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그리워서 목이 메이는 한 분이 있다.
바로 우리 아부지다. 천재라는 소리를 들은 아부지는 장남이라는 이유로 객지로
떠나지도 못하시고 면서기를 하셨는데 워낙 술을 좋아하셔서 말술을 마신 관계로 병을
얻었고 부면장 선거를 앞두고 쓰러지셨다. 그날 이후로 본의 아니게 이도 저도 아닌
그야말로 어중잽이 신세가 되셨고 지식은 많으나 풀어 먹지 못하는 그 심정이 오죽
하셨을까? 할머니와 엄마의 갖은 노력으로 어느 정도 치료가 되셨지만 그 이후로도
늘 술을 가까이 하셨고 옳은 직장도 없이 한탄만 하시다가 동네 이장을 하셨다.
내 기억으로는 10년을 넘게 하신 것 같다. 우리 동네뿐만 아니라 다른 동네 사람들의
땅 필지까지 외우고 계신 이장은 아마도 전무후무하지 않나 싶다.
술에 약하신 아버지의 약점을 이용해서 동네 사람들은 술을 사 드린 후 너도 나도 할것 없이
빚 보증을 부탁하셨고 사흘이 멀다하고 배달되는 빨간 글씨의 독촉장은 우리 가족을
몸서리치도록 공포에 몰아 넣었다. 우체부가 다녀간 다음 날은 반드시 아버지의 연극 아닌
연극이 공연 되었다. " 고놈의 술이 원수제, 내가 살모 뭐 허겄노, 너거 어메랑 너거들
골뱅만 들이제" 하시면서 정체불명의 약병을 꺼내 드셨고 우리는 죽을 힘을 다해 약병을
빼앗았고 엄마는 대성통곡을 하셨다. 그 다음 코스는 큰 깍꾹에 있는 외갓집(조 영자)으로
가셔서 할아버지에게 돈을 얻어 오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곤 했다.
화려했던 이장직을 그만 두신후 워낙 능력있는 분이라 흐르는 물을 어떻게 감독 하시는지
몰라도 "물 감독"이 되셨다. 낡은 자전거 뒤에는 항상 "소시랑"을 끈으로 동여 메고 하루에도
몇번씩 본부(수리조합&저수지)를 다녀오셨다. 장마철엔 한 밤중이건 새벽1시,2시건
폭우속을 헤치고 소시랑 하나 댕그라니 들고 물꼬를 터신다고 나가시면 우리는 돌아오실때
까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천둥,번개라도 동반하는 날에는 엄마까지 동행을
하시는 바람에 우리는 따불로 걱정을 해야 했지만 이장 하실때에 비하면 그래도 마음은
편했다. 아부지가 감독직으로 승진이 되신후에는 비 오는 날이 싫었고 특히 장마철이
있는 여름이 싫었다. 냇고랑에서 멱 감는 것은 좋았지만....
어릴때 코가 커서 "아부지는 미국놈이제?"라고 버릇없이 놀려도 그저 허허 하고 웃으시던
맘씨 좋은 내 아부지. 남해 군 농협에 있을때 퇴근이 일정하지 않는데도 겨울에는 어두워서
아래 대뫼까지 내려올려면 무섭다고 6시부터 밖에서 기다리던 하늘같은 내 아부지!!!
막내딸 시집보내고 얼마지나지 않아 보고싶으시다고 그 무거운 쌀부대 짊어지고 불원천리
달려오신 인정많은 내 아부지!!!!!!!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그리움의 눈물이 빗물되어 흐르는데 당신은 이미 제곁을
떠나고 추억이라는 흔적만이 텅빈 가슴을 채워줍니다.
첫댓글 너거아부지가 정이많아그랬는갑다 사람은 정으로산다안하더나 정체불명의그약은뭐이꼬? 까스명수아이였을까?
사람 좋다는 소리...우리 엄마도 진절이 친다. 난 어린 시절에는 엄마가 미웠느데... 결혼하고 내 생활을 하니 우리 엄마 심정 이해가 되더라. 우리 아버지 모든 사람들 일 다 봐주면서 좋은 소리 듣고 우리 엄만 뒤치닦거리에 속상하고... 아이들 관수하라...정말 눈물나데...
가시나, 꼭 제목 야시꾸리 붙이 가지고 저그 집안 사람 얘기하긴 ㅎㅎㅎ.남해 아부지들은 왜 남들에게 잘할까???자기집안보다, 그러니 엄마들이 고생이지.
여기 불효자! 고개숙여 반성하며 백배 천배,사죄드리고 시방도,마음속 깊이 흐느껴 웁니다.....
울긴 왜울어 가신분 편히쉬게 그냥 놔두시지요 울 아배도 볼새 돌아가셨슴 내도 한참은 생각은 나드라
저번에는 혜선이가, 이번에는 옥매가 아부지 얘기고, 나는 아부지에 대한 기억조차 희미하다. 너무 오래되어서 그런가. 그런데 어무니 생각은 많이 나네. 있을때 잘해드려라.
옥매야! 그래도 좋은 추억을 주신분이니 맘 속에서라도 그리워하며 사랑하자. 사랑은 죽는 것이 아니란다. 그래서 가슴속에서 영원한 것인가 보더라. 아마도.....