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카어 강은 서두르지 않고 흐르고 오래된 다리는 수백 번의 만남과 이별을 아무 말 없이 견뎌온 얼굴로 서 있다. 하이델베르크의 아침은 조용하다.
구시가지의 창문이 하나둘 열리고 돌바닥 위로 햇빛이 내려앉는다. 이 도시는 늘 말한다. 천천히 와도 괜찮다고. 이곳에 서면 무엇을 이루었는지보다 누구와 함께 걸어왔는지가 먼저 떠오른다.
젊은 날의 야심도 중년의 분주함도 성 위의 폐허처럼 이미 지나간 장면이 된다.
하이델베르크 성은 완전하지 않아서 더 아름답다. 무너진 벽과 남아 있는 기둥 사이로 삶의 진짜 모습이 보인다. 인생도 그렇다.
다 채우지 못했기에 오히려 숨 쉴 공간이 남아 있다. 철학자의 길을 걷다 보면 생각은 자연스럽게 단순해진다.
말이 많은 관계보다 말없이 함께 걷는 시간이 더 소중해진다. 옆에 있는 사람의 호흡을 느끼며 같은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살아오며 친구는 많았다. 웃음도 술자리도 넘쳤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남는 얼굴은 정해져 있었다.
잘나갈 때가 아니라 힘이 빠질 때 함께해 준 사람들. 알테 브뤼케 위에 서서 강물을 바라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인연이란 건 붙잡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일이라는 것을. 하이델베르크의 저녁은 조용히 내려온다. 하루를 함께 걸은 사람과 따뜻한 식탁을 마주한다. 대단한 말은 필요 없다.
오늘도 무사히 지나왔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은 충분히 채워진다. 이 도시를 떠나며 나는 다짐한다. 앞으로의 삶에서는 속도를 맞출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고 필요할 때 곁에 서 있는 하이델베르크 같은 벗으로 살아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