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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큰 고을 두 개 앞 글자를 따서 도(道) 이름을 붙였다.
강릉과 원주, 경주와 상주, 전주와 나주, 충주와 청주 등등 …
충청도는 인조 때 잠시 공청도와 공홍도로 바뀌었으나 다시 충청도가 되었다.
현재 도지사 격인 관찰사가 파견된 감영(도청소재지)은
충주(1395~1598)에서 공주(1598~1894)로 옮겼고 말이다.
공홍도(公洪道)라고 함은 공주와 홍주를 말함인데,
큰물 洪, 마을 州, 그래서 한때 정3품 당상관인 목사(牧使)가 파견되었던 요지이기에
이 지역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물론 1914년 옛 홍주군과 결성군을 합하여 지금껏 홍성군은 이어지고 있다.
아직도 충남 서북부의 중심이라는 전통이 남아있고,
주변 시군에서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은 홍성고등학교로 모였다.
현재 충청남도의 도청소재지인 내포신도시가
홍성군 홍북읍과 예산군 삽교읍 접경지대에 위치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2
홍성의 산이라고 하면
가을날 억새로 유명한 광천읍 오서산, 아기자기하게 바위로 이어진 홍북읍 용봉산을 기억하지만,
사실 홍성의 진산은 홍성읍내에 우뚝 솟은 백월산이다.
백월(白月)은 ‘하얗게 밝은 달’이라는 뜻으로 명월(明月), 소월(素月)과 비슷한 표현이다.
굳이 중국 당(唐)나라 이백(李白)의 시 구절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동양에서는 보편적인 정서이다.
그러하기에 충청남도 홍성군만 아니라
청양군 운곡면, 보령시 화성면, 예산군 광시면, 경상남도 창녕시 의창구 등에도 백월산은 있다.
백월산은 영험하다는 소문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드리는 건 물론 전국의 무속인들이 다녀가는 곳이라고 한다.
홍성에서도 군수가 새로 부임하게 되면 백월산에 꼭 가고,
새해에는 많은 산악인들이 한해의 무사산행을 기원하는 시산제를 치르기 위해 모인다.
장엄하고 웅장한 기암을 지닌 속리산에서 서편으로 한남금북정맥을 분기하여
경기 안성에 이르러 서북향으로 한남정맥을, 서남향으로 금북정맥을 분기해
홍성에 이르러 산 하나를 들어 올린 곳이 바로 이 곳 백월산이란다.
이번 산행은 구항면 사무소에서 시작하여 백월산 정상(394m)에 오르고,
코끼리 바위와 천제단을 거쳐 용화사 입구로 내려왔다.
웅장하거나 높지는 않지만, 산 정상에 오르면
홍성읍과 서해의 천수만이 그림같이 펼쳐져 가슴을 탁 트인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은 안개비로 인해 전혀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
바로 건너에는 용봉산(381m)이 마주하고 있는데,
높이가 비슷할 뿐 아니라 산세도 서로 닮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용봉산이 옹골찬 근육질의 암산(岩山), 골산(骨山)인데 반해
백월산은 부드럽고 후덕한 토산(土山), 육산(陸山)이려니.
3
천제단에서 잠실 산악회에서는 마음을 모아 2018년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산신제를 올렸다.
목욕재계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제사 지내는 게 도리이기에
나는 모처럼 면도를 했는데, 누군가는 단정하게 이발까지 하였더라.
산신제에 참여한 게 이번으로 세 번째 이다보니,
결국 산악회를 따라 다니기를 3년 가까이 했다는 뜻이다.
산행 다닌 지 20여 년 되었다고는 하지만 현직에 있을 때는 정신없이 바빴기에,
짧은 틈을 이용하여 서울 및 근교산행을 즐겼다.
그러면서도 늘 장거리 지방산행에 대한 열망은 있었는데,
퇴직 이후 잠실산악회를 따라 다니면서 비로소 그 소원을 이룰 수 있었다.
그동안 여타 산악회들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많이 들어서 사실은 망설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잠실산악회는 오래된 동네 모임이다 보니 부부, 가족 등이 함께 참여하거나,
유격훈련 하듯 너무 빨리 움직이는 게 아니라 편안하게 걸어서 좋다.
