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만장: 명청화가의 영 원숭이 미술품 서화 朱万章:明清画家笔下的灵猴
출처 : 아창아트넷 소스: EK 이페어케이 플러스
원숭이는 중국화에서 주수과에 속한다.명청(明淸)에서 원숭이를 그리기로 유명한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현존하는 작품에 관한 한, 명청 화가 중에는 원숭이 그림의 전승자가 있는데, 대부분이 직업 화가이거나 산실자이며, 소수의 문인 화가만이 원숭이 그림의 창작에 참여했습니다.'원숭이'는 '후'와 음이 잘 맞기 때문에 명청 원숭이 그림에는 '벌'과 '원숭이'를 합쳐 '봉후'를 뜻하는 '봉후'가 많이 그려져 있고, '원숭이'를 '말'의 등에 그려 '즉시 봉후'라는 뜻도 있다.어떤 표현이든 원숭이 그림은 대부분 봉후배상과 관련이 있으며, 전통 선비의 아름다운 기대를 담고 있으며, 상서로운 의미의 중요한 소재이다.명나라와 청나라의 원숭이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림 1, 명 선종 《원원도》, 127.7x62.3cm, 타이베이 고궁박물관 소장图1、明宣宗《戏猿图》,127.7x62.3厘米,台北故宫博物院藏
명 선종(宣宗, 1399-1435) 주첨기 明宣宗는 띠 그림 창작에 열심이었고,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많은 작품 중 양, 쥐, 원숭이, 개… 등 명청 화가들 중에서 띠를 가장 많이 그린 화가였다.비록 일부 논자들은 그의 작품에 대필작품이 적지 않다고 여겼지만, 현재 이름을 따서 세상에 남아 있는 작품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많다. 예를 들어, 그림마다 비교적 섬세하고, 특히 주수의 구획 방면에 세밀하여 전문 화가에 비할 바가 없으며, 작품에는 "선덕 xx년, 어필 희사" 등의 제목과 "광운의 보배" 주문대방(朱文大方)이 찍혀 있고, 그 작품은 대부분 명청 궁정 감장(明淸宮鉴藏)을 거쳐 여러모로 감식하고 옥새를 감장하였다.유인원도가 그렇다.이 그림에 그려진 세 마리의 원숭이는 나무와 바위 사이를 뛰어다니며 원숭이 세 식구의 집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천륜의 즐거움을 표현합니다.저자는 '선덕정미어필희작'에 서명하고 도장주문방인은 '광운지보'와 '어부도서'를 인쇄한다.선덕정미(宣德丁未)는 1427년이다.이 그림은 청궁감장을 거쳐 '건륭어람지보', '가경어람지보' 등의 궁중감장의 인장과 함께 '흠사신', '신적' 등의 인장이 있다.이 그림은 일찍이 《석거보급초편(어서방)》에 기록되었고, 현재 타이베이 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질서정연하게 전해지는 명선종의 훌륭한 작품이다.
그림 2, 명나라 《행여도》, 견본 배치색, 105x44.5cm, 스웨덴 동아시아 박물관 소장图2、明人《行旅图》,绢本设色,105x44.5厘米,瑞典东亚博物馆藏
명나라 선종과 대략 동시대의 '절파'는 명나라의 중요한 회화 유파로, 그 대표적인 화가는 다이진(进進)·오웨이(吳偉) 등이다.행여도(스웨덴 동아시아박물관장)는 서장은 없지만 화풍으로 보면 다이진 与戴进 (13881462)에 가깝다.소묘의 한 고사가 지팡이를 짚고 산속의 작은 다리를 걷고 서동이 거문고를 들고 그 뒤를 따랐다.이러한 구도와 소재는 명나라의 산수화에서 매우 흔하며, 거문고를 동반한 친구 방문, 계산 여행 등의 대표적인 관용 소재이다.달라진 점은 늙은 소나무에 원숭이 두 마리가 나타나 한쪽 팔을 나뭇가지에 매달아 그네를 타는 모습을 하고, 한쪽은 나무 줄기에 엎드려 서식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비록 배경일 뿐이지만 원숭이의 장난기는 이미 그림 속에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그림의 산석은 대부분 도끼로 쪼개져 텄는데, 이는 전형적인 절파 화풍이다.
그림 3, 명인·《나한백원도》, 견본설색, 128x75.2cm, 프릴과 사이클레 미술관 소장图3、明人·《罗汉白猿图》,绢本设色,128x75.2厘米,弗利尔和赛克勒美术馆藏
행여도보다 조금 늦은 나한백원도(프릴과 사이클레 미술관 소장)도 실명된 그림이다.화풍으로 볼 때 시대는 명나라 후기이거나 청나라 전기에 가깝다.그려진 나한은 포단에 앉아 오른손에는 수염을, 왼손에는 꽃을, 흰 유인원 한 마리가 고개를 들어 나한을 주시하고 있다.나한의 온화한 용모와 흰 유인원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그림 속에 생생하게 표현됐다.인물의 옷자락은 만명 때의 진홍수陈洪绶(1599-1652)와 비슷하지만, 그 부색과 격조는 진홍수와는 판이하다.
