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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주의 종=목사라고 보는 것은 비성경적입니다.
우선은 오늘날 목사라는 직분이 본격적으로 나오게 된 배경을 짧게나마 살펴본다면 16세기 루터, 갈빈등의 종교 개혁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보아야 합니다. 당시 로마 카톨릭에서는 "사제"라는 성직자 직분이 있었습니다. 상당한 권력과 명예, 물질을 소유하던 사람들이었지요. 그들의 말에 도전하거나 반론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죽음을 각오해야 했을 정도였고 성경은 그들만이 볼 수 있었고 해석할 수 있었던 전유물이었지요.
이에 루터와 칼빈등의 개혁자들에 의해 종교개혁이 이루어졌고 성경은 민간에도 두루 퍼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것 그리고 성례등의 집찬등을 위해서 직분자가 필요했는데 그것이 바로 목사였습니다.
그로부터 여러 개혁자들간의 의견이 다르고 저마다의 신학교와 성경연구가 이루어지면서 어느덧 목사라는 직함은 신성한 직분임과 동시에 하늘의 능력을 내리받는 영적 권위자 또한 성경을 설교하고 가르치는 자로 자리를 매김받아온 것입니다.
혹자중에는 에이~ 시대적으로야 그럴 수도 있지만 성경에도 보면 목사라는 직분이 있어요. 에베소서 4장 11절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거 안보여요?? 라고 의견을 제시할 수도 있겠네요.
우리가 성경에서 언급된 내용은 한번이 나왔든 여러번이 나왔든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하여, "목사"라는 단어가 신구약에 걸쳐 딱 한번 나오는데요 에베소서 4장 11절에 언급이 되어 있으니 우리가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신구약에 걸쳐 보시면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양으로 비유하고, 그들을 인도하는 제사장들을 목자로 비유하였습니다. 여러 구절들 중에 대표적으로 한두어 구절만 보겠습니다.
예레미야 50장 6절 "내 백성은 잃어버린 양떼로다 그 목자들이 그들을 곁길로 가게 하여 산으로 돌이키게 하였으므로 그들이 산에서 작은 산으로 돌아다니며 쉴 곳을 잊었도다"
에스겔 34장 7절 "그러므로 목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신약에서도 보시면 예수님은 자신을 선한 목자라 표현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1절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그런데요, 신약성경 다른 구절들을 보시면 더더욱 명확해지는 개념이 있는데요, 히브리서 13장 20절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베드로전서 5장 4절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유다서 1장 12절 "저희는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의 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여기서 보시면,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하나님의 백성이 된 양떼들을 갈무리하는 인도자를 목자라고 표현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다만! 예수님에 대해서는 큰 목자 또는 목자장이라고 표현을 하시어서, <목자중에서도 목자>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오늘날도 하나님의 자녀된 백성들을 갈무리하는 인도자를 목자라고 표현하는 것이 성경적이라는 것이 명확해 집니다.
그런데, 목자가 교회의 성도들을 인도하고 갈무리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가르치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성경에는 장로, 감독자들이 교회의 성도들을 어찌 대해야 하며 가르치는 일에 있어서 자신부터의 마음가짐과 행실이 먼저는 본이 되어야 하고 사사로이 가르쳐서는 아니됨을 강조하고 있고, 가르치는 일을 잘못 한 자에게는 보다 중한 심판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지요.(사도행전 5:42, 디모데전서 3:2, 야고보서 3:1)
그런데요, 다시 에베소서 4장 11절로 돌아가 보시면 교사라는 직분에 대해서는 신약에서도 여러곳에서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사도행전 13:1, 고린도전서12:28~29, 디모데전서 5:17, 디모데후서 1:11)
그만큼 가르치는 것은 직분으로서 은사로서 하늘의 능력이 함께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고 하나님 말씀을 가진 자가 힘 있는 자요 그 말씀을 잘 가르치는 것이 영적으로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인데요 , 성경에서 말하는 교사라는 직분은 오늘날 교회들이 말하는 주일학교 교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언급드립니다. 신약성경에 나와있는 교사라는 것은 오늘날 교회안에서 담당하는 주일학교 교사하고는 아무 연계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 말하고 있는 교사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직분의 은사요, 이 가르치는 직분의 은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서열이라는 개념으로 따져보면 3번째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8절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사도, 선지자 다음으로 교사라는 직분의 은사가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걸핏하면 우루루 쏠려다니고 무언가라도 하나 더 받을라치고 드러내고자 하는 각종 능력행함이나 병고치는 은사, 방언등은 교사 밑에 있습니다.
