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간지럽히는 정훈이의 숨결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정훈이와 처음으로 함께 맞는 아침.. 기분이 이상합니다.
아기처럼 쌔근쌔근 잠들어있는 정훈이의 모습.. 너무나 사랑스러워 나도 모르게
살짝 입술에 입을 맞추고 말았지요. 순간 마법에서 깨어난 왕자(-_-)처럼 살며시
눈을 뜨는 정훈이..
"일어 났어요..?"
정훈이는 잠이 덜깬 목소리로 날 꼭 껴안으며 속삭입니다.
난 왠지 부끄럽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해서 말없이 정훈이 품에 안길뿐이었지요~
"우리.. 오늘 뭐할까요? 바다보러 갈까요?"
"응.. 아무거나.."
"정말.. 며칠동안 아무 생각 안하고.. 이렇게 있어도 되는거죠? 아무 걱정 안하고.."
"응.. 걱정할꺼 없어. 아무것도 생각하지마.. 내가 이렇게 곁에 있잖아.."
"아.. 정말.. 꿈만같다."
너무나 행복합니다. 행복해서 불안하고 두렵다는말..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내 심정이 그렇습니다. 이렇게 행복한데.. 어느순간에
갑자기 날아가버릴것만 같은 불길한 느낌...
아니야.. 아무도 우릴 어떻게 하지 못해.. 그동안 여기까지 오기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정훈이에게 마음을 열기도.. 정훈이를 내 마음가는대로 대하기도, 또 주위의
이목을 무시하기도 힘들었고.. 그들을 이해, 설득시키는 일도 힘들었습니다..
어떻게 이룬 사랑인데.. 얼마나 소중한 사랑인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납니다.. 요즘엔.. 행복한데도 너무 자주 웁니다.
"왜..그래요?"
갑작스런 내 눈물에 놀란 정훈이..
"아무것도.. 아니야."
"속상해요?"
"아니야. 속상하긴.. 내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데.."
"그럼 됐어요.. 앞으로도 계속 행복할꺼에요.. 우린.."
정훈이는 날 숨이 막힐정도로 꼭 끌어안아주었습니다..
정훈이와 바다에 왔습니다.
봄인데도 아직은 겨울인듯한 바다는..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보는것처럼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았습니다. 날씨가 좋아서 그리 춥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푸르지도
깨끗해보이지도 않더군요. 하지만 여태까지 내가 봤던 그 어떤 바다보다도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바다였습니다.
얼마나 좋고 아름다운 곳에 가느냐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중요한것이라는걸.. 정훈이와 손을 잡고 걸으며.. 깨달았습니다.
정훈이를 만난 이후로.. 너무나 당연한 사실도 새롭게만 다가옵니다.
"왜.. 연인들이 함께 바닷가를 거닐고 싶어하는줄.. 알았어요."
"왜?"
"끝이 없잖아요. 바다는 아무리 바라봐도 끝이 보이질 않잖아요. 사랑에 빠진
남녀의 심정도.. 그런거겠죠. 바다처럼 끝없이.. 깊게 사랑하고 싶은 심정.."
"하하.. 너.. 학교 졸업 안해도 되겠다. 시나 소설쓰면서 살아도 될꺼 같아."
"우리 그럼.. 삼류 소설속의 주인공이 한번 되볼까요?"
"어떻게..?"
"나 잡아봐라~~^^*"
정훈이.. 날 한대 치고는 도망갑니다. 난 웃음지으며 가만히 서 있었죠.
물론.. 매일은 아니어도 가끔은 볼수 있겠지만.. 정훈이가 군대에 가면 얼마나
슬플까.. 얼마나 보고 싶을까.. 생각하니 매 순간순간이 소중하고 아쉽네요.
나..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나도 이렇게 사랑에 빠질수가 있다니..
멍하니 서서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나에게로 와서.. 말없이 내가
서 있는 모래 바닥위에 하트를 그려넣는 정훈이..
너무나.. 귀엽습니다. 정훈이는 막대기를 던져버리고는 하트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누난 이제.. 이 안에 갇힌거에요. 아무데로 못가.. 하하.."
"그래. 고마워..^^"
"하하.. 갇혔는데 고마워요?"
"니가 노처녀 하나 구제했지 뭐. 너 아니었음 평생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늙어
죽을수밖에 없었을꺼야."
"나두요. 누나 아니었음.. 인생이 너무 허무하게 끝났을꺼에요."
우린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서로를 꼭 껴안았습니다.
-40-
"니네.. 정말 못말리겠구나.. 연이씨.. 정훈이는 그렇다쳐도 연이씨까지 왜
이래요? 어차피 당분간 헤어져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꼭 결혼식을 해야겠어요?"
정훈이 둘째 누나의 말이었습니다.
"그래요. 둘이.. 그렇게 꼭 결혼을 해야할 상황도 아니잖아요. 처남 제대하면
그때 하는게 좋을것 같아요. 그땐 연이씨 부모님도 인정해주실꺼에요. 지금
당장은 무리가 아닐까요?"
정훈의 매형도 안타까와하며 한마디 합니다.
"정훈이가.. 불안해 해서요. 군대생활.. 편하게 하게 해주고 싶어요."
"그래.. 누나, 매형... 우리 정말 이렇게는 못헤어져 있어요. 제발.. 이해해
줘요.. 우린 헤어져있어도.. 서로 마음 변할일 없어요. 걱정말구요.. 네?"
