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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일반열차가 최소한 경부선은 1시간에 아무리 많아도 3편(지선 열차 , 구간열차 포함)이고 다른 시간대에는 2편에 다니지 않게 되었고 통일호가 사라졌기 때문에 더 과거의 기존선에 대한 향수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철도여행문화사의 관광교통시각표를 국회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찾아서 복사를 많이 했었다. 비록 그 열차의 정확한 열차 칸의 수 등을 알 수는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과거의 열차를 돌아보면 참 흥미로운 일들이 많았다. 참고로 관광교통시각표는 이 글을 쓴 시점으로부터 30년 전인 1974년 8월 15일 수도권전철의 개통과 새마을호 열차로의 이름 개칭 등을 기념하여 월간지가 되었으며 그 전에는 비정기적 시각표만이 나왔으며 그 시각표를 지금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 1974년 9월호를 보면 그리운 이름들을 많이 찾을 수 있다. 특급 열차에 각각 비록 많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름이 붙여져 있어 협동호나 통일호 , 풍년호(호남선) , 증산호(전라선) , 부흥호(장항선) , 약진호(중앙선 , 영동선 , 태백선) , 충무호(경전선 보통열차) , 그리고 심지어 새마을호도 기본적으로 시간표에 나온 등급은 특급이었고 열차 이름만 달랐다. 그 외에도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진 북평(현재의 동해시) - 삼화 구간 , 지금은 정기 여객운행을 중단한 삼천포 - 진주 , 북평 - 삼척 구간 , 점촌 - 문경/가은 구간 등의 그리운 시간표를 찾을 수 있다. 게다가 그 당시에는 보통여객열차운임에 급행운임(여기에서 새마을호와 일반 특급의 요금 차이가 나게 되었다) , 좌석지정요금(여기서 특실과 일반실의 차이가 났으며 보통급행은 지정요금을 받지 않았다)을 합쳐서 받는 요금제도였는데 문제는 그 운임 구간이 세분화되지 않다 보니 얼마 전까지의 운임 제도보다 비효율적인 면이 많았다. 게다가 그 당시에는 통행세라는 것이 있었는데 지금은 교통세 등으로 단지 분화되었을 뿐이지만 그래도 분명 흥미로운 면이 존재한다.
간단히 정리해 보면 그 당시에는 야간통행금지가 있어서 대구 , 부산 기준의 막차 시간을 늦게 할 수 없어서 경부선 막차가 17시에 있었다. 그런데 사실 지금도 시각표 개정 이후 무궁화호 경부선 막차가 부산행은 16시이다. 물론 동대구에서 갈아탈 경우에는 17시 10분에도 다닐 수는 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일부 진주행을 빼고는 특급열차는 1시간에 1편밖에 다니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새마을호만 출발하는 시간대도 존재했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고속열차 같은 것이 다니지 않았지만 증비 차량 부족으로 그랬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완행열차도 용산발로 2편 정도 다녔다. 그리고 동대구발 부산행 보통급행(지금의 구간열차들의 근원)도 부산행 2편,마산행 1편 정도가 다녔었다. 그리고 특급열차의 소요 시간은 5시간 30분 정도였으며 새마을호도 막 데뷔한 그 당시에는 서울-대전-동대구-부산역만 정차하였는데도 4시간 50분이 걸렸었다.
호남선의 경우에는 목포 , 광주에 각각 특급열차가 3편씩 다녔으며 다만 새마을호는 다니지 않았다. 그리고 특급열차는 그 당시에는 익산 - 목포까지 다 단선이라서 광주까지 5시간 25분 , 목포까지 6시간 30분이 넘게 걸렸으며 익산(그 당시에는 이리) - 목포까지는 3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함열 , 평택에 정차하는 특급 열차가 거의 없었으며 연산이나 두계 , 백양사에는 아예 정차하지 않았었다. 그 외에도 대전 - 이리 구간에는 완행열차가 지금보다 좀 더 많이 다녔으며 오후 시간대에도 군산선 직통이기는 하지만 한 편이 다니기도 했다.