이것은 곧! 능력도 병고침도 방언, 예언등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나 이런걸로 인하여 영혼들이 변화되어지고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마음을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것으로 영혼들이 실질적으로 살찌워지고 변화되어 진다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하여 양떼들을 갈무리하는 인도자들에게는 무엇보다도 "교사"라는 직분의 은사가 아울러 같이 있어야 함을 우리는 알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4장 11절에 나오는 목사라는 직분은 어찌 보아야 할까요?
행간에는 목사라는 것을 "목자 + 교사"의 합성어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는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구신약에 걸쳐 유독 한번 나오는 "목사"라는 이 직분의 은사는 굳이 표현한다면 "목자"라고 번역을 해야 하는 것이 옳았습니다.
그런데, 위에서도 살펴보았고 신구약에 걸쳐서도 보시면 알듯이 목자가 가지는 가장 중요한 은사중에 하나가 바로 가르치는 일입니다. 교사의 은사가 있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이단 사이비들이나 삯군 목사들이 잘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가르치는 일입니다. 다만! 잘못 가르쳐놓기에 영혼들을 구렁텅이로 인도하고 있는 것이지요.
능력행함도 맛보고 방언도 맛보고 하늘의 신기한 것들을 본다해도 시간이 지나면 희석되어지고 잊혀지기 마련인데요, 한번 잘못 가르침 받아놓으면 그건 평생가거나 영혼을 망칠 수도 있기에 가르치는 것은 매우 귀한 상급이자 은사이지요. 그렇기에 성경에서도 3번째 서열(굳이 표현하자면)에 올려놓아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여, 다른 직분들은 따로 기술하면서도 목사와 교사만은 유독 함께 두고 있는 것을 볼때 이 둘은 별개의 직분이 아니라 하나의 직분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 타당하며 "목사"가 아닌 "목자"로 번역을 하여<목자가 가지는 교사의 은사>를 강조하고 있는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저는 여기서 오늘날의 교회에 만연되어있는 목사체계를 굳이 부정하거나 비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로 인하여 상처받은 사람들은 더할나위없이 이 체계를 바꾸고 싶을 것이고, 도리어 목사 잘 만나 영혼이 잘 되고 있는 사람들은 목사체계를 부정하려는 사람들에 대해서 곱지 않은 시선을 갖기도 할 텐데요.
다만! 에베소서 4장 11절에 기술되어 있는 목사와 교사라는 표현이 오늘날 우리들이 생각하는 담임목사, 주일학교 교사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이제부터는 '주의 종'이라는 개념은 과연 어떤 것인가가를 설명하는 것이 매우 수월해 졌다라는 것입니다.
종이라는 상대개념으로는 주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여 주의 종이란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종된 사람들이라는 개념입니다. 그런데요,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또한, 오늘날 장로, 집사, 성도들이라해도 예수님을 내 맘에 모셨고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십니다라고 고백들 하지요. 그렇다면 주의 종이란 예수님을 영접하였고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라고 고백하는 영혼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주의 종=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럼 성경은 과연 주의 종을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을까요. 살펴보시죠.
사도바울을 비롯하여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표현을 하였습니다(로마서 1:1, 야고보서 1:1, 베드로후서 1:1, 유다서 1:1). 공통점이 첫 시작절에서 다들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자신들은 선택받은 사도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리 표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진정 내 삶과 영혼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간다라는 겸비한 마음으로 그리 표현한 것이요, 그만큼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내 삶에 부끄러움이 없다라는 것을 감히 말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표현을 사도에게만 극한하여 표현하지 않았다는 것에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보시죠.
