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작가 ★ 야호♬ (lil_ili@hanmail.net)
친정 ★ 야호스토리♬
-
<거짓말의 법칙>
법칙 20. 필살기는 ‘아잉♡’
“야, 너는 들어올 때 노크하는 것도 모르냐? 하하, 하하하. 노, 노크는 기본 중의 기본 센스 아니냐, 하하!”
의아한 듯 독고산하를 훑어보는 다솔이를 향해 어색한 웃음을 머금은 채 말을 내뱉었다. 다솔이가 들고있던 작은 가방을
얼른 낚아채 살짝 확인해보니 속옷과 생리대가 들어있었다. 속옷은 그렇다치고 생리대는 왜 가져왔지? 다솔이 생리하나?
“독고산하씨 아까 갔잖아? 또 오셨어요?”
다솔이가 내 말을 귓등으로 흘려버린 것인지 대답조차 내뱉지 않고 말머리를 바꿔버렸다. 독고산하가 싫다는 것을 시선에
한가득 담은 다솔이가 날 쳐다보며 어서 대답하라는 듯 인상을 썼다.
하긴 다솔이는 아까 유진태 감독이 들어왔을 때 조용히 나갔으니 아직도 유진태 감독이 있거나 나 혼자 있을거라 생각하고
왔을 텐데, 세상에서 제일 싫다는 독고산하가 떡하니 병실에 있으나 인상을 쓸만도 했다.
“내가 또 온게 엄청 싫은 눈친데.”
“싫긴요, 코디가 감히 고용주에게 싫다는 눈치를 내보낼 수 있나요? 그냥 의외라서요.”
눈치는 내보내지 않을지언정 눈빛은 싫다는 걸 팍팍 표현하고 있다는 걸 정말 모르겠니, 다솔아?
다솔이의 톡쏘는 말투에 독고산하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으나 곧 고개를 돌려 날 쳐다보았다.
독고산하의 시선이 내게로 옮겨지자 다솔이가 독고산하의 뒤에서 ‘뭐야? 얘 왜 왔어?’하고 입을 벙끗거리는 것이 언뜻 보였다.
“내가 족발 먹고 싶다고 먼저 불렀어. 나 아프다고 특별히 신경써서 와주신거야.”
“어… 그러냐?”
독고산하가 또 예의없이 함부로 찾아와서 날 막 부려먹었을 거라 생각했는지 다솔이가 크게 당황한 얼굴로 독고산하를 쳐다보았다.
독고산하 ‘이제 됐냐?’하는 표정으로 다솔이를 쳐다보았는데 그 표정이 어찌나 의기양양 하던지 꼭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같았다.
녀석은 다솔이의 당황한 표정을 마음껏 즐기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날 쳐다보았다.
“사전 엠티(MT)때 보기로 하고, 퇴원하면 문자하고.”
“병문안 또 안오세요?”
“중병도 아닌데 또 와서 놀아줘야돼? 나 그렇게 한가한 사람 아니다.”
“아니… 그래도 뭐, 그냥 와서 또 이렇게 야식도 먹고 얼굴도 보고…… 그럼 좋잖아요.”
머뭇머뭇 내뱉어진 내 말에 독고산하는 ‘이게 진짜 날 좋아하는건가?’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고, 독고산하의 뒤에 서있던
다솔이는 ‘연기 끝내준다’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두 사람의 상반된 표정을 대하고 있자니 머리속이 꽤 복잡해졌으나
일단 독고산하에게만 집중하기로 했다.
독고산하는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고 잠시동안 날 쳐다보았는데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는 것 같았으나 꽤 복잡한 심정이 언뜻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못 와.”
“아… 맞다. 독고산하씨 진짜 바쁜 사람이죠. 죄송해요, 제가 괜한 투정을…”
“짬내서 올려면 올 수 있는데 아까 간호사한테 들켰잖아.”
