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백화점은 1987년 5월 착공하여 1989년 12월 개장했는데 당시 전국 2위 규모 단일매장이었다.
[12] 하얀색 바탕의 기존 백화점 건물 디자인을 탈피하여 외형 색상을 분홍색으로 채택했고
[13] 콘크리트와 유리가 조화되어 당시에는 엄청나게 파격적인 디자인이었다. 게다가 초호화 쇼핑몰 컨셉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삼풍백화점은 지금 기준으로도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각종 명품 브랜드들을 대거 입점시켜 1980년대 신흥 부촌으로 떠오르던
강남구,
서초구 지역 고객들을 쓸어모았다. 현재의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조차 당시의 삼풍백화점에 비하면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다고 한다.
[14] [15] 당시 압구정동의
현대백화점 본점, 대치동의
그랜드백화점 강남본점
[16]과 함께 강남지역 3대 고급백화점으로 손꼽히는 백화점이었다.
[17]심지어 당시 삼풍백화점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강남 한복판의 핵심 지역이었다. 위치 자체가
경부고속도로 반포IC가 매우 가까웠고,
2호선, 3호선[18]의 환승역인 교대역과 가까웠을 뿐더러,
1993년 3기 지하철의 9호선 사평역 예정지 1블럭 거리라는 네임드급 입지를 자랑했다.
[19] 게다가 근교 강남에 (현재
신분당선 3단계의 전신인)
11호선 강남 구간까지도 예정된 핵심의 핵심이었다.
삼풍백화점은 이런 어마어마한 매장을 바탕으로 공격적으로 마케팅했다. 중앙홀 4층에 있던 아트홀은 서울 시내 유명 공연장으로 이름을 떨쳤고, MBC라디오 공개방송 등 다양한 행사를 정기적으로 개최했다.
[20] 또 인테리어 또한 당시로서는 고급스러웠었다. 또 수입품과 사치품을 많이 판매했는데, 이 때문에 언론으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21] 그 유명한
페라가모[22]를 직수입해 판매하기도 했으며,
[24] 이외에도 다양한 직수입 브랜드들을 들여왔다. 물론 이 브랜드들은 붕괴 이후 국내를 떠난 경우가 많다. 또 B동에 수영장 같은 문화공간을 만들어 손님들을 끌어모으는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영국 문화전과 이태리 문화전 같은 행사를 통해 해외 문화 및 브랜드들을 소개하는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붕괴 당시에는 프랑스 문화전을 준비 중이기도 했다. 그리고 94년에는 탤런트
최명길을 모델로 대대적인 광고
[25]에 나섰고
[26] 영국에서 욕실용품 브랜드인 넥타
#, 이태리에서 의류 브랜드인 마리나리날디
[27] 를 직수입해 별도의 매장을 직접 운영하는 사업을 시작했으며, 생활용품 전문점인 아프레미디를 자체 런칭해 백화점과 압구정동에 매장을 열기도 했다.
[29] 물론 백화점 붕괴이후, 마리나리날디
[30] 대리점 사업과 아프레미디사업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나마 '넥타'는 이후 다른 업체를 통해 매장운영을 재개했지만, 국내 매출부진으로 철수했다.
당시 층별 구성을 보면, 1층에는 로비와 수입품 매장, 화장품 매장이 있었는데, 삼풍이 당시 수입 브랜드 유치에 의욕적이었던지라
[31] 일반인들은 이름도 못 들어봤을 브랜드들로 가득했다고 한다. 당시 입점했던 화장품 브랜드들 중에는
디올,
샤넬 등 명품 화장품 브랜드 부터 해서
MAC,
랑콤 등 지금 기준으로도 고급인 브랜드들이 많았는데, 다시 말하지만
90년대 초반의 일이다.[32] 로비는 많은 사람들이 중앙홀이라고 불리던 공간에 있었는데, 정문 쪽에는 분수대와 연결통로가 있었고 후문 쪽에는 행사 매장과 지하로 연결되는 에스컬레이터가 위치해있었다고 한다. 또 중앙홀을 전망할 수 있는 유리관이 설치된 전망엘리베이터 8개
[33]도 있었다. 2층에는 여성복 매장이 있었는데 비싼 고급 디자이너 브랜드들과 메이저급 브랜드만 있었다고 한다. 당시 이름 날리던 디자이너들은 웬만하면 이곳에 매장을 내었다고 한다. 3층은 남성복과 캐주얼, 스포츠 전문점
[34]이 있었는데, 이쪽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게스나
베네통만 입어도 잘 산다던 때에
[35] 구찌,
버버리,
페레가모,
베르사체, 막스마라 등의 수입
명품 브랜드들이 대거 입점해서 '사치 1번지'
[36]라는 오명을 쓸 정도였다. 4층 가정용품 매장은 온갖 수입 가구와 장식품, 가전제품을 팔았으며, 심지어는
쓰레기통이나
수세미까지 비싼 수입품을 판매했다고 한다. 완구매장에는 레고 같은 요즘 기준으로도 만만치 않은 완구들을 판매했다고 한다. 5층에는 고급 식당들이 즐비했는데, 당시 방문해 본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콩나물국밥집(춘원)이 유명했다고 한다.