전라선의 경우에는 국토순환열차의 일부인 협동 2호(순천 경유 진주행) , 야간 보통급행 1편(시간은 엄청나게 많이 걸렸서 거의 10시간이 걸렸다) , 특급 1편이 있었으며 특급열차의 시간은 무려 7시간 30분이었으며 게다가 객차 합병 운행이라는 지금은 볼 수 없는 특이한 방식을 취하였다.
장항선의 경우에는 서울발 기준으로 총 7왕복이었으며 천안발 완행열차가 2편 있었고 서울발 열차도 대부분 완행열차였다. 단지 2왕복이 특급열차였을 뿐이다. 게다가 4시간 35분이나 시간이 걸렸다. 참고로 중앙선의 경우에는 특급이 1왕복밖에 없었으며 완행열차가 1왕복이 더 있기는 했다. 그 외에 중앙선에서 흥미로운 것은 바로 영주발 안동행 열차가 3왕복이나 있었으며 제천발 영주행 완행 열차도 1왕복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좌천발 부산행 통근열차 1왕복이나 그 외 동해남부선 열차 등도 많았다.
태백 , 영동선을 보면 그 당시에는 영동선 경유하는 주간 특급 1왕복이 있었으며 철암행 보통열차가 1편(10시 발) 있었다. 그리고 태백선 경유 주간 특급은 14시 발 1편이었으며 영주-강릉 구간에는 주간에 완행 열차가 다니고 있으며 또한 경포대 행으로 연장되었다. 그 외에도 삼척선의 열차 1왕복도 경포대 행으로 연장이 되기도 했다. 또한 도계 - 강릉 간에도 상당히 완행 열차가 자주 다녔다. 또한 강릉행 야간열차도 아직 보통급행이었는데 침대차가 달려 있었다. 그 외에도 제천 - 고한 구간에 완행열차가 다니고 있으며 그 외에도 아직 구절리까지 개통되지는 않은 여량행 보통 급행열차가 다니고 있다.
그리고 최근 단거리 새마을호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는 대구선을 보면 그 당시에는 8편의 보통열차가 다녔으며 급행열차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 때는 대구 - 경주가 2시간 , 포항까지는 1시간이 더 걸렸다. 그리고 충북선의 경우에는 보통열차가 5편 정도가 다녔으며 제천발 열차는 보통 급행 열차였다.
그 외에도 수원과 송도를 잇는 수인선은 8편이나 다녔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지금은 여객운행을 중단한 교외선에는 6왕복이 다녔으며 청량리 - 용산 서울간에는 7왕복의 보통 열차만 다녔다. 그 외에도 진해선은 7왕복이나 다녔었다. 경전선의 경우에는 목포발 순천, 여수행 보통급행 열차가 다니기도 했지만 주간에는 다른 열차는 서울행 열차를 뺴고는 다 완행열차였다.
비록 속도가 느리고 주요 간선의 열차가 다니기 힘들었다는 단점은 있었으며 자동차 교통의 미비 때문에 이런 열차 운행이 가능했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과거에는 그 과거 나름대로의 낭만이 있었을 것이다.