그 뒤로 구구절절 독고산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으나 그것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었다. 간호사에게 독고산하가 병문안 왔다는 걸
들켰으니 앞으로 내가 퇴원할 때까지 간호사는 종종 이곳을 주시할 게 뻔했다.
사람들 생각에 바쁘다고 인식되어있는 독고산하가 짬내서 여길 틈틈히 찾아온다면 우리 둘을 수상한 사이로 생각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건 곧 지지기반의 대부분이 여성인 독고산하에게는 치명적인 스캔들이 될 것이고, 최악의 경우 영화 투자에도 차질이 생길지도 모른다.
“첫 영화부터 말아먹고 싶지 않으면 영화 작업 들어갈 때까진 좀 참아.”
“에?”
“영화 작업 시작하면 지겨워질만큼 자주보게 될 테니까.”
독고산하가 피식 웃으며 내 이마를 꾹 눌렀다. 손을 뻗어 녀석의 손가락을 잡으려 했으나 녀석이 더 빨랐다.
괜히 그런 독고산하가 얄미워 입을 삐죽 내밀자 녀석은 내 머리카락을 가볍게 헝클어놓았다.
“퇴원하면 문자해.”
“전화하면 안돼요?”
“어, 안돼.”
“왜요?”
“또 통화하면서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마음이 아프다는 소리?”
윽, 그거 당황해서 횡설수설 늘어놓은 말이었는데.
독고산하가 장난스레 말을 내뱉으며 침대에서 일어나려는 내 어깨를 꾹 눌러 다시 앉혔다. 하마터면 침대 머리맡에 머리를
찧을 뻔 했다.
“됐어. 쉬어.”
“에, 그래도 가는 거 배웅하고 싶어요!”
“그러다 다른 환자들 만나면 어쩌려고? 일일이 붙잡고 ‘저희가 무슨 사이냐면요…’하고 말 늘어놓으려고? 됐어.”
“치, 그래두……”
아쉬운 척 입을 삐죽거리며 독고산하를 살짝 올려다보았으나 녀석의 표정은 확고했다. 연예인은 연예인인지라 사람들 눈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었다.
독고산하는 날 상대하다보면 해가 뜰 때까지 병실에 붙잡혀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인지 고개를 돌려 다솔이를 불렀다.
비어있는 침대에 누워 베게로 귀를 막으려 애쓰던 다솔이는 독고산하의 부름에 시큰둥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이, 코디. 혹시 불편한 거 있으면 매니저한테 연락해.”
“간호사가 엄청 불친절 하던데.”
“그럼 두들겨 패든지.”
“패도 돼요?”
“어, 대신 책임은 못진다.”
독고산하의 말에 다솔이가 가볍게 입을 삐죽거리며 ‘말이나 말라규.’라며 중얼거렸다. 다솔이의 말에 독고산하가 또 욱해서
뭐라고 하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으나 다행히 독고산하는 다솔이가 중얼거리는 것을 듣지 못한 듯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럼 조심히 가세요. 퇴원하면 문자할게요. 그리고 병원에 있다가 생각나면 틈틈이 연락해도 돼요?”
“하든지.”
“진짜요? 우와, 그럼 한시간에 한 번씩 해야지. 아니다, 삼십분에 한 번?”
“난 전화 받는다는 얘기 한 적 없어.”
“에? 치, 그럼 내가 연락할 때마다 씹을 거에요? 우와, 치사하다. 그럼 폭탄문자 보내버려야지.”
내 투덜거림에 독고산하가 피식 웃더니 또또또 내 머리를 헝클어놓았다. 녀석은 툴툴거리는 내게 나지막이 쉬라는 말을
내뱉고는 병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병실 문이 닫혔고, 한동안 병실 안에는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난 다솔이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애꿎은 텔레비전만 쳐다보았고, 다솔이는 집요하리만큼 뚫어져라 날 쳐다보았다.
결국 먼저 고개를 돌려 말을 꺼냄으로써 침묵을 깨트린 것은 나였다. 그래, 내가 졌다.
