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31일 목요일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조 재형 신부
복음; 마태13,47-53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47 “하늘 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 48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 올려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49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50 불구 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51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 제자 들이 “예!” 하고 대답하자, 5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53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들을 다 말씀하시고 나서 그 곳을 떠나셨다.
어릴 적, 어머니는 늘 아버지의 자리를 조심스럽게 여기라고 하셨습니다. 그 자리는 책상이 놓인 단순한 공간이었지만, 우리 가족에겐 존경과 경외의 상징이었습니다. 탁자 위에는 아버지가 쓰던 물건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자리에는 함부로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있을 때나 아버지가 없을 때나 아버지의 자리는 늘 조심해서 다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아버지에 대한 경외를 알려 주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탁자 앞에 앉아서 책을 읽기도 하였고, 글을 쓰기도 하였습니다. 가족은 아버지의 탁자 주위에 둘러앉아 기도하였습니다. 생각해 보니 아버지의 자리는 성당 안의 감실(龕室)과 비슷했습니다. 감실에는 성체가 모셔져 있습니다. 교우들은 감실을 바라보며 기도 하고, 교우들은 감실 앞을 지날 때는 예의를 표합니다.
아버지의 자리와 감실은 성경에서 보면 ‘장막’과 비슷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모세는 하느님께서 주신 계명을 모시는 감실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감실을 둘러싸는 천막을 만들었습니다. 그 감실은 바로 교회의 원형입니다.
오늘 기념하는 이냐시오 성인은, 이런 하느님의 영광을 온 삶으로 드러낸 분입니다. 그는 병상에서의 회심을 계기로, 세속의 영광에서 “하느님의 더 큰 영광”(Ad Majorem Dei Gloriam)을 추구하는 길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들에게 '영신수련'이라는 귀한 기도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저 역시 2000년부터 영신수련의 여정을 걸어왔습니다. 매주 200킬로미터를 왕복하며 기도 모임에 참석했던 그 시간은, 땅속에서 양분을 흡수하는 뿌리처럼 내 신앙의 뿌리를 깊게 내려준 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제 영혼 깊은 곳에는 성인의 말씀 한 구절이 살아 있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은 하느님을 믿고 알아 구원받기 위함입니다. “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것은 하느님을 찬미하고 섬기고 사랑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받아들이고,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버릴 것입니다.”
성인은 이 신앙 고백 위에 두 가지 영적 나침반을 우리에게 남겨주었습니다. 하나는 ‘세 가지 유형의 사람’, 또 하나는‘겸손의 세 단계’입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죄를 지은 후 회개하려는 세 부류의 사람을 제시합니다. 첫 번째 유형의 사람은 죄를 지었지만, 죽을 때까지 회개하지 않고 미루기만 합니다. 변명은 많고, 결단은 없습니다. 하느님보다 자기 의지가 앞섭니다. 마치 길가에 떨어진 씨앗과 같아서 뿌리내리지 못하는 신앙입니다. 두 번째 유형의 사람은 회개하고자 하지만 자신의 애착은 버리지 못합니다. 하느님을 따르기보다, 하느님이 자기 뜻을 따라 주시길 기대합니다. “이것만은 그대로 두고 회개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마치 자갈밭에 떨어져 뿌리는 내리지 못하지만 열매 맺지 못하는 신앙입니다. 세 번째 유형의 사람은 자기 뜻을 모두 내려놓고 오직 하느님의 뜻만을 구합니다. 부귀든 가난이든, 건강이든 병고든, 모든 것을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 선택합니다. 마치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과 같아서 많은 열매를 맺는 신앙입니다. 이 세 번째 사람이 바로 우리가 되기를, 성인은 영신수련을 통해 초대합니다. 또한 이냐시오 성인은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닮을 수 있는지를 겸손의 세 단계로 설명합니다. 첫 번째 겸손은 죽음의 위협이 와도 하느님의 계명을 따르는 자세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가장 우선인 삶입니다. 운전으로 생각하면 준법 운전과 같습니다. 속도와 차선을 지키고, 교통법규를 지키는 신앙입니다. 두 번째 겸손은 부귀와 가난, 존경과 모욕, 건강과 질병 중에서,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라면 어떤 것이든 기쁘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 상태입니다. 운전으로 생각하면 안전 운전과 같습니다. 앞과 뒤의 차를 살피면서, 적당한 휴식을 취하는 신앙입니다. 세 번째 겸손은 오히려 예수님처럼 가난과 멸시, 십자가를 더 사랑하게 되는 상태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스스로 낮아지기를 기뻐하는 마음입니다. 운전으로 생각하면 양보 운전과 같습니다. 운전이 복음을 전하는 선교의 도구가 되는 신앙입니다. 이 겸손은 수동적인 인내가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능동적으로 나 자신을 바치는 용기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늘나라의 제자가 된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이냐시오 성인은 그러한 지혜로운 집주인이었습니다. 자기 안의 상처와 아픔도 꺼내어 하느님의 빛 아래 놓았고, 과거의 기사도 정신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영적 전투로 바꾸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신앙이 있는지요? 여러분은 지금 어떤 유형의 사람에 가까우십니까? 여러분은 지금 어떤 겸손의 단계를 살아가고 계십니까? 오늘, 성 이냐시오 성인의 전구를 청하며, 우리 모두도 세 번째 사람, 세 번째 겸손을 향해 나아갑시다. 그리고 오직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 우리의 시간과 재능과 삶을 봉헌할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미주 달라스 성 김대건 안드레ㅏ성당/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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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예수회' 수도회의 창립자 이냐시오 데 로욜라 성인 축일입니다.
돌아가신 프란치스모 교황님은 예수회 사제였죠.
예수회는 특히 지성의 수도회라 일컬어집니다.
베네딕도회는 교황님을 가장 많이 배출한 수도회이지만
예수회는 그 교황님들을 보필하는 두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톨릭성가' 221번 '받아주소서'의 가사는 성 이냐시오 의 기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