 체류지 순례 미사 후 원주교구 희망의 순례단 신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성기화 명예기자
원주교구 순교자 현양위원회(위원장 배은하 타대오 신부)는 10월 17일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시복시성기원 ‘희망의 순례’를 최 신부가 부제 때 조선에 입국하려 했던 ‘신시도(新侍島) 체류지’에서 실시했다.
이날 순례 중 오전 11시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옥도면 신시도리 산 4-12 새만금 방조제 준공 기념탑 앞 신시 광장에서 미사가 봉헌됐다. 미사는 배은하 신부 주례, 곽호인(베드로) 총대리 신부를 비롯한 원주교구 사제단과 성필립보생태마을 원장 황창연(베네딕토) 신부를 비롯한 수원교구 사제단의 공동 집전으로 전국 각지에서 모인 900여 명의 순례객이 참례한 가운데 국악미사로 거행됐다.
황창연 신부는 미사 강론에서 “오늘 이렇게 많은 순례자들이 신시도에 모인 것은 ‘길 위의 목자’요 ‘땀의 순교자’로서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애쓰신 최양업 신부님이 일으킨 기적”이라면서 “순례단 여러분이 이 희망의 순례를 통해 복음을 선포하는데 힘을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10월 17일 최양업 신부 시복시성기원 ‘희망의 순례단’ 신시도 체류지 순례 미사 중 수원교구 성필립보생태마을 황창연(베네딕토) 신부가 강론하고 있다. 성기화 명예기자
미사 중에는 배은하 신부의 <희망의 순례 아리랑> 선창에 따라 신시 광장의 순례자들이 율동과 함께 노래를 불러 장관을 이뤘다. 미사 전에는 해금, 피리, 장구 등으로 이뤄진 국악 팀의 <아무것도 너를>, <뱃노래> 등 공연도 진행됐다.
귀갓길에 서울·수원·원주 등에서 출발한 순례자들은 충남 서산시 해미면 소재 해미순교자국제성지·해미읍성을 순례하기도 했다.
최양업 신부는 부제 시절 1847년 8월 상해에서 출발하는 프랑스 선박을 타고 조선에 입국을 시도하던 중 배가 파선되는 바람에 같은 배에 타고 있던 선원, 승객 600여 명과 신시도에 한 달 동안 천막을 치고 체류하게 됐다. 신시도는 최 신부가 조선 신자들과 접촉을 시도했으나 관원들의 감시로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한 회한이 서린 곳이다. 최 신부는 신시도에서 육지로 상륙할 수 있는 방법을 끈질기게 찾아보았으나 결국 상해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최양업 신부의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서한에는 이때의 자세한 상황과, 안타까운 심정이 기록돼 있다.
전주교구는 2013년 교구 관할인 신시도 체류지에 안내 표지판을 설치하는 한편 ‘최양업 신부 신시도 행적 기념 학술심포지엄’을 열기도 했다.
신시도는 고군산군도 63개 섬 중 하나로 수려한 자연경관으로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