정훈이와 나를 한참동안 심각하게 바라보던 둘째누나와 매형..
결국 어쩔수 없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맙니다.
"그럼 약혼식처럼.. 그렇게 가족끼리 모여서 식사하는식으로.. 그렇게 하는게
어떻겠니?"
"그렇게까지.. 바라지도 않아요. 그냥 누나랑 매형이 축하해주고.. 다른 누나들한테도
말만 잘해줘요. 내가 얼마나 간절한지.."
그래서.. 이번 주말에.. 간략하게 우리만의 결혼식겸 약혼식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정훈아.. 우리 부모님은.. 아마 안 오실꺼야.. 그래도.. 너무 속상해 하지마.
널.. 싫어하시는게 아니야... 단지.."
"알아요.. 나 누나 부모님.. 원망 안해요. 진짜에요. 나.. 그분들의 마음..
이해해요. 나라도 누나같은딸.. 그렇게 결혼시키고 싶지 않을텐데.."
"야!! 너 왜.. 그렇게 말해? 나라면 너같은 아들이.. 나같은 여자 만나는거
가만히 안두었을꺼야.. 진심이야."
"하하.. 우린.. 정말 천생 연분인가봐요."
"정훈아.. 우리 부모님 안오셔두.. 난 아무렇지 않으니까.. 걱정말구.."
"그래도.. 일단 말씀은 드려봐야죠. 같이.. 서울로 가서 얘기드려요."
"아니야.. 정훈아.. 그럴꺼 없어. 동생들한테만 말함 되.."
"내가.. 전화할까요? 지금 우리 같이 있다고.. 죄송하다고.."
"정훈아.. 사실.."
"네.. 말해봐요."
"나.. 집 나와버렸어.."
"네??"
놀란 정훈이는 한참동안 말을 못하더니 갑자기 주위에 있던 가게로 들어가
담배를 사들고 나왔습니다.
"야.. 너 담배 안피기로 했잖아..!!"
"왜요? 담배 피는거.. 멋지다면서요.."
쓸쓸하게 미소짓는 정훈이.. 기어코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 마는군요.
"미안해.. 걱정하게 해서.."
"누나.. 대체.. 내가 어디가 그렇게 좋아요? 그렇게 집을 나올만큼.. 내가
대단한거에요?... 나를 왜 사랑해요?"
정훈이의 말에 웃음이 나왔습니다. 정훈이가.. 그런걸 묻다니.. 바보..
"...내가 아는 한 사람이 있어. 바람둥이 같이 생겼는데.. 얼마나 순정파인지..
그 사람은 손이 차갑지만 누군가를 열정적으로 사랑할수 있는 뜨거운 가슴을
가졌어... 그가 미치도록 사랑하는 한 여자가 물었지.. 대체 왜 자길 사랑하냐구..
그랬더니.. 그 사람이 말했지... 이유가 붙으면 진정으로 사랑하는게 아니라구..
왜냐하면.. 이래서.. 저래서.. 당신을 사랑해요..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누나.. 하지만.."
"하하.. 그 사람이 또 그랬다? 하지만.. 이 붙어서도 안된다구..^^"
정훈이는 입을 꼭 다문채.. 담배만 만지작 거리고 있었습니다.
정훈이의 선배가 운영하는 라이브 까페에 왔습니다.
정훈이는 기분이 울적한지.. 평소때보다 술을 많이 마시더군요.
"피~ 그래.. 니가 자꾸 그러면.. 우리 결혼하는거.. 취소하자. 없었던 일로
하자구. 니가 그렇게 속상해하는 모습.. 보기 싫어."
"그런게.. 어딨어요? 바보~ 내 마음도 모르면서~"
"그럼.. 왜 그래? 왜 기분이 안좋아?... 후회되니??"
"아니요. 그냥.."
"치~ 이게 뭐냐? 내가 결혼해달라고 자꾸 조르는 입장이구.. 나 정말 그만
때려치고 서울 가버린다? 자꾸 그러면..-_-"
"알았어요.. 미안해요."
"미안하단 말 안하기로 했잖아."
"알았어요.. 미안.. 하하.."
"정말 너무해.. 나한테 결혼하잔 말도 먼저 안해줘놓구.. 계속 이렇게..ㅠ.ㅠ"
내가 계속 투덜거리자 정훈이는 갑자기 일어나더니.. 무대위로 올라갑니다.
대체.. 무슨일인지.. 황당합니다.. 쟤가 취했나.. 아님 내가 너무했나..
"아~ 아~ (마이크 테스트중^^) 안녕하세요~ 여러분~ 죄송합니다~"
정훈이의 말에.. 주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야! 너.. 장사 말아 먹을일 있어?? 어서 내려오지 못해??"
정훈이 선배가 소리치고 있지만.. 웃고 있네요.. 왠일인지..
"제가.. 죽을만큼 사랑하는 여자가 있습니다.. 제대로.. 프로포즈도 못했는데..
오늘 이 자리를 빌어.. 하고 싶네요.. 하하.. 전 자타가 공인하는 음.치. 입니다..^^
뭐.. 생긴것 보구 노래도 잘하겠다.. 생각하셨던분들.. 이해해주세요~
제가 노래까지 잘했음.. 이 인물에.. 여기 있겠습니까? 진작에 가수가 되었겠죠..^^"
정훈이의 말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리며 작게 환호해주었습니다.
