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호흡지간(呼吸之間)입니다.
부처님께서 어느 날 제자들을 둘러보며
인생무상(人生無常)에 대하여 느낀 점들을 말해보라고 말씀하셨다.
한 제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사뢰기를,
“지난달에 만났던 사람이 오늘에 와서 보이지 않습니다. 무상은 그와 같이…”
그러나 부처님은 자비롭게 미소 지으실 뿐 만족스럽게 칭찬하시지 않으셨다. 다른 제가가 입을 열었다.
“엊그제 본 사람이 오늘에 와서…” 부처님은 이번에도 얼굴에 큰 표정이 없었다.
이때 한 제자가 진지한 얼굴로 말씀드렸다.
“부처님이시여, 산다는 것은 호흡지간(呼吸之間)입니다.
숨 한 번 들이쉬고 못 내쉴 때 바야흐로 이승과 저승이 아니겠습니까?”
부처님은 대단히 만족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부처님은 모두에게 또렷이 말씀하셨다.
“그렇다. 무상이라고 함은 호흡지간(呼吸之間)이다.
그러한 각오로 수행 정진한다면 진실한 수행자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 세상 중생들에게 우리가 살고 있는
사바세계가 무상하다는 것에 관해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곳곳에 누누이 설파하고,
진리를 얻는 진정한 수행 정진의 길로 인도하고 있다.
부처님은 [금강경]에서 세상사를 두고 허깨비 같고, 그림자 같으며,
아침이슬, 물거품, 그리고 번갯불과 같다고 비유하셨다.
그래서 사바세계에 가치 있다는 것들이란
모두 하나같이 깊이 취할 바 못 되는 순간적인 것에 불과하며,
중생은 현혹되어 탐착하고 급기야 욕망의 불길에 자작자수로 죄악을 범하기도 한다고 하셨다.
또한 부처님은 이번에는 원각경에 말씀하시기를
이 세상이 환(幻)인데 그것이 환인 줄 실지(悉知)하면 곧 각자(覺者)가 된다고 하셨다.
부처님은 일찍이 속세의 영화가 덧없음을 아시고 한 나라의 왕위 계승권을 헌신짝 버리듯 하시고,
출가수행의 길로 들어서 온갖 고행 끝에 성도(成道) 하여 중생의 영원한 사표가 되었다.
오늘의 중생들은 부처님이 몸소 보여주고 49년간 가르치신 법어(法語)들을
주마간산격으로 대하지 말고 뼛속으로 받아들이는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중생들은 부처님이 이미 지적하시고,
지극히 염려하셨던 말세의 현상을 시시각각으로 드러내며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먼 행위들로 업을 삼는 실정이다.
여기서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라는 것은
온 세상 사람들이 출가수행의 길로 나서라는 것만은 아니다.
물론 출가수행의 길로 들어서서 득도하여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는 것은 가장 이상적이다.
그러나, 세상사는 보이지 않는 인연의 얽힘에 의해서 형성되고 운영되는 것이기에
반드시 일체중생의 동시 출가는 영원한 소망일 뿐 실현되기는 어렵다.
인연에 의해서, 어떤 사람은 출가하고, 출가를 못 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는 집에 있으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고, 깨닫는 길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다름이 아닌 우리가 어떠한 위치에서 생활하건,
부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자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팔만대장경의 헤아릴 수 없는 경구를 다 소개할 수는 없고,
차제에 간단한 한마디를 주장하겠다.
‘보시(布施)하는 마음을 갖자’
부처님께서는 자비 보시(慈悲 布施)를 즐겨하는 사람은
부처님의 참 제자이며, 법왕자(法王子)라고 하셨다.
신문 사회면을 펼치기가 두려운 오늘의 세상에 너, 나 할 것 없이
자비 보시하는 마음 마음들이 충만할 때 세상은 무상한 가운데 살벌하지는 않을 것이다.
부처님의 극락세계가 따로 어디 있을까? 서로 돕는 마음들이 극락세계를 조성하리라 생각된다.
나는 경(經)에 쓰인 부처님의 말씀 가운데 중생들을 경계하는 구절을 소개하며 끝을 맺는다.
부차 무변신보살 약유중생… (復次 無邊身菩薩 若有衆生…)
만일 어떤 중생이 부처님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비방하기를 일삼는다면
이 사람은 과보(果報)로 몸을 받을 때 병객(病客)으로 살게 되고,
목숨이 마치는 날에는 무간지옥에 떨어져 위에서 붙은 불이 아래까지 사무치고
아래 불은 위로 솟아오르는 고통으로 만사만생(萬死萬生) 하리라.
- 태허(太虛) 스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