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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니 모자는 동양인 보다는 서양인에서 훨씬 잘 어울리는 아이템이다. 헐리웃에서는 겨울마다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스타일. 10~20대 남성들이 비니를 많이 쓰는 이유는 스타일리시한 아이템으로써의 활용뿐 아니라 실용성 때문이다. 매일 아침 젤이나 왁스 등으로 스타일을 만들려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머릿결도 상한다. 머리손질을 따로 할 필요가 없으면서 트렌디한 스타일을 완성 할 수 있다. 두상이 예쁜 사람에게 잘 어울리지만, 자신의 분위기에 맞게 개성 있게 연출이 가능. 여성들은 긴 생머리에도 잘 어울리지만 (귀 뒤로 머리를 넘기기보다 자연스럽게 놔두는 게 더 예쁘다.) 머리를 묶어 모자 안으로 집어넣고 잔머리만 살짝 내는 것도 멋스럽다. |
아무리 액세서리에 관심이 없는 남자라도 요즘 같은 시절에는 나도 모자 한번 써볼까, 싶은 마음이 생긴다. TV고 잡지고 영화고 할 것 없이 거기 등장하는 남자들은 열 명에 다섯 명꼴로 맨머리가 아니다. 이러다가 어느 날 텔레비전을 켜면 뉴스 진행자가 사슴이 그려진 모자를 쓰고 나와서 “오늘 아침 고베 지역에서 강도 7의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같은 보도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가장 쉽고 편하고 익숙한 모자
△ 쇼트비니는 대니엘 헤니처럼 예쁜 두상, 적당히 각진 멋진 턱을 가진 남자에게 최선의 선택이다.(사진/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
지난 겨울에는 온갖 모자가 어딘가 도사리고 있다가 한꺼번에 모의를 하고 뛰쳐나온 것처럼 모자의 유행이 거셌다. ‘리버틴스’의 약물과다 로커, 피트 도허티의 페도라(챙 길이가 짧은 중절모)는 TV 속 보이밴드 멤버들은 물론 동대문에서 감자가 붙은 핫도그를 들고 다니는 소년들에게까지 번졌다. 누군가는 페도라가 유행하자 탑골공원 할아버지들이 새삼 범상치 않아 보이더란 얘기도 했으니까. 이브생로랑의 스테파노 필라티가 사랑해 마지않는 베레모는 페도라만큼 대중적인 인기는 못 끌었지만 ‘프렌치룩’을 동경하는 일부 ‘세련된’ 남자들의 머리에서 조용히 쉬었다.
이쯤에서 비니가 등장할 때가 되었다. 비니는 남자가 쓸 수 있는 모자 중에서 가장 쉽고 편하고 익숙하다. 음식으로 치면 델리에서 먹는 BLT 샌드위치(베이컨과 양상추와 토마토로 만든 간단한 샌드위치) 같다. 그 식당이 처음이어도 이걸 시키면 아주 망칠 위험은 없다. ‘참치 다다키를 넣은 루콜라 샌드위치’나 ‘블랙빈 소스의 펜네를 넣은 오징어 먹물빵’ 같은 건 아주 맛있을 수도 있지만 영 아닐 수 있다. 남자에게 페도라나 베레모나 홈버그(홈부르크 모자, 챙이 좁은 펠트제 중절모자)는 처음 가는 레스토랑의 낯선 메뉴거나 전작에 대한 평가가 전혀 없는 감독의 영화 같은 존재다. 시도하려면 모험심이 필요하다. 그러나 비니는 훨씬 수월하다. 남자들이 비니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비니(beanie)는 ‘머리에 딱 맞게 쓰는 니트 모자’라는 모자의 한 형태고 그 이름이다. 주로 어린 꼬마들이 통통한 거위털 점퍼 위에 방한을 목적으로 눌러쓰고 다니던 모자고, 쓰고 보니 따뜻하더라는 평판에 의해 언제부턴가 스키장에서도 눈에 많이 띄었다. 써보면 알겠지만 이건 정말 따뜻하다. 촘촘하게 뜬 니트로 만들어져서 바람도 막아주고 남자들에게는 신체 중 가장 ‘추워 죽겠는’ 부분인 귀도 덮어준다. 어느 매서운 겨울날 니트 비니를 한번 쓰고 나가면 그걸 벗어놓기란 쉽지 않다. 여자들이 무심코 입은 삼중 보온 몽고메리를 겨울 내내 못 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비니의 인기가 순전히 방한 때문은 아니다. 그럴 거면 강아지 귀 같은 게 달려 있는 군용 모자라든가 솜을 넣고 누빈 에스키모 모자, 이마 부위의 보온이 특히 기대되는 산타클로스 모자도 인기를 누렸어야 한다. 그러나 웃기려는 게 아닌 다음에야 이런 모자를 쓰고 외출하는 남자는 없다. 영화 <보랏>의 사샤 바론 코헨라면 모를까.