2. 합리화로의 변화
그리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의 경부선 등의 주요 간선은 매우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우선 재미있는 사실이 있는데 1975년 4월에 23시에 출발하는 심야 새마을호에 침대차가 달린 적이 있었는데 수원역 등에 정차하였었다. 그러다가 1975년 6월 시간표에서는 다시 특급으로 복귀하였다는 것인데 그것이 시간표 오류일지는 알 수 없다. 1976년 7월에 특급열차가 대폭 늘어서 대부분 0분과 30분에 경부선 열차가 출발하게 되었다. 그리고 77년 9월에 2왕복의 우등열차가 경부선에 도입되고 1왕복의 야간 우등열차도 도입된다. 그 뒤 1981년쯤에는 우등열차가 상당히 도입되어 20 , 40 , 00의 패턴으로 출발 시간이 맞추어진다. 그리고 경춘선에 특급열차가 도입되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그 뒤 새마을호의 소요 시간이 10분 줄어든 뒤 85년 11월에 드디어 대 변혁이 일어났다. 2004년 3월까지만 해도 유지되었던 경부선 00, 무궁화호 15 및 45 , 기타 열차 30분 출발 패턴이 만들어진 것이다. 호남선도 우등열차가 조금 더 도입되면서 거의 1시간 1회 출발 빈도를 맞추고 05 , 20 출발 시각을 맞추게 되었다. 그리고 전라선도 이제 점점 더 열차가 늘어나게 되어 주간열차 6편 , 야간열차 3편까지 늘어나게 된다. 다만 아직 독자적 출발 패턴을 맞추지는 않고 호남선 출발 패턴의 빈 자리에 출발하였다. 그리고 경춘선의 특급열차는 계속 늘어나서 마침내 대 변화시에는 무궁화호가 경춘선에 무려 5왕복이나 들어오게 되고 보통열차는 4왕복으로 줄어들게 된다. 장항선의 경우에도 보통열차가 천안발을 포함해도 5왕복으로 줄어들게 되고 무궁화호와 통일호가 그 대신 엄청나게 증가하게 된다. 그리고 중앙선의 경우에는 아침 6시에 출발하는 없어진 비둘기호가 아직 있는 것과 새마을호가 아직 없었다는 것 , 제천발 대구행이 아직 비둘기호였다는 것 등을 제외하면 지금의 기본적 운영체계를 거의 확립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영동 - 태백선도 마찬가지인데 다만 새마을호가 도입이 안 되었고 편수가 약간 적다는 점 , 그리고 영동선의 비둘기호가 아직 많이 남았다는 점 등을 빼면 마찬가지이다. 즉 85년 11월까지 계속된 속도 확장 노력을 바탕으로 한 유선형 새마을호의 일부 데뷔 및 많은 곳의 속도 향상과 그에 따른 대 변혁이 일어나 주요 간선의 경우에는 2004년 3월까지의 시간표 구조를 형성하게 된 것이며 , 20대~30대가 추억을 가지는 열차도 대부분 이 이후에 다닌 열차들일 것이다. 물론 주요 간선이 아닌 곳에서는 이 이후에도 계속 열차들이 없어지면서 쇠퇴해 왔다.
그 뒤에도 지금까지 시간표는 계속 변화해 왔고 특히 통일호의 격상 때문에 통일호만 다녔던 정차역을 지닌 무궁화호들이 과거에도 많이 생겨서 문제가 된 적이 있다. 특히 중앙선의 급행통일호를 격상한 무궁화호나 경부선의 일부 무궁화호의 경우에는 상당한 비아냥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외에도 통일호 특실 전용 차량이 등장하거나 새마을호 별실이 시간대를 옮기다가 결국 비즈니스 카로 이름을 바꾸어서도 장사가 안되어 결국 사라지기도 했다. 그리고 장항선이나 전라선의 경우에는 독자적 출발 패턴을 확보하기도 했다.
3. 얼마 전까지 다녔던 최근 편성들의 특징
그러다가 99년쯤에 장거리 통일호를 없애고 비둘기호를 특정통일호로 바꾸고 열차 번호를 바꾸었으며 열차의 시각표상 운행 시각에 약간씩 여유를 주게 되었다. 그 뒤로도 정차역이 확대되기는 했지만 그렇게 큰 변화 없이 2004년 3월까지 운행을 하게 되는데 , 그 당시에는 일부 편성에는 확실한 장대열차가 다니게 되었다.
이 때 새마을호는 대부분 16량 장대열차였으며 경전선 열차나 18 , 32열차 등이 8량 PP였으며 28 , 30열차 등이 일반실 5량 , 특실 1량 , 식당차 1량 편성이었다. 그 외도 14 , 24 , 9, 27열차는 새마을 PP 초기에 도입한 6량PP가 같이 중련된 14량 편성이었다.