고린도전서 7장 22절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에베소서 6장 6절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이 구절의 경우에는, 5절을 보시면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조건이 사도나 특정적으로 선택받은 사람에게만 극한되어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모시고 그 분을 주인으로 섬기는 사람들 어느 누구에게나 통용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하여, 오늘날 목사들이 <주의 종 = 목사>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목사라는 직분을 신성시하고 거룩히 여기려는 태도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내리받은 것마냥 또는 어떤 영적권위가 남달라 자신들의 말은 곧 하나님 말씀이요, 목사 말에는 무조건적으로 순종해야 하고, 목사는 성도들도 못 바꿔, 하나님만이 바꿀 수 있다라는 말은 심히도 와전된 말이라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요, 주의 종이라는 말이 표현된 곳이 딱 한군데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 24절입니다.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여기서 말하는 주의 종은 오늘날 목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전후구절을 살펴보십시요. 사도바울이 여기에서 표현한 주의 종이라는 것은 특정 직분자를 가리켜 하신 말씀이 아니라,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투지 아니하고 온유하고 하나님 말씀으로 잘 무장되어 언제든지 가르칠 수 있는 그런 의미로서 이야기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 말입니다.
정리합니다. 다소 길어져서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진심 감사드리구여. 이젠 마무리단계이니 조금만 더 읽어주심 감사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안에 세우신 직분과 그 은사에 대해서는 우리가 마땅히 순종하고 거룩히 여겨야 합니다. 그 중에서 오늘날 목사라는 직분과 그분들이 교회내에서 갖고있는 각종 권력과 영역은 성경에서 보장한 것이 아니라 시대적으로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보시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하여, 목사라는 것은 성경적으로 표현하자면 "목자"라고 하는 것이 더 합당한데 성경에서 말하는 목자는 섬기고 사랑하고 영적으로 가르치기를 잘 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목사가 되려면 신학교를 나와야 하는데요. 신학교를 나왔다는 이유로 성도들을 가르치고 교회의 리더자가 된다는 것은 매우 합당치 않은것입니다.
일전에 모교회의 새벽기도를 가보았습니다. 신학생인 어느 젊은 분께서 새벽기도 단에 서서 말씀을 가르치고 있더라구여. 그 곳에는 수십년을 하나님앞에 무릅을 꿇고 기도해오신 분들도 수두룩할진대, 오히려 그 신학생은 그런 분들에게서 배워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학교를 다닌다, 다녔다는 이유로 영혼들 앞에 서서 말씀을 가르치고 리더가 되는 것은 비성경적입니다. 신학교를 나오지 않았다해도 성도의 본이 되고 교사의 은사를 받은 자라면 말씀을 가르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신학생이나 목사가 교사의 은사를 받았고 성도들로부터 본이 되고 인정되고 있다면 우리가 왈가불가 할 일은 아닙니다만, 단지 신학교를 나왔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권한과 그 은사를 가졌다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여, 목사라는 직분을 갖고 성도들 위에서 섬김받고 군림하고 리더가 된다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이 땅에서는 물질과 지식, 외모, 학력이 힘이 되지만서도 하늘나라에서는 죄가 없는 것이 힘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에 악이 없고 성결된 사람이 힘이 있습니다. 사단도 그 사람이 가진 지식이나 학력, 물질을 보고 두려워 떠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예수님이 보장하시는 빛으로 인하여 두려워 떠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안에서 나이가 어려도, 신학교를 나오지 않았어도, 세상 지식은 부족해도, 못생겼어도, 집안이 가난해도 그가 하나님 말씀을 갖고 있고 그 말씀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보장하시는 빛이 있는 자요, 교사의 은사를 받은 자라면 그 또한 목자가 될 수 있는 것이요 성도들 앞에서 하나님 말씀을 가르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우리에게 주신 목자는 섬기는 직분이지, 서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렇지 않지요! 신학교를 나오지 않은 사람은 단에서 그저 간증정도로 끝내야지 더 진행했다가는 여기저기서 헛기침 소리가 나오고 질책과 책망이 쏟아지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목사체계를 전면 부정하거나 무조건 바꾸어야 한다고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 오늘날 이런 목사체계가 성립된 것도 하늘에서는 어떤 공의가 성립되어 악으로든 선으로든 성립된 것으로 생각되기에, 성경에 말한 것처럼 우리는 진리안에서 모든 권세에 순응할 필요가 있기도 한 것이구여.