[37] 당시 이태리 음식점(빌라파가니니)에서 근무했던 사람에 따르면, 인기 연예인이나 아나운서들도 자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 지하 식품관도 비싼 식품들을 많이 팔았는데, 지하 빵집에서는 프랑스산 고급 버터와 같은 수입 홈베이킹 재료들까지 판매했었고, 나머지 음식들도 수입품이거나 대단히 비쌌다. 당시 국내에서 고급식품에 관심하는 사람이 적었음을 고려하면,
[38] 부유층이 많이 다녔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물론 B동쪽 슈퍼마켓은 논외다. 지하에는
웬디스 햄버거 매장과 올리브 베이커리가 유명했다고 한다. 또한 여성고객이 많이 몰리던 1층,2층
[39],5층
[40]에는 고급 커피숍을 배치해 당시에는 드물었던 블루베리 치즈케이크 같은 각종 고급 디저트류도 취급했었다. 해마다 해외 명품을 집중적으로 판매하기도 했는데, 94년 이태리 대전이란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건물 중앙에 고급 스포츠카
부가티 EB110를 전시하기도 했다. B동(레포츠동)은 '전생활관'이라는 개념으로 각종 레저시설 및 문화시설,편의시설이 위치했었다. 1~2층은 금융동을 비롯해 우체국,여행사 등이 있었고, 일반상가도 있었다. 3층에는 갤러리와 문화교실, 4~5층은 고급 스포츠센터인 '삼풍스포츠맥스
[41]'가 있었다.
삼풍은 당시 대중적인 이미지였던
뉴코아를 제외하면
[42] 서초동에서 거의 유일한 고급 백화점이었기 때문에 주변에 거주하던 부자들은 자주 들르는 장소였다. 당시 스포츠센터 회원
[43][44] 은 백화점 회원으로 자동 등록할 수 있었는데,
[45] 붕괴 이후 스포츠센터 회원 명단을 보니, 이름 대면 누구나 알 만한 고위층들의 이름이 대거 포함되었다고 한다. 당시에 서초동 거주민들을 제외하고도 인근의 압구정동이나 송파쪽에서도 고객들이 상당히 많았다. 이 때문에 백화점 맞은편의 삼풍주유소가 전국 최고 매출을 달성하기도 했다고 한다.
[46] 어쨋든 당시 삼풍이 이렇게 고가상품들을 많이 팔았던것은 수요가 충분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당시기사1 당시기사2 이런 영업으로 삼풍백화점의 매출 규모는 무섭게 성장했는데, 1991년 개점 2년만에 두배 넘는 성장률을 기록했고 1994년에는 전국 백화점들 중 매출규모 7위권을 기록했다.
여담으로, 현재 유튜브에서 '
밀라논나'로 활동하고 있는 장명숙씨가 이곳의 해외명품담당 고문이었다.
[47] 장명숙씨는 삼풍백화점 명품브랜드 구성 자문은 물론, 직접 기획부터 바잉작업,직영 브랜드 영업까지 참여했다고 한다. 붕괴된 날이 자신이 출근하는 날이 아니었기때문에 사고는 다행히 피했지만, 자신의 비서와 대학동기가 사망하는 등 주변사람들이 많이 피해를 많이 당했고, 본인에게도 상당한 트라우마를 남긴 사건이라고 한다.
93년 경부터는 B동옆 주차장 부지에 빌딩을 건설해 삼풍그룹 본사 건물 겸 저층부 백화점 건물을 추가로 지어서 백화점을 더 확장시킬 계획도 있었지만, 예정대로 추진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실제로 주차장 부지에 건물을 짓기 위해 터파기 공사까지 진행한 정황이 발견되었고,
[48]주차장 부지 밑에는 불법건축물이 존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49]다만, 이러한 고급화 전략과 단일매장 전략 때문에 타 백화점보다는 매출이 부진했고 유동인구를 제대로 흡수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50]원래는 수도권과 지방에도 지점을 추가로 내려고 했으나,
[51] 사업 과정에서 난관이 많아서 착수 기한을 미룬 상태였다.
[52] 물론 이용객을 타 백화점과 비교했을 때 그렇다는 것이지, 파리 날리는 백화점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당시에 돗대기 시장마냥 사람들이 몰려든 롯데나 뉴코아랑 비교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백화점에서 세일이나 경품 행사를 하면 주변 교통이 마비되던 시절이다. 교통 문제 때문에 세일 행사를 할 때는 대중교통 이용 권장 문구를 광고에 넣도록 하고, 지하철 승차권을 나누어주는 행사를 했어야 할 정도. 그런데 역설적으로 삼풍이 차라리 파리 날리는 백화점이었다면 이 정도로 인명 피해가 심각해지진 않았겠지만...
이렇게 외관이 크고 파격적인 강남 고급백화점인 삼풍백화점은 사실
최악의 부실건물이었다. 붕괴 이후 외국의 건축 전문가들은
이따위로 지어놓고도 5년 반이나 버텼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원래대로라면
1년 안에 무너져도 결코 놀랄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 후술할 무량판 구조 공법의 강점 때문에 그나마 버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였다.
[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