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특강
수백명 인터뷰한 내용 소설 문장으로 녹여냈다
서울대총동창신문 제537호(2022.12.15)
‘파친코’ 쓴 이민진 소설가
사람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고
내 역할은 그대로 드러내는 것
쓰고 있는 작품 ‘아메리칸 학원’
90년대 외환위기가 역사적 배경
“제가 만나는 여러 나라의 한국인들에게 일반화를 피하라고 얘기합니다. ‘한국 남자는 이렇다, 한국 여자는 이렇다, 한국 엄마는 이렇다’ 같은 말을 제발 그만하라고요. 당신으로 인해 모든 한국인에게 그 말이 적용되기 때문이죠.”
‘파친코’ 이민진 작가가 10월 22일 서울대 미술관 오디토리움을 찾았다. 현대 미국과 일본의 한국인 이민 공동체 삶을 탐구한 소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과 ‘파친코’를 써 한국인 디아스포라(이주민) 주제의 대표 작가가 된 그다. 이민자들이 경험하는 인종 젠더 국적 정체성, 사회경제적 격차와 사회 이동성 등을 섬세하게 담아 호평을 받았다. 삼성행복대상 등을 수상하기 위해 방한한 그를 정치외교학부에서 초청해 이번 강연이 성사됐다. 영어로 진행된 강연은 “많은 한국 학생들이 서울대를 꿈꾸듯 나도 그렇다. 티셔츠라도 사가야겠다”는 농담으로 시작했다.
이민진 작가는 소설을 쓰기 전 철저한 사전조사를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수백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글에 녹여내는 자세는 인류학자에 비견된다.
“전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그가 원하는 최고의 모습으로 그를 봐주려고 노력해요. 가끔은 이상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도 만나죠. 그러면 그가 정말로 되고 싶은 모습이 무엇일까 나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그 모습과 소통하려 노력해요. 내 눈앞의 사람이 아니고요.”
인터뷰 단계부터 발현되는 특유의 휴머니티는 작가로서 그가 가진 재능이다. “사람은 모순으로 가득차 있어요. 나는 그런 모순들이 판단 없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해주죠. 사람들은 판단 받고 있다고 생각할 때 솔직하게 말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심지어 거짓말을 하고 있을 때도 믿어주려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도 모르고 많은 거짓말을 하지만, 괜찮아요. 왜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지 이해하는 게 제겐 더 재밌기 때문이죠.”
집필 중인 차기작 ‘아메리칸 학원’도 한국인들과 만남에서 영감을 얻었다. ‘한국인 3부작’의 마지막 편으로 한국인의 교육열을 다룬다. “세계 어느 곳에서든 제가 만난 한국인은 교육에 강한 집념을 보였어요. 코리안 3부작을 끝내기 위해 교육에 대한 책을 쓰기로 결심했죠. 교육이자 지혜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쓰면 쓸수록 이건 ‘스테이터스(Status·지위, 상황)’에 관한 얘기 같았어요. 소설의 역사적 배경이 외환위기인데, 한국인들은 외환위기를 통해 세계적으로, 개인적으로 어떤 ‘Status’를 잃었을까. 우리 안의 불안감은 왜 다음 세대에게 안정과 안전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는가. 무관한 이들에 의해 통화가 평가절하되는 충격을 겪었고, 교육은 그 충격과 불안, 역사적인 불평등의 자리를 대체했죠.”
제목에 ‘학원’을 번역 없이 한국어 그대로 ‘Hagwon’으로 쓴 것은 한국인의 교육열과 욕망을 집약한 단어로서 타국의 독자들에게 이해시키고 싶었기 때문. 매슬로우의 5단계 욕구 이론에 관심이 많다는 그는 이민 초기 세대와 3, 4세대 간의 갈등도 이 이론으로 설명했다. “이민자 부모들은 자녀들이 일하기 좋아하지 않고 불평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해요. 그럼 전 그들에게 말하죠. ‘당신은 자녀들에게 생존과 안정, 사랑을 주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이제 아이들은 (5단계 욕구 중) 존중과 자아실현을 원하기 때문에 불평하는 것이다. 당신이 잘했기 때문에 그들이 불평하는 것이니, 자신을 토닥여 주라’고요.”
자신이 26세에 변호사를 그만두고 12년이 걸려 38세에 첫 소설을 내기까지 여정도 ‘존경의 욕구’ 단계론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왜 역사에 많은 불평등이 있었는지 이해하고 싶었어요. 정말로 내게 가치 있는 질문들에 답하는 자아실현을 하려고 노력했죠. 오랜 시간이 걸렸고 모두 어리석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실로 경제적 안정과 많은 특권을 잃었지만, 난 내 질문이 중요하다고 정말 믿었어요.” 그래서 ‘아메리칸 학원’은 그가 쓰려는 가장 중요한 책이다.
“지혜와 지위, 그리고 교육을 이해하는 문제를 꼭 다루고 싶었고, 그것이 얼마나 이 세대를 짓누르고 있는지 보았으니까요. 여러분이 가진 꿈들도 여러분이 계속 나아갈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중요한 것이길 바랍니다.”
이태원 참사를 보며 20대 아들을 둔 부모로서 무척 마음이 무겁고 슬펐다는 그는 강연장을 메운 젊은이들에게 따뜻한 격려를 건넸다. “왜 젊은 사람들이 희생당해야 했을까, 계속 생각했어요. 팬데믹은 여러분이 숨 쉬는 것만으로 서로를 해칠까 두려워하게 했고 모일 수 없게 했어요. OECD국가 중 노인 빈곤이 가장 높은 한국에서 여러분은 부모님의 은퇴도 걱정해야 하죠. 그렇지만 작가로서, 부모로서, 교수로서 전 조심하란 말을 들어도 여러분이 ‘노(No)’라고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여러분은 쉬고, 놀아야 해요.”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