무엇보다도 오직 예수님만이 교회의 머리요, 내 삶의 주인이요, 저 사람의 주인도 예수님이라는 것을 늘 인식한다면 우리가 감히 상대를 업신여기거나 판단해서는 아니 될 일입니다.
첫댓글 잘 읽었읍니다.
공감합니다
<천국중개사>님의 성경에 근거한 귀한 자료, 잘~ 정독했습니다.
<목사+교사=목자>라고 설명하셨는데요.
그렇게 강조하다 보면,
목사만 <목자>이고, 장로*집사*교인은 <양>으로 설정되는 것을 많이 봅니다.
신분차별 아닐까요.
또, 목사만 <하나님종>이고,
장로*집사*교인은
<주님자녀> <하나님백성>이라는 개념으로
신분이 두종류로 나뉨을 쉽게 보게 됩니다.
대표기도도 그렇게 하고, 대화도 그렇게 하지요.
그런데, <형제자매>라는 용어를 바울은 서신서에서 잘 사용한 것을 봅니다.
그래서, 어느 교회에서는 목사*장로*집사간에 <형제자매>로 아예 호칭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좋은 현상 아닐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교회에 보내는 서신서 성격이다보니 형제, 자매라고 주로 통칭하였고, 때로는 이름과 함께 그의 직분을 언급하는것을 보게 되는데요, 목사가 목자+교사라는것은 목사들의 가르침이기에, 그렇다면 신학교 졸업할때 가르치는 교사의 은사를 하늘로부터 인정받고 나와야 할 것이나,
교사의 은사란 그저 많이 배우고 공부한 실력을 말하는것이 아니기에, 단지 임용고사 보아서 합격하면 목사뱃지 달고나와 마귀의 미혹이나 받아가 면서 영혼들을 유린하는 짓을 하고있다면 아니 될 말이지요.
저는 신학교에서 목사인정을 영적으로 분별하여 엄격히 할 필요가 있고 교회내 호칭도 바꿔볼 필요가 있다 생각합니다.
불교에서 <승려>와 <스님>이 같은줄 알았다가 다르다는 걸 사전을 찾아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 입으로 <스님>이라고 하는 표현이 듣기 거북하여 찾아 보니, <승려>의 스승이 <스님>이더군요. 학교에서는 교사 자신을 아이들에게 <선생님>이라고 호칭하는 걸 봅니다. 조금 듣기가 불편할 때도 솔직히 있어요. 자신을 제3자에게 말할 때는 <00승려>라고 소개를 하고, 아이들에게도 <선생>이라고 소개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나 좀 생뚱맞는 생각도 해봤지요. 200명 모이는 교회에 속할 때인데, 담임목사가 광고시간에 <목사님은 이러고 저러고 합니다> 하길래, 목사는 한분 뿐인데 누구를 말하나? 한참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차근차근 정리를 해 보니까. 담임목사 자신을 그렇게 호칭하는 것이었지요.^^ <샌님>사상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데요. 자신 낮추는 것을 적극 노력하지 않으면, 저나 우리 모두가 정말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견이지만, 예전에는 신학교가 많고 집사*장로*목사 많은 것이 정말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아요. 예수복음은 너무나 좋은데, 변질*배도*미혹받음*혼합주의*비진리*다른복음에 교회가 통채로 넘어가 버리는 경우를 보면서, 정말 고민이 아닐 수없습니다. WCC 부산총회가 벡스코 광장에서 '13.10.28~11.8에 열리는데, WCC반대하는 교회들도 같은 장소 부근에서 '13.10.29 13:30~11.8 WCC 반대예배를 드립니다.
