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성지대(中性地帶)에 들다
김 상 립
근래에 와서 나에게는 깜짝 놀랄 변화가 일어났다. 이런
변화는 그 동안 나도 모르게 살금살금 쳐들어와 어느 날부터 내 의식세계를 점령하고 생활 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지난 날, 나는 남녀 사이에는 결코 순수한
친구관계가 성립될 수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실제로도 그렇겠지 하며 별다른 관심 없이 지내왔다. 그러나 이젠 사뭇 다르다. 만일 서로 얘기만 잘 통한다면 어떤 여성이라도
남성 못지 않는 좋은 친구로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다. 뿐만이 아니다. 평소 내가 만나는 사람들도 굳이 남성과 여성의 성적특성을 구분 하여 대하지 않게 되었다. 또 사람을 두고 괜한 욕심을 부리거나 질투하는 마음을 낼 이유도 없어졌고, 복선을
깐 계산을 하지 않으니 상대방을 보는 시각도 보다 단순, 명료하다. 늙은
아내가 이제 힘에 부치는지 집안 일을 분담시키면서 점점 내 분량을 늘려간다. 그래도 내가 이전처럼 묵살하거나
화를 내지도 않고, 주부라도 된 양 열심히 흉내라도 내고 있으니 잔소리가 많이 줄었다.
사람이 어느 나이에 들면 남녀구분이 희미해지는, 중성지대에
들어설 수도 있다는 사실에 나는 적지 않게 당황스럽다. 내가 80줄에
걸터앉았어도 이런 일은 상상도 하지 않았고 실제 믿어지지도 않지만, 사실이 그런 것을 난들 어찌하겠나? 설명 만으로는 다른 이들의 이해를 얻기 어려운 지경이라 혼자서도 답답하다. 혹여
내게 어떤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까 걱정되어, 의사와 상담 이라도 받아보려 했으나 차마 말하기가 쑥스러워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이런 처지에 들어와 시간을 보내다 보니,
그게 단순하게 성징(性徵)에 국한된 일이 아니었고, 일상의 여러 부분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요즈음 나는 지인들을
만나 술 한잔 할 때도 네가 옳니, 내가 옳니 해가며 논쟁을 벌이는 횟수가 확 줄어들었다. 또 남들 앞에 나서서 내 존재를 확인시키려 애쓰는 짓도, 별것 아닌
일로 타인과 경쟁을 벌이거나, 무엇을 더 얻기 위해 악착같이 다투는 일도 극구 피하고 있다. 물론 내가 속한 몇몇 단체나 모임에서 장(長) 자리를 맡으려는 생각도 안 하지만, 수째 그런 빌미를 내 스스로가
만들지도 않는다. 또 남들이 살아가는 문제에 대해 지나친 관심이나 간섭도, 누구의 실수를 앞장서서 공격하는 행위도 먼발치에 두고 있다. 여하튼
남자든, 여자든, 부자나,
가난한자나 그냥 같은 사람으로 대하자는 생각이 슬슬 행동으로 옮겨지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 내가 중성지대라 이해하고 있는 이 영역은 옛사람들이 즐겨 인용 하던 중용의
개념과는 또 다른 성격을 가졌다는 것을 확연하게 느끼게 되었다. 나는 이를 계기로 다가올 초 고령 사회에
예견되는 노인들의 고민을 부분 적으로나마 완화 시킬 실마리가 보이는 듯하여 나름 희망을 가지고 내 자신을 보다 세심 하게 관찰하고 있다. 하기야 요즈음 같은 장수시대에는 사람의 생애를 제1인생과 퇴직 후에
오는 제2의 인생이라고만 한정되게 구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누구나
고령에 들면 인생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제3의 기회가 더러 더러 찾아 올 것이고,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처리하느냐는 순전히 각자의 몫이라서, 사람마다
그 결과가 같다 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학창시절에 내 예상수명을 70세초반
정도로 보고 인생을 설계 했는데, 이미 그 나이를 훨씬 지나버렸다. 만일
내가 초 고령으로 살게 된다면, 남은 날들을 어떻게 대처해 나가는 게 현명한지 하늘에라도 묻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도 오래 전부터 나는 노령에 들면 스스로가 지켜야 할 최우선 과제가 노추(老醜)의 모습을 내보이지 않는 일이라고 죽 생각해왔다. 그런 까닭에 현재의 중성상태는 내 노후를 잘못된 사회적 흐름에 휘둘리지 말고,
편협 되지 않은 사고로 자신을 잘 지켜내어 행복하게 살라고, 대자연이 준 기회일거라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니 만약 내가 현재 상태에서 계속 머문다 해도, 굳이
그것을 벗어 나기 위해 달리 몸부림칠 이유는 없지 싶다.
대체로 초 고령의 시기를 지혜롭게 지내자면 그에 걸 맞는 새로운 체험을 계속
쌓아가야 하는 데 때마침 내가 중성지대에 들어, 제3의 인생이라
부르고 싶은, 삶을 경험하게 되었으니 무척이나 고맙고 다행한 일이다.
내가 이름 지은 제3의 인생은 육신을 위해 사는 시기가 아니라, 정신을 위주로 살아야 하는 때라고 나는 해석하고 있다. 이제 나는
사색의 지평을 지속 적으로 확장하여, 내 정신세계가 더 높은 곳을 향해, 가벼운 깃털처럼 날아오르게 노력 해볼 참이다.
첫댓글 중성지대... 생각하며 음미해 볼만한 것 같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만물은 모두 자연으로 회귀합니다...
선생님께서 자연의 하나로 돌아간 듯 합니다. 좋은 일이군요... ㅎ... ^^*...
장수시대에는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할것입니다.
사회환경이 고령이되어
일할 여건이 주어질 형편도
아니고 모두가 여유로운 노년을 보낼 경제력을 갖춘것도
아니니... 오래사는 뭔가를
찾아야 할것으로 생각합니다.
의사에게도 묻지말고 하느님에게도 묻지 마세요.
선생님의 중성지대를 무조건 지지합니다.
마담들이 깃털처럼 날아들면 어찌하실는지요 ~!!!
소진선생이 이해해 주신다니
퍽 다행입니다. 우리네 여건으로 보면 노후를 제대로 살기가 보통 어려운게 아니지요. 난 의식 똑바로 밖힌 바보로 노년을 살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