무엇보다도 집 앞에서 떠난다는 게 부담이 없었고,
처음 참가한 회원이나 뒤로 처진 이들에게도 스스럼없이 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삶의 지혜를 일깨워 주시는 어르신과 솔선수범하는 임원진, 흥을 돋우어 주는 분위기 메이커,
홈피에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올리시는 분, 별식 또는 간식을 챙겨오는 회원들을 뵈며
왜 잠실산악회가 20년 가까이 유지되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도 ‘산행후기’ 쓰는 숙제를 자청함으로써
쉽게 일원으로 스며들 수 있었던 건 참 다행이었다.
4
지난 11월부터 일찍 강추위가 시작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독감 걸려 고생하였고, 집집마다 보일러가 터져서 애먹기도 했다.
서울 기온이 영하 20도가 계속되었고, 대구에서는 3월 폭설이 내렸다고 했다.
이상기온으로 인해 시베리아는 영상 3도인데,
유럽과 미국 동부는 영하 30도 동장군과 겨울폭풍이 몰아쳤고,
눈이 수북이 내려앉은 로마 베드로 광장과 콜로세움은 몇 십 년 만에 보는 진풍경이란다.
그런데 … 이제는 분명 볼을 스치는 바람결이 하루하루가 다르다.
누군가가 물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기적이 뭔지 아세요?”
그리고는 곧바로 “어김없이 봄은 온다는 사실입니다.”라고 대답하더라.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의 변화와 더불어 우리네 몸과 마음에도 봄날은 시작되겠지.
북쪽 경사면에는 아직 눈이 있고 그 가운데 노란꽃이 피었다.
복수초(福壽草)는 봄에 가장 먼저 피는 꽃이라고 하던데,
복(福)과 장수(長壽)를 가져다준다고 해서 그렇게 이름 붙였다고 한다.
나이는 들었어도 아직도 소녀시절 정서를 못 잊어서였을까?
저만치 뒤쳐져 산행하던 이들 중에는 무엇인가를 열심히 캐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달래나 쑥 등 봄나물이 아닌 영지(靈芝, 녹각지)와 운지버섯이었다.
(덧붙이는 글)
홍성군 서부면 바닷가에 위치한 남당리는 고깃배가 머무르는 항구이다.
일찌감치 산행을 마치고 생선회 안주와 함께 주꾸미 샤브샤브를 먹었는데,
산악회 회원의 가까운 친구가 운영하는 횟집이라서 더욱 알차고 푸짐하였다.
배부르게 먹고 몇몇이 바닷가를 거닐었다.
마침 밀물 때라 바닷물이 그득하고,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로 인해 더욱 운치가 느껴진다.
내 개인적으로는 홍성, 당진 등 충남 서북부 지역은 그리 낯선 곳이 아니다.
1980년대 중반과 2000년대 후반,
25년의 시간 차이를 두고 이 지역을 자주 오르내렸기 때문이다.
열정이 넘쳤던 그날들을 회상하면서 예전에 써 두었던 글 중 두 편을 꺼내 본다.
(2018. 3)
첫댓글 그런 것 같네요.!
날씨가 좋았다면 모든 걸 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그나름대로 안개에 덮인 산의 모습은 신비스러웠어요.
조금만 춥지 않고 비가 오지않아음 더욱 좋았을텐데 욕심부리지 말라고
그리 하였나봅니다. 전 차로 올라가서 더욱 아쉬움이 큽니다.
좋은곳이니 또 가서 아쉬움을 달래보는 것 괜찮을 것 같아요.
많은 설명과 느낌을 잘 보고 갑니다. 건강하세요.^^*!!
잠실 산악회를 몰랐으면 지난 3년동안 제 생활이 얼마나 삭막했을까 돌이켜 봅니다.
부회장의 입장에서 앞으로 회장님을 깍듯이 모시겠습니다. 분부만 내리소서.^^*!!
녭! 열심히 힘을 모아 잘해봅시다.^^*
감사합니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