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松 건강칼럼 (681)... 삼일운동 100주년
박명윤(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3・1운동기념 삼일절(三一節)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이날은 우리의 의요 생명이요 교훈이다/ 한강은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 선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 동포야 이날을 길이 빛내자.” <3・1절 노래>는 1946년에 안호상 문교부 장관의 의뢰로, 정인보의 3・1절 노래에 당시 숙명여대 음악과 강사였던 작곡가 박태현이 곡을 붙인 것이다.
“나의 유일한 슬픔은 나라를 위해 바칠 목숨이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유관순(柳寬順, 1902-1920)열사의 말이다. 이화학당 1학년이던 1919년에 3・1운동이 벌어지자 고향인 천안으로 내려가 20일 동안 약 3천여명의 사람들을 모아 아우내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이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으나, 옥중에서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독립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군(日本軍)의 무자비한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18세의 꽃다운 나이에 순국(1920.9.28)했다.
우리나라 임시정부 이승만 초대대통령에 이어 1924년 제2대 대통령을 역임한 박은식(朴殷植, 1859-1925)이 한민족의 독립투쟁사를 3・1운동을 중심으로 저술한 <한국독립운동지혈사(韓國獨立運動之血史), 1920년 상해 유신사 간행>에 따르면 3・1운동 당시 한반도 전체 인구의 10%나 되는 202만여 명이 만세시위에 참여했다. 살해된 조선인은 7500여명, 부상자는 1만6000여명, 체포・구금된 수는 무려 4만6000여명에 달했다.
3・1절(三一節)의 역사는 1919년 대한민국의 독립선언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발족과 함께 시작된다. 임시정부 내무부는 1920년 2월 3・1독립선언 1주년 기념식 준비위원회를 설치하고 갖가지 행사를 준비하였다. 1주년 삼일절은 임시정부 주최의 기념식과 교민단(僑民團) 주최의 축하식, 시가행진, 기념공연 등으로 성대히 거행되었다.
국내에서 열린 최초의 3・1절 행사는 해방 이후인 1946년 보신각(普信閣) 앞에서 성대히 거행되었다. 이승만 박사의 개회사, 김구 선생의 경축사 순으로 진행되었으며, 경축 음악회와 전시회 등 다채로운 문화예술행사가 열렸다. 1949년부터 삼일절은 4대 국경일(國慶日)로 지정되어 태극기를 게양하고 공휴일로 하루를 쉰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7월에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발족하였다. 2019년 3월 1일 전국 각지에서 행사가 개최되었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는 대통령과 각계 인사와 시민 약 1만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이 거행되었다. 국민대표 33인의 행진과 독립선언분 낭독, 독립유공자 포상 등이 진행되었다.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역사를 담은 현충(顯忠)시설은 방문하는 시민들의 발걸음도 늘고 있다. 국가보훈처(國家報勳處, Ministry of Patriots and Veterans Affairs)에서 현충시설로 지정한 국내 독립운동기관은 총 60곳이지만, 국가 예산 지원은 5곳뿐이며 나머지는 지자체, 민간 기업 등에 의지하고 있다.
필자는 삼일절이 되면 1919년 최연소자(30세)로 청년층을 대표하여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민족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연당(硏堂) 이갑성(李甲成, 1889-1981) 선생을 추모한다. 독립운동가 이갑성은 大邱 출신으로 서울 세브란스연합의학교에서 약학을 공부하고 1915년부터 세브란스병원 약제실에서 제약주임으로 근무했다. 그는 원로격인 민족대표들과 학생들과의 매개 역할을 맡아 학생 시위를 조직했다.
이갑성은 독립선언문의 전국 배포, 기독교 지도자와 학생들의 연락망 형성, 해외 언론 기고 등 3・1운동을 대내외에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1933년 신간회(新幹會) 사건으로 중국 상해로 망명했다가 1937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년간 징역을 살았고, 흥업구락부 독립운동자금 제공 사건, 상해 독립운동 사건 등으로 수차례 옥고(獄苦)를 치렀다.
해방 후 이갑성은 독립촉성국민회 회장을 지냈으며, 1947년 미군정 시대 과도입법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50년 제2대 민의원에 당선되었고, 1952년 국민회 최고위원, 1953년 자유당 최고위원, 1956년 선거에서 부통령후보로 출마, 1963년 민주공화당 창당 발기위원, 1965년 광복회 회장 등 정치인으로서 행보를 이어갔다. 1962년 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를 받았다. 80세 이후에는 33인의 유일한 생존자로서 해마다 3・1절기념행사에 참석하다가 1981년 9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필자는 올해 삼일절 저녁에 <삼일운동 100주년기념 칸타타(cantata) ‘자유만세’>를 관람하면서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사단법인 ‘동의(東醫)난달’이 주최하고 ‘시스띠나(Sistina)’가 주관한 ‘자유만세’는 오후 7시30분부터 9시50분까지 여의도 소재 영산아트홀에서 열렸다. 지난 3년동안 준비하여 무대에 올린 ‘자유만세’ 대본과 작사는 김희보 서울장신대 명예학장이 맡았으며, 작곡은 박현미 시스띠나 교회음악원장이 했다. 지휘는 이호중 종합예술기획 시스띠나 대표 겸 사단법인 동의난달 예술자문위원이 했다.
