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는 나이 59세에 43년이나 근무하던 직장에서 해고당했다. 6개월 전에는 사랑하던 아내 소냐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살 의미를 찾지 못한 그는 자살하기로 결심한다. 죽으면 아내 곁으로 가게 되리라 생각하면서... 과연 그렇게 될지 의문스럽지만. 자살한 사람이 병사한 사람과 같은 곳으로 갈 수 있을런지...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천국보다 아름다운(What dreams may come)'이라는 영화를 보면 자살한 사람은 벌을 받아 다른 곳으로 가던데...
오베는 빈 집에서 공허함을 느끼면, 아내 소냐의 무덤을 찾아가 그날 있었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주로 이웃들의 멍청함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오베는 아내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질수록 빨리 죽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네 차례 자살을 시도한다. 처음에는 빨래줄에 목을 메달아 죽으려고 하는데, 여러 차례 실패를 거듭한다. 앞집으로 새로 이사온 부부가 자꾸 그의 집 벨을 눌러 방해하기 때문이다. 물건을 빌려달라든가, 이런 저런 도움을 청하러 오베를 찾아오는 것이다.
목에 멘 빨래줄이 끊어져서 실패하고, 차의 배기관에 호스를 연결해서 차의 실내로 배기가스를 들어오게 하여 죽으려 했지만, 질식하여 허겁지겁 차창을 열면서 실패하고, 총으로 얼굴을 쏴서 죽으려 했으나 벨소리 때문에 오발하여 실패하는 모습들이 꽤나 코믹하다. 오베가 자살을 시도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이번에는 어떻게 실패하게 될지 기대가 되면서, 웃음이 먼저 나온다.
오베의 마지막 자살시도는 자기가 근무해 왔던 기차역 플랫폼에서 기차에 몸을 던져 죽는 것이다. 이웃들 때문에 집안에서는 안되겠으니까 집밖에서 죽기로 한 것이다. 달려오는 기차를 보며 뛰어들 타이밍을 찾고 있는데, 아뿔사, 그보다 먼저 어떤 젊은이가 기차길로 굴러떨어진다. 그는 당황해 하면서, 기차길로 뛰어들어 그 젊은이를 들어올려 살려낸다. 그리고 자기는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고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내맡긴다. 그러자 젊은이를 받아 주었던 사람들이 그에게 손을 내밀며 어서 손을 잡고 올라오라고 소리친다. 어쩔 수 없이 그 손을 잡고 끌어올려져 간발의 차로 기차를 피한다. 이처럼 오베는 문자 그대로 죽기가 살기보다 힘든 상황들에 처하게 된다. 코메디 영화라고 보기에는 무언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지만, 웃게 만드는 장면들이 요소 요소에 박혀 있다.
거의 죽음에 성공할 듯한 순간에는 과거의 삶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어린 시절의 어머니 장례식, 아버지와 함께 살던 일, 집에 불이 나서 거처를 잃어버린 일, 기차 안에서 소냐를 만나게 된 일 등등.. 그러한 회상들을 통해 오베의 일생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도록 그려진다.
오베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침마다 규칙적인 시간에 마을을 순찰하며 시설들을 점검하고, 주차선에 맞지 않게 주차된 차의 번호를 기록해 두고, 마을의 규칙을 어기는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를 해대며 이웃들과 좌충우돌 하며 지낸다. 그는 자기의 방식과 다른 사람들은 모두 멍청이라고 여긴다. 이처럼 오베는 고지식하고, 원칙주의자이고, 괴팍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다. 이웃의 청을 처음에는 무조건 거절하지만, 결국에는 다 들어준다. 청한 그 이상으로 도움을 준다.
오베는 소냐를 우연히 기차에서 만나고 난 뒤,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어서 무작정, 수 없이, 매일 같은 시간대의 기차를 탄다. 그러다가 행운인지 운명인지 어느 날 소냐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의 계획이 마침내 성공한 것이다.
그렇게 하여 소냐와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하고, 사랑하게 되고, 결혼도 한다. 소냐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지만, 교통사고로 임신한 아이를 잃기도 하고, 마침내는 소냐마저 먼저 세상을 떠난다.
아내 소냐 없는 삶은 무의미하기에, 기왕에 실직까지 했겠다, 자살하기로 결심한 오베의 처지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사실 우리 주변에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 보낸 경험이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 논리라면 세상에 살아 남아 있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요즘에는 이런 저런 이유로 혼자 노년을 보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고독사 사건이 실제로 많이 일어나고 있으며,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비단 노년뿐이 아니다. 나이를 불문하고 혼자 지내는 사람들이 많다. 혼밥, 혼술이라는 과거에는 있지도 않았던 단어들이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다.
오베가 결국은 자살에 실패하면서 이웃과 뒤엉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작가가 말하고 싶은 요지가 사람은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오베야 어울려 살고자 노력하지 않았지만, 주변에 사람들이 살고 있는 한 싫어도 어울려지게 마련이다. 그렇게 이웃과 엮이도록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작가의 눈길의 따스함이 느껴진다.
그런데 관계 속에서의 나도 의미있겠지만, 나 혼자로서의 삶 안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말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좋아하는 일 찾아서 즐기고, 자신의 내면을 가꾸고 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하루 하루 이승의 삶을 살아 간다는 일 자체가 축제가 아닐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아주 아름다운 노래가 나온다. 검색해 보니 싱어가 라레이(Laleh)인데, 곡명은 영어로 번역하면 'A moment on earth'이다. 라레이의 앨범이 4개 발매되어 있다. 랜덤으로 이곡 저곡 들어보니 매력적이다. 스웨덴은 그 유명한 ABBA, Ace of Bace, Roxette, 얼터너티브 락그룹 Kent 등 기라성같은 아티스트를 배출한 음악적 감성이 뛰어난 나라이다. 그러한 감성이 '오베라는 남자'의 이야기에도 배어 있는 것 같다.
P.S. 혹시 이 영화 꼭 보고 싶은 사람 있으면 내게 메일 주세요. 파일 보내드릴게요.
duorainbow@hanmail.net
첫댓글 24기 이순희 영화 감상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