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은 길
/프로스트
두 개의 길이 노란 숲에서 갈라져 있다.
둘 다 갈 수 없어 섭섭했다.
하나만을 가야 했기에 한참을 서 있었다.
나는 볼 수 있는 데까지 내려다보았다.
길이 덤불로 굽어져 가는 곳까지
나는 똑같이 좋아 보이는 두 개의 길 가운데 하나를 택했다.
그 길이 더 나은 선택이라 여겼다.
풀이 많고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 길로 간다 해도
별다른 흔적이 남지 않을 것이었다.
그날 아침, 내 앞에는 두 개의 길이 있었다.
낙엽엔 발자국이 찍혀 있지 않았다.
아, 나는 돌아올 다른 날을 위해 첫 번째 길을 남겨 두었다.
그러나 그 길이 또 다른 길로 이어져 있었기에
내가 돌아올 것임을 짐작하고 있었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
나는 한숨 지으며 말하리라.
“두 개의 길이 하나의 숲에서 갈라져 있었지.
나는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은 길을 택했지.
그리고 그것이 내 인생을 바꿨지.”
-덧붙임
굶주린 당나귀가 있었다.
호운이다. 당나귀는 건초산을 발견했다.
그러나, 불행이다. 당나귀는 동시에
두 곳의 건초산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것이 왜 불행일까? 건초산은
같이 동질 동량이었기 때문이다.
양쪽 다 맛있게 보이고,
양도 차이도 거리도 같았다.
때문에, 어느 쪽을 먹을까.
당나귀는 미혹하고 있었다.
좌로 가다보니, 우에 있는 것이
더 맛있어 보인다.
그래서 우로 향하면, 이번에는
좌쪽에 있는 것이 맛있게 보인다.
가면서 돌아오면서 하는 가운데,
당나귀는 두 곳의 건초산 중간에서
아사하고 말았다고 하는 이야기다.
이것은 14세기 프랑스의
스콜라철학자의 뷔리당Jean Buridan이
만들어낸 이야기로, ‘뷔리당의 당나귀’
라고 불리우고 있는 것이다.
갈등은, 양쪽 50대50일 때 생긴다.
만일, 49대51이라면 갈등은 안 생긴다.
그때, 필요한 것이, 줄리아 갈레프(Julia Galef, 작가)
의 이야기가 도움이 된다.
“당신이 지금 직면한 상황과 이용가능한 옵션,
조율과 타협이 가능한 것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능력이
당신의 판단력을 향상시킨다.
인생의 고비 때마다 누구에게나
보편 타당하게 적용되는 조언에
귀 기울이는 것은 시간 낭비다.
자신의 루틴routine을 밀고 나가되
개선점이 무엇일지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우리를 후회 없는 삶으로 이끈다.”
나는 불교인이다.
불교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무문관』 제5칙에 있는 <香嚴上樹>
라고 하는 공안이다.
香嚴智閑(?-898)은 당대의 선승이다.
그 향엄화상이 이런 문제를 내었다.
어떤 사람이 나무에 오른다.
그리고 그 사람은 입으로 가지를 물고
두 손과 두 발은 나뭇가지를 의지하고 있지 않다.
곧, 입만으로 나뭇가지에
매달리고 있는 상태이다.
그곳에 나무 아래에 사람이 찾아온다.
나무에 매달리고 있는 사람에게 묻는다.
“무엇이 祖師西來意?”냐고.
답은 나와있지 않다.
그러나 불교인이라면,
‘자등명 법등명’의
가르침을 알 것이다.
곧, 자기의 판단으로 자기가 결정하는 것이다.
그 결정은, 후회없는 단호한 이런 마음가짐으로.
“한 노파가 묻는다.
나는 오장五障을 가진 여성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오장에서
벗어날 수가 있겠습니까?”
조주 선사 답하신다.
“모든 사람이 천상에 태어나기를 원하고,
노파는 영원히 고해苦海에 빠지는 것을 원하라”
『조주록趙州錄』
佛道는 아주 넓은 세계다.
그곳에 들어가는 문은 없다.
곧,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언제 어디에서도
자유로이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요는, 들어가려고 하는 결의만 있으면 된다.
그 결의는, 어느 것도 부처님이
결정해 주신다는 믿음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상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