자유만세 김희보 작사자는 “삼일운동 100주년 기념 칸타타 <자유만세>가 31곡인 것은 ‘삼일운동’을 상징하는 숫자이다. 박현미 작곡, 이호중 지휘에 의한 오늘의 연주는 ‘우리는 여기에 우리 대한민국이 독립국(獨立國)임과 한국 사람이 참다운 자유, 평등, 인권의 자주민(自主民)이다’하는 것을 선언하는 데 뜻이 있다.”고 말했다.
‘자유만세’는 제1부와 제2부로 구성되어 있다. 전문 연주자들로 구성된 일산 심포니오케스트라가 음악연주를 그리고 파주시립예술단, 코리아싱어즈, 다함께성가를 합창단, 뉴드림 다문화어린이합창단 등이 출연했다. 국악(國樂)은 김규환 위담국악챔버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죽부(竹部) 공명악기 대금(大笒)을, 박소현이 현악기 해금(奚琴)을 연주했다.
제1부는 서곡(序曲)에 이어 (1)합창 - 하늘은 무너지고, (2)이중창(선비1/ 베이스 유상윤, 선비2/ 테너 김성진) - 강탈당한 국왕의 옥쇄, (3)합창 - 왠말인가!, (4)서창(敍唱)(윤심덕/ 소프라노 장소연) - 지난 달 8일에, (5)아리아(윤심덕/ 소프라노 장소연) - 온 세계 만방을 향하여, (6)합창 - 민족자결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7)서창(윤심덕/ 소프라노 장소연) - 일본 경찰은, (8)아리아(윤심덕/ 소프라노 장소연) - 사의찬미, (9)서창(천도교인 정재룡/ 테너 김민석) - 우리가 오늘 여기서,
(10)아리아(천도교인 정재룡/ 테너 김민석) - 하늘은 곧 사람이라, (11)합창 - 새야 새야 파랑새야, (12)서창(불교인 강기덕/ 베이스 박대우) - 조국을 지킨, (13)아리아(불교인 강기덕/ 베이스 박대우) - 님만 님이 아니라, (14)합창 - 조선은 우리의 님, (15)서창(기독교인 주기철/ 베이스 김정훈) - 나는 주기철이오, (16)아리아와 합창(기독교인 주기철) - 성난 물결치는 강을 건너야 하는데, (17)서창(유관순/ 소프라노 김정진) - 조선의 딸아,
(18)아리아와 함창(유관순/ 소프라노 김정진) - 장백산맥 뻗어내려, (19)사중창(유관순/ 소프라노 김정진, 윤심덕/ 소프라노 장소연, 정재룡/ 테너 김민석, 주기철/ 베이스 김정훈), (20)아리아(일본헌병/ 테너 오세영) - 조국을 팔아먹은, (21)아리아(의병대장 지청천/ 테너 김영우) - 반만년 역사로, (22)합창 - 요동만주 넓은 들을, (23)합창 - 나가세 전쟁장으로,
제2부는 서곡에 이어 (24)합창 - 조선은 우리 조국이시니, (25)합창 - 일장기의 노래, (26)아리아(유관순/ 소프라노 김정진) - 평화 정의 자유 순결, (27)기미독립선언문 낭독과 합창(나레이션/ KBS성우 박신영) - 동해물과 백두산이, (28)아리아(유관순/ 소프라노 김정진) - 내게 묻노라, (29)합창 - 가자 고향으로, (30)합창 - 조선독립은 하늘의 명령이며, (31)합창 - 동해물과 백두산이, 대한독립만세. 마지막 곡 ‘동해물과 백두산이, 대한독립만세’는 관람객 모두 일어나서 태극기를 흔들면서 합창단과 함께 노래했다.
성악가 8명은 각각 맡은 인물에 합당한 의상과 소품(예를 들면, 의병대장은 총, 일본헌병은 칼)을 지니고 노래했다. 칸타타(cantata)란 17세기 초엽에서 18세기 중엽까지의 바로크(baroque)시대에 가장 성행했던 성악곡의 형식으로 보통 독창(아리아), 중창, 합창으로 이루어진다. 처음에 기악의 서곡이 붙어 이는 것도 적지 않다. 창작칸타타 <자유만세>의 다음 연주회는 3월 30일 토요일 오후 5시 파주운정행복센터 대공연장에서 열린다.
3・1정신을 바탕으로 출범한 대한민국은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섰으며, 우리는 근대화・산업화・민주화를 성공하여 한반도 역사상 가장 융성한 나라를 이룩하였다. 이에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각급 학교에서 국가관과 민족관, 그리고 미래 지향적인 통일관을 교육하는 기회로 활용하여야 한다.
靑松 朴明潤(서울대학교 保健學博士會 고문, 대한보건협회 자문위원, 아시아記者協會 The AsiaN 논설위원) <청송건강칼럼(681). 2019.3.9(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