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또는 지슬
김 난 석
빛나리 1 님이 감자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래서 장에 나가 감자를 사서 쩌먹었다고 한다.
어디서 가마솥에 쪄내는 포실포실한 감자향이 난다.
이맘때 쯤 시골에 내려가면 어머니가 반겨주셨다.
조그만 텃밭에 나가 어머니는 햇감자를 캐셨다.
그걸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내가 호미를 빼앗아 캤다.
그게 그리 쉬운 일인가?
삼태기에 반쯤 담길 때면 허리가 아파 휴우 하기 마련이었다.
어머니는 그걸 들고 나가 우물물로 씻고 솥에 앉힌다.
그러면 솔솔 감자 익는 향이 났던 것이다.
거기까지는 좋은데
종이상자에 감자를 가득 담아서 묶어놓고
그걸 서울로 가져가라 하셨다.
그게 매년의 일상이었는데
그걸 어깨에 메고 차턱까지 가려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용산역에 도착한들 그걸 또 어깨에 메고 버스를 타야 하니
한참이나 끙끙거렸지만
아내가 그리 좋아하진 않았다.
시장에 나가면 알이 크고 깨끗하게 쌋어놓은 감자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어머니의 사랑이 퇴색하기도 했던 기억이다.
몹쓸 자식이라니...ㅠㅠ
‘지슬’ 은 감자를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몇 해 전 영화가에 상영되었던 오열 감독의 영화제목이기도 하다.
제주 4.3 사건을 바탕에 깔고 국군토벌대의 남로당원 색출과정에서
무고하게 희생되어가는 양민들의 실상을 그려나갔다.
영화 속의 그 상처들이 언제쯤이면 말끔하게 씻겨
아름다운 풍광만의 기억으로 남으려는지...
화면이 열리자 안개인지 연기인지 모를 자욱한 연무 속에
이리저리 흩어진 제기(祭器)들이 오버랩 되면서
분위기는 슬픔과 해원의 심연으로 가라앉게 한다.
영화 내내 수묵화의 화면에 맴도는 안개는
허공에 떠돌 원혼들을 떠올리게 하고
영화의 구성도 제례의 순서를 본따
신위(神位), 신묘(神廟), 소지(燒紙) 세 마당으로 나누어
위령의 의미를 품고 있다.
뜨거운 감자라 하면
선뜻 나서기는 저어하더라도
누군가가 주목하거나 다뤄야 할 이슈쯤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의 감자는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그저 기갈이 감식이라 할 연명의 음식일 뿐이다.
죽어간 어머니 곁에서 데굴데굴 굴러 나오는 장면의 감자들은
우리가 그 하나하나를 따뜻하게 쥐어보아야 할
그 무엇으로 상징되어지기도 한다.
오리무중이라면 현재도 앞날도 알 길이 없음을 일컫는 말인데
다른 한편 오리가 춤추는 중이란 우스갯소리도 한다.
같은 물에서는 한데 어울려 흥겨운 춤을 출 수 있어야 하거늘
서로 다른 물갈퀴 질을 해대면
서로 다른 엇박자의 춤을 출 수밖에 없지 않은가.
사람의 삶과 도새기의 삶을 구분할 것도 없이
이쪽인지 저쪽인지 구분할 안목도 없이
그렇다고 자기변명 할 주변마저 없이 자연에 순응하며
동굴 속에서 움막에서 혼거하는 양민들에게
앞을 가리는 안개가 몰려들면서 환란은 시작됐던 것이다.
그 안개 말끔히 걷어내어
같은 바탕에서 같은 물갈퀴 질을 하며 살아가도록 만드는 게
살아남은 자들의 임무가 아닐까?
아는 자 아래를 내려다보고
미처 깨닫지 못한 자 눈을 비벼 뜨며
함께 소통해나갈 일이다.
그것만이 그들만의 천국이 아닌 우리들의 천국을 만드는 일이요
그래서도 안개를 걷어내자고 해본다.
제주도에서 지슬이라 불리던 감자는
보릿고개를 넘기는 구황식물이었다.
올벼가 수확되기 까지는 보리와 함께 그걸로 연명해야 했다.
대지주들이나 부잣집들에선 그렇지 않았지만
감자를 수확하기 전엔 씨감자도 눈을 떼어내고 쪄먹었다.
슬픈 가난의 모습이었지만
그럼에도 가족애가 왜 없었으랴.
먹을 수 없었던 걸 먹게 해주던 할머니의 손길,
참 아련한 사랑의 모습이다.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캐보나마나 하얀 감자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캐보나마나 자주 감자...
우리들 어린 시절 즐겨 부르던 동요지만
감자떡 먹는 건 가난한 아이
알아보나마나 가난한 아이
쌀떡 먹는 건 부잣집 아이
알아보나마나 부잣집 아이...
시대는 변해 이젠 그리 말하지 않는다.
쌀을 외면하고 감자를 찾는다.
당분이 적고 비타민이 풍부하다는 감자
할머니의 손이 그걸 알았을 리 없었겠지만
아픈 추억을 달콤하게 해주는 것이다.
지슬과 감자, 그게 그거지만
쪄먹든 구워먹든 튀겨먹든
두 손으로 따뜻하게 쥐어 볼 일이다.
어머니의 까실까실한 손등을 매만지듯 말이다.
첫댓글 어릴때 어머니가 밥에 쪄서 주셨던 탐스런 감자가 생각납니다
호호불면서 소금에 찍어먹었던 그맛 잊지 못합니다
건강식이었군요
저의 경우는 사카린 물을 얹어서
쪄낸 기억인데요.ㅎ
지슬이 제주방언 이군요
요즘 붉은지슬이 나와서
사다 쪘드니 그맛 일품이드군요 오랜만에 사봤지요
강원도에 작은 텃밭에 심어 먹으니 ..
자주색 감자 말고 빨간색 감자라~
그거 맛이 궁금하네요.
강원도에 텃밭이라니
그것도 ㅂᆢ럽고요.ㅎ
@난석 자주색 맞을듯 하네요 ㅎ
@안단테 ㅎㅎ
"지슬"감자라는 제주도 방언이군요.
포슬포슬한 하지감자
많은 사연들이
주렁주렁 감자넝쿨처럼 매달려 올라옵니다.
저도 햇감자 쪄 먹어야겠어요.
감사합니다.
쪄 드셨나요?
멀쩡한 날보다 비오는날 쪄먹는게 분위기 있었는데 요.ㅎ
난석님~
저도 고구마보다 감자를 좋아 한답니다
햇감자 사서 벌써 두번이나 쪄 먹었네요
내년에는 감자를 심어야 겠어요
감자값이 요즘 비싸거든요
그럼 내년에 감다 심고 퀴즈도 한번더 하세요.
쉬운걸로요. ㅎ
<감자바우>인 저로선
감자 하면 할 말이 무지 많은데~
아름답고 귀한 본문 글에 누를 끼칠까 봐
참아야겠네요~^^
대신 몇 번이고 글을 다시 읽어 봅니다~
건필하세요~^^
그럼 자리 깔아드릴까요?
뭐 아무 때 아무 곳에서라도 요.ㅎ
저는 감자바위라
어릴때 감자를 너무 많이 먹어
감자 생각 하기 싫어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