참고로, 저는 WCC 적극 반대자 입니다. 길들이기 어려운 야생성 강한 망아지처럼 한국교회가 우~하니 몰려다니는 풍조가 생겨났습니다. 성경말씀에서 벗어나 이것저것 눈에 보기 좋은 것들을 수용하여 혼합주의를 만들어, 천하보다도 더 귀한 사람의 영혼을 소경이 구덩이로 인도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회가 천주교회를 많이 닮아가고 있는 것이 보여집니다. WCC 영향이겠습니다만, 회개하고 개혁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자들이 적겠다는 걱정과 우려가 많습니다. 저의 질문에 대한 충분하고도 진지한 답변에 대해 거듭 감사드립니다. 장로교 170교파가 <한국장로교>로 거듭난다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WCC에 속하여 지지하는 교회에서는 속히 나오는것이 좋다 여겨집니다. 오늘날 주의 종이라 자처하는 자들이 엘리야처럼 우상숭배자들 앞에서 과연 참신은 누구인가 하늘의 불대결은 하지 못할지언정,
화합과 평등이라는 빌미로 예수이름조차도 선포하지 못하는 집회에 왜 그리들 목매어 있는지 이는 진정 세상이 주는 물질과 명예에 눈이 멀지 않고서야 말입니다.
WCC목회자들은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불대결로 그들 앞에서 유일하신 하나님,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자가 되심을 선포해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좋은 말씀에 동감합니다
나쁘게 말하면 "목사가 너무 남발된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목사님하면, 참 그자체로 세상사람들로부터도
존경받고 했는데, 이제는 뭐...
암튼 목사가 너무 쉽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무허가 신학교도 난립하구요
나다나엘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참 맞는말같으면서 50%부족한것같습니다
이카페는 개혁카페임을 인식하시고 말씀을 올려주셨으면 더 유익이 될것같네요
나다나엘님의 말씀 대부분은 목사말만 잘 듣고 순종해라
성도들은 가만히 있어라 그게 유익이다 식의 말씀인것같습니다 난 아직 주의몸된 교회를 위해 헌신하시는 목사님 많이 뵙지못했네요 물론 헌신하시는분들도 계시지만 극히 드물죠 이카페는 헌신하시는 그분들이야기가 아닐겁니다
교회를 운영하기위해 그들 성도중에 목사 장로 교사를 뽑는다고 하셨는데 그런교회가 한국에 있습니까
단지 신학교졸업후 목사안수 '물론 자기들끼리 주고받고식이지만 ,
이런 시스템속에서도 주님이 쓰시고자 하는 귀한 일군들도 계시곘지만 극히 드물다는 사실이 한국교회의 현실임을 깨닫길 소망하며 이카페에 유익한 정보를 좀 부탁드리고싶네요 그렇다고 그분들을 책망하라는말이 아닙니다
이카페는 한국교회 잘못된부분을 파헤치는곳도 아닙니다
나다나엘님은 성경적으로 성경말씀만 전하시는다고 말씀하시지만 옛날의 나를보는것같고 여기 계시는 많은 믿음의 선배님들을 보는것같아 안타까워서 드리는 말씀이니 부디 이해부탁드립니다
과거의 제 모습같다고 한 의미를 모르시네요
그리고 저는 지금에서야 진정으로 주님과의 관계가 하나됨이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지 모른답니다
좋은게 좋은거다는식의 믿음이야말로 주님의 뜻을 왜면한체 믿음이라는 포장으로 들러싸는 모양세인것같네요
주님이 다 아신다 주님이 다 알아서 하신다 그러니 우리들은 기도나하고 말씀이나 공부하고 목사말에나 순종하면 된다 나머지는 주님의 권한에 맡긴다 대충 이런식인것같다고 생각지는 않나요 물론 개혁은 비방하거나 잘못을 지적하고자함이 아니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나는또한 목사직을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주의종이니 잘섬기라는둥 그들만 축복권이 있는것처럼 하는것이 아니라주장하는겁니다