“내 얼굴 뚫어지겠다. 왜?”
“뭐야? 그새 독고산하랑 죽고 못사는 사이로 변한거냐규? 룰루랄라 사랑해요, 여보당신 사이냐?”
“미쳤냐!”
다솔이의 여보당신 사이냐는 말에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말을 내뱉고보니 목소리가 너무 컸다는 생각에
움찔거렸으나 다행히 간호사는 찾아오지 않았다. 또 찾아와서 ‘시끄러워욧!’하고 눈을 뒤집어까면 어쩌지했는데.
“미칠 것까진 없잖아. 뭐냐,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는데 과민반응 아니야? 이거 더 수상하다규.”
“아니야, 그런거.”
“그래, 뭐 그럼 말고. 근데 너 연기 잘하더라. 하긴, 독고산하가 배우니까 걔 속이려면 뛰어난 연기가 필요하긴 하겠지.”
“…독고산하가 속는 것 같디?”
“응? 음, 글쎄. 내가 독고산하가 아니니까 모르지. 하지만 적어도 의심은 안하는 것 같았다규.”
“그런가?”
“그렇다규.”
먼저 고개를 돌려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옮기는 다솔이를 멀뚱히 쳐다보다가 괜히 어정쩡한 기분에 베게를 다솔이에게로
던졌다. 낄낄거리며 텔레비전을 쳐다보던 다솔이가 기습적으로 날아온 베게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고 ‘컥!’ 소리를 냈다.
쌤통이다.
“야! 아프다규!”
“아프라고 던졌지 간지러우라고 던졌을까봐? 그리고 그놈의 규규소리좀 하지마, 니가 동물이냐? 규규거리게.”
“규규 안그랬다규. 규~그랬다규.”
“그게 그거지, 시끄러!”
다솔이가 ‘이씨, 괜히 지랄이야!’하고 툴툴거리며 다시 베게를 내게 던졌으나, 베게는 내 침대까지 날아오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베게가 바닥에 떨어진 것을 확인한 내가 어깨까지 들썩이며 큭큭거리고 웃자 다솔이가 씩씩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베게를
주웠다. 다솔이는 베게를 들고 내 침대까지 직접 걸어와 내 얼굴에 베게를 정통으로 던진 후, 자신의 침대로 돌아갔다.
다솔이가 내 얼굴에 정통으로 던진 베게를 주섬주섬 머리 아래에 끼워넣으며 나지막이 다솔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근데 다솔아, 자기가 한 거짓말에 속는 사람도 있을까?”
“뭐?”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 자기가 한 거짓말에 자기가 속을 수도 있을까?”
“글쎄… 근데 그건 왜? 너 설마 독고산하 앞에서 좋다고 좋다고 거짓말하다가 진짜 좋아하게 된 거냐?”
“아니. 내가 미쳤냐?”
“야, 혹시라도 걔 진심으로 좋아할 계획이면 그 계획 당장 철회해라. 아무리 독고산하가 족발을 사다주고 니 툴툴거림
받아줘도 성격 파탄자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 왕싸가지에 왕재수라고. 알았냐규?”
“…왕싸가지에 왕재수는 아니던데.”
“뭐?”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 말도 아니라며 내가 말을 얼버무린 후 입을 닫자 다솔이가 침대에 누운 채 내쪽으로 몸을 돌렸다. 다솔이가 침대로
돌아가면서 불을 끈 탓에 병실은 어두웠는데도 금세 적응해서인지 다솔이의 모습이 꽤 또렷하게 보였다.
다솔이는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보기엔 독고산하보단 유진태 감독이 훨 낫더라. 차라리 유진태 감독을 꼬시지 그러냐? 어차피 약혼녀 있는 독고산하보다
솔로인 유진태 감독 꼬시는 게 더 수월할거고, 막말로 유진태 감독이랑 잘돼서 잘 사는게 진짜 곽하주한테 복수하는거야.”
