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날새와 함께하는, 2026년 6월 23일 화요일입니다. 창세기 49장, 16, 17, 18절 말씀에서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라는 제목으로 창세기 이야기를 드립니다.
16절: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17절: 단은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18절: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아멘
'꽤 많은 여우'라는 제목의 우화가 있습니다. 개와 고양이가 길에서 고기 한 덩어리를 발견하고 먼저 먹겠다며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 곁을 지나가던 여우가 말리면서 하는 말이 "내가 공평하게 나누어 주겠다" 하고 제안을 하였습니다. 개도 고양이도 싸우느니 공평하게 반반씩 나누는 것이 좋겠다 생각하고는 여우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달라" 하였습니다. 여우는 저울 양쪽에 고기를 올리고는 "이쪽이 무거우니 잘라내겠다" 하고는 잘라낸 고기를 자기가 날름 먹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무게를 달면서 "이번에는 이쪽이 더 무겁네" 하고는 잘라서는 또 먹어버렸습니다. 이렇게 계속하여 무거운 쪽을 조금씩 잘라먹는 방식을 반복하였습니다. 끝내는 마지막 남은 조각까지 한입에 먹어 버리고는 재빨리 도망쳐 버렸습니다.
여우는 자기 꾀로 그날 배부르게 고기를 먹었지만 개와 고양이는 바보가 되었던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 단은 라헬의 여종 빌하가 낳은 아들이었습니다. 야곱은 단에게 축복하기를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하였습니다. 단지파도 열두지파 안에 들게 되어 심판에 참여할 수 있음을 축복하였습니다. 열두 지파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는 가나안 땅에 살고 있던 나라들을 점령해야 하는데, 이 점령이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땅을 얻기 위한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타락한 가나안 땅을,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하여 행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은 고통과 괴로움이 사라진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그 약속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싫어하고 하나님을 적대하는 자들과 목숨을 건 싸움을 하여야 했습니다. 이는 우리 성도들에게 무엇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한다 하여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칠장 말씀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말씀하였습니다. 선지자 노릇하였다는 말은 지금으로 말하면 설교하는 목사 노릇하였다는 것입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행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로 이런 일을 했던 것입니다. 신앙적인 기준에서 볼 때 도덕성이 뛰어나서 이런 능력을 행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예를 들면 건축 기술이 뛰어난 건축가가 이백 층의 빌딩을 세웠다면 그는 대단한 건축가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그 건축가가 선한 사람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이백 층의 건물을 올리는 동안 무슨 악한 일을 행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건축 과정에서 뇌물을 주었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이백 층을 짓는 중에 탈세를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는 이백 층의 건물을 올릴 정도의 실력 있는 대단한 건축가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는 국법을 어긴 범죄자인 것입니다. 다시 이야기를 우리에게로 돌려봅니다. 어떤 목사님이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졌다면 그는 대단한 목사인 것은 분명합니다. 또는 그가 저술한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그는 대단한 목회자이며 또한 저술가입니다. 그러나 자신 안에 있는 죄와의 싸움에서 지고 있다면 그리고 끝끝내 그 죄를 회개하지 않고 죽는다면 그가 아무리 주여 주여 하면서 살았을지라도 예수님은 그에게서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흘리신 속죄의 피도, 대속의 피도 보이지 않는다면 예수님은 그를 향하여 네가 너를 도무지 모른다 할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싸워서 심판하고 점령 해야 할 땅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가나안 땅은 죄를 심판해야만 점령할 수 있는 땅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이 통치하는 나라가 되도록 해야하는 땅이었습니다.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할 땅이 가나안 땅입니다. 단은 가나안 땅을 심판하고 가나안 땅을 점령할 때 어떻게 했습니까? 17절 말씀에 " 단은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 하였습니다. 단 지파는 가나안 땅을 심판하는 전쟁에서 뱀처럼 아주 민첩하게 그리고 지혜롭게 임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러나 아버지 야곱은 단과 그리고 모든 아들들이 듣도록 무슨 말을 했습니까? 18절 말씀입니다. "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을 의지하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선한 마음에서 하는 일일지라도 사람의 지혜를 의지할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주의 부름받은 군사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로 산다는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병사는 자기가 판단하고 자기가 선택하여 사는 자가 아니라 상관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일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입성하는 그날까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에서 시작이 되고 마침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단지파의 민첩함과 지혜로운 기습이 장점이 될 수 있지만, 세상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단지파의 이런 민첩함과 이런 지혜로움이 세상 사람들과 결국에는 같아질 수밖에 없게 될 위험성이 농후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오직 하나님이 불러주신 그리스도의 병사인 것을 알고 명령에..., 즉 말씀에 충성하고 순종하는 자세로 무슨 일을 행하든 그런 자세를 갖고 살도록 기도합시다. 이런 자세로 행할 때 성도들 앞에는 구원과 승리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럴 때에 그는 그 구원과 승리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영광을 빼앗기는 것을 아주 싫어하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자를 미워하시기까지 하십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힘과 우리의 지혜를 자랑삼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처음도 마침도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라는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며 우리의 기도가 되어 살도록 믿음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하날새 : 하나님은 날마다 새 일을 행하신다.(사 4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