그림 4, 청·장문도 《쌍원숭이도》, 지본묵필, 119.5×45cm, 사천노주박물관 소장.图4、清·张问陶《双猴图》,纸本墨笔,119.5× 45厘米,四川泸州博物馆藏
청대에 이르러 문인화가의 글씨 아래 원숭이의 모습이 잇따라 등장했고 원숭이는 배경에서 그림 속 주인공으로 향했다.이는 장문타오의 '쌍원숭이도'(사천루주박물관장), 왕윈의 '송원숭이도'(광둥성박물관장), 퀴렴의 '타마린'(홍콩미술관장), 니톈의 '송원숭이도'(사천미술학원장), 청장의 '원숭이도'(광둥성박물관장), '원숭이설경도'(광둥성박물관장), 장목의 '원숭이희도'(광둥성박물관장)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장문도 张问陶(1764-1814)는 시인과 서화가의 이중적 지위를 겸비했다.자는 중야, 자는 유문(门門), 호는 선산(船山), 자칭 '노선(老船)', 원숭이를 잘 그려 '촉산노원(山山老",)', 사천수녕인(四川宁寧人), 청(淸) 건륭(隆五十) 55년(1790) 진사(進士)로 한림원 검토(道林院、), 강남도 감찰어사(江南道監等御史), 이부랑중(部部郞中), 산동래주지부(山東州州知府) 등을 거쳐 만년에 벼슬을 그만두고 소주호구산시초)에회화 방면에서 산수, 화조, 인물 겸공은 청나라 중기 화단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그 '쌍원숭이도'는 수묵의 뜻을 대표한다.이 그림에 그려진 원숭이 두 마리는 나무줄기 위에 앉아 있고, 한 마리는 귀를 잡고 뺨을 긁으며, 한 마리는 생각에 잠겨 있다.작가는 순수하게 수묵으로 물들이고, 창창한 고목과 산전수전 다 겪은 원숭이를 하나로 묶거나, 저자의 자태를 보여주거나, 한때는 바다가 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일종의 인생 한탄을 전한다.
거렴居廉 (1828~1904)은 만청(晩淸)시대 영남의 화조(花鳥) 화가로 제자인 고검부(高父父) 진수인(陳樹人)이 20세기 화단에 이름을 날린 영남화파(",南畵派)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자는 사강(士,), 호는 고천(古、), 격산(山山)나무, 격산(山山)나무 등 광둥(廣東) 판위(禺人) 사람으로 화조(花鳥)·초충(草,)·인물·산수(山水)를 잘 그리며 종형거소(兄形巢)(1811~1865)와 함께 '이거'로 불리며 청나라 말기 영남 화단에 큰 영향을 미쳤다.그의 제자는 영남 전역에 퍼져 있었고, 청나라 말기 광둥성에서 미술 교육에 종사한 사람들은 대부분 거씨 문하에서 태어나 한때 거파(派派)로 불렸다.사생에 능한 그의 그림은 가루와 가루의 충돌법으로 유명하며, 그 그림은 신선하고 자연스럽고 생동감이 있으며, '타마린'이 대표작이다.이 그림에는 작가의 문장이 없고 도장 백문에 '거렴인신'과 '고천'만 찍혀 있다.그려진 타마린 한 마리가 나무 위에 앉아 있는데, 그의 쓸쓸하고 무력한 성정이 종이에 선명하다.그림에는 거렴의 제자 우드가이(1864-1928)라는 장제가 있다: "병술인의 날, 여와 거격산, 양첨모, 하일산, 소백요의 여러 노인들이 범주화태아(舟舟花,)를 만나다.취림원까지. 이 짐승 같은 원숭이는 높이가 6인치, 무게가 10냥 이하, 머리가 둥글고 눈이 크며 털이 황금빛이고 솜처럼 촘촘하며 인간 불꽃을 먹지 않습니다.가장 기이한 것은 먹이를 주면 입에서 두 혀가 동시에 나오며, 대중이 본 적이 없어 그 이름을 들 수 없다.산을 사이에 둔 노인이 돌아가려고 수십 용지에 이르니 자질이 풍부하다.나중에 알게 된 사람은 페르시아에서 생산된 타마린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름이 붙여졌습니다.이 액자는 제멋대로의 글씨인데, 생동감이 넘치고 생동감이 넘친다.준민의 둘째 형이 화자(畵,)를 얻어 질여(質,)를 남겼는데, 문득 어르신들의 옛 여행의 감촉을 접하니, 오늘에 이르러 23년이 되었다.시문이 있기 때문에 날짜를 기억하십시오.무신 9월, 덕이식.페르시아는 육식성 두구라는 네 글자를 빠뜨렸고, 주백문에는 '우드가이'와 주문방에는 '일서'가 인쇄되어 있다.이를 통해 이 그림이 사실 사생작임을 알 수 있다.우드는 "멋대로의 글씨로 생동감이 넘치고 생동감이 넘친다"고 평했다.