이세상 모든직장은 주님이 허락한 귀한 성직이라면 성직일수있습니다 주님이 허락지 않은 일이 없잖아요
목사는 주의종이니 주님이 알아서한다는식은 그럼 우리들은 주님이 알아서 안한다는말인가요
다 주님이 택한백성들일진데 서로 잘못이있다면 이야기하고 고칠건 고쳐야지 않나요 왜 그들만 특별권이 있는거처럼 말씀하세요 하루빨리 목사교밑에서 나오셔서 주님만 섬기는 주의자녀되시길 소망합니다
하나님과뜻이 맞지않으면 하나님은 그를 쓰시지 않는다는 말씀이 참 공감이 가네요
목사같지도 않은 목사들이 너무많은데 그들은 왜 아직 목사의 직분을 가지고 교회에 있을까요
저는 목사님들을 비판하지않습니다 그럴 권리도 없구요
목사들도 다같은 주의 백성이고 단지 님이 말씀하신 사명감을 갖고 일하시는분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라고 주장하는겁니다 하지만 한국교회 만연한 현실은 아니라는겁니다
그래서 이런카페가 생기고 정보를 나누고 작지만 우리부터 변하고 좀더 나아가서 한국교회가 개혁되길 바라는겁니다 아무도 비판하거나 허물을 들추어내고자함이 아닙니다 님이 그리보시면 할수없죠
나다나엘님 누가 주님이 하라는데로 하는자를 핍박합니까 뭔가 크게 오해하신것같네요
예수님께서 바리세인들을 책망하신것도 잘못이라고 하실것같네요 그리고 믿음 믿음하시는데 그 믿음을 지키기위해 외형적으로 보이는것은 단순하니까 모른체하자는겁니까 단순하지만 그것이 많은 영혼을 병들게한다면 어찌 하시렵니까 도덕적으로는 당연히 선하게 살아야된다고 하시는분이 그럼 믿는자들은 당연히 믿음으로 살아야되는거잖아요 그걸 누가모르나요 믿음으로 살고자 개혁하자는겁니다
천국중개사님 글과 답글인 나다니엘님의 글이 전혀 상관없는 글 같아 보이네요. 제가 잘 못 읽은 건지 모르겠지만?
성경에는 목사라는 단어가 없고 "목자"만 있을 뿐이랍니다. 목자라는 단어의 헬라 원어는 ‘포이멘(ποιμην)’인데, 헬라 원어 신약성경에 ‘포이멘(ποιμην)’ 이라는 단어가 18번 나오는데 17번은 모두 목자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그런데 딱 한군데인 에베소서 4장 11절에만 ‘포이멘(ποιμην)’을 "목사"로 종교개혁 이후 목사들의 응큼한 편의를 위해 바꾸어 번역했다고 합니다.
사실상 그 시대적 배경하의 원어 상으로의 목자(牧者)와 목사(牧師)의 차이는 엄청나답니다. 왜냐하면 목자라는 단어와 인물은 성경에 나오지만 목사라는 단어와 인물은 성경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지요.오늘날 일부 목사들 가운데 이러한 목사제도의 불법성과 모순을 발견했지만 명예와 위신과 먹사 교주적 입장에 연연하여 비굴하게 살아가는 자들이 다반사고, 반면에 성경대로 살기 위해 목사직을 과감하게 내던지고 제도권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도 간혹 있습니다.
"목자의 본래 뜻은 뼈빠지게 고생해야하는 "목동" 이랍니다. 개신교인들도 오랜세월 동안 목사라는 제도에 속아 살아왔죠. 자질이 형편없는 비성경적인 목사와 삯꾼목사들은 순수한 신앙을 바로 세워주지도 못하였고 자기유익만을 챙긴 꼴이 되어버려 헤아릴 수 없는 벼라별 불법을 자행함으로 인한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이들의 부패와 타락으로 인하여 폐망의 길에 들어섰죠. 이러한 현상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비성경적인 목사와 삯꾼목사들이 주 원인 이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