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단 강물이 언덕에까지 넘치는 시기에 진정 그 강물이 한 곳에 쌓이는 일은 말도 안 되어 보이고, 현실적으로는 완전 불가능이 아닐 수 없는 일이라 할 수 있으며, 사실 마치 만화나 공상에서만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아래 본문에서 잘 알 수 있는 것이듯이 역사적인 실제 사건이었고, 실상 우리 인생들의 입장에서는 불가능인 것이고 말이 안 되어 보이는 일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하나님께 있어서까지도 그럴 수는 없는 것으로 실제로 오직 한 분 하나님께서는 가능하신 것이고, 생생히 행하신 것이며, 정말 그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이나 우리 인생들과 같은 수준 정도이실 수가 없는 분인 것이고, 결코 세상적 한계나 불가능에 갇히는 분이실 수도 없는 것입니다..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정말 누리고 경험할 수 있게 하신 역사인 것으로..
잘 통찰해 보면 무에서 유로의 천지창조에 있어서도, 홍해 바다가 갈라지게 된 일에 있어서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 대략 200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신칭의, 곧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에 이르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되며 정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고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됨에 있어서도, 더 나아가 세상 끝 날에 신령한 몸으로 부활케 됨에 있어서도. 뿐만 아니라 오늘 이 시간 나에 있어서의 가장 힘들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이 실질적으로 응답 받고 해결되거나 기적 같이 역전케 되는 실제에 있어서도 모두 같은 이치와 원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에 있어 근원적으로는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일 뿐 아니라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닐 수 없는 것으로..
따지고 보면 그 성령님으로 인한 직접적, 현실적인 실제와 경험 이전에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전부터 계획, 약속, 준비,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경험케 하시며 성취해 나가시는 일들 중 극히 일부가 아닐 수 없는 것이고, 게다가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인생들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의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일들에 포함되는 역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그와 같은 역사들, 응답들, 이적들 등은, 곧 근원적으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으로 인한 모든 일들마다 아무나에게, 아무렇게나 그렇게까지 생생하고 강렬하며 기이하게 나타나고 경험케 될 수는 없다는 것으로 참으로 그에 있어서의 모든 전제와 근거들, 기준과 관건들은 말씀,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들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상 그 이유는 조금도 복잡할 수 없는 것으로 그러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는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분이기 때문인 것인데..
좀 더 구체적이고 정확하게는 그와 같은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실제와 경험들, 더 나아가 생생함과 강렬함들에 있어서 먼저 아래 본문의 여호수아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시해서 구약의 모든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며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는 것일 뿐 아니라 죄악들과 싸우고 범한 죄악들에서는 자복하고 돌이키며 오직 말씀을 갈망하고 가까이하며 살아 있는 믿음이 될 수 있도록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든지 또는 오늘날 우리들과 같이 오신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고 있든지 간에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되고, 직접적, 경험적으로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하늘의 힘과 실제로 인해 정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본질적으로는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되는 것이 모든 우선과 전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이고..
더 나아가 삶의 자리와 인류 역사의 현장들 속에서도 죄악과 세속과 정욕들 등으로 병들고 죽은듯한 신앙이 아닌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를 덧입어 죄악들과 싸우고 혹 범하게 된 죄악들에서는 최대한 빨리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다른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우선으로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결단하고 실천하며 몸부림치는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이 되는 것이 전적인 기준과 관건, 방법과 통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은 오늘날 이 시대의 우리들에 있어서도, 특히 지금 이 시간 바로 내 안의 모든 문제와 소원과 기도 제목들 등에 있어서야 말로 본질적으로는 다른 그 무엇보다 얼마나 말씀의 신앙이 될 수 있고, 어느 정도의 치열하고 뜨거운 말씀의 열정이 될 수 있느냐가 오늘 본문의 여호수아와 하나님의 백성들과 같이 요단 강물이 멈춰지게 되는 역사와 똑같지는 않더라도 그와 유사한 크고 작은 하늘의 힘과 응답들, 이적과 역전들 등에 있어 생각 이상으로, 아니 상상 이상으로 깊이 관계가 있고 전적으로 직결되지 않을 수 없음을 내포하는 것이고 증거하는 것이며, 한편으로는 약속해 주시는 것이고 예비되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여호수아3:15~16)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3년 11월 9일(목)1/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