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9일 감찰공 박여해 선조의 부인이 강릉김문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이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어 그 생애를 연구하고
있다.
오늘이 5월 21일이니 10여일이 지났는데, 그동안 조사한 결과를
간략히 정리한다.
박여해 선조는 판서공 박상진 선조와 문화류씨 사이에 3남 3녀중
3남으로 탄생하였다.
여기서 감찰공 선조의 탄생연도와 관련해 아직 팩트라고 단정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으나 판서공이 유배가기 전에 탄생한 것으로 추정하며,
그에 근거하여 탄생연도를 1375년전으로 추정한다.
감찰공 선조의 어린 시절은 전혀 모르나 분명한 것은 고려충신이었던
운암 김윤남 선생 가문의 사위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강릉김씨한림공파대동보에 감찰공이 운암공의 4명의 사위중에서
첫째 사위라는 공식적인 기록을 통해 확인하였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경위로 감찰공이 운암공의 사위가 될 수 있었는지
궁금하게 생각되나 결정적인 단서가 발견되지 않았다.
운암공의 가문과 창녕성문 가문이 깊은 인연이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구체적으로 운암공이 세상을 떠날 때 독곡공 성석린
선생이 만시를 지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독곡공은 사육신 먜죽헌공 성삼문 선생과 생육신 문두공
성담수 선생의 종증조부가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또한 운암공의 증손인 진사공 김사기 선생이 바로 문두공의 사위가
된다는 놀라운 사실도 알게 되었는데 이렇게 본다면 고려충신 가문과
조선충신 가문이 당시 서로간에 인척 관계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감찰공의 외가는 문화류문인데, 외조부는 지방장관이라 할 수 있는
군사의 벼슬을 역임한 류안우 선생이며, 외숙은 장령공 류희 선생이다.
박여해 선조의 관직생활에 있어서 현재 유일하게 확인된 벼슬이 감찰인데,
감찰은 사헌부에 속한 정6품 벼슬로서 오늘날의 검사에 해당되는 관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떠한 내력에 의해 감찰의 벼슬을 할 수 있었는지 그 경위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런데 현재로선 감찰 이외에 다른 벼슬을 역임한 기록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감찰공이 언제 별세하였는지 여부도 알 수 없다는 것인데, 아직 팩트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으나 일단 1430년대로 추정한다.
이상과 같이 그동안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감찰공 박여해 선조의 생애를
간략히 정리하였다.
2024년 5월 21일(화) 문 암 올 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