“…안그래도 내가 좋대.”
“뭐? 누가? 유진태 감독이?”
“응.”
“야, 그럼 진짜 잘됐네! 이건 하늘이 내린 기회야! 차라리 유진태 감독을 꼬셔버려. 독고산하는 무슨… 걘 곽하주랑 천생연분이야.”
“아, 몰라! 졸려.”
“야, 야! 이거 진짜 중요한거야! 이자식이 친구가 진지하게 니 앞일을 걱정해주는데 잠을 청해? 이게 죽으려고!”
다솔이의 말에 머리가 복잡해져 몸을 벽쪽으로 돌리고 잠을 청했다. 그러자 다솔이가 울컥했는지 자신의 배게를 내 쪽으로
던졌는데, 이번엔 용케도 내 머리를 정통으로 맞히고야 말았다.
이런, 씨!
“아! 아파!”
“아프라고 던지지 간지러우라고 던졌겠냐? 메롱이다!”
“이게!”
다솔이가 던진 베게를 다시 다솔이 쪽으로 던졌으나 다솔이는 꽤 빠른 운동신경으로 베게를 낚아챘다. 승리의 브이자를
내밀며 메롱하고 그대로 누워버리는 다솔이를 쳐다보다가 결국 맥이 빠져 나도 자리에 누웠다.
“야, 잘자고 내일 진지하게 유진태와 독고산하 그리고 곽하주에 대해서 얘기를 좀 나눠보자. 알았냐규.”
“몰라, 진지하게는 무슨 진지하게야. 잠이나 자.”
“내 꿈 꿔.”
“싫어.”
“내 꿈 꾸라규.”
“꺼져!”
몸을 벽 쪽으로 돌린 채 다솔이를 향해 당당하게 가운데 손가락을 내밀었다. 다솔이가 내 손가락을 보고도 못 본 척한 것인지
아니면 진짜로 못 본 것인지 모르겠으나, 녀석은 별다른 반응없이 나지막이 웃으며 ‘내가 양초냐? 꺼지게.’하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도대체 언제적 개그인지 모를 쌍팔년도 개그를 하고 있는 다솔이의 유머감각에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며 이불을 끌어당겼다.
제발, 윤다솔 꿈은 안꿨으면 좋겠다.
*
“윤다솔. 내 절친한 친구, 윤다솔. 일어나.”
“…으웅.”
“윤다솔, 일어나시오. 일어나, 일어나라니까? 윤다솔! 일어나라고! 일어나! 밥 먹게 일어나라고, 쫌!”
“악!”
맛 없지만 안먹을 순 없기에 내 앞으로 찾아온 병원 밥을 나눠먹기 위해 다솔이를 깨우기를 십 분. 도저히 일어날 생각을 않는
다솔이를 보다보다 결국 녀석의 귓가에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러자 다솔이가 언제 비몽사몽 뒤척였냐는 듯 깜짝 놀라 두 눈을 크게 뜨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솔이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옆에서 씩씩거리는 날 발견하고는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날 쳐다보며 투덜거렸다.
“좋게좋게 깨우면 될 걸, 왜 소리를 질러. 귀 아프잖아, 잉.”
”이거나 쳐먹어.”
뭐? 좋게 좋게 깨워? 니가 십분동안 대답만하고 눈 안뜨는 친구 한번 깨워봐라, 그 얘기가 나오나.
가재미 눈으로 다솔이를 쳐다보며 가운데 손가락을 펼쳐주었다. 그리고 병원밥을 다솔이 침대에 올려두며 녀석과 마주보고
앉을 수 있도록 침대 위로 올라갔다.
거치적거리는 다솔이 다리를 상 아래에서 퍽 소리가 나도록 차줬더니 다솔이가 공기밥을 덜어내다 말고 날 쳐다보았다.
“아, 또 왜! 너 왜이렇게 오늘따라 까칠해? 악몽꿨어?”