"그럼.. 이 노래로.. 제 마음을 그녀에게.. 표현하겠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정말로 음치입니다.. 가사만.. 들어주세요."
정훈이 선배는 투덜거리면서도 키보드를 치기 시작했고..
곧 정훈이의 어색한 노래가 시작되었습니다.
난 드릴게 없어요 난 가진 게 없어요
그대가 지금껏 꿈꾸던 그 사람이 아니라서 미안해요
나도 어쩔 수 없어요 왜 세상에 왔어요
이제는 안 되요 사랑해 버렸으니
난 그대를 놓칠 수 없죠
한번에 다 보이진 않을 거예요
그대를 위한 나의 사랑은요
조금씩 매일마다 선물을 할께요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대는 받기만 해요
나 생각도 해봤죠
나 때문에 그대가 딴사람 만나면
더 행복했을 시간 잃어가고 있는지 몰라
하지만 약속해요 지금은 비록
그대를 감동시킬 수 없어도
먼 훗날 얘기 할 수 있도록 해 줄께요
지난날 나를 만날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번에 다 보이진 않을 거예요
그대가 싫증나면 안되니까
매일 내 마음 선물하면서 살 거예요
그대는 그저 받기만 해요
늘 지금처럼...
(조성모 '늘 지금처럼' 中) -41-
"그냥 이렇게 평생 살았음 좋겠다. 아무 생각하지 말고..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말고.. 그런데 그럴순 없겠지..?"
"나 없는동안만.. 힘들꺼에요. 나.. 군대 갔다오면.. 우리 아무 걱정없이 그렇게
이쁘게 사는거에요. 남들처럼 예쁜 아기도 낳구, 주말이면 여기저기 놀러도
가구요.. 상상만해도 너무 행복할꺼 같지 않아요?"
정훈이의 팔을 베고 누워있던 나는 돌아누우며 정훈이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습니다..
"쿡.."
갑자기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았습니다.
"왜...요?"
"너.. 어제 노래하던게 생각나서.. 풉...^^"
"에이~ 정말.. 그러기에요?-_-"
"너.. 근데 진짜 노래 못하더라. 잘하게 생겨가지구.. 히힛.."
"자꾸.. 그럴꺼에요?? 그런데 눈물은.. 왜 흘렸어요?"
"그건.. 니가 너무 웃겨서.. 눈물이 났던거지 바보야.^^"
나... 정훈이 이렇게 놀리고 있지만.. 사실 너무나 감동했었거든요..
웃으면서도 주책없이 흐르는 눈물이 너무나 민망해.. 어쩔줄 모르던 나였습니다.
"정말.. 웃길거 같지 않아?.. 너나 나 닮은 아기 낳으면.. 얼마나 웃기겠어?
우리처럼... 이렇게 속썩이면 어떡하냐?"
"난 평생 누나만 바라보고 살껀데요 뭐. 자식들이야 어떻게 자라든.. 결국은
우리 둘만 남을텐데.. 난 자식들이 속썩여도 누나만 곁에 있음 행복할꺼에요."
"야.. 누구나 다 우리처럼 생각할꺼야. 처음엔 말야.. 하지만 살다보면 우리도
그렇게 평범해지겠지 뭐. 보통 평범한 부부들처럼.. 그렇게 티격태격하면서
서로 권태로와 하기도 하면서.. 자식때매 속상해 하면서.. 그렇게 살겠지 뭐.."
"싫어.. 난 평생 이렇게 사랑만 하면서 살래요. 지금처럼 뜨겁게.. 가슴이
터지도록 누나만 사랑할꺼야..."
정훈이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리듯이 말합니다. 정말.. 그렇게 변하지 않기를...^^
갑자기 정훈이의 둘째누나로부터 연락이 와서.. 우선 그쪽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무슨일인지.. 조금은 걱정을 하면서 누나네 집으로 들어선 정훈과 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뜻밖의 손님때문에..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잘.. 있었어요?"
성민.. 환하게 웃음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서더군요.
"어떻게 여기까지... 무슨 일이시죠?"
정훈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하지만 정중하게 물었습니다.
"아.. 이렇게 찾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무사히 잘 있으니 다행이네요."
"성민씨.. 혹시.."
"걱정마요. 아무도 몰라요. 연이씨랑 정훈씨.. 여기 있는거.. 나만 알고 온거에요.
아무한테도 말 안했으니까.. 걱정마요."
순간 다행스럽다 싶습니다.
"여기에 온 용건이.. 뭔지 궁금하네요."
정훈이.. 굳은 표정으로 삐딱하게 묻습니다.
"유정훈씨.. 잠깐.. 연이씨와 둘이서만 얘기할수 있을까요?"
"뭐라구요?"
"걱정마요. 어떻게 하려는게 아니니까.. 그냥 할말이 있어서 그럽니다."
"누나.. 괜찮겠어요?"
정중하게 구는 성민의 태도에.. 정훈이 안심을 했던 걸까요. 못마땅해 하면서도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자리를 피해주더군요.
"행복..해요?"
느닷없이 그렇게 묻는 성민..
"네.. 우습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여지껏.. 이렇게 행복했던적이 없었어요."
성민은 내말에 작게 한숨을 쉬더니.. 웃음띤 얼굴로..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서울은.. 걱정마요. 연이씨 부모님.. 걱정 많이 하고 계세요.
경찰서에 실종 신고라도 내자고 하셔서.. 내가 찾아본다고 일단 말렸어요.