무궁화호는 일부 열차를 제외하면 경부선의 경우에는 대부분 기관차를 중련하고 9량 이상의 편성을 한 장대열차였다.
경부 구간 총 50편 중에서 (그 외 장거리 구간열차 5편)
203 , 204 , 216 , 218 , 219 , 220 , 221 , 222 , 224 , 226 ,228 , 230 , 231 , 232 , 237 , 238 , 247 , 249 , 251 , 252: 비장대열차
203의 경우에는 새벽차 다음 차의 한계 , 219나 221같은 경우에는 업무 시간 등의 한계가 있으며 그래서 아예 221은 빠르게 가는 것을 택하였다.(5시간 7분) 231같은 경우에도 13시 45분에 역에 나오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221과 같은 길을 택하였다. 237은 황간 , 안양 정차와 그 중에서는 그럭저럭 괜찮은 소요시간으로 절충을 택한 경우이다.(5시간 17분) 247, 249, 251은 역시 주거지가 부산일 경우가 주거지가 수도권인 경우보다 낮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즉 상행에서는 비장대열차가 오전에 주로 배치되고 하행에서는 저녁시간대에 많이 배차되는데 그 이유가 바로 자신의 주거지로 밤 늦게 돌아가려는 수요의 차이가 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구특전 : 213 , 214 , 243 , 244 - 이것은 운용상 특별한 경우이며 따라서 가급적 사람이 많은 시간대에는 안 넣으려고 노력한다.
반이 장대열차였으니 결국 평균 9량의 장대열차 반 , 평균 7량의 비장대열차 반으로 대략 8량편성이고 식당열차 등을 빼면 결국 평균 7량 편성이 된다. (8200호대의 25편 13량 편성으로도 무궁화호 자체의 좌석 감소는 감당이 안된다는 것이다.)
현재는 거의 다 기관차 단행 8량 편성으로 장대편성은 거의 없어졌다. 게다가 무궁화호의 절대 수가 7왕복 , 그리고 해운대행 1왕복으로 줄어든 상태이다. 결국 일반열차의 좌석 감소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대신 새마을호에나 겨우 장대편성이 남아있을 뿐이며 그것도 비싼 요금이라서 억지로 남겨 놓은 것 같은 느낌마저 들 때가 있다.
4. 기존선 장대열차와 무궁화호 구 특전 및 특실에 대한 그리움
기존선 무궁화호 장대열차는 4인 이상의 일반적인 가족들이 차를 끌고 주말에 경부고속도로로 나오는 대신 철도 여행을 할 수 있도록 할 정도의 싼 요금(특히 중고등학생 자녀의 경우에는 우등고속에서는 할인을 하지 않지만 무궁화호 요금은 할인을 해 준다)인 왕복 15만원 이내의 싼 요금 과 주말에는 늘 모자랐지만 서민들에게는 만족스러운 수송력, 그리고 특히 고속버스를 타기 힘든 지역에서는 훨씬 더 나은 배차간격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무궁화호 특실도 마찬가지였다. 학생할인을 받으면 우등고속보다 싼 운임으로 거의 우등고속 수준의 편의성을 누릴 수 있었으며 레일로드 잡지가 제공되었으며 거주성 면에서는 우등고속보다 좀 더 나은 면모를 보였다. 게다가 무궁화호 특실 제도를 일률적으로 없애 버리면서 KTX 비수혜지역인 영동선에 다니던 최고의 야간이동 수단이었던 구 529열차의 특실을 없애 버렸다. 결국 강원도 지방을 무박 여행하는 사람들의 선택폭만 좁아져 버린 셈이 되었다. 이 문제만이라도 어떻게 해결을 했으면 좋겠다. 비록 여객전무 제도 등의 문제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KTX 비수혜지역이라는 명분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예외를 둘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구 특실 전용 열차에 대한 그리움이 생긴다. 구 특실 전용 열차는 99년까지만 해도 무궁화호 특실 요금만 받고 운행해 엄청난 말썽거리가 된 열차였다. 그러나 그 뒤로는 기존 무궁화호보다 더 편한 좌석 덕에 형평성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구 213열차나 244열차를 제외하면 수요가 적은 시간대에 배치를 했기 때문에 그런 시비를 다행히 피해갈 수는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기존의 무궁화호 가지고도 수송력이 심각하게 모자라기 때문에 결국 지금은 구 특실 전용 열차가 다니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 이 열차를 쓸 곳은 많다고 생각한다. 