“몰라.”
…윤다솔, 니 꿈 꿨다.
꿈에서 다솔이가 졸졸졸 날 쫓아다니며 얼마나 귀찮게 굴었는지 떠올리고 싶지조차 않다. 졸졸졸 내 뒤를 강아지마냥
쫓아다니며 ‘독고산하가 좋아? 유진태가 좋아?’하고 물어오는데…… 그건 정말 끔찍했다.
얼마나 꿈에서 시달렸는지 아침 잠 많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내가 다솔이보다 일찍 일어나지 않았는가.
아침에 일어났을 때 흥건하던 식은 땀을 도저히 기억에서 지울 수가 없다. 다솔이가 꿈에 출연한다는 건… 재앙이었다.
“오늘은 하루종일 뭐할거냐규.”
“딱히 계획 없는데… 여기 영화채널 나오던데 그거 틀어놓고 하루종일 영화나 볼까.”
“그럼 나 외출 좀 해도 되냐규.”
싱거운 병원식 반찬에 투덜거리며 괜스레 반찬투정을 하다가 다솔이의 물음에 고개를 들었다. 다솔이는 그 싱거운 반찬을
열심히 먹으며 아침부터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다솔이가 일어나고 나서 꽤 규칙적인 타이밍으로 다솔이 핸드폰으로 문자가 계속 들어오고 있는 것 같은데?
“데이트 있냐?”
“앗, 들켰다!”
“니가 문자 주고 받을 사람이 황가철씨 밖에 더있냐? 가철 오빠랑 데이트?”
“응. 오빠 오늘 쉬는 날이래. 한달 내내 쉬는 날 없이 일하더니 오늘 짬이 좀 났나봐. 나 외출해도 돼?”
“내가 가지 말라고 다릴 붙잡았냐, 문을 잠갔냐? 너 없으면 똥오줌도 못가릴까봐? 갔다와.”
“하지만 독고산하가 너 돌보라고 일까지 쉬게 해줬잖아. 우리 초하애기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지요? 이리와, 엄마가
쭈쭈줄게. 우리 초하애기 엄마 데이트 나가면 안울 거에요?”
다솔이의 상황극 놀이에 들고있던 젓가락을 내려놓고 양 손 모두 가운데 손가락을 활짝 들어올렸다.
무척 진지한 표정으로 쌍뻐큐를 내보였으나 다솔이는 나지막이 웃으며 밥을 먹을 뿐이었다.
어쩐지 진 기분인데, 이거.
“아무튼 데이트 갔다와. 가철 오빠 쉬는 날 드물잖아.”
“진짜 갔다와도 돼? 독고산하한테 안이를거지?”
“이를거야. 나 뒤지게 아픈데 데이트 가느라 나 버렸다고.”
“히히, 나 오늘 가철 오빠랑 동물원 가기로 했다규.”
“어, 그래. 연인들의 필수코스라는 동물원? 가서 동물 똥냄새 실컷 맡고 와.”
“부러우면 부럽다고 하든가. 너도 나중에 독고산하 꼬셔서 가. 아니다, 독고산하는 유명인이니까 유진태 감독이랑 가.”
다솔이를 향해 헛소리 말란 의미로 손을 훠이 내저어주고 밥 먹는데만 열중했다. 다른 병원에 비해 유독 싱거운 것 같은
병원 밥은 정말 어찌나 맛 없는지 먹는 내내 이게 사람 밥인지 그냥 물질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룰루랄라 신이 난 다솔이를 힐끔 쳐다보다가 문득 독고산하와 내가 동물원에 간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손엔 헬륨 풍선을 들고 다른 한 손은 다정하게 독고산하의 손을 잡고…… 아냐, 독고산하가 날 사자우리에 안던져 넣는
것만으로도 다행일지 몰라.
“초하야, 나 갔다올게!”
“엉, 선물 사와.”