정훈씨랑 어딘가에 같이 있을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내가.. 여기까지 찾아온거에요. 정훈이가 날 데리고 도망친게 아니라.."
"다.. 알아요. 연이씨의 선택이었다는거.."
성민은 그렇게 말하며 날 차쪽으로 이끌었습니다.
혹시.. 억지로.. 데리고 가려는게 아닌가 싶어 순간 멈칫하던 나를.. 성민이
부드럽게 바라보며 안심하라는듯.. 트렁크를 열었습니다.
내가.. 실험실에 숨겨두었던 가방을 꺼내더니 내 손에 가방을 들려주더군요. 그리고..
"날.. 친구로.. 생각해줄래요?"
성민이 쓸쓸한 미소를 띤채.. 말했습니다.
"그건.."
"나.. 연이씨가 결혼하기에 참 좋은 여자라고 생각했어요. 사랑..은 아니었던것
같네요.. 정훈씨만 아니었다면 사랑했을지도 몰라요... 나와 우리 어머니가
연이씨한테 집착했던 이유는.. 연이씨가 정말 괜찮은 여자이고.. 이렇게
사랑에 빠질수 있는 순수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었던것 같아요..
나.. 솔직히 아직도 많이 아쉬워요. 연이씨랑 제대로 만나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보내야 하는 입장.. 아직도 마음이.. 그래요."
"미안..해요.."
뭐가 미안한걸까.. 이게 아닌데 싶으면서도 미안하단 말이 먼저 나가더군요.
"그만.. 가볼께요. 무슨일 생기면.. 전화해줄래요? 내가 필요할때가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후후.. 이렇게 말하는것도 우습지만."
"알았어요.. 그리고.. 고마워요."
쓸쓸하게 웃음지으며 차에 올라탄 성민.. 성민의 차가 떠나가는걸 바라보던
내 곁에 어느새 정훈이가 서더니 내손에 들려져 있던 가방을 듭니다.
"괜찮은.. 사람같아요.."
"너.. 담배피웠지? 냄새나..-_-"
"하하.. 그냥.."
"걱정했었어? 나.. 저 차 타구.. 가버릴까봐?"
"아니에요! 그냥.. 심심해서 담배핀거에요."
"치.. 걱정했구나? 가슴이 터질만큼 걱정된던거야? 바보~~"
정훈이는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내 손을 꼭 잡았습니다.
-42-
일단 정훈의 큰누나가 세를 놓던 집에 신혼 살림을 꾸미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정훈이가 어느쪽으로 가느냐에 따라 집을 마련하기로 했기에 당장은 아무것도 결정할수
없는 상황.. 함께 3개월밖에 못산다고 생각하니.. 시한부 인생을 언도받은 병자처럼
마음이 급하기만 하고.. 착찹합니다.
모든것을 너무 급하게 결정하다보니.. 복잡하고 제대로 정리가 되질 않았지만..
우린 행복한 마음으로 중고시장을 돌아다니며 당장 필요한 몇가지 가구를 구입해
예쁘게 색칠을 했습니다. 정훈의 누나들이 간단한 살림 몇가지를 마련해주었고..
내일이면.. 가족들과 조촐하게 모여 결혼식을 합니다..
이젠.. 유정훈의 아내로써.. 그렇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죠..
정훈이.. 내가 자는 오전동안 어딘가를 다녀오더니.. 내 앞에 큼지막한 쇼핑백을
내밀더군요.
"이게.. 뭐야?"
"별것도 아니지만.. 힘들게 마련했어요.. 내가 이렇게 무능한지 몰랐다니까..
하하.. 미안해요.. 이렇게밖에 못해줘서.."
쇼핑백을 열어보니.. 심플한 디자인의 하얀 원피스와 구두가.. 들어있습니다.
보는순간.. 눈물이 핑.. 돌고 말았습니다.
"그래두.. 신부가 흰색을 입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고 보니 여지껏 누나가
하얀색 원피스 입은 모습을 본적이 없는것 같아요. 싸이즈가 맞을지.. 한번 입어봐요.."
"정훈아.. 어떻게.."
"빨리요~"
옷은 꼭 맞았습니다. 나한테 어울리는지 안어울리는지는 모르겠네요.
거울앞에 서있지만 눈앞이 희미해져 내 모습을 제대로 바라볼수가 없었거든요..
"이야~ 너무.. 환상적으로.. 예쁜데요?!"
"오바하긴.. 근데.. 맞긴 맞는거야..?"
"딱이네요. 내가.. 누나 몸을 잘 알잖아요.. 어디가 나오고 들어갔는지~ 헤헤~"
"헛.. 너.. -_-"
눈물을 애써 참고 있는 날...정훈이.. 뒤에서 웃음지으며 꼭 껴안아 줍니다.
"오늘.. 우리 강촌 호수에 가요~"
"갑자기.. 왜?"
갑작스럽게 강촌 호수를 보러가자는 정훈이..
난 별 생각없이 정훈이를 따라 나섰습니다.
잔잔하게 물결치는 호수를 바라보며.. 드디어 내일 결혼을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르네요~
"누나가.. 그랬었죠? 여기서.. 결혼하고 싶다고~ 그래서.. 온거에요."
"너..."
"내일은.. 가족들때문에.. 정신없을까봐.. 오늘 우리 둘이 결혼식 전야제라도
하자구요~ 아니 이게 정식 결혼식이 되겠네요~^^"
"그래서.. 이렇게.. 니가 준비한거야??"
