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불평거리가 생겼을 때 불평거리가 생겼구나, 하고
거기에 응해 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 마음이 머물러서 불평하는 마음에 점점 더 살을 붙이고,
부정적 생각을 덧붙혀서 몸뚱이를 키우는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순간 그날 모든 것을 딱 풀어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 발자국 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건으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야 합니다.
내 마음이 화가 나고 욱~하고 올라오는 마음으로부터
떨어져서 나를 지켜보아야 합니다.
내 안의 온갖 생각 생각들을 지켜볼 수 있어야 되고,
그렇게 지켜보다 보면
내 안에서 일어난 한 사건에 내 생각이라는 녀석이
얼마나 많이 거기에 밥을 줌으로 해서
생각의 몸뚱이를 키우는지를 여실히 보게 될겁니다.
그래서 여실히 보게 되면 덩치가 커지지 않습니다.
분명히 내 생각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저절로 관찰 한다는 것이고,
더욱 중요한 것은 지켜본다는 것이
결국 그 문제를 녹여주게 됩니다.
불평불만을 없애주게 만듭니다.
저절로 그렇게 됩니다.
왜 그런가?
문제를 양산해내는 것은
바로 아상, 즉 생각이라는 놈이 하는 일이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지켜보는 자는 누구입니까?
지켜보는 자가 우리의 본질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그 생각하는 자가 아니라
생각을 지켜보는 자가 바로 나입니다.
우리는 참나로 살지 않고, 겉 껍데기로 살고 있습니다.
생각을 가지고, 온갖 분별을 하고
괴로워하니까 껍데기인 나로 사는 겁니다.
그 분별과 해석과 생각을 놓아버리고,
그 껍데기의 나가 아닌 본연의 나로 사는 것,
끊임 없이 올라오는 생각을
지켜보는 자,
주시하는 자로 사는 것,
온갖 문제를 만들어 낼 때 그 문제를 지켜보는 자
화가 올라올 때 화를 지켜보는 자
그렇게 주시하는 자가 되었을 때
주시하는 자가 바로 참 나라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공력이 있겠습니까?
부처님은 우리의 모든 업장을 소멸시켜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 말은 내 안에서 일어나는 온갖 문제들을 녹여준다는 겁니다.
그것을 누가 녹여주나?
부처님이 녹여준다.
부처님이 누구냐 ?
지켜보는 자가 바로 부처님입니다.
지켜보는 것이 바로 내 본체이고, 당체입니다.
그래서 관찰하라.
어떤 놈이 관하고 있는가?
그것을 돌이켜 보아라.
보는 녀석을 돌이켜 보아라.
하는 얘기가 있는 겁니다.
우리가 본다 라는 것.
주시한다는 것. 분별하지 않고, 해석하지 않고.
그 상황을 지켜본다, 라고 하는 것
그것이 우리를 순간순간 부처로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우리가 깨달아서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순간순간 부처가 되는 문제이지.
내가 지금 부처로 사느냐.
중생으로 사느냐 문제이지.
지금은 중생이지만,
나중에 깨달아서 부처 되겠다.
이 문제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