밥을 후딱 먹어치운 다솔이가 빠른 속도로 화장을 끝마치더니 ‘쪽!’ 소리가 나도록 허공에 뽀뽀를 한 뒤 병실 밖으로 벗어났다.
아직 난 식사도 못 끝냈는데 후다닥 달려나가는 다솔이를 보니 데이트가 좋긴 좋은가보다.
아니, 것보다 황가철 이 사람은 내가 병원에 입원했는데 다솔이만 홀라당 데리고 가면 다야? 적어도 날 병문안 정도는 해야지!
“아냐, 병문안 오면 내가 더 부끄러울 것 같아.”
하긴 교통사고랍시고 지나치게 멀쩡한 내 모습은 병문안 온 사람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 정도니까.
아, 그래도 좀 심심한데…… 독고산하한테 문자나 해볼까.
〔일어나셨어요? 병원 밥 맛 없어요ㅜㅜ〕
주섬주섬 식사한 것을 치우며 독고산하에게 문자를 보냈다. 연예인의 특성상 오전 활동보다 오후부터 새벽까지 활동하는 것이
더 많이 아직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밑져봐야 본전이니까.
그때였다. 핸드폰이 문자 도착을 알리며 징징 울어댄 것은.
“오, 일어나 있었네?”
의외로 빠르게 반응한 독고산하의 답장에 뭐라고 보내왔을까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핸드폰 폴더를 열었다.
확인 버튼을 누르고 비밀 번호를 입력했다.
〔사먹어.〕
“으,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절대 장문으로 입력하는 일 없는 독고산하의 성격답게 간결하고 정확한 의미를 담은 문자였다. 어쩐지 독고산하의 시니컬한
말투와 목소리가 귓가로 들려오는 것 같아 주위를 휙휙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는 것이 확실한데도 꼭 곁에 독고산하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돈 없어요. 나중에 산하씨가 사주세요*^^*〕
전송.
버튼을 누르고 가만히 아빠 다리를 하고 앉아 핸드폰을 노려보았다. 이번엔 얼마나 걸릴까? 뚫여저라 핸드폰을 쳐다보고 있길
1분, 다시한번 핸드폰이 문자 도착을 알리며 징징징 울어댔다.
〔사줘도 안먹잖아, 너.〕
“내가? 내가 사줘도 안먹는다고? 나 어제 족발도 디게 열심히 먹었는데! 헐!”
독고산하에게서 도착한 문자에 인상을 찌푸리며 냉큼 답장 버튼을 눌렀다. 다시 생겨난 빈 박스에 손가락을 열심히 움직여
메세지를 입력했다.
이게, 사주기 싫으니까 별 수를 다 쓰는구만? 내가 사주는데 왜 안먹어? 나 잘먹는 여자야.
〔제가요? 산하씨가 사주는데 왜 안먹어요? 저 잘 먹어요!〕
안먹는단 독고산하의 말에 깜짝 놀라 이모티콘도 하나 못붙이고 전송 버튼을 눌렀다. 아, 귀엽게 생긴 표정 하나정돈 넣을 걸.
아쉬운 마음에 입 맛만 쩝쩝 다시고 있는데 금세 답장이 날아왔다.
아마 독고산하도 딱히 스케쥴이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집에서 쉬다가 나와 문자를 주고받는 것이 분명했다.
〔핸드폰 사던 날.〕
“핸드폰 사던 날? 이게 뭐야? 핸드폰? 핸드폰… 아! 그 날! 헐! 그걸 아직도 기억해?”
독고산하 핸드폰을 물에 퐁당! 빠트린 내가 녀석의 새 핸드폰을 장만해주던 날, 점심을 사주겠다는 녀석의 말에 내가 점심 식사
하고 왔다고 대답한 것이 언뜻 스쳐지나갔다. 그때 독고산하가 점심 시간에 약속 잡고도 점심 먹고 나왔냐며 어이없어 했는데.
아니, 것보다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냐? 독고산하 이거 진짜 뒷끝 장난 아니네.