예전倪田(1855~1919)은 만청시대 해상화파 화가로 초명은 보전(寶田), 자는 묵선(畊,), 별서묵선부(別署,号父), 호는 묵도인(、道人), 묵옹(,号), 일명은 벽월선주(盦月主主), 강소강도인(江人都人)으로 상하이에 거주하며 인물 및 주수(,尤)를 잘 그리고 특히 말을 잘 그렸으며, 송원숭이도(松图圖)는 그 대표적인 작품은 아니지만 대략적인 화풍을 알 수 있다.그려진 네 마리의 원숭이는 소나무에 무리를 지어 살거나, 고개를 들어 달을 바라보거나, 고개를 숙이고, 길게 울부짖으며 노래를 부르거나, 조용히 앉아 생각에 잠기며, 각기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예전은 '해상화파' 화가의 아속공상, 문인화에서 세속화로 탈바꿈한 화풍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저자 서항왈, "광서을미유월지길, 한강묵경예전은 상해에서 썼다", "광서을미"는 1895년으로 당시 저자는 41세로 그 성년에 힘썼다.
청나라 원숭이 그림에도 실명작인 '영원숭이 축수도'(미국 프릴과 사이클레 미술관 소장)와 '나한원양도'(미국 프릴과 사이클레 미술관 소장)가 그 예다.영원숭이 축수도'에 그려진 흰 유인원은 복숭아, 국화, 솔잎을 어깨에 메고 영지를 들고 사람처럼 걸어갑니다.원숭이의 형태는 거의 사람과 다름없다.수도와 영지는 모두 장수를 축하하는 상서로운 물건이니, 이 그림의 의도는 장수를 축하하는 데 있다.흰원숭이의 모습도 100년 된 원숭이처럼 늙고 늠름합니다.이를 통해 축수(寿壽)의 뜻을 밝히는 것은 기발한 일이다.산돌, 구름, 폭포 등 경치를 보여주는 그림으로 청나라 중후반 양식이 그려져 있다.나한원양도'는 원숭이와 염소가 나한에게 꽃을 바치고, '양'은 길함을, '원숭이'는 '봉후'를 그린 그림으로 상서로운 의미를 지닌 인물화다.나한의 화법은 송원 이래의 나한도의 패러다임을 계승하고 있으며, 경치를 비추는 소나무는 청대 중후반의 화풍이다.이 그림에는 저자의 도장이 찍혀 있지 않으며, 도배변의 오른쪽 하단에는 주백문상간인 '오영광'과 주문방인 '석운산인'이 있다.두 인장은 청나라 감장가 오영광(吳榮光)이 자주 사용하였다.오영광(吳榮光, 1773~1843)의 자는 백영(白榮), 일자전원(一字殿,), 호는 하옥(河屋), 가암(可,), 만호(晩號)는 석운산(石雲山)인, 별서배경노인(別署东南經老人), 광동남해인(廣東海人), 청가경(淸慶) 4년(1799) 진사(進士)를 거쳐 어사(御史), 호남순무 겸 호광총독(湖廣總督), 복건포정사(福建藏政使) 등을 역임했으며, 서화(書畵이를 통해 이 그림이 질서정연하게 전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명·청 화백이 그린 영원숭이는 그 이상이다.필자는 우화의 여러 작품에서 명청 화백이 원숭이를 그린 대략적인 풍모를 엿볼 수 있을 뿐이다.'원숭이'는 민속 문화에서 나타나는 상서로운 의미 때문에 명청 회화에서 사생 외에도 그려진 영원숭이는 대부분 작가의 좋은 소망을 담고 있다.명청 시대에는 문인화가 쇠퇴하기 시작했고, 그 대신 대중의 미적 요구에 부응하는 세속화가 생겨났다.그래서 영원숭이를 비롯한 회화 소재가 대거 등장한 것은 이 시대 대중미학과 문인화의 축소판이다.세속화가 압도적이지는 않았지만 당시의 회화 풍조를 잘 보여준다.
주만장: 중국 국가박물관 연구관원이자 북경화원 치바이시예술국제연구센터 초빙연구원으로 명청 이래 서화감장, 미술사 연구에 종사하고 있으며, 최근 연구분야는 근현대미술사와 현대미술평론을 다루고 있다.서화감정 분야의 전문가로 유명한 서화감정가 소경춘을 사사하여 《서화감장과 시장》, 《서화감고와 미술사연구》, 《영남근대화사총고》 등 20여종의 논저를 저술하였으며, 동시에 회화를 잘하여 박화를 그리기로 유명하여 학자형 화가로 불리며, 광저우, 북경, 상해 등지에서 차례로 전시회를 개최하였으며, 작품은 여러 박물관, 미술관에 소장되어 《일박일세계:주만장화집》이 출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