또 목이 매이며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왜 이러는지.. 바보처럼..
"신랑.. 이미 여기 입장해있으니.. 신부.. 신랑 옆에.. 서세요.. 신부..입장~~"
"엉터리.. 쿡.."
난 정훈이의 어깨를 치며 웃어버렸습니다.
"아.. 진지하단 말이에요. 내가 주례, 사회, 신랑.. 다 하려니까 힘드네..^^
아. 그럼 다시.. 신부 입장했으니까.. 주례가 있겠습니다. 신부.. 이연양은
신랑.. 유정훈군을.. 평생 서방으로 모시며.. 일편단심... 사랑할것을..
맹세합니까??"
계속 웃고만 있던 나를.. 정훈이 빨리 대답하라고 독촉합니다.
"풉.. 네.."
"신부! 결혼식때 웃으면 신부 닮은 못생긴 첫딸 낳는거 아시죠?"
"이씨.. 야!"
"신랑한테.. 이씨~ 가 뭐에요? 신부.. 진지하게 임해주세요..-_-"
"넵..-_-"
"신랑은 신부만을 평생 사랑하고 아끼겠습니까? 네~!!!(-_-) 그럼 신랑 신부의
뜨거운 키스가 있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갑자기 키스를 하려는 정훈.
"야.. 여기.. 사람들 많은데.."
난 주위 시선을 의식하며 정훈이를 밀쳐내었습니다.
"아.. 어때요? 우리 이제 부부인데.. 부부가 키스도 못해요?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인거.. 누구나 다 아는건데.. 겨우 키스가지고..-_-"
"그럼.. 살짝만 해."
"알았어요.."
하지만 정훈이.. 나에게 진한 키스를 퍼부었습니다..
호수를 곱게 물들이기 시작하는 노을이.. 다행히도 나의 붉어진 뺨을 가려주고
있었습니다.
"아차.. 반지 끼워주는 순서를 까먹었네!"
"반지..도 있어? 어떻게.. 말도 안하고 다 마련한거야?"
정훈이는 어떻게 마련했는지.. 커플링까지 준비해와서는.. 내 손에 끼워줍니다.
나도.. 정훈이의 손에.. 반지를 끼워주었습니다.
저녁햇살에 비쳐 유난히 아름답게 반짝이는 반지..
난.. 그러고보니.. 늘 정훈이한테 받기만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무엇하나 해준것이 없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며 가슴이 아파옵니다..
"이 반지.. 죽을때까지.. 서로.. 빼지 않기.."
정훈이가 내 손을 잡으며 진지하게 말했고.. 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장난같기도 한 둘만의 결혼식이었습니다~
우린.. 평생 부부로써.. 서로가 아끼고 사랑할것을 몇번이나 굳게 맹세했습니다.
이젠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우린 하나인것이죠... 그럴수.. 있겠지요..? -43-
유난히 화창한 아침-*
정훈이가 깨지 않도록 조심하며 침대에서 살짝 빠져나온 나는 근처에 있는
한 마켓으로 향했습니다. 내 또래로 보이는 젊은 주부들을 보면서.. 그들도 다
나같은 행복.. 나같은 기쁨을 느끼며 이렇게 아침에 장을 보겠구나 싶어 기분이
상쾌해지더군요.
29살이 되도록 제대로 된 음식 하나도 할줄 모르는 나의 무능력함을 탓하면서
물어물어 대충 장을 보았지요.
정훈이를 위해서.. 맛은 없더라도 아침을 꼭 해주고 싶었거든요.
정훈이가 깰까 조심하면서 간단히 국을 끓이고 밥을 하며.. 작은 행복을 느꼈습니다.
한참을 서툴게 칼질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인기척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정훈이가 들켰다는듯.. 장난스런 표정으로 웃고 있었습니다.
"휴~~ 머야? 놀랐잖아..!"
"에이~ 진짜.. 내가 오래전부터 상상하던 장면을 하나 연출해볼까 했었는데.. 누나
그렇게 무드가 없어요? 눈치도 없구.. -_-"
"어떤.. 장면인데...?"
"아내가 부엌에서 날 위해 음식을 만들고 있는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살짝 뒤에서 안는.. 그런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단 말이에요."
"풉.. 유치하긴~ 다시 해봐.. 그럼.. 나 모르는척 칼질하고 있을테니.^^"
"치~ 됐어요~ "
그러면서도 정훈이는 어리광을 부리듯.. 뒤에서 날 감싸안으며 내뺨에 입을 맞추고는..
귓가에 장난스럽게 속삭입니다.
"여보(-_-).. 나 배 안고픈데.."
"머? 일부러 없는 솜씨 부려가며 이렇게 요리하고 있는데.. 그게 할소리야?"
"밥보다... 우리 잠깐 방으로 들어갈까요?^^"
"방엔.. 왜..?"
"나.. 졸립단 말이에요.. 조금만 같이 누워있게.. 헤헤~"
"안.돼! 어서.. 가서 씻고 나와. 밥먹고 나가야지."
"아이~ 조금만요~!!"
하지만 결국 정훈이는 어린애처럼 나에게 떠밀려 욕실로 향했고.. 그런 모습마저도
너무나 사랑스러워.. 난 좀처럼 웃음을 지울수가 없었습니다.