독고산하가 보낸 문자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자니 뭐라고 답장을 보내야할지 머리속이 하얘졌다. 에이씨.
일단 답장 버튼을 눌러놓고 빈 박스에 나름대로 이것저것 입력해보았으나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라고 말하며 구구절절 설명하기엔 너무 구차해보였고 기억나지 않는다고 잡아떼기에도 좀…….
“에이씨, 몰라.”
결국 애교 작전으로 나가기로 했다. 구구절절 설명하지도, 잡아떼지도 않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아잉♡〕
메세지 박스의 하트와 떨떠름한 내 표정이 맞물려 굉장히 아이러니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뭐, 독고산하는
문자 메세지만 볼 뿐 내 표정은 볼 수 없으니까.
전송 버튼을 누르면 독고산하에게 상욕을 듣는 것이 아닌가 걱정스럽기도 했으나 에이 모르겠다 하고 버튼을 꾹 눌렀다.
‘전송 중’이라는 화면이 아주 잠깐 뜨다가 이내 ‘전송을 완료하였습니다’라는 화면이 떴다.
핸드폰을 쥐고 있는 손이 살짝 떨렸다.
차마 두 눈 제대로 뜨고 핸드폰을 볼 수가 없었기에 실눈을 뜬 채 핸드폰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데 핸드폰 불빛이 반짝-하고
빛나더니 이내 징징징 울어대기 시작했다.
“하느님성모마리아님부처님예수님알라신님, 제발 욕이 써있지만 않게 해주세요.”
아무리 싸가지없는 녀석이어도 어지간하면 욕은 안하는 것 같기에 핸드폰을 붙잡은 채 이름 모를 여러 신을 향해 중얼거렸다.
문자메세지 확인 버튼을 누르고 비밀 번호를 입력하려는 순간, 핸드폰이 다시한번 짧게 징징징 울어댔다.
독고산하가 문자를 두 통이나 보냈나?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확인 버튼을 눌렀더니 액정 화면이 통화 화면으로 바뀌었다.
그러니까… 독고산하에게 온 문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에이씨, 누구야? 진짜 타이밍 한번 최악이네.
“누구세요?”
- 초하씨. 저예요, 유진태. 일어났나보네요, 아직 자고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유, 유진태 감독님? 어… 자, 잠시만요!”
핸드폰 액정을 다시 확인해보니 유진태 감독의 이름이 자랑스레 쓰여있었다. 그것도 확인 못하고 까칠하게 전화를 받았으니,
민초하 에라이 멍청아!
아직 다듬어지지 못한 목소리를 헛기침 두어번으로 다듬고 다시 핸드폰을 얼굴 가까이에 가져갔다.
아, 그러고보니까 독고산하가 보낸 문자 메세지 아직 확인 못했는데.
“바쁘실 텐데, 무슨 일이세요?”
- 초하씨랑 아침 식사 같이 하려구요. 병원 밥들은 원래 맛 없잖아요. 설마 벌써 식사 하셨어요?
“에… 그게……”
다솔이가 떠난 뒤 내가 깨끗하게 비워놓은 밥그릇과 반찬 그릇들이 정면에서 날 향해 ‘안녕?’하고 인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에라 모르겠다, 두 눈 꽉 감고 유진태 감독을 향해 말했다.
“아직 안먹었어요.”
그래, 난 아직 아무것도 안 먹은거야! 저건 전부 다솔이가 먹은 거야. 하하하!
- 그래요? 다행이다. 그럼 저 지금 병원 거의 다 왔으니까 내려올래요?
“네, 지금 내려 갈게요.”
- 그럼 이따 봐요.
“아, 근데 감독님!”
전화를 끊으려는 유진태 감독을 다시 불렀다. 아침 밥을 먹으러 가자기에 냉큼 좋다고 대답하긴 했는데 무심결에 내 모습을
슬쩍 쳐다봤더니 당당하게 환자복을 입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난 지금 입원 환자였다.
