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몇 년 전 병원 입원실에서 였다. 나는 강원도 동강에 가서 1박 2일 레프팅을 너무 격렬하게 한 탓으로 무릎이 파손되었다. 병명은 연골파손. 의사가 나를 비웃었다. 아니, 이 연세에 스포츠선수들이나 하는 수술을 하세요?
동강에 가서 무릎동강이 난 내가 우거지상을 하고 입원실로 들어갔다. 방안은 마치 애버랜드 축제장에 온 것처럼 시끌벅적 화사사~~ 북적거렸다. 일흔 넘은 할머니들이 열명은 넘게 수다파티를 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내가 인사를 하자 모두들 손을 흔들며 반갑게 맞았다. 조금 시끄럽지? 미안해. 내 조직이 이렇게 많아. 열명, 한 타스야! 방의 주인은 일흔 셋의 청춘이었다.
별명도 많았다. 6백만 불 할머니<틀니, 무릎 인공관절, 디스크 수술 등으로 돈이 많이 들어서> 학교종이 땡땡땡<아들 손주 며느리에게 걸핏하면 빨리 모여라! 총동원령을 내려서> 왈가닥 루시<상큼발랄하기 그지없어서> 줄반장<초등학교 친구들의 대장이라서>....등등
애들은 내가 세상을 떠나도 아마 곧바로 따라올 걸? 그러자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그야 말해서 뭐해? 우리는 너 없으면 못 살아....심심해서 어찌 사누? 지옥이라도 함께 가야지!
저녁이 되자 아들 며느리, 손주들이 줄줄이 찾아왔다. 신기한 것은 아들, 며느리, 손주들이 서로 밤을 새우겠다고 희망하는 것이었다. 보통사람들은 형식적으로 병문안 왔다가 대충 보고 가버리는 것이 상식인데? 정말 흥미로운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대학생 손주에게 살짝 물어봤다. 아니, 병원에서 밤을 지내려면 불편할텐데 왜들 서로 있겠다고 경쟁이예요? 우리 할머니랑 있으면 무지 재밌거든요! 아하? 재미가 그 비밀열쇠였구나?
서로 밤을 새우겠다는 가족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왈가닥 루시가 시원하게 교통정리를 했다. 그러지들 말고 제비를 뽑아. 그러면 불평불만도 없고 좀 좋아? 그게 바로 민주주의 라는 거야. 하하^^*
그녀는 평소에도 뻑^ 하면 이벤트를 기획한다고 한다. 애들아, 모여라. 오늘은 날씨가 죽인다. 내가 한 턱 쏠 테니까! 오늘은 내 기분이 꿀꿀하니 모여서 노래방이나 가자! 애들아, 오늘 신문 봤지? 일본 지진으로 다 죽었는데 글쎄 두 살 아이가 기적적으로 살아났지 뭐야. 우리도 축하모임을 갖자꾸나. 애들아, 오늘 뉴스 보니까 암으로 투병중인 환자가 에베레스트 정상에 깃발을 꽂았대. 우리도 기분인데 모여서 한 잔하자! 심지어는 첫사랑 할아버지가 죽었다고 기념으로 온 가족이 모여 추모기도회를 갖기도 했으니 말해서 무엇하랴?
그리고 그녀의 방안에는 한 쪽 벽에 과녁 표를 붙여놓았다. 손주들에게 심심하면 화살을 쏘라고 장난을 친다. 뺑뺑이 돌리는 과녁엔 선물목록표가 붙어있다. 화제의 신간, 아이스크림, 초콜릿, 곰 인형, 용돈, 노래방, 영화티켓, 뮤지컬관람권.... 아무렇게나 맞춰도 선물은 받게 되어 있다. 그러니 인기스타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뜨개질 솜씨도 탁월해서 입은 입대로 손은 손대로 부지런히 따로 논다고 한다. 친구들하고 수다파티를 하면서도 손은 열심히 손주들의 장갑, 며느리의 스웨터, 아들의 조끼를 짜서 선물하는 게 취미라고 한다. 손뜨개질 하면 치매도 안 걸리고 좋대. 그리고 내가 짜주면 애들이 을마나 좋아하는데!
호기심의 천재인 내가 그녀에게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항상 웃고 사시는 거 보면 슬픈 일은 하나도 없는 거죠? 그녀가 어이없다는 듯 콧방귀를 날렸다. 이거 봐. 이 세상에 허구헌날 행복한 사람이 어딨어? 행복&불행은 일란성 쌍둥이야. 항상 붙어 다니는 ‘세트상품’이라구. 아무리 행복한 사람도 슬픈 일이 있기 마련이고 아무리 불행한 사람도 행복한 일은 있기 마련이지. 어느 쪽을 바라보고 사느냐....그것이 행불행을 결정하는 거야.
나도 슬픈 거 한번 써볼까? 아마 2박3일쯤 써야 끝날걸? 일단 내 몸에 이물질들이 좀 많아? 이빨도 다 남의 것이고 무릎 속에도 프라스틱이 5개나 들어 있다구! 몸이 제대로 움직여주겠어? 그렇다고 내가 징징 짜 봐... 짠다고 고장 난 몸이 고쳐져? 누가 이쁘다고 해? 아니잖아? 그럴 바엔 그냥 웃고 사는 게 남는 장사지... 웃고 살면 인생 대박이지만 징징 짜면 인생 쪽박이야! 딱 한번 뿐인 인생. 그나마 엄청 짧잖아? 그래서 어느 날 ‘인생정책’을 수립했지. 웃고 살자! 그랬더니 간단명료해 졌어.
우와....대박과 쪽박의 차이가 그렇게나 간단하군요? 그럼, 뭐든지 생각하기 나름이야. 좋아서 웃고 슬프면 울고!.....그렇게 쉬운 짓을 누가 못해? 슬퍼도 웃을 줄 알아야 정말 행복할 ‘자격’이 있는 거지! 사람관계도 그래, 이쁜 사람 이뻐하고 미운 사람 미워하는 거 누가 못 해? 미운 사람을 이뻐할 줄 알아야 ‘드라마’가 생기는 거지! 안 그래?
우와.....멋진 왈가닥 루시! 그런 말을 할 때 그녀는 그냥 뼈와 살로만 된 사람이 아니었다. 뼈속에 빛나는 ‘호르라기’가 하나 있어서 자신의 감정을 멋지게 교통정리해주는 것 같다.
나는 그녀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고 외쳤다. 누구나 줄반장 되는 거 아니군요! 누구나 인기스타 되는 거 아니군요! 자기 집 신발장 위에는 선물함을 놔두고 무조건 ‘방문 기념품’을 준다는 왈가닥 루시. 나는 지금도 그녀를 생각하면 기분이 화사사~~해진다. | |
첫댓글 내글이 아니고 펌글이야...,모두들 이렇게 살아보자 이번 한주라도...,그럼 행복해 질래나...
이글 읽으니..대박 난 내 인생을 알 수 가 있네...그래 대박인생..즐겁게..아자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