잠시후.. 우린 어설프나마 한상을 가득메운 밥상에 마주앉았습니다.
"이야~~ 끝내주네요! 이걸 다 어디서 배웠어요??"
"요리책..보면서.. 겉모양만 흉내냈어.. 맛은.. 없을꺼다."
정훈이는 간도 맞지 않는 국과 반찬을 먹으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오바를 합니다.
저렇게 참고 먹어주는게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요.
"근데.. 여기 이렇게 있어도 되는거야? 니 선배한테 미안하다."
"그형.. 어차피 집에도 잘 안들어와요. 또 며칠동안만 있는 건데요 뭐.
신경쓰지 말아요. 그형.. 이집에 노총각 귀신 붙었다고.. 누나랑 나랑 밤마다
사랑을 불태워서.. 그 귀신좀 쫓아달래요."
"어우야~~ 머야~~ (내숭^^)"
밥상을 치우고 정훈이와 장난을 치며 설겆이를 한후.. 화장을 하려고 거울앞에
앉았습니다. 뒤에서 폼을 잡고 앉아 있는 정훈이의 모습이.. 거울을 통해 들어오네요.
"오늘.. 우리 드디어 가족들 앞에서 결혼식 하는거네.. 있다가 1시까지지?"
내말에 정훈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를 망설이는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할말이 있는듯.. 하지만 웃고 있는 내얼굴을 보며 망설이는 눈치입니다.
미안하단 말을 할꺼면.. 하지마.. 정훈아..
난 정훈이가 미안하단 말을 할까봐.. 일부러 말을 돌리며 웃음지어보였습니다.
"나.. 어제 입었던 하얀색 원피스 입어야지~ 오늘은 그래도 니네 가족들도 계시고
그러니깐 나.. 미용실에 들러서 머리좀 하고 갈께~"
"그래요.. 난 누나들 만나서.. 가죠. 뭐.."
"그래.. 나 먼저 나가봐야겠다~"
"근데.. 저기.... 나.. 할말 있는데..."
내가 일어서자 그제서야 날 붙잡는 정훈..
"뭔데..? 나중에 하면 안되?"
"아니요.. 지금 해야겠어요.."
"뭔데.. 아까부터 왜 그래? 안좋은 얘기야?"
"사실은.. 나 정이씨랑 통화했어요. 며칠전에 최성민씨가 찾아왔을때."
정이에게 결혼식에 와달라고 전화하고 싶었지만.. 정이도 한참 좋을 신혼때인데
가슴아플까봐.. 또 부모님의 귀에 들어가 망치게 될까봐.. 연락 안했던 나였습니다.
"미안해요.. 말도 없이 내 맘대로 해서. 근데 왜 정이씨한테까지 연락 안했어요?
많이 걱정했나보더라구요."
"그냥.. 그래서 오늘 우리 결혼식 한다고.. 말했어?"
"네.. 정이씨.. 진우씨랑 같이 온데요."
"그래.. 잘됐네.. 그럼 나 먼저 갈께~"
"잠깐.. 아직이요.."
정훈이는 나가려던 날 붙잡아 꼭 끌어안았습니다.
"있잖아요.. 나.. 어제.. 누나 어머니랑 통화했어요.."
"뭐라구??"
난 정훈이의 가슴을 밀쳐내며.. 소리를 높이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44-
"누나.. 부모님 멀쩡히 살아계세요! 왜 결혼식하는데 말씀 안드려요? 오시든
안오시든 말씀을 드려야하는게.. 당연한거 아닌가요??"
"너!! 우리 부모님을 몰라서 그래..!! 그래서 여기 있다고 말씀드렸어??
나 잡으러 오면 어떡할려구 그래??"
난 거의 울먹이며 소리치고 있었지만.. 정훈이는 담담한 표정이었습니다.
"오실꺼에요..."
"너.. 실수한거야... 우리 부모님.. 오시지 않아. 너만.. 괜한 상처받을뿐이라구."
".. 난.."
"니 말 듣기 싫어! 바보야!"
"내말좀 들어봐요!!"
"싫어.. 안 들을래...!"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했지만... 난 이미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당할수가
없었습니다.. 바보.. 정훈이.. 마음 약한 정훈이...
정훈이의 모습을.. 볼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불쌍해서.. 또 너무나 미안해서
정훈이의 얼굴을 바라볼수가 없었습니다..
"있죠.. 나.. 우리엄마 살아 계실때.. 불효자였어요. 세상의 모든 자식들이
그렇듯이.. 돌아가신 후에야 많이 후회했어요. 늘 엄마 속썩이며 말 안듣고..
어린애처럼 굴었던 내가..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야 청개구리처럼 후회했던거죠."
"이건.. 경우가 틀려.. 정훈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 때문에 불효를 저지르고.. 마음 아파하며 사는 모습을
난 볼 자신이 없어요.. 누난.. 언젠가는 날 원망하게 될꺼에요.. 난 그 원망..
다 끌어안을수 있지만.. 누나가 맘 아파하는거 보면서.. 그렇게 만든 내
자신을 용서 못할꺼 같아요.. 그래서 연락 드린거에요.. 날 위해서.."
너.. 왜 이렇게 바보같니.. 내가 널 왜 원망하겠어..?
절대로... 그런일은 없을텐데...
정훈이는 날 어린애 달래듯.. 토닥여 주었습니다.
"어머님 아버님.. 꼭 오실꺼에요. 우릴 용서하고.. 축복해주실꺼에요.."