- 왜요?
“아니, 그게… 제가 지금 환자복이라서……”
- 환자복이 어때서요? 초하씨 환자복 입어도 예뻐요. 어차피 제 차 타고 갈거니까 걱정 말구요, 멀리 안갈거에요.
“넵. 그럼 지금 바로 내려갈게요!”
- 그래요, 저도 정문 바로 앞이에요.
나지막이 웃는 유진태 감독에게 기다리라는 말을 해주고 전화를 끊었다. 내려가기 전 거울을 보고 눈꼽과 고추가루를 깨끗이
제거했다. 아직 세수랑 양치를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세수 안한 건 눈꼽 뗐으니 티가 안날 것이고 양치는…….
“가글!”
급하게 병실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가 칫솔 옆에 놓여져있는 가글을 집어들었다. 양치할 시간이 넉넉치 않았기 때문에 대충
가글을 입에 넣고 헹군 다음 빠르게 뱉어냈다.
“설마 양치 안한 거 알아차리진 않겠지? 으, 밥 먹을 때까지 말 조심히 해야겠다.”
화장실에 붙어있는 거울에 모습을 살짝 비춰보고 부스스한 머리에 물을 좀 묻혔다. 정문에 도착했다던 유진태 감독의 말이
얼른 내려오라는 재촉의 말처럼 등을 떠밀어서 정신없이 그대로 병실 밖으로 나와버렸다.
그리고 엘레베이터에 탑승해서 1층 버튼을 누르고 난 후에야 내가 핸드폰을 안가지고 나왔다는 걸 깨달았다.
“아, 내 핸드폰! 아씨, 가지러 가야하나?…… 에이 뭐, 급한 연락 안오겠지.”
머리를 긁적거리며 엘레베이터에 기대고 섰다. 점점 1층에 가까워지는 것을 보며 룰라랄라 콧노래가 절러 나왔다.
내가 존경해마지 않던 유진태 감독이 날 좋아한다고 하질 않나, 아침을 같이 먹자고 하질 않나.
아, 사람은 오래 살고 봐야해.
“뭐 먹으러 가려나? 맛있는 거 먹었으면 좋겠다. 아, 근데 왜이렇게 찜찜하냐? 나 뭐 안했나? 아닌데… 눈꼽이랑 고추가루도
제거했고, 머리에 물도 묻혔고……. 에이씨, 몰라.”
엘레베이터가 1층에 멈추며 ‘띵-’하는 소리를 냈다. 씨익 웃으며 엘레베이터에 한 발을 내딛는 순간, 이미 독고산하가 보낸
답장 따윈 깨끗하게 까먹은 후였다.
***
발바닥이 너모 뻐근합니다. 으허허. 수요일날 베바도 안하고(……).
아무튼! 추워지는 날씨에 감기 조심하시고, 읽어주신 분들과 꼬리말 달아주신 모든 분들께 사랑을 담아♡_♡
야호♬ 올림.
첫댓글 까,까먹다닛......!! 이러다 병실에서 한판하고있는거아니예요ㅠㅠ? 산하군 은근 성깔있는데...~
ㅋㅋ 팬카페에서 보구 여기서 또 봐도 역시 재밌어요!!
산하가 뭐라고 썻었을지 궁금하다 ㅎㅎㅎㅎ
산하가 아침사준다고 할것 같아요 ㅜㅡㅜ 다음편 기대할께요 > < //
설마 산하랑 마주치는건 아니겠지?? 감독님 은근 쎄게 나가시네ㅎㅎㅎ
왠지 문자에 독고산하가 중요한 문자를 보낸거 같은데.... 전 담편보러 ㄱㄱ
아침사서 가지고 오는거아닌가ㅠㅠ마주칠것같아ㅋㅋㅋ
아우
ㅋㅋㅋㅋㅋㅋㅋ다음편 얼른~
재미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