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탐욕' '시장의 실패' '시장의 권력'이라는 표현은 시장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시장은 그렇지 않기에 이는 부당한 의인화(擬人化)에 해당한다. '
시장의 실패' 역시 잘못된 의인화다. 시장이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이 실패하는 것이다.
- 조동근
공포정치의 대명사 로베스피에르는 모든 어린이가 우유를 마실 권리가 있다고 천명하며
우유가격을 반으로 내릴 것을 지시했다. 그는 이처럼 프랑스 시민혁명 이후 민심을 달래기 위한
방편으로 생필품의 최고가격을 제한하는 정책을 썼다. 가격을 올려서 받는 이를 가려내 처벌한
것이다. 로베스피에르의 이 정책은 시민들에게서 큰 환영을 받았다.
그런데 우윳값이 잠시 떨어지는가 싶더니 규제 이전보다 오히려 월등하게 올라갔다.
낙농업자들이 원가 이하로 판매하라는 압박을 견디다 못해 파산하거나 젖소 사육을 포기해
시장에 우유공급이 터무니없이 줄었기 때문이다.
낙농업자들이 젖소를 키우지 못하는 이유가 비싼 건촛값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로베스피에르는 이 역시 규제에 나섰다. 그러자 이번에는 건초 생산자들이 건초를 다 태워버렸다.
결국 우유가격은 규제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게 치솟았고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비싼
식품이 되었다. 본래 모든 어린이를 위해 만든 정책이었건만 누구도 우유를 마실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다.
조동근 교수가 즐겨 사용하는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는 문구는 짧지만 간결하게 정부가
숱하게 저지르는 반시장적 정책들에 일침을 가하고 있다. 로베스피에르는 가격규제 정책을
어기는 상인은 단두대에서 극형을 처했지만 끝내 우윳값을 잡지 못했다. 공포정치로도 시장의
힘을 거스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수요와 공급에 의해 이루어지는 시장가격을 왜곡시키는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는 오랜 역사가 증명한 교훈이다.
안타깝게도 정부의 가격규제 정책은 로베스피에르가 살았던 1700년대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반복되고 있다. 정부는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부동산 가격을 규제했고 근로자의 임금이
낮다고 최저임금제를 도입했다. 또 대학등록금이 높다고 반값등록금을 거론하는가 하면 서민들의
통신비 부담이 높다는 이유로 휴대폰 가격까지 규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정책들은 시장의
혼란을 불러오고 거래를 마비시켰다.
정부는 의도한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하더라도 시장원리에 역행하는 정책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은 서민의 인기를 필요로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기를 위해 시장원리를 무시하고
생필품 규제 정책을 꺼내 들었던 로베스피에르는 결국 자신의 손으로 만든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가 처형당하던 날 파리의 주부들은 거리에서 이렇게 외쳤다. “더러운 최고가격이 저기
끌려가고 있다." 어디에도 시장을 이길 정부는 없다.
- 살림 간, ‘내 마음 속 자유주의 한 구절’에서, 곽은경 | 자유경제원 시장경제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