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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 씨가 산을 질주하고 있다. 김지원 씨 제공.사이클을 10년 넘게 탄 김 씨는 트레일러닝에 입문하자마자 두각을 나타냈다. 지난해 4월 성남누비길 트레일러닝 대회 40km에서 5위(6시간12분), 6월 거제 100K 50km에서 4위(8시간5분), 9월 금수산 트레일러닝 21km에서 3위(3시간52분)를 차지하는 등 대부분 출전 대회에서 입상했다. 그는 “사이클을 10년 넘게 타다보니 완전 바닥부터 운동한 건 아니다. 훈련법이나 사용하는 근육이 미묘하게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하체를 쓴다는 점은 똑같다”고 했다.
학창 시절 달리기를 잘했다. 초중고를 다닐 때 계주가 열리면 선수로 나갔다. 반에서 1~3등 안에는 꼭 들었다. 달리는 본능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산을 달린다는 게 이렇게 재밌는지 몰랐어요. 무엇보다 저 자신에 집중할 수 있어요. 자연에서 달리면 그 속에서 한없이 자유로워진 저 자신을 느낄 수 있어요. 살면서 느끼는 모든 걱정도 사라져요. 무념무상, 현생으로부터 자유를 찾죠. 또 사이클은 속도가 빠르다 보니까 풍경을 즐기기 쉽지 않은데 트레일러닝은 산, 나무, 풀, 바위 등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 좋아요.”
김지원 씨가 사이클을 타고 질주하고 있다. 그는 10년 넘게 사이클을 탔고 각종 대회에도 출전했다. 김지원 씨 제공.김 씨는 원래 사이클마니아였다. 그는 “10여 년 전이었다. 미니벨로를 타고 한강에 나갔는데 사람들이 핸들이 밑으로 굽어진 자전거를 타고 저를 획 지나쳐 갔다. ‘어 뭔데 이렇게 빠르지’라는 생각에 알아봤더니 사이클이더라. 그래서 바로 사서 타고 다녔다”고 했다. 김 씨는 주 3회 이상 사이클을 탔고 주말엔 100km 이상 질주했다.
대회도 수십 차례 출전했다. 100km 내외의 장거리 대회인 그란폰도부터 10km 오르막을 타는 힐크라임 대회 등 가리지 않았다. 그는 “체중이 가벼워서 다운힐이나 평지 주행은 조금 불리하지만, 오르막은 강한 편”이라고 했다. 그리고 한 사이클대회에서 우승해 받은 상품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거리 사이클대회 그란폰도에 출전할 기회를 잡았다. 2017년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마라토나 돌로미티 138km를 완주했다. 한국 여성 최초 완주였다. 그는 2022년까지 이 대회에 두 번 더 출전했다.
김지원 씨가 사이클을 타고 있다. 김지원 씨 제공.“한국에선 유사한 환경이 없어서 훈련하기가 어려워요. 유럽은 평지가 없이 무조건 오르막 아니면 내리막이고, 업다운이 거듭되지 않고 매우 긴 오르막과 또 마찬가지로 긴 내리막이 번갈아 나타나거든요. 해발 2000~3000m 고지대에서 오르막이 10km 이상이에요. 상상이 되세요? 마라토나 돌로미티 대회는 상승고도만 4300m입니다. 차로 가도 힘들어요. 유럽에서 3개월 있으면서 알프스산맥 등을 사이클을 타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왜 유럽에서 힘들어 하는지를 알게 됐죠. 그런 곳에서 사이클 타는 사람들은 정말 달랐어요.”
2019년 5월엔 철인3종(트라이애슬론) 고성 아이언맨 70.3에 출전하기도 했다. 철인코스(수영 3.8km, 사이클 180km, 마라톤 42.195km)의 하프(수영 1.9km, 사이클 90km, 마라톤 21.0975km)를 마일 단위로 표현한 하프 아이언맨 대회다. 김 씨는 5시간57분에 아이언맨 70.3을 완주했다. 그는 “수영은 이미 배웠고 사이클을 타다 보니 철인3종이 눈에 들어와 달렸다”고 했다.
김지원 씨가 2019년 아이언맨 70.3에 출전해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김지원 씨 제공.김 씨는 아이언맨 70.3을 달리고 두 달쯤 지나 큰 사고를 당했다. 대회 출전 준비하며 사이클 타다 사고를 당한 것이다. 그는 “앞니도 깨지고 얼굴이 거의 망가졌었다. 가족들이 걱정을 많이 했다. 그래서 대회 출전을 자제하며 즐기면서 타고 있다”고 했다. 산을 달리면서도 사이클을 타긴 하지만 이제 트레일러닝이 최애 운동이 됐다.
“이런 것 있죠. ‘산 100km를 완주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때 직접 해보면 되잖아요. 고통을 참으면 더 큰 기쁨이 찾아와요. 완주하면 자신감도 치솟고요. 고통은 몇 시간이지만 완주의 기쁨은 몇 년, 혹은 평생에 걸쳐 유지할 수 있죠.”
김 씨는 주중엔 서울 도림천 등을 5~10km 달리고, 주말엔 주로 관악산 둘레길을 질주한다. 그는 “관악산 둘레길은 32km 정도 되는데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게 큰 장점”이라고 했다. 대회를 앞두고는 어떻게 훈련할까?
김지원 씨가 한 트레일러닝대회체 출전해 달리고 있다. 김지원 씨 제공.“페이스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몸이 너무 힘들지 않도록 저강도로 운동합니다. 50km 대회라면 30km 정도를 완주하는 걸 목표로 뛰어요. 무리하지 않고 꾸준히 가는 것에 주안점을 둬요. 그러다 대회가 3~4일 남으면 아예 푹 쉽니다. 스트레칭 정도만 하고 카보로딩이라고 해서 탄수화물을 많이 먹어 계속 근육에 저장하는 작업을 하죠. 일종의 에너지원 보충이죠. 그리고 대회 당일에는 페이스를 확 올려서 뜁니다. 그리고 버티는 거죠.”
내리막을 달릴 때 위험하진 않을까?
“위험하니 조심히 달려야죠. 발을 빨리빨리 떼고 보폭을 짧게 해서 체중을 양 무릎에 왔다갔다 빨리 옮겨주는 게 가장 좋아요. 한 발에 오래 체중을 실으면 부하를 주는 시간이 길어져서 무릎 등 관절에 무리를 줄 수 있어요. 잔 발로 빨리 뛰어 내려가면 체중이 무릎에 주는 부하를 분산시킬 수 있어요.”
김지원 씨가 서울 도림천 근처 오솔길을 달리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트레일러닝 대회에 출전하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도착 직전’이라고 했다. 그는 “가령 100km 코스라면 10km 정도 남았을 때가 가장 기쁘고 설렌다”고 했다. 실제 골인보다 골인이 눈앞에 확실히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이 더 가슴이 벅차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또 가장 조심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감정을 억지로 억누른다. 마음은 마구 들떠 있지만 그걸 그대로 놔둬서 흥분하면 다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4월부터는 산악안전 봉사조직인 ‘몬츄라 마운틴 패트롤’로 활동한다. 탐방객 안전사고 예방과 생태 환경 보전을 위한 봉사활동이다. “산에 가보면 정말 쓰레기가 많아요. 산행 등 아웃도어 활동 시,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며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LNT(Leave No Trace)를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야 좋아하는 산을 오래 다닐 수 있죠.”
김지원 씨가 서울 도림천에서 운동화 끈을 묶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