△ 길거리 어디에서나 비니를 쓴 남자들을 만날 수 있다. 남자가 쓸 수 있는 모자 중에서 가장 쉽고 편하고 익숙하다.(사진/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
그러니까 비니의 포인트는 방한이라기보다는 멋이다. 평범하고 그다지 눈에 띄지 않지만 어딘가 베이식한 ‘쿨함’이 있는 것. 델리의 BLT 샌드위치가 딱 그런 맛이다. 특별한 소스도 없고 요즘 유행하는 야채를 넣은 것도 아닌 채, 간결하고 딱 적당한 그 맛. 아, 갑자기 ‘비니 샌드위치’라는 걸 만들어서 납작한 빵을 벌려 그 안에 기본 재료만 넣고 팔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름도 귀엽지 않나. 비니 샌드위치.
축복받은 두상이 아니라면…
정확하게 말하면 비니는 칼초네 피자처럼 반달 모양으로 생긴 니트 모자다. 어디 던져두면 그게 모자인지 지갑인지 모를 정도로 납작하고 장식도 없다. 보통 단색을 많이 생각하지만 요즘은 비니의 수요가 많아지면서 그 컬러와 디자인도 다양해졌다. 케이크 위에 체리를 토핑하는 식으로 종 모양 방울을 단 것도 나오고 앞쪽에 1인치 정도의 챙을 단 것도 있고 니트를 아주 벌키하게 짜서 압둘라의 것처럼 볼륨감 있게 만든 것도 있다. 이것들은 통칭 니트캡이라고 부르는데 비니하고는 좀 다르다. 비니의 아들, 손자, 며느리 격이라고 할 수 있다.
△ (사진/ 트루사르디/ D$G 왼쪽부터) |
비니는 머리에 썼을 때 머리를 넘긴 공간이 얼마나 남는가에 따라 롱비니와 쇼트비니로 나뉜다. 이름 그대로 롱비니는 위가 좀 많이 남고 쇼트비니는 머리에 착 붙게 쓴다. 쇼트비니는 알전구처럼 예쁜 두상, ‘듀란듀란’의 존 테일러처럼 적당히 각진 멋진 턱을 가진 남자에게는 최선의 선택이다. 다른 데는 모두 싸매고 나온 건 얼굴뿐이니 모자 밑의 눈은 더 형형해 보이고 입술은 더 도드라진다. 그러나 이건 <프리즌 브레이크>의 웬트워스 밀러 같은 ‘축복받은 두상의 남자’에게만 압도적으로 유용하다. 납작한 뒤통수와 두루뭉술한 턱선을 가진 남자에게는 어쩌면 약점을 ‘왈칵’ 드러내는 셈이 된다. 각진 얼굴의 여자가 쪽을 지는 것과 비슷하다. 롱비니는 쇼트비니보다는 얼굴형과 두상을 커버하는 데 도움이 된다. 롱비니를 쓰면 머리 윗부분이 주글주글하게 접히면서 모자가 뒤로 좀 넘어간다. 쇼트비니에 비해서 폭도 넓고 덜 쫀쫀하게 짜여져 얼굴에 달라붙는 느낌도 적다. 대신 이걸 쓰면 스케이트장에 놀러가느라 신이 잔뜩 난 꼬마처럼 보일 위험이 있다. 제일 좋은 건 쇼트비니 중에서 너무 붙지 않는 걸 약간 헐렁하게 쓰는 방법이다.