내가 아는 부모님.. 절대로 정훈이 말대로 하지 않으실거라는거 알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를 해봅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자식이 이렇게 좋다는데
결국엔 포기하셨겠지.. 생각하며.. 작은 기대를 걸어봅니다.
우리가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고 있을때.. 정이와 진우가 왔고..
그들은 아무일도 없었던듯.. 우리의 현실과 미래를 축복해주는 말만 해주었습니다.
미안함, 고마움, 그리고 왠지모를 서글픔에 눈물이 납니다.
"언니.. 울지마. 정훈씨.. 아니 형부..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야. 언니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해줄 남자.. 언니.. 믿지?"
난 고개를 끄덕이며 주책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기에 바빴습니다.
"언니.. 좀있다가.. 윤이가 엄마랑 아버지.. 모시고 온다고 했어."
".............."
"별수 없지 머.. 서로가 이렇게 사랑하는데.. 어제 형부가 엄마한테 전화했을때..
엄마.. 길길히 뛰셨지만.. 좀 사그라드신 눈치였거든.."
"그...래??"
"아마.. 오실꺼야. 언니.. 빨리 가서 머리 하자. 화장도 이쁘게 하고~"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정이가 가져온 차에 올라탔습니다.
"그봐요.. 내가 오실꺼라고 했잖아요."
정훈이가 내 손을 꼭 잡으며 웃음지었습니다.
삐리리리~
크게 울리지도 않았는데 갑작스런 핸드폰 소리에.. 깜짝 놀랐습니다.
앞좌석에 앉아있던 정이의 핸드폰.. 그런데 느낌이 이상합니다. 왠지모를 불길함..
"어.. 윤이니? 그래.. 어디쯤이야?.. 우린 벌써 도착했지.. 응.. 뭐..??
뭐라구??... 어디?? .. 알았어.."
순간순간 변하는 정이의 표정을 보며.. 불길했던 내 예감이 맞아떨어지는것만 같아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별일.. 아닐꺼야..
"정아... 무슨일이야?"
진우가 운전을 하며 걱정스럽게 물었고.. 잠깐동안 망설이던 정이가 입을 열었습니다.
"언니.. 엄마.. 아침에 화장실에서.. 쓰러지셨대.. 지금.. xx 병원이래.."
난.. 정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훈이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정훈이도.. 할말을 잃은채.. 손에 힘을 주고 있을뿐이었습니다.
엄마.. 어떻게.. 끝까지.. 이럴수가 있어요?? 엄마.. 별일 없는거죠...
나 엄마.. 잘못되면.. 죽을때까지.. 원망할꺼야....
정훈이가 이렇게 속으로 되뇌이는 내 마음을 읽을까봐.. 애써 눈물을 감추며..
그의 어깨에 기대었습니다. 정훈이의 깊은 한숨이.. 온몸으로 전해져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45-
"나.. 못들어가겠어.. 우리엄마.. 자기 분에 못이겨 쓰러진거야. 왜 내가 엄말
쓰러뜨린 죄인이 되어야해? 나.. 못들어가..!"
병원 앞에서.. 차마 들어가지 못하는 나를.. 정훈이가 안타까와하며 붙잡았습니다.
"누가 죄인이래요? 사실은.. 속으로 많이 걱정하고 있잖아요.. 어서 들어가요.
어머니도... 아마 기다리고 계실꺼에요.."
그런 정훈에게 못이겨.. 결국 엄마가 입원해있는 병실에 들어섰습니다.
나를 원망하는듯한 눈으로 바라보는 윤이.. 무표정한 아버지.. 그리고 한결
초췌해진 모습으로 링겔을 꽂고 죽은듯이 누워있는 엄마..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했는데.. 왈칵 쏟아지는 눈물..
정훈이는.. 차마 병실에 들어서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난 그의 손을 붙잡았고..
동시에 윤이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어딜 들어와?? 언니가.. 사람이야? 엄마 쓰러뜨리고.. 여기까지.. 이렇게
와도 되는거야? 어쩜 그렇게.. 뻔뻔해??"
윤이는 울먹이며 나와 정훈이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윤아.. 언니도 힘들어.. 너까지 왜 이러니?"
정이가 날 대변하듯.. 윤이를 달랩니다.
"다들.. 조용히 하거라. 니 엄마 안정을 취해야 하는데... 저놈 보면 또
넘어간다.. 연아.. 그만 데리고 나가거라.."
저놈.. 아버지는 아직도 딸이 사랑하는 사람을 저놈이라고 하십니다.
가슴속에서 무엇인가 울컥 치미며.. 아버지에게 대들고 뛰쳐나가고 싶은마음을
간신히.. 정말 정훈이를 봐서 간신히.. 참았습니다.
바보처럼 그런 아버지의 등뒤에 대고 고개숙여 인사하는 정훈이.. 창밖으로 둔
시선을 돌리지 않으며.. 끝내 정훈이를 무시하고마는 아버지..
"죄송합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는 정훈이에게 너무 화가나.. 손을 붙잡고 병실에서
나와버렸습니다.
"니가.. 뭐가 죄송해?? 집 나와버린것도 나고.. 너랑 결혼하겠다고 한것도 나야.
니가 대체 무슨 죄야? 니가 뭘 잘못했냐구!!"
"누나가.. 잘못하면.. 내 잘못도 되는거에요... 우린 이제 하나니까.."