특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열차에 이 구 특실 전용 열차를 투입하는 것도 좋을 것 같으며 아니면 열차에 투입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경전선에 투입을 하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식당차”가 아깝다는 것이다. 야행열차로 쓸 경우에는 특히 문제가 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식당차가 완전히 비게 된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구특전 1편성의 식당차를 빼고 그 식당차에 구특전 3량을 붙인 뒤에 다른 편성에서도 구특전 3량을 빼면 식당차가 없는 구특전 6량편성과 식당차가 있는 구특전 2개 편성이 만들어진다. 그런 식으로 단편성화해서 수요가 없는 KTX 비수혜지역에 구특전을 투입하는 것도 서비스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다.
결론 : 떠나는 사람에게 결론은 사치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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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굉장한 글이네요. 잘 봤습니다. 92년도엔가, 통일호 침대열차를 타고 동해까지 갔던 기억이 나네요. 영주를 경유했는데, (舊 #511열차의 전신이 아닌가 싶은데) 영주까지는 맨 뒤칸이었기에 조용히 잘 잤는데, 영주 이후부터 기관차 바로 뒤칸이 되면서 잠을 못이룬 기억도 이젠 아득한 옛날이군요~
그리고 당시엔 동해/강릉 방향으로는 무궁화가 별로 없어서, 14시에 출발하는 EEC가 쵝오였던 기억이 납니다. 거의 90년대 초반이었는데, 그때 #213열차였나 그랬고 종착역인 동해에 19시 50분에 도착했었습니다. 석항역에서 짝꿍 #214와 교행하던 기억도 나네요. 당시엔 용문/신기/정동진 이런데 절대 안섰고요.
#511 열차의 전신 맞습니다...^^ 저도 이 열차타고 분천까지 가서 분천역에서 2시간 정도 시간보내고, 울진행 버스 탄 기억이 납니다.
93년 당시에는 무궁화호,새마을호 정기열차는 동해까지 밖에 안갔으며, 통일호 2편과, 주말열차 무궁화호 1편성만 강릉까지 갔었습니다. EEC 특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EEC 특실을 탔었는데, 무궁화호 특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통일호 특실보다도 못해서, 욕 엄청나게 한 기억이 납니다.^^
통일호 시절 90년대엔 구#511가 #299, #399로 불렸습니다. 당시엔 23:00에 량리출발이었으며 침대차를 편성했으며 원주 5분, 제천 10분, 영주 10~15분 정도 정차해 지금 운행중인 무궁화와 최종도착역 도착시간이 같았습니다. 한번도 이용해 본적은 없지만 어렸을적 그놈의 침대차가 어찌나 부럽던지.... 허리 바싹 세우며
추석때 엄청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입석으로 분천역까지 간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군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정말 재미있는 열차임은 분명합니다.
옛날에는 큰역들에는 꽤 오래 정차했던거같은데 요새는 왜 안그런걸까요? 어릴때는 분명히 제천같은데서는 내려서 가락국수 사오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빨리 뛰어가야 했던 기억이 나는데 말이죠. 국수파시는 분들도 기차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면만 담아놨다가 사람들 오면 국물만 붓고 돈받아서 바로 주고 그랬는데.
정차시간이 최소 5분씩은 됐던것같고, 늘상 국수 사려는 사람들때메 출발시각이 되면 차장님이 빨리 타라고 호루라기 불고 그랬었는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