△ 데이비드 베컴(왼쪽)은 비니의 대표주자지만 그가 쓰는 방법은 별로 권할 만하지 않다. 조니 뎁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비니를 쓴다. (사진/ REUTERS/ NEWSIS/ VICTOR FRAILE / REUTERS/ NEWSIS/ BRAD RICKERBY 왼쪽부터) |
비니를 샀으면 이제는 예쁘게 쓰는 일만 남았다. 비니의 대표주자는 데이비드 베컴이지만 그 남자가 비니를 쓰는 방법은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사진 속의 비니를 쓴 베컴을 보면 그가 어떻게 비니를 썼는지 보인다. 양손으로 모자를 잡고 머리 위부터 아래로 쑥 당긴 다음에 이마 앞쪽의 잔머리를 대충 치우고 그걸로 끝(아닐 수도 있지만). 디테일한 부분이 확실히 떨어진다. 여기서 디테일의 정수, 주드 로와 조니 뎁이 등장한다. 여자랑 같이 있는 카페에서나 여행지에서 막 돌아온 공항에서나 개를 데리고 나온 산책에서나 이 남자들이 비니를 쓰고 있는 장면은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잉글리시 차밍의 정수인 주드 로와 이 시대의 마지막 히피 같은 조니 뎁은 너무 다른 ‘무드’를 지녔지만 둘 사이에는 표표히 흐르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고유하고 확실한 자신만의 스타일. 그들은 비니를 쓸 때 뒤로 슬쩍 넘겨 쓰고 뒷목 부분은 약간 접는다. 이러면 이마의 예쁜 선도 살고 머리 윗부분이 부해 보이지도 않는다. 앞모습, 뒷모습, 옆모습 다 예쁘다. 당장 자유형 400m에 출전해야 할 것처럼 보이는 남자들이 좀 따라했으면 하는 스타일이다.
소품 잘 쓰면 술이 석 잔
남자들은 여자에 비해 ‘옷 잘 입는다’ 소리를 듣기가 훨씬 쉽다. 우선은 다른 남자들이 맥주와 골뱅이파무침 값을 치르느라 바쁠 때 셔츠 하나만 잘 사도 옷이 많아지는데다(아직도 많은 남자들에게 옷값은 아깝고 술값은 기꺼우니까), 작은 부분 하나만 신경써도 옷차림에 세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예를 들면 슈트를 입은 남자가 다리를 딱 꼬았는데 예쁜 양말이 나오면 여자들은 그 남자의 패션에 후한 점수를 준다. 비록 그 슈트가 평범한 것일지라도. 중매는 잘하면 술이 석 잔, 못하면 뺨이 세 대라지만 안경과 구두, 모자 같은 소품은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중매보다 더 확실하다.
△ (사진/ 버버리 프로섬) |
비니는 캐주얼한 아이템이라서 지나치게 편한 옷과 함께 하면 ‘머리를 안 감아서 그랬구나’ 싶어진다. 트레이닝 팬츠와 비니, 후드 지프업 점퍼와 비니, 운동화와 비니는 그래서 매력이 없다. 소심하고 여린 남자를 만났는데 그의 가방에서 에쿠니 가오리 소설이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그럴 줄 알았어’ 란 마음이 드니까 재미가 없다. 너무 모던한 차림의 남자가 제일 좋아하는 음반이 황병기의 것이라고 말할 때 같은 의외의 즐거움이나 재치. 옷차림에도 그런 게 필요하다. 비니를 쓸 때 포멀한 아이템을 적당히 섞으면 그런 맛이 난다. 재단이 잘된 블랙 재킷에 진 팬츠를 입을 땐 스니커즈보다 레이스업 슈즈가 더 좋은 궁합이고, 이 차림에 비니를 써도 예쁘다. 라운드넥 니트에 비니를 쓰는 것보다는 몸에 딱 맞는 셔츠를 입고 비니를 쓰는 게 더 멋지고. 여기서 주의할 건 포멀한 아이템이라고 해서 입는 방식도 점잖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재킷을 입을 땐 이너웨어로 셔츠와 타이를 매는 게 아니라 ‘주뗌므’ 같은 귀여운 타이포 장식이 있는 티셔츠를 고르고, 셔츠를 입을 땐 소매와 가슴의 단추는 몇 개 풀어둔다. 드레스 셔츠를 입을 때 한쪽을 일부러 약간 빼두는 제이미 도넌이나 질 샌더의 슈트를 입고도 나이키 러닝화를 신는 에이드리언 브로디 정도의 흐트러진 멋이면 충분하다.
비니를 쓸 때 안경도 쓰는 건 종류만 잘 고르면 아주 괜찮다. 특히 얼굴이 커서 어딘지 너무 밋밋해 보이는 경우엔 안경이 유용하다. 지나치게 화려한 컬러나 요란한 안경보다는 간단한 디자인이어야 하는 건 물론. 파란 비니를 쓰고 빨간 안경을 쓴 남자는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검정색 뿔테는 이젠 너무 흔하고 은은한 떡갈나무 결 같은 장식이 있는 브라운 테나 얇은 금속성 안경 정도면 꽤 ‘스마트’해 보인다.
간단한 디자인의 안경과 매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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