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초 산행
음력으로 정월 초이틀이다. 설날 귀향 귀성객들이 아직 복귀하지 않은 집들도 있을 것이다. 설을 맞아 모인 가족들과 느긋하게 아침밥을 들었다. 식후 산행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집 앞에서 창원중앙역으로 가는 210번 시내버스를 탔다. 역전에서 굴다리를 지나 용추계곡으로 들었다. 명절 뒤끝이라 산행객이 한산한 계곡이었다. 물이 말라 바위와 자갈돌이 드러난 계곡을 따라 올랐다.
날씨가 많이 누그러져 응달진 계곡은 그리 추운 줄 몰랐다. 등산로는 산행객들이 많이 다녀 반질반질했다. 인적 드문 골짜기를 따라 올라 숲속 나들이 길 이정표를 지나 우곡사 갈림길에 닿았다. 겨울을 나는 맥문동은 추위에 고생을 끝내고 파릇한 잎맥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어디선가 몸을 숨긴 채 먹이를 찾는 산새들이 조잘댔다. 새들은 날이 밝아온 이른 아침에 더 활발히 움직였다.
우곡사 갈림길에서 진례산성으로 올랐다. 계곡은 계속 응달을 따라 올랐다. 너럭바위가 있는 쉼터에 이르자 지나는 겨울의 강추위에 졸졸 흐르던 개울물이 꽁꽁 얼어붙은 빙판이 두꺼웠다. 다 녹으려면 날씨가 풀려도 한동안 얼음덩이를 유지하지 싶었다. 생강나무와 산벚나무는 겨울에도 수액을 빨아올려 수피에 윤이 나고 꽃망울은 도톰해져 갔다. 생강나무꽃이 벚꽃보다 먼저 핀다.
나목이 된 낙엽활엽수들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간간이 노송 그루도 보였다. 겨울을 나는 식생 가운데 인동덩굴과 쥐똥나무는 반(半)상록성이라 모진 추위에도 푸른 잎사귀를 달고 있음이 신기해 보였다. 날씨가 풀리면 점차 푸른 잎맥이 더 뚜렷해지지 싶다. 용추10교를 지나 공룡발자국 화석 근처를 지났다. 포곡정을 앞둔 지점까지 물이 흐르던 골짜기는 빙판이 불거져 있었다.
성내 고요한 숲속 정적을 깨트리는 자연음이 들려왔다. “또르르 똑! 똑!” 전동 드릴로 목재에 구멍을 뚫는 소리와 같았다. 삭은 나무둥치에 주둥이로 쪼아 벌레를 찾는 딱따구리소리였다. 사계절 가운데 겨울에서 봄 사이에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숲속에서 딱따구리소리는 여름이나 가을에는 들을 수 없다. 아마도 딱따구리는 여름과 가을에는 노천에 드러난 먹잇감을 먹는가 싶다.
쉬엄쉬엄 걸어 포곡정에 이르렀다. 아침나절에서 한낮으로 가는 즈음 되자 계곡에는 산행객이 조금씩 늘어갔다. 부부나 친구와 동행한 그룹도 있었으나 나처럼 단독 산행을 나선 이들도 더러 있었다. 맞은편에서 내려오는 젊은 처자 둘을 만났는데 자매인지 친구인지 분간이 안 되었다. 포곡정 갈림길에서 진례산성 동문 터로 향해 올랐다. 비탈을 오르면서 땀이 나 잠바를 벗어 안았다.
산성 동문 터에서 방향을 정해야 했다. 바로 넘으면 진례 평지 임도를 걷는다. 동북으로 가면 용추고개를 지나 정병산으로 나아간다. 남쪽으로는 대암산과 비음산으로 가는 길이었다. 남쪽 등산로를 따라 비탈을 걸어 올랐다. 사월 초 천주산 진달래 축제가 끝난 늦은 봄 철쭉꽃이 아름답게 피는 산기슭이다. 그때면 나는 이산 저산 산나물을 뜯으러 다니느라 비음산을 찾을 겨를이 없다.
대암산으로 가질 않고 비음산으로 향했다. 날씨가 쾌청해 동으로 저 멀리 낙동강이 삼랑진으로 흘러 돌아갔다. 금정산 고당봉이 보이고 그 아래 화명 아파트도 드러났다. 북으로는 밀양 재약산과 그 너머 가지산으로 헤아려졌다. 남으로는 안민고개 너머 진해바다는 산정호수를 바라보는 듯 착시 현상을 느꼈다. 등산로 좌우 길섶 겨울을 나는 철쭉군락은 꽃눈잎눈에 수액이 오르는 듯했다.
비음산 전망대 서니 창원시가가 한 눈에 다 들어왔다. 봉암 갯벌 바깥은 마산 시가지도 일부였다. 창원대로를 기준으로 남쪽은 공단지역이었다. 북쪽은 주택지와 업무지구였다. 도청이나 시청이나 법원 같은 관공서들도 산정에서는 내 발 아래였다. 반송공원 산기슭엔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도 보였다. 산비탈을 내려 진례산성 남문 터에서 고산쉼터로 갔다. 재치고개에서 토월공원을 넘었다. 18.02.17
![](https://t1.daumcdn.net/cfile/cafe/998E493E5A87CB0C03)
![](https://t1.daumcdn.net/cfile/cafe/99DAAE3A5A87CB1C08)
![](https://t1.daumcdn.net/cfile/cafe/99D1B3335A87CB2A0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