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묵주이야기]
플레이(Play)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고등학생 시절 고해성사를 보고 틈이 날 때, 생각 날 때, 오가는 길에 성모송을 바치라는 보속을 받은 적이 있다. 몇 번이라는 횟수도, 언제까지라는 기간도 정해져 있지 않았는데 나는 꽤 오랫동안 습관처럼 학교를 오가는 길에 성모송을 바치곤 했다. 집을 나와 길을 걷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중얼중얼 성모송이 나왔다. 등하굣길이나, 편의점에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러 갈 때나,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는 길에도 마찬가지였다. 길을 걸을 때는 성모송을 바친다는 공식이 머리에 들어 있으니 굳이 하려고 하지 않아도 기도가 줄줄 되었다.
그렇게 신실하던 학생은 예수님 나이쯤 먹은 지금, 회사 일에 바쁘게 지낸다. 그런 핑계로 묵주기도는 물론 주일에 겨우 미사를 드리는 일도 소홀히 지낸 지 시간이 좀 지났다. 나는 자가용으로 출퇴근하고 시간은 30~40분 정도 걸린다. 어느 분께서 그럼 오가는 길에 기도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씀하셨다. 나는 보통 차에서 아무것도 듣지 않는다. 귀에 잘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만 하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다며 CD라도 틀어놓고 다니면 어떻겠냐고 하셨다. 그래서 한 번 해보겠다고 대답했다.
운동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 일요일에만 시간이 되는데 일요일에만 운동하면 효과가 있을까 고민하는 것처럼, 시간이 규칙적으로 나지 않는데 불규칙한 시간에 운동해도 효과가 있겠느냐고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들에게 일단 해보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어떤 운동을 어떻게 하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라고 말해주지 않겠는가 싶었다.
기도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어떤 기도를 어떻게 하든, 시간과 장소를 정해놓고 하든, 일주일에 한 번만 하든, 시간을 낼 수 없어 잠깐잠깐 토막기도를 하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야 백만 배 천만 배 나을 것이다. 차를 운전할 때 CD를 틀어놓는 것은 기도인가 아닌가를 생각해보았다. 운동하지 않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하는 것이 나은 것처럼, CD라도 틀어놓고 있는 것이 나을 것이다. 기도하는 것도 시간이 없다, 장소가 없다, 바빠서 할 수 없다고 말하기 전에 플레이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바쁜 도시여성의 삶을 살면서 늘 빠듯하게 출근하고 지쳐서 퇴근한다. 그래도 오늘은 출근길에 젖은 머리로 뛰어 나오면서 가방에 들어 있는 스마트폰을 꺼내어 묵주기도 앱을 실행시켰다. 운전에 집중하기도, 앱에서 플레이 되고 있는 기도를 하기도 하면서 길 위를 달렸다.
나는 플레이 버튼을 누르기만 했을 뿐인데 어느새 묵주기도 5단이 끝났고, 나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마치 고등학교 때 성모송을 외우면서 천천히 걸어가다 보면 학교에 도착해 있던 것이랑 비슷했다. 나는 플레이 버튼을 눌렀고, 나는 걷기만 했을 뿐인데 기도가 술술 다 이루어져 있는 그런 것 말이다.
사실 해야 할 일은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 것뿐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기만 하면 그다음 일들은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운동하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것처럼,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기도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운전석에 앉아서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하느님과 가까워지는 빠르고도 손쉬운 방법일 것이다. 하느님과 친해지는 것은 의외로 쉬운 일이다. 일단 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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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느땐 사실 기도가 습관처럼 느껴지지만 그런습관이 내마지막날 두려움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