"너.. 왜 이렇게 바보같이 착하기만 한거니.. 이 바보야!!"
"착해서가 아니에요. 날 위해서에요. 내 맘 편하자고.. 난 어쩌면.. 아주
이기적일지도 몰라요..."
"우리사이.. 변함없는거지? 우리 이미 결혼했잖아... 너 혹시.. 이상한생각
하는거 아니지??"
모든게 끝나버리는게 될까봐.. 유난히 기분 나쁘게 화창했던 오늘 아침까지만해도
느꼈던 행복이 날아가버릴까봐.. 불안해하는 나였습니다..
"누나.. 어머니 간호 잘하세요. 좀 나아지시거든 연락해요. 나 자취방에 가
있을거니깐.. 핸드폰으로 언제든지.. 연락해요. 좋은 소식.. 기다릴께요."
"정훈아.. 가지마..!"
"누나.. 그렇게 말하지 마요.. 나 마음 약해진단 말이에요."
"싫어.. 우린 하나라며... 왜 나만 남겨두고 가는거야.. 왜??"
"아버님 말씀 들었잖아요. 우선 어머니.. 회복 되셔야 하니까.. 내가 옆에 있음
안좋잖아요. 피하는게 아니라.. 어머님의 건강을 위해.. 한걸음 물러서는것
뿐이에요. 걱정마요."
정훈이는 날 안심하라는듯.. 꼭 끌어안아 주었습니다.
하지만.. 나.. 너무나 불안합니다. 정훈이가 더이상 버틸 힘이 없어서..
너무 지쳐버려서 날 떠나버릴까봐..
-46-
엄마의 건강에 대한 걱정보다.. 이렇게 해서라도 날 막고야 마는 엄마가..
너무나 원망스러워 계속 눈물이 납니다.
엄마는 정신이 들어서도 눈물만 흘릴뿐.. 나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도.. 아무말을 할수가 없었습니다.
다정 다감하다고만 생각했던 우리 모녀관계가.. 이렇게 되어버렸다는것이 슬프기도
하지만.. 날 위한다기보다.. 나를 통해 욕심과 허영을 채워보려는 엄마인것만
같아.. 너무 속상하고 배신감마저 듭니다.
한숨지으며.. 몸보다는 정신적으로 더 아파하고 있는 엄마를 바라보다가..
더이상 참지 못하고 병실에서 나와버린 나.. 정훈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어머닌.. 괜찮으신거죠?"
"그래.."
"난.. 괜찮아요~ 어제 학교 가서 휴학계 냈어요."
"그래.."
보고싶어.. 니가 보고 싶어 미칠것 같아.. 사랑해..
몇번이나 그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정훈이의 맘을 아프게 할까봐
간신히 그 말들을 삼키고 있는 나였습니다.
"누나.. 어머니 다 나으시면요~ 나 허락 받아낼 자신 있어요. 지겨워서라도
허락해주시겠죠. 뭐.. 하하.. 누나도 걱정 말구요.. 어머니 간호나 잘해요."
"그래.."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한마디도 못한채.. 그래.. 라는 말로 시작해서 끝내버린
통화.. 전화가 끊기고 나서야.. 가만히 속삭여보았습니다. 사랑한다고..
"연아.. 나랑 얘기좀 하자."
병실 문앞에 멍하니 기대어있던 나를 깨우는듯한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습니다.
엄마의 오랜 친구이면서 엄마를 담당하고 있는 의사 선생님이었습니다.
"니네 엄마.. 예전부터 위가 안좋았었는데.. 아무래도 종양이 생긴것 같아..
여기를 보면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엑스레이를 보여주는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더이상 들리지
않았습니다.
깨어있는채로.. 기절한듯한 느낌.. 종양이라니요..?
"당장.. 수술해야 할것 같아. 다행히.. 아직 초기인듯해."
걸을 힘조차 없었지만.. 밖으로 나와.. 걸었습니다...
정훈이와.. 헤어져야 한다는.. 하늘의 뜻일까요?
엄마가.. 정말 나 때문에.. 생병이 다 나신걸까요...
나.. 어떻게 해야 하죠..? 나.. 정말.. 미쳐버릴것만 같은데...
정훈이 말대로.. 엄마가.. 만약에.. 만약에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정훈이와
함께 산다고 해도.. 그렇게 행복할수만은 없겠지요?
난.. 정훈이를 원망하지 않겠지만.. 늘.. 죄책감을 가지고 살 정훈이를 볼수가
없을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훈이가 없는 내인생은.. 이미 생각할수가 없네요.
차라리.. 죽고 싶어요..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힘든걸까요..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모든 남녀들.. 다들 우리처럼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사랑을 하는건가요..?
난.. 엄마를 외면할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정훈이와 헤어질수도 없습니다...
이미.. 결혼했는걸요..
난 반지를 한참동안 쓰다듬으며 바라보다가.. 결심한듯 정훈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정훈아.. 우리.. 제주도에 가자... 내가 비행기표랑.. 다 준비할테니까..
간단히.. 짐싸서 나와. 나 바람 쐬고 싶어."
"또다시.. 현실로부터 도망치겠다는거에요..? 그러면 안되요.."
안타까와하는 정훈이의 말을 무시해버렸습니다...
"난.. 니가 필요해. 함께 있고 싶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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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여 영원하라~~~~~~~~~~~~ 제 3 화 지금은 사랑할때 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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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9.10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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