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20. 큐티
마태복음 15:29 ~ 39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 칠병이어
관찰 :
1) 갈릴리 호숫가의 산에 오르신 예수님
- 29절.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 30절. “큰 무리가 다리 저는 사람과 장애인과 맹인과 말 못하는 사람과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앉히매 고쳐 주시니”
- 31절.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맹인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놀랍게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 다리 저는 사람, 장애인, 맹인, 말 못하는 사람, 기타 등등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의 발 앞에 앉혀 놓았습니다.
- 주님은 그 모든 이들을 다 고쳐주셨습니다. 주님 앞에 와서 고침을 받지 못한 이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병이 중하고 희한한 것도 다 고쳐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출애굽기의 라파의 하나님이심을 변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기에 가능한 사건이 이렇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 말 못하는 사람은 말하게 되었습니다.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었습니다. 다리 저는 사람이 온전히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맹인이 보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무리가 보고 놀랍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들의 대부분은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이들의 고백은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도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몰랐지만 병 고치시는 기적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방인들은 생명의 떡을 먹는데 이르게 되었습니다.
3) 무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
- 32절.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 이방인들이 와서 사흘 동안 주님과 함께 했습니다. 그들이 가져온 양식이 다 떨어졌고, 그냥 돌아간다면 지쳐서 쓰러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들을 굶겨서 보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33절. “제자들이 이르되 광야에 있어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가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이까” => 제자들은 자신들이 광야에 있기에 어디서 이 무리를 배불릴 수 있는 떡을 얻을 수 있느냐고 반문을 했습니다. 이미 이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이들입니다. 그럼에도 제자들은 현실에 눈이 박혀서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심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시 그런 이적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 제한을 하고 있습니다.
- 34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 하거늘” => 주님은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얻게 된 일곱 개의 떡과 작은 생선 두 마리... 그야말로 한 입 거리의 양식이었습니다. 두 명이 먹기에도 부족한 것이었습니다.
- 35절. “예수께서 무리에게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 36절.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 37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 주님은 무리들을 땅에 앉히시고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축사하시고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고, 제자들은 계속해서 무리에게 그 떡을 나눠주었습니다. 제자들로부터 받은 떡과 물고기를 받은 이들이 또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었고, 그렇게 이어서 나눈 떡과 물고기 조각들을 거두었더니 일곱 광주리에 가득하게 거두었습니다.
- 오병이어의 남은 것을 담은 것은 열두 바구니(코피노스)로 유대인들이 여행할 때 도시락 대용으로 들고 다니던 작은 광주리이었습니다. 이들이 긴 여행이 아니기에 준비한 바구니에 남은 떡과 물고기 조각들을 담았던 것이습니다.
- 칠병이어의 남은 것을 담은 것은 일곱 광주리(스퓌리스)로 추수한 곡식들을 보관하는 갈대 바구니였습니다. 성인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컸고, 이 무리들이 오랜 시간 여행을 할 준비를 하고 나온 이들임을 알게 됩니다. 주님은 이들이 돌아갈 거리를 염두에 두시고 넉넉하게 남기도록 하심으로 일곱 광주리에 가득하게 채워주셨습니다. 주님의 세심한 배려가 아닐 수 없습니다.
- 38절. “먹은 자는 여자와 어린이 외에 사천 명이었더라” => 떡을 먹은 자들은 여자와 아이들 외에 4000명이었습니다.
4) 마가단 지경으로 가시는 예수님
- 39절. “예수께서 무리를 흩어 보내시고 배에 오르사 마가단 지경으로 가시니라” => 예수님은 무리를 흩어서 돌아가게 하신 뒤 배에 오르셔서 마가단 지경으로 가셨습니다. 이 무리들 역시 예수님을 따르고자 했지만 예수님은 이들과도 헤어져 예수님의 사역을 행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가르침 :
1) 칠병이어의 기적은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요,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생명의 양식임을 보여주시는 기적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과 더불어 두 번이나 반복된 것은 주님이 생명의 떡이심에 대한 강조입니다. 이 기적들이 있기에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성찬이 의미가 있게 되는 것이고,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듯이 주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는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주님은 가나안 여인(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신 것이지 이방인들을 홀대하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정도가 아니라 4000명을 먹이시고 그들이 돌아가면서 먹을 양식까지도 챙겨주셨습니다.
3) 유대인들만 하늘로서 내려오는 생명의 떡을 먹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도 동일하게 주님이 주시는 하늘의 떡을 먹게 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유대인들에게만 초점이 맞추어지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관점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이셨던 것입니다.
4) 주님은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주님의 마음의 본질입니다. 이 세상속에서 세파에 찌들어 사는 이들에 대해 주님은 오늘도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복음, 천국 복음을 듣고 주님으로 만족을 누리며 하늘로서 내려오는 생명의 떡을 먹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생명의 떡의 존재마저 부정하는 이들은 이 떡을 먹을 자격이 없습니다. 심지어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이 떡의 의미와 가치를 모르는 이들은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고 마셔도 해갈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다른 것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구하는 자들은 모든 질병이 치유되고 실질적인 배고픔의 문제도 해결함을 받게 됩니다. 게다가 돌아가는데 필요한 양식마저도 공급받았습니다. 주님이 불쌍히 여기셨기에 가능한 일들이고, 지금도 주님의 불쌍히 여겨주심을 받는 이들은 이와 같은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5)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공히 생명의 떡을 먹었음에도 유대인들의 반응은 싸늘합니다. 떡을 준비하지 못해서 수군거리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주의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아직도 주님이 누구이신지를 제대로 보지 못하기에 계속해서 엇박자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적용 :
1) 주님이 가르쳐주시는 진리와 은혜에 대해서 폼 나고 시원하게 반응을 하는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병이어, 칠병이어로 가르쳐주시는 대로, 오직 예수님만이 생명의 떡이심을 알고, 고백하고, 주님으로만 채움을 얻어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왜 여전히 다른 것에 손을 벌리고 살려고 하는지요? 주님은 다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오직 주님만 그렇습니다. 다른 데 손 벌리고, 눈 돌리면 얻을 수 없습니다. 파랑새는 내 곁에 있듯이 오직 주님이 나의 모든 문제의 솔루션이십니다. 육적인 필요를 모두 다 포함해서 모든 필요를 아시고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2) 주님은 칠병이어의 기적에서는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는 말씀은 하시지 않으시고 너희에게 무엇이 있는가만 물으셨습니다. 이미 사흘간 준비한 모든 양식이 떨어졌음을 아셨기에 주님이 작정하시고 채워주시기 위해 물으신 것입니다. 설령 작은 물고기 두 마리, 떡 일곱 개가 없었어도 주님은 채워주실 준비가 다 되셨던 것입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미 주님은 다 채워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나의 적은 헌신과 드림으로 주님은 큰 일을 이루시어 그 영광을 나눠주시길 원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조차 드리지 못함으로 주님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내가 죽어야 주님의 은혜와 역사가 일어납니다. 나의 작은 것이 드려짐이 변화와 역사를 일으키는 원동력으로 주님이 일하시는 소스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역자의 기쁨이고, 나의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3) 주님이 나를 굶겨 보내시지 않을 것